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알런·연기 천재·노출 연기…서영주를 둘러싼 말

올댓아트 이민지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10.15 18:01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10.15 18:03

최연소 알런 아닌 지금의 나를 보여주고 싶어
‘연기 천재’ 서영주의 신념

“처음 알런을 했을 땐 너무 힘들어서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시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지금 제가 표현하는 알런은 또 다를 것 같거든요. 17살의 순수함을 간직한 22살 서영주만의 알런을 보여주고 싶어요.”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소년의 범죄 실화에 알몸 연기, 스타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연극 <에쿠우스>에 입시 준비 차 지원했다가 떡하니 붙은 소년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맡았던 배역 알런 스트랑과 동갑내기인 17살. 그렇게 소년은 ‘역대 최연소 알런’이라는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 무대에 올랐다.

배우 서영주.|올댓아트 이민지

그로부터 5년 후, 그 10대 소년은 20대 청년이 돼 돌아왔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어린 소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최연소 알런’이란 명예로운 왕관이자, 동시에 자신을 한정 짓는 틀을 과감히 부숴버렸다. 열일곱에는 알런의 입장에서 바라봤다면, 스물둘인 지금은 더욱 더 넓은 시각과 자신만의 해석을 가지고 무대에 선다는 배우 서영주의 얘기다.

■ 노출

<에쿠우스>의 알런으로 돌아온 서영주.|극단 실험극장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의 대표작이자, 1975년 한국 초연 이래 44주년을 맞은 <에쿠우스>는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과 사회적 억압에 의한 욕망을 예리하게 파고든 명작으로 꼽힌다. 실제 객석에는 눈을 반짝이는 연극학도부터 나이가 지긋한 관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가득했다.

“<에쿠우스>는 인간 본질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잖아요. 연극을 보고 사람마다 받아 가는 질문이 다르고, 누구도 그 질문에 온점을 찍기란 어려울 거예요. 너제트를 비롯한 코러스들의 말(馬) 연기와 다이사트의 독백이 객석을 압도할 때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 분들도 있고. 저도 아직 어려운 것 중 하나지만, ‘과연 내가 정상인가?’라는 의구심과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물음표가 관객들이 44년 가까이 <에쿠우스>를 찾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극은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에게 자신이 돌보던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찌르는 범행을 저지른 소년 알런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세상이 보기에 알런은 광기 어린 소년이지만, 다이사트는 이야기를 나누며 알런의 말을 향한 원초적인 정열과 순수를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이 알몸 연기도, 질과의 정사 장면도 아닌 바로 알런의 순수였다.

“제가 생각하는 알런은 있는 그대로를 가장 순수하게 보고 듣고 느끼는 아이예요. 아직도 제가 막내이기 때문에 가장 소년 같은 느낌이 강하겠지만, 순수를 연기하는 건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열일곱 살에 처음 <에쿠우스>를 했을 때는 무대에 처음 서봤기 때문에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었어요. 동시에 알런만 보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이기적이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무대에서 함께 이해하고 호흡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5년 동안 성장하고 변화한 제 나름의 해석을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요.”

<에쿠우스>는 알런과 말로 분한 코러스들의 노출 연기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극단 실험극장

<에쿠우스>하면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알런을 비롯한 질, 말 너제트, 코러스들의 ‘노출 연기’다. 원작과 극작가 피터 쉐퍼에 의해 명시됐고, 매 공연 연출에 따라 노출 수위가 달라졌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2019년 <에쿠우스>는 만 16세 이상 관람가로 공연되고 있다.)

“노출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어요. 텍스트에서도 알런은 한밤중에 옷을 다 벗고 준비를 한 뒤, 말과 한 몸이 된다고 나와 있거든요. 그렇게 해야 말과 더 교감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람인 알런이 말과 호흡하고 숭배하는 의식을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라 노출에 대한 부담이 없지만, 다이어트는 정말 힘들었어요 (웃음). 한 달 안에 감량해야 했기 때문에 거의 안 먹고 운동만 했거든요.”

극 중에는 알런의 부모부터 시작해 여자친구인 질, 신(神)처럼 숭배하는 말 너제트 등이 무대에 등장하지만, 가장 주축이 되는 건 다이사트와의 관계다. 이번에 함께 하는 다이사트 역의 장두이, 안석환, 이석준은 기존에 선보인 연기 톤부터 다른 선배들, 이로 인해 연습이나 무대에서 달라지는 건 없었을까.

<에쿠우스>의 주축이 되는 알런과 다이사트.|극단 실험극장

“다이사트를 바라볼 때부터 달라요. 이석준 선배님은 전작 <킬미나우>에서 부자 관계로 만나서인지, 그냥 ‘아빠’ 같아요. 어른인 다이사트의 말들이 싫어야 하는데, 석준 선배님의 말은 참 따뜻하게 다가오죠. 안석환 선생님과는 4년 전에도 함께 하면서 느꼈지만, 대사를 주고받는 게 너무 재밌어요. 다이사트와 함께 하는 대화, 말의 재미를 배워가고 있어요. 그리고 장두이 선생님은 아직도 무서워요 (웃음). 첫 공연을 마쳤지만, 여전히 두이 선생님 앞에서는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이 더 크게 와닿는 것 같아요”

서영주는 지난 9월 21일 연극 <킬미나우> 의정부 공연까지 마쳤다. 겉으로는 선천적 지체장애를 가진 조이 스터디와 한밤중에 옷을 벗고 말과 함께 달리는 알런 스트랑은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킬미나우>는 ‘보통의 삶’을, <에쿠우스>는 ‘정상’을 묻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두 작품을 연달아 연기한 그가 바라보는 ‘보통’과 ‘정상’은 어떤 것일까.

“조이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보통의 삶을 너무나도 부러워하죠. 하지만 알런은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이 어떤 건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들을 연기하고 난 후에 제가 생각하는 보통과 정상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즐기는 삶’이에요. 흔히 꼭 대학을 가서 공부하고, 연애해야 한다는, 남들이 말하는 범주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 곧 보통이고 정상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다이사트의 치료를 받은 알런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씁쓸하게 다가온다고. 어쩌면 그에게 있어 말을 향한 사랑과 정열이 가득했던 알런이 정상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알런은 다이사트의 치료를 받고 아마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처럼 살아갔겠죠. 정열과 순수를 잊은 채, 더 이상 말을 만져도 오락 외에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마음 한편이 공허한 채 살아가야 할 거예요. 저도 공연을 마치고 나면 참 공허하거든요. 머리로는 다 잊었지만,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있으니, 공허함을 메우지 못한 채 무료하게 살지 않았을까요?”

영화 <범죄소년>(왼쪽)과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속 서영주.|네이버 영화, JTBC

■ 연기 천재
2011년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로 데뷔한 서영주는 9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1998년생으로 아직 22살이다. 하지만 영화 <범죄소년>, <뫼비우스>,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 <아름다운 세상> 등 이전 작품에서 어둡고 묵직한 역할을 맡아서인지 제 나이보다 많게 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첫 번째 연관 검색어가 ‘서영주 나이’일 정도.

배우는 나이조차 연기하는 직업이라 하지만, 동시에 그 나이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배역 또한 있다고 한다. 특히 10, 20대 초반인 배우가 연기할 때 더욱 빛이 난다는 밝은 청춘 역할이나 인기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까.

배우 서영주.|올댓아트 이민지

“제가 주로 어두운 면을 연기해왔기 때문에 밝은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밝음과 어두움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알런만 봐도 다이사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하고, 함께 게임하고 웃잖아요. 그래서 굳이 청춘, 로맨스 장르가 아니더라도 제가 맡은 캐릭터에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믿어요.”

알런에게 있어 ‘말’ 같은 존재가 자신에겐 ‘연기’라고 말하는 서영주. 배우 외에 꿈꿔 본 일이 없었을 정도로 그의 머릿속은 연기로 가득했다.

“남들이 하는 걸 보고 부러웠던 직업이 배우밖에 없었어요. 배우는 무엇이든 될 수 있잖아요. 인간 서영주는 22살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17살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직업도 해볼 수 있고, 심지어 동물도 될 수 있으니까요. 배우 말고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2012년 영화 <범죄소년>으로 도쿄국제영화제, 씨네마닐라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고, 2015년 <뫼비우스>로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될 정도로 ‘연기 천재’라 불리는 서영주였지만, 여전히 연기를 향한 갈증과 도전 의식은 가득했다.

“배우라면 영화, 드라마뿐 아니라 연극, 뮤지컬 등 무대 연기까지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드라마, 연극은 하고 있고, 뮤지컬은 너무 하고 싶은데 아직 노래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웃음). 조금 더 트레이닝을 받고 난 후에 도전하고 싶어요. 제 롤 모델이 조승우 선배님이에요. 드라마, 영화,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배님을 본받고 싶어요.”

그가 세운 2019년 목표는 영화, 드라마, 연극 1편에 출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해 기쁘다며 담담히 말하려 했지만, 새어나오는 뿌듯함을 숨기진 못했다. 남은 2019년 계획을 묻자 “오는 11월까지 <에쿠우스>에 최선을 다하고, 이후에는 여행을 떠날 예정이에요.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재충전하고 와야죠 (웃음)”

인터뷰 말미에 그는 “배울 게 많은 배우, 사람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사람들이 몰랐던 이야기를 전하는, 배울 게 많은 배우가 진정한 배우고, 자기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 그렇지만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지금의 모습을 잃고 싶지 않다는 그였다. 누구보다 우직하고 오래 연기 외길을 걸어갈 서영주의 건투를 빈다.

■ 연극 <에쿠우스>
2019.09.07 ~ 2019.11.17
서울 서경대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
공연시간 120분 (중간 휴식 10분)
만 16세 이상 관람가
장두이, 안석환, 이석준, 류덕환, 오승훈, 서영주, 김예림A, 김예림B, 차유경, 이은주 등 출연

<올댓아트 이민지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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