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키부츠’ 박은태 “부담감 엄청났지만, 변신 욕심 있었죠”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11.06 09:57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11.06 10:00

“박은태가 왜 여기서 나와?” 지난 6월 뮤지컬 <킹키부츠>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이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모차르트!> <지킬앤하이드> <벤허> <스위니토드> 등 비극적이고 무거운 작품의 주역을 도맡아온 배우 박은태와 유쾌한 쇼 뮤지컬 <킹키부츠>의 조합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은태가 맡게 된 배역은 롤라. 화려한 의상을 입고 시종일관 무대를 장악하는 ‘흥부자’ 드래그퀸이다.

파격적인 변신은 본인에게도 부담이 됐다. 벌써 국내에 네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에 자신이 누가 될까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고. 그러나 박은태는 그의 가장 큰 장기인 성실과 노력으로 자신만의 롤라를 만들어냈다. 6~8월 <모차르트!> 공연 중에도 레슨을 꾸준히 받아 콤플렉스였던 춤도 극복했다. <킹키부츠>가 끝나면 블랙 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로 또 한 번의 이미지 변신에 도전할 예정이다. 정상에 오른 뒤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 박은태, 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난 10월 10일 <킹키부츠> 공연을 마친 그를 만나 들어 보았다.

<킹키부츠>의 배우 박은태|CJ ENM

박은태의 <킹키부츠> 출연 소식은 캐스팅 발표 당시부터 큰 화제였어요. 어떻게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요?
사실 <킹키부츠> 초연 때부터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자신이 없기도 했고, 다른 작품과 겹치는 바람에 연이 닿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어요.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생각도 있었고, 노력을 해서 변신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죠. 최선을 다한다면 롤라라는 역할을 통해 나만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틈새시장’이 보였달까요.

이전 시즌에 롤라 역할로 워낙 호평 받았던 강홍석, 최재림 배우와 트리플 캐스팅이라 더 부담 됐을 것 같은데요.
부담 엄청 컸어요. 이미 너무나 훌륭한 배우들이 잘 만들어놨기 때문에 제가 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작품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릴까 봐 밤에 잠도 못 잤어요.

그런 부담감은 어떻게 이겨냈나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하죠. 부담이 크면 클수록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도 큰 것 같아요. 이런 도전을 통해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배우로서 영감이나 원동력을 얻을 수 있거든요. 사실 저희 가족들이 고생이 많아요. 제가 너무 작품에 빠져 있으면 아이들과 웃으면서 놀아주기도 어려우니까요. 이런 부분들을 이해해 주는 가족들에게는 너무 감사하죠. 작품에 적응이 되면 다시 행복한 아빠의 모습으로 잘 대해주려고 노력해요.

<킹키부츠>의 배우 박은태|CJ ENM

연습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1부터 100까지 다 정말 힘들었어요. 춤은 제일 부족하니까 1월 말부터 연습을 시작했어요. <모차르트!> 연습 중에도 계속 안무 레슨을 받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연습해도 기본적으로 ‘직각목각’인 사람이기 때문에, 노래에 연기까지 하려니까 정신이 전혀 없었죠. 쉬운 부분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드레스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제 가장 큰 조력자이자 제가 가장 믿는 연기 디렉터인 아내조차 “각오해야겠다”고 할 정도였죠. 이번에 좋은 평가 듣긴 어려울 것 같다고요. 그렇지만 첫 공연 때 최선을 다해서 했고, 다행히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어요. 아내도 좋아해 줘서 기뻤고요.

지금은 공연이 개막한 지 한 달 반 정도 되었는데, 어떤가요?
너무 아쉬워요. 일찍 끝나서. 라이브 공연이기 때문에 한 회 한 회 할수록 좀 더 여유가 생기거든요.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생기는 감정들, 상대 배우와 맞춰가며 느끼는 것들도 생기고요. 이제야 무대에서 즐기면서 에너지를 받는 느낌인데, 곧 끝난다니 아쉽죠. 마지막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지킬앤하이드> <스위니토드> <모차르트!> 등 무겁고 비극적인 작품들을 주로 하다가 오랜만에 ‘죽지 않는 배역’을 맡았어요.
좋더라고요. (웃음) 생소했어요. 보통 다른 작품에선 장렬하게 죽고 커튼콜에 나와서 “저 사실 안 죽었어요” 하고 박수 받는 느낌인데, <킹키부츠>는 잘 놀다가 “잘 놀았죠? 안녕, 또 만나요!” 하는 느낌이니까요. 생소하면서도 너무 좋더라고요. 무대에서 에너지를 받는다는 게 이런 것 같아요.

올해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돼서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서요. <킹키부츠>를 본 반응은 어땠나요?
너무 행복해했어요. 처음에는 분장을 보고 당황하더라고요. 해외 공연 영상을 계속 보여줬는데도 설마 아빠가 저 분장을 할 거라곤 생각을 못 했나 봐요. 그래도 막상 보니 너무 좋아해 주고 또 보러 오고 싶다고 했어요. 전에는 아빠가 항상 소리 지르고 죽는 작품을 하니까 공연 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좋아해서 행복하죠. 큰딸의 응원이 제일 힘이 됐어요.

<킹키부츠>의 배우 박은태|CJ ENM

박은태의 롤라는 어떤 인물인가요? 어떤 면에 중점을 두고 표현하고 싶었나요.
롤라의 아픔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뮤지컬을 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가, 감정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재미있다는 거예요. 롤라도 밝을 때는 정말 밝지만 그 안에 분명한 슬픔이 있을 텐데, 그걸 극대화하고 싶었어요.

작품을 보면서 ‘세상에 롤라 같은 대인배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찰리의 폭언을 듣고도 용서하고 밀라노까지 와주는 장면에서요. 롤라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아픔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누구보다도 밑바닥의 가장 큰 슬픔까지 겪어 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 정도 슬픔에는 무너지지 않은 거죠. 구체적인 상상들을 많이 해봤어요. 그 당시 영국의 남자들 사이에서 치마를 입고 립스틱을 바르던 롤라의 학창 시절이 어땠을까 하고요. 아빠한테 맞거나 학교 친구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했을 수도 있겠죠. 밤새 울고 눈이 퉁퉁 부어 다음날 학교를 빠지기도 하고요. 누구에게나 사춘기 때 겪는 충격이 제일 크잖아요. 롤라는 그런 것들을 극복해온 사람이에요. 물론 찰리의 말이 속상하긴 하겠죠.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를 받죠. 그런데 롤라에겐 그 정도 상처는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당당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킹키부츠>의 배우 박은태|CJ ENM

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품인데, 하필이면 코로나 시국에 만나게 되어 아쉽지는 않은가요?
오히려 이런 시국이기 때문에 더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을 전에 볼 때는 울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찰리가 공장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나 ‘삶이 지칠 때 힘이 되어줄게’ 같은 대사가 귀에 꽂히는 거예요. 저도 코로나 우울이 있었거든요. 매일 마스크를 껴야 하고 공연계도 어려운 이 상황에서, 이 작품이야말로 공연장에 오신 분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갖게 되고요. 그런데 그래서 더 아쉽기도 해요. 더 많은 분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은데, 좌석을 띄어 앉다 보니 자리도 없고 지방 공연도 없어졌으니까요.

오는 11월부터는 <젠틀맨스 가이드>에 출연하죠. 이 역시 의외의 차기작인데요.
틈새시장이 또 보이더라고요. (웃음) <킹키부츠> 다음엔 롤라 느낌도, 모차르트 느낌도 안 나는 걸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이 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 같았죠. 전형적인 주인공도 아니고, 블랙 코미디라는 해본 적 없던 장르거든요.

<킹키부츠>에서 같은 배역인 최재림 배우와 <젠틀맨스 가이드>에선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됐네요.
그러게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선 예수와 유다로 만났는데, 이번엔 제가 죽이는 역할이에요. 한번 제대로 죽여 봐야죠. (웃음)

평소 엄격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소문난 배우이기도 해요.
저만 유별난 게 아니라, 다들 그러세요. 뮤지컬 배우의 숙명인 것 같아요. 비싼 티켓 가격을 내고 어려운 시간 내서 와주신 관객분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순 없잖아요. 삶의 초점이 뮤지컬에 맞춰져있는 건 사실이지만,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그렇게 하고 계세요. 스포츠 선수와 연기자를 합친 책임감이 있는 것 같아요. 경기를 뛰기 전에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체력을 관리해야 하는 동시에 연기 고민도 해야 하죠.

<킹키부츠>의 배우 박은태|CJ ENM

2010년 <모차르트!>는 배우 박은태에게 큰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인데요. 10년이 지난 지금, <킹키부츠>와 <젠틀맨스 가이드>로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매 작품이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프랑켄슈타인>도, <지킬앤하이드> <닥터 지바고> <스위니토드>도 다 새로운 도전이었으니까요.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무대 자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팬분들에게도 감사하고요. 무대 자체가 제 행복의 원동력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시간인 것 같아요.

2011년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이후로는 쭉 뮤지컬 한길만을 걷고 있는데요.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은 없나요?
연극은 다시 해보고 싶어요. 계속 대형 뮤지컬 작품들 위주로 하다 보니까, 연이 닿지 않아서 못 했거든요. 연극을 다시 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연극이 주는 매력이 분명히 있죠.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갈증이 계속 생겨요.

앞으로의 배우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저희 아이들을 위해서 아동극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아무리 빨라도 8살은 돼야 공연장에 올 수 있으니까, 아이들을 위해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게 아쉬웠거든요.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가족들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빠의 바람이에요. (웃음)

뮤지컬 <킹키부츠>

2020.08.21 ~ 2020.11.01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8세 이상 관람가
공연 시간 160분

이석훈, 김성규, 박은태, 최재림, 강홍석, 김지우, 김환희, 고창석, 심재현 등 출연

사진 |CJ ENM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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