‘킹아더’의 악역부터 ‘데스노트’ 일본 공연까지...박혜나의 새로운 도전

올댓아트 정다윤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5.22 18:11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5.22 18:14

폭발적인 가창력, 강렬한 카리스마. 배우 박혜나에게 흔히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러나 무대 위의 그는 항상 이런 몇 가지 형용사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박혜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위키드>의 초록 마녀 엘파바부터 <데스노트>의 슬픈 사신 렘, 그리고 모두에게 버림받았지만 그 모두를 사랑했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까지. ‘박혜나에게 이런 면도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그는 항상 무대 위에서 묵묵히 증명해왔다.

지난 2018년 <프랑켄슈타인>에선 1인 2역을 소화해내고 연극 <경환이>로 연출 데뷔까지 하며 분주한 한 해를 보냈던 박혜나. 2019년 봄, 그는 뮤지컬 <킹아더>에서 또 다른 변신을 선보이고 있다. 아더 왕 전설을 소재로 한 이 뮤지컬에서 아더의 이부 누이이자 전설적인 악역인 모르간 역을 맡은 것. 복수심에 팔팔 끓는 무대 위 모르간과 달리, 무대 아래서 만난 그는 차분하고 침착했다. 단어 하나도 조심스레 고르는 신중함과 연기에 대한 겸허함. 지금의 박혜나를 있게 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배우 박혜나|씨제스엔터테인먼트

<킹아더>에 출연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감사하게도 모르간 역으로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제안을 받고 프랑스 원작을 영상으로 봤는데, 음악이 너무 좋고 설레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특히 모르간 캐릭터가 감정선도 흥미롭고 표현해보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프랑스 원작 영상을 봤을 때, 작품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나요?
우리나라 뮤지컬이랑 구조가 달라서 일단 신기했어요. 음악도 좋고 무대도 정말 화려했고. 무엇보다 커튼콜 때 관객들이 다 같이 일어나서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즐겁게 해주는 뮤지컬이구나 싶었죠. 저 역시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데서 큰 보람과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점에 끌렸던 것 같아요.

모르간이란 캐릭터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요?
드라마가 풍성한 인간적인 인물이에요. 극중 인물들을 선과 악으로 나눈다면 모르간은 그중 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고, 아더를 힘들게 하는 사건을 들고 오는 인물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동시에 이해할 여지가 많고 안쓰러운 인물이기도 해요.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요. 그런 복합적인 면을 무대 위에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뮤지컬 <킹아더> 공연 장면|알앤디웍스

모르간을 표현할 때 특별히 고민한 부분이 있나요?
저는 모든 인물을 표현할 때 미리 정해놓은 답에 갇히지 않으려고 해요. 뭔가를 미리 만들어놓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매 순간 상대역과 주고받는 호흡을 통해 대사를 내려고 하거든요. 그래도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장면을 꼽자면 모르간의 퇴장 장면이에요. 프랑스 원작에 없던 장면이기도 하고, 모르간 안에 살아 숨 쉬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장면이거든요. 이 장면을 잘 이해시켜야 모르간이 얼마나 외롭고 아픈 존재인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죠.

넘버 스타일이 기존 뮤지컬과 다른 편인데, 부를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있나요?
스타일은 달라도 기본적으론 뮤지컬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상황이나 감정에 맞게 표현하려고 해요. 너무 흥에 취해서 캐릭터를 잊어버리지 않게 신경 쓰고 있어요. 콘서트였다면 다르게 불렀겠지만요.

군무가 많아서 앙상블과의 합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연습할 때 힘들진 않았나요?
사실은 저보단 앙상블 배우들이 고생이 많았어요. 라이선스 작품이지만 거의 창작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연습 시간이 여유롭지가 않았거든요. 그 많은 군무를 앙상블들이 단시간에 해내는 걸 보면서 다들 감동받고 기립박수도 치고 그랬죠. 그 앞에서 저는 차마 힘들단 소리를 할 수가 없었어요.

<프랑켄슈타인>의 에바도 그렇고, 악역 연기를 할 때 특히 신나 보이는 것 같아요.
악역이 재밌긴 하죠.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말이나 에너지를 쓰니까 더 새롭고요. 특히 또 제가 연기했던 악역들이 주로 텐션이 높은 캐릭터들이라 더 그래 보였던 것 같아요.

<킹아더>는 오랜만에 남편인 김찬호 배우와 함께한 작품이기도 한데요. 함께 무대에 선 소감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희가 부부라는 걸 아시는 관객분들의 몰입을 깰까 봐 걱정도 됐어요. 그렇지만 무대 위에선 스스로가 아닌 다른 캐릭터가 되는 거니까요. 각자 자기 캐릭터에 집중해서 연기하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도 함께 출연했었지만 <킹아더>는 또 신나는 작품이잖아요. 이런 무대를 같이 할 수 있어서 힘이 되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부부 케미’로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는데, 연기하는 본인이 느끼기엔 어땠나요?
꼭 남편이라서 특별히 달랐다기보다는... 김찬호 멜레아강이 흥이 많아요. ‘맹세해’ 장면에서 골반 댄스를 같이 춰주는 유일한 멜레아강이라서, 외롭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웃음)

뮤지컬 <킹아더> 공연 장면|알앤디웍스

<킹아더> 배우끼리 사이가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점은 운동회였어요. 어느 날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단톡방에 이런 날엔 운동회나 엠티를 하면 좋겠다는 얘기가 올라왔어요. 그런데 마침 최수진 배우가 별명이 ‘최추진’일 만큼 평소에 이것저것 추진을 잘 해서, 다른 배우들과 똘똘 뭉쳐서 운동회를 추진하게 됐죠.운동회 영상을 이영호 배우가 유튜브에 올려서 관객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죠.

사실 저는 영상을 찍을 줄 몰랐어요. 정말 우승만을 위해 옷도 편하게 입고 화장도 안 하고 가서 전 빼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찍은 영상을 보니 이것도 추억이겠구나 싶더라고요. 학창시절 체육부장이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저희 팀의 목표는 ‘이기지 못하면 웃기기라도 하자’였어요. 그래서 계속 열심히 흥을 냈는데, 다행히 꼴찌는 면했죠. 사실 저희 팀이 계속 1등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역전을 당한 거예요. 그때 또 인생을 배웠습니다. 인생이란 작은 일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요. <킹아더>가 이렇게 인생을 배우게 하는 작품이에요. (웃음)

“박혜나의 <킹아더> TMI”

세 명의 아더(장승조, 한지상, 고훈정) 중 가장 얄밉고 복수하고 싶은 아더는 누구인가요?
(한)지상이? 잘생겨서 그런가? 그런데 셋 다 잘생겼어요. 다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이렇게 보니까 셋 다 얄밉네요. (웃음)

세 모르간 중 유일하게 결혼식 장면에서 늑대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사실 고소공포증이 있고 계단을 특히 잘 못 올라가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적응이 돼서 괜찮은데, 기왕 한 거 막공까지 계속 해보려고요. 제가 좋아하는 늑대와 교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모르간은 아더랑 적대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아더를 섬기는 늑대가 모르간을 에스코트해줄 수밖에 없다는 게 재밌지 않나요?

모르간에게 멜레아강은 어떤 존재인가요? 나름의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멜레아강을 싫어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비록 모르간이 멜레아강을 이용하긴 하지만 동질감도 분명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슬픔과 분노를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은 이해 못 하겠어요? (멜레아강이 죽을 때도) 조금은 인간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르간이 100% 악한 마녀이기만 한 건 아니니까요. 그런 면을 보여줘야 퇴장 장면까지 자연스럽게 납득이 갈 거라고 생각했죠.

결말 이후 모르간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모르는 일이지만, 제 바람은 모드레드의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단 거예요. 모르간이 원해서 그런 삶을 산 게 아니잖아요. 모르간의 어머니도 이런 복수를 원하지 않았을 거고. 그걸 마지막 순간에 아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달았을 거예요. 그 순간에는 혼란스럽고 분노하는 감정이 많았겠지만, 모드레드가 태어난 후에는 어머니와 가졌던 추억을 힘으로 삼아서 행복하게 잘 살지 않을까 싶어요.

<킹아더>에서 모르간 외에 탐나는 캐릭터가 있다면?
아더의 형인 케이요. 웃음을 줄 수 있고 유일하게 숨을 트이게 해주는 역할이잖아요. 제가 케이를 하게 된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반전을 줘보고 싶어요. 초반엔 미친 척, 웃긴 척하다가 “아더 왕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라는 대사를 할 때 갑자기 진지해지는 거죠. 얼굴도 막 잘생겨지고. (웃음)

“더 나은 무대를 향한 도전”
얼마 전 발표된 박혜나의 차기작 소식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20년 1월 일본 도쿄에서 공연하는 <데스노트>에 유일한 한국인 배우로 출연하게 된 것. <데스노트>의 렘은 한국에서도 두 차례 연기한 배역이지만, 일본어로 연기하는 것은 데뷔 14년차인 박혜나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일본 <데스노트>엔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요?
<데스노트> 국내 초연 오디션 때부터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님이 저를 눈여겨봐주셨어요. 제 안에 있는 어떤 면이 연출님이 생각하는 렘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이번 일본 <데스노트> 삼연에 불러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첫 일본어 연기 도전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공연 연습은 연말부터인데, 지금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일본어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큰언니가 일본어를 전공해서 낯선 언어는 아니었는데, 막상 배우니까 쉽지 않네요.

배우 박혜나|씨제스엔터테인먼트

대학원도 다니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에 뮤지컬 전공으로 재학 중이에요. 처음에는 거실 한쪽을 서재처럼 꾸미고 밤새 공부해서, 같이 사는 분이 ‘이러다 박사 되겠다’고 놀리기도 했어요. (웃음) 지금은 공연이랑 병행하다 보니까 처음만큼 열심히는 못 다니고 있지만요.

꾸준한 자기개발의 원동력이 뭔지 궁금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죠.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갇히고 싶진 않아요. 조금이라도 다음 무대가 이전 무대보다 나아졌다면 그걸로 가치 있고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어요.

그렇다면 쉬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취미가 있다면.
특별한 취미는 없어요. 영화나 드라마 보기? 식물 보는 것도 좋아해요. ‘초록초록’한 걸 좋아하거든요. 그동안 바빠서 ‘밥 먹자’ 말만 했던 사람들도 만나고요.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 닮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모든 역할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꼽자면 <위키드>의 엘파바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예요. 엘파바에게선 강한 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끌고 나갈 수 있는 힘과 의지력을 닮고 싶어요. 또 마츠코에게선 어떤 환경에서든 사랑을 베풀고 열심히 살아가는 면을 배우고 싶고요.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꼽은 <위키드> 초연도 벌써 5년이 지났는데요. 지난 5년간의 박혜나를 스스로 돌아본다면?
배우를 처음 시작할 때 딱 10년만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났을 때 전에 하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동안 제가 꿈꿨던 일도 많이 이뤄졌고 성취한 일도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한 걸음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게 해준 게 <위키드>였고요. 이제는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해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런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드리는 것. 그게 앞으로 10년 동안의 목표예요.

<킹아더> 관객들과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라 준비하면서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됐는데, 좋은 관객분들을 만나서 무사히 막공을 앞두고 있는 것 같아요. 관심 가져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리고, 막공까지 초심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다른 무대에서도 좋은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 뮤지컬 <킹아더>
2019.03.14 ~ 2019.06.02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공연시간 160분
기본가 6만~14만 원
장승조, 한지상, 고훈정, 임정희, 간미연, 이지수, 임병근, 장지후, 니엘, 김찬호, 이충주, 강홍석, 리사, 박혜나, 최수진, 지혜근, 김지욱, 정다영 등 출연

<올댓아트 정다윤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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