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한가요” ‘그리팅맨’이 북녘에 건네는 인사... 답장은?

올댓아트 박송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9.26 09:5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9.26 09:57

■ 요기over there ‘2019 오늘의 작가, 유영호’ |2019. 9. 6~11.3 |김종영미술관

경기 연천군에 설치된 ‘그리팅맨 Greeting man’ |연천군 협찬

경기도 연천군 옥녀봉. 저 멀리 북한이 보이는 이곳에 뜻밖의 거대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10m 높이의 ‘그리팅맨Greeting man’. 그는 휴전선 너머 북쪽을 바라보고 인사하고 있다. 15도 정도 몸을 구부린 그의 인사는 정중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리팅맨’은 2016년 4월 23일 이곳에 설치됐다.

‘그리팅맨’ 설치 모형.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으로 빨간 핀은 휴전선 위치다|김종영미술관

당시는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으로 남북 관계가 극에 달했던 때다. 유영호 작가는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보며 미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그는 휴전선을 경계로 남쪽에 위치한 경기 연천군 옥녀봉과 북쪽에 위치한 황해남도 장풍군 고잔상리 마량산에 ‘그리팅맨’을 설치하는 안을 생각해냈다. 옥녀봉과 마량산은 일직선으로 곧게 이어져 마주 보고 서 있다. 두 곳에 서로 마주 서서 인사를 하는 ‘그리팅맨’을 설치한다면, 그것 자체로 평화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연천군의 허가를 얻어 ‘그리팅맨’을 설치하고 북한 쪽에도 제안을 전달했다. 아직 답변은 오지 않았지만,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 간 소통이 활발해진다면 꼭 마량산에도 ‘그리팅맨’을 세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특히 마량산은 한국전쟁 중에 317고지로 불리며 1951년 10월 3일부터 8일까지 중공군과 호주군 사이에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듯한 남북 ‘그리팅맨’의 인사는 언젠가는 영구적인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될지도 모른다.

‘요기over there ’ 포스터 |김종영미술관

유영호 작가의 전시 ‘요기over there ’가 서울 김종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연천 옥녀봉과 고잔상리 마량산에 설치할 ‘그리팅맨’의 축소 모형을 볼 수 있다. 등고선을 따라 땅의 모양을 그대로 만들었고 휴전선도 표시했다. 연천의 ‘그리팅맨’과 마량산의 ‘그리팅맨’이 멀리서 서로 마주 보며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형 작품은 그 자체로 평화의 메시지다. 아마도 ‘그리팅맨’이 마량산에까지 설치된다면 맑은 날에는 작게나마 서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시명인 ‘요기’는 가까운 특정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는 아니지만 너무 먼 ‘저기’도 아닌, 손 내밀면 닿을 것만 같은 ‘요기’는 북한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고, 한 발짝만 용기를 내어 나아가면 만날 수 있는 ‘평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유영호 작가와 그의 작품 ‘평화의 길’ |김종영미술관

유영호 작가는 1999년부터 ‘그리팅맨Greeting man’ 시리즈를 만들어 왔다. 그에게 인사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작점이자, 다른 문화를 만날 때 갖는 기본자세이다.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거대한 공공조형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 10여 개의 ‘그리팅맨’이 설치돼 있는데, 그는 ‘그리팅맨’ 프로젝트를 통해 만남, 공존, 화해, 평화, 안녕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대척점에 있는 나라인 우르과이에도 ‘그리팅맨’이 설치돼 있다. ‘그리팅맨’이 명물이 되면서 설치된 장소가 ‘한국광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곧 베트남 ‘후에’에도 세워질 예정이다. 전쟁 격전지였던 그곳에 설치된 ‘그리팅맨’은 또 다른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 될 것이다. 유영호 작가는 상암동 MBC 사옥 앞에 설치된 일명 ‘Mirror Man’이라 불리는 작품 ‘월드 미러’를 만들기도 했다. 이 작품은 영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나오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적도 부근인 에콰도르에 위치한 키토시에도 이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유영호 작가는 “프레임 사이에 또 같은 대상이 있는데, 이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그게 바로 소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평화의 길’ |김종영미술관

이 밖에 이번 전시에서는 소통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유영호 작가의 ‘평화의 길’과 ‘인간의 다리’도 함께 만나 볼 수 있다. 작품들 모두 대형 공공조형물을 축소한 형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꽉 찰 정도로 거대해 관람객들은 충분히 실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그리팅맨’을 연상시키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상반신 조각상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그리팅맨’과 다른 점은 두 팔이 길게 뻗어 있다는 것이다. ‘평화의 길’은 살짝 고개를 숙인 거대한 두 사람이 두 팔을 벌려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두 사람이 잡은 손은 길이 되어 그 위로 남녀노소, 인종을 막론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곳은 굴곡이나 차이 없이 평등하게 이어져 있다. 모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제 작품에서도 관객들이 이어진 팔 위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는데, 남북 경계선이나 갈등이 심화된 장소에 ‘평화의 길’이 설치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평화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다리’ |김종영 미술관

‘인간의 다리’는 강 가운데에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람이 두 팔을 벌려 다리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20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이 전시돼 있는데, 사람들에게 다리가 되어 주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낮추는 거대한 사람의 모습에서 평화를 위한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강물의 물살이 거셀수록, 혹은 물이 거인의 가슴까지 많이 차오를수록 평화의 이미지는 더 간절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유영호 작가는 “이 다리로 평화는 추상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아직 설치할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임진강이나 남북을 연결하는 지점에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의 다리’ |김종영미술관

유영호 작가는 이 같은 공공조형물 작업의 작품 제작부터 운반과 설치까지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한다. 온전히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는 셈이다. 작품을 설치하고자 하는 지역 관청과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작품설치 완료에도 최소 2~3년이 걸리지만, 그는 이러한 독특한 방식의 공공조형물 설치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시도해나가고자 한다. “예술의 궁극적인 과제와 존재 이유는 작가가 그 시대와 사회의 실존 문제를 여하히 형상화해 내는가에 달렸다”라고 말하는 그는 그저 자신의 작품을 화이트 큐브에 진열해 상품으로 거래하는 구조를 거부한다. 그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과 공유되기를 원하는 그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길을 지치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 전시명: 2019 오늘의 작가 유영호전 ‘요기 over there’
기간: 2019. 9.6~11.3
장소: 김종영미술관 신관 1,2,3 전시실

<올댓아트 박송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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