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춤출 수 있죠”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대중에게 활짝 연 춤의 세계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05.31 10:59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05.31 11:01

“여기가 맞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연습실이 있다는 건물에 들어섰다. 처음 온 곳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 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이 들려왔다. “여기가 맞군”

지금 국내에서 가장 ‘핫’한 댄스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다. 그러면 세계에서 가장 ‘핫’한 한국 댄스팀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다. 얼터너티브 팝 그룹 이날치와 협업한 <온스테이지> ‘범 내려온다’ 영상이 처음 화제가 됐다. 이어 한국관광공사와의 협업으로 전국 각지에서 촬영한 영상이 세계인의 눈길을 끌면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이하 앰비규어스)는 지금 가장 주목받는 댄스팀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사실 이 팀은 원래 유명했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인 계기가 ‘범 내려온다’였을 뿐이다. 무용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독창적인 작품 세계와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퍼포먼스로 명성이 자자하다. 대표작인 <바디콘서트>, <피버>는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 무슨 공연을 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무용계에서는 늘 화제의 중심이 되어왔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피버>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앰비규어스를 이끄는 예술감독 김보람도 마찬가지다. ‘범 내려온다’ 이전부터 이름 날린 안무가다. 지난 4월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최근의 인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많이 하지 못하는 시기이기에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결국 우리는 무대에 설 것”이라고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창작지원 사업(이하 중장기 사업)에 선정된 앰비규어스는 이제 지원 3년 차를 맞아 마지막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만난 김보람 감독은 초연하고 단단했다. 뚜렷한 주관에서 나오는 답변을 듣고 있으니, 스스로도 몰랐던 춤에 대한 편견을 깨닫게 된다. 1시간 동안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생각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해서 자신의 이름 하나로 빛나는 사람이 되려면, 이 정도의 성실함과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하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김보람 예술감독과의 일문일답.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독특한 안무 창작 과정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국립현대무용단 <춤추는 강의실>에서 굉장히 자세하게 강의했는데요. “한 번도 안 해본 쪽, 잘 안되는 쪽을 더 선택한다”고요.

소리를 표현하는 동작이잖아요. 그러면 소리를 분석해서 소리에 맞는 동작을 찾아야죠. 해오던 동작에는 이미 그 동작 자체에 리듬이 있어요. 그래서 그 동작을 똑같이 하면 지금 이 소리를 표현하기에는 온전하지 않죠. 몸이 신기한 게, 새로운 움직임을 하려고 해도 하던 대로 하려는 본능이 있어요. 그러니 그런 것들을 일부러 더 집중해서 거부해야 해요. 그래야 제 몸도 계속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죠.

늘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가요? 새로운 움직임만으로요.

그건 아니에요. 전혀 새롭지 않게 안무를 할 때도 있어요.

어떤 경우에요?

음악의 리듬이 너무 좋거나, 시간이 없거나.(웃음) 그러면 좋아하는 움직임을 넣어서 신나게 춤을 춰요. <춤추는 강의실>에서 강의했던 건 20대 때 처음 안무 작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했던 순수한 움직임을 찾는 방법이에요. 매번 그렇게 작업을 할 수는 없어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바디콘서트>를 예로 들어볼까요. 1시간 분량의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다양해요. 젊을 때는 혈기가 왕성해서(웃음) 한 작품을 하기 위해서 길게는 6-7개월 동안 준비를 했어요. 반대로 어떤 때는 2-30분 분량의 작품을 1주일 만에 만들기도 했고요. 어떤 작업을 하냐에 따라 시간 차이는 커요. 저는 연습은 많이 하지만 그전에 고민을 엄청나게 하는 편은 아니에요. 몸으로 때워요. 몸으로 때웠을 때 안무가 잘 나오면 빨리 완성되는 거고요. 잘 안 나오는 작품들도 있어요. 그런 건 시간이 오래 걸리죠.

연습하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5초면 정말 기억도 안 날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이잖아요. 저희는 5초 정도 되는 장면을 4-5시간씩 연습해요. 의미 없는 동작 하나를 의미가 생길 때까지 연습해서 의미를 찾을 때도 있고요. 사람들이 어떤 춤에 대해서 갖는, “우와, 멋있다” 하는 기본적인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이미 그런 판단을 가진 춤을 추는 게 아니에요. 이상한 춤도 최선을 다해 추면서 멋있어 보이게 할 수 있고, 정말 멋있는 춤을 웃기게 출 수도 있어요. 춤에는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거든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이런 엄청난 연습량이에요. 춤을 추시는 분들은 저희 춤을 추거나 봤을 때 그냥 웃기다고만 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실제로 해보면 되게 어렵죠. 높은 수준의 움직임이 많아요.

창작의 과정을 자세히 공개하는 것에 부담은 없었나요.

춤이라는 게 직접 보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이 굉장히 달라요. 최대한 많이 보여드리는 게 좋죠. 그렇게 하면 호기심이 생겨서 공연을 보러 왔을 때 또 다른 느낌을 받으실 테니까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기가막힌흥>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앰비규어스의 유튜브 채널에는 연습 영상도 있더라고요.

춤은 비밀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가수 신곡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웃음) 한국관광공사의 ‘범 내려온다’ 영상은 몇 분밖에 안 되는데, 그런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서 연습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말 길어요. 공연 작품 중에는 1시간 정도 길이의 작품도 있죠. 여러 프로젝트나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사건도 생기고, 재미있는 일도 많아요. 그런 것들을 공유하기에 유튜브가 좋은 창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재미있는 일이 있거나 오늘따라 안무를 잘 만든 것 같으면 빨리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거죠.

이날치와 협업한 ‘범 내려온다’ 영상이 크게 화제가 돼서, 여러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의뢰가 많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희는 원래 작업을 하는 단체니까, 작업적으로 호기심이 가지 않으면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취지가 좋아서 하는 건 가끔 있고요.

취지가 좋아서 했던 건 무슨 프로젝트였나요?

최근에 했던 것 중에는 그린피스하고 했던 <후쿠시마 오염수> 작업이요. 경찰청하고 했던 <일단 멈춤>도 있었고요.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도로에서 차가 우선인 느낌이 있잖아요. 사람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법으로 그게 정해져 있는데도 아직 인식이 바뀌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 것을 알리는 목적의 영상에 참여했어요. 취지가 좋잖아요. 저도 도로 건널 때 제가 우선이고 싶지(웃음) 겁에 질린 토끼처럼 건너고 싶지 않거든요.

기관이나 기업의 제안에는 보통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있잖아요. 예술가로서 그어두는 선 같은 것도 있나요. “여기부터는 간섭하지 말아달라”고요.

꼭 요청하시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것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성격이에요. 아무리 그 요청대로 하려고 해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 요구 사항들은 ‘언어’잖아요. 언어를 춤으로 표현할 거면... 그건 그냥 언어로 하면 되지 왜 굳이 안무를 하나요? 저는 그 ‘언어’를 듣고 그대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반대로 가요. 만약 “쉬웠으면 좋겠다”라고 했을 때 그 ‘쉬움’의 의미는 무엇이지? 이런 것을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그 요청에서 더 멀어지더라고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기가막힌흥>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범 내려온다’는 짧은 길이의 영상 작업이지만 사실 이전부터 해오던 공연 작품들은 1시간 정도로 호흡이 길었거든요. 각각의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둘 다 잘 하면 좋죠, 뭐.(웃음) 코로나 때문에 ‘범 내려온다’ 같은 짧은 영상 프로젝트들을 재미있게 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서브’에요. 짧은 영상 프로젝트로 화제가 되는 게 더 중요했으면 처음부터 방송 쪽 가서 춤을 췄겠죠. 그건 ‘메인’이 될 수는 없어요. 대신 그런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배우는 건 많아요. 저희가 극장에만 있었을 때보다는 홍보도 잘 되고요. 결국 저희가 춤을 추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춤을 보여주고 또 함께 호흡하려는 거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도움이 되죠. 다만 저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10년 가까이 해온 긴 호흡의 작품들이에요. 그것을 중심으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원래 저희가 하던 일이니까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기가막힌흥>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공연예술이 주는 감동이 또 있죠.

공연예술은 현장에서 보는 거고, 단 한 번 밖에 기회가 없잖아요. 한 번의 공연으로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에요. 특히 춤은 굉장히 원초적인 예술이죠. 사람의 고향과 같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예전에 말을 못 할 때는 이미 춤으로, 몸짓으로 소통을 했잖아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점점 잊어버리는 사회로 가고 있는 거고요. 저희는 인간 본연의 흥, 언어, 소통의 역할을 했던 춤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거죠. 이런 예술은 영상과는 전혀 다른 거예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음악과 안무는 뗄 수 없는 사이죠. 안무로 표현하기 가장 까다로운 음악 장르는 어떤 건가요?

클래식하고 전통 소리요. 클래식 음악은 워낙 악기 종류가 많고 다 섞여 있잖아요. 그 가운데서 맥을 짚어가야 하죠. 또 대부분 음악의 길이가 길어서, 전반적인 호흡과 움직임의 이야기 흐름을 잡아가는 게 어려워요. 전통 소리는 그다음을 예측하기가 어렵고요. 저희가 주로 듣는 음악과는 전혀 다른 호흡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두 가지 음악을 안무하는 것을 되게 좋아해요.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기분도 들고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음이 나오지?” 이런 거죠. 우리가 아는 대중가요는 이미 어느 틀 안에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클래식 음악이나 전통 소리는 호흡도 길고 상상력도 훨씬 더 느껴져서 제게 도움이 많이 돼요.

춤만큼 화제가 된 것이 독특한 패션입니다. 뭔가 이상하고 웃긴 것 같은데 또 왠지 이상하게 멋있고 재밌는. 의상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나요?

강박적인 건데, 그냥 마음에 들어야 돼요. 스티브 잡스 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우리는 뭘 사고 싶은지 제품을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고요. 그래서 의상도 많이 보아야 하고 여러 방식으로 맞춰보아야 하는 것 같아요. 누가 청바지에 한복 윗도리를 입는다고 하면 당연히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하겠지만, 실제로 보면 잘 어울릴 수도 있거든요. 그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제 느낌인 거죠. 그렇게 시도해보았을 때 그게 저의 미적 기준에 맞으면 선택하는 거예요. 일상으로 입는 옷을 넘어서는 거니까 여기에도 상상력이 필요하죠. 많은 분들이 저희의 의상을 웃기다, 키치하다, 이렇게 이야기하시는데, 사실 저희는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입는 겁니다.(웃음)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피버>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우리 몸 안에 춤이 있다”,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다”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몸치’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흔히 웃음거리의 소재로 쓰이잖아요.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다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의상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과 마찬가지예요. 옷을 이렇게 입으면 누군가는 그것을 이상하고, 옷을 못 입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제게는 그게 멋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각자의 취향인 거죠. ‘몸치’라는 표현도 같은 거예요. 살아있으면 다 춤을 추는 건데, 거기에 ‘잘 추는 춤’, ‘못 추는 춤’을 만들어 붙인 건 사람들인 거죠. 위험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표현들이 춤하고 사람을 분리시키는 것 같아요. ‘몸치’, ‘못 추는 춤’ 이런 건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 생겨난 말인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군가를 비판하면서 살 필요가 없거든요.

“나는 몸치라서 춤을 못 춰” 이런 표현이 너무 익숙해진 거죠. 왜 그런 걸까요?

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나는 몸치라서”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그럴 때마다 아쉽더라고요. ‘나는 몸치’라는 생각 자체가 나를 춤추지 못하게 하는 첫 번째 이유거든요. 세상에 못 추는 춤이란 건 없어요. 내가 추고 싶은 대로 추면 그게 춤이죠. 만약 오늘 내가 월급날이라면 그냥 걷는 걸음 하나도 평소보다 조금 더 신날 수 있단 말이에요, 그 기분 하나로. 그것도 춤이죠. 꼭 다양하게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것만,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만 좋은 춤이라고 인식하는데 그것은 춤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에요. 그런 인식을 저는 바꾸고 싶지만... 제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평가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전반적인 인식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 더 넓어져야, 자연스럽게 그런 표현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피버>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사업에 선정된 지 2년이 지났고 이제 3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창작 활동을 지원받은 것은 작품 활동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었나요?

특히 ‘코로나 시국’인 이 시점에 앰비규어스의 생계와 작업 환경에 엄청난 도움이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하기 어려웠을 때, 중장기 사업 지원금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공연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고요. 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게 좋았죠. 만약 중장기 사업이 짧은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형태였다면 무언가 시도를 해보고 바로 (지원이) 끝났을 거예요. 그런데 중장기 사업 지원으로는 이번에 이것을 해보고, 그다음에는 이것을 발전시켜서 또 다르게도 해볼 수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어떤 미디어나 환경 안에서 하나의 단체가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저희 창작자들에게는 큰 도움이죠.

이전까지 중장기 사업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한다면.

여러 가지 있는데요. 작년에는 4월쯤에 유튜브로 라이브 스트리밍을 했어요. 첫 도전이었죠. 공연 장소가 공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이었어요. 물류창고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공연하는 저희 앞에 카메라맨이 있고 밖에는 비가 오고 인터넷이 안 되고... (웃음) 아무 관객도 없는데 저희끼리 무대도 조명도 없는 곳에서 춤을 추니까 정말 어색하더라고요. 멋지게 녹화하고 편집해서 송출하면 되는데 왜 굳이 라이브로 하느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실수를 좀 하더라도 라이브로 하고 싶었어요. 그때 한번 그렇게 경험하고 나서 그다음 작업 때는 조금 더 멋진 공간을 빌려서 다른 라이브 스트리밍도 했죠. 이제는 어색하지 않고요.

‘귀코 프로젝트’도 중장기 사업으로 진행한 거였죠. 무슨 뜻인가요?

‘귀향할 수 없는 코로나의 현실’이요. 우리가 무대로 가지 못한다면,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지 못한다면? 그래도 우리는 공연을 해야 된다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의 답을 찾은 거죠. 원래는 서울시청 앞에서 대규모로 ‘국민 체조’ 플래시몹을 할 생각이었어요. 작품을 구상과 제작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때 코로나 확산세가 정말 심각했거든요. 작년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공간 답사를 갔는데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여기서 누군가 모여서 춤을 췄다가는 돌을 맞을 것 같은(웃음)... 안 되겠더라고요. 거기서 한 시간 정도 무용수들하고 앉아서 고민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귀코 프로젝트>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시청 사이사이 공간을 찾았어요. 아무 데나요. 무용수들이 각자 마스크를 끼고 혼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췄어요. 다 같이 추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요. 10분 동안. 페이스북으로 라이브 방송을 했죠. 인터넷으로 지금 이 무용수들을 보는 사람은 음악과 함께 춤을 보는 거지만 현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그냥 어떤 사람이 혼자 이러고 있는 거죠. 그것도 재미있더라고요. 춤으로 보지 않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게요. 바이러스 보듯이 피해 가고. 페이스북으로 보신 분들은 이 무용수도 봤다가 다른 무용수도 봤다가 할 수도 있고요. 저희끼리는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따라 하는 사람도 있었나요?

플래시몹을 못하니까 튜토리얼 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업로드했어요. 연습하실 수 있게요. 그리고 날짜를 정해서 ‘줌’에서 모이기로 했죠. 약속된 시간에 6-70명 정도가 모였던 것 같아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요. 어르신도 계셨고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냥 보기만 하는 분도, 같이 춤추시는 분도 있었고요. 저는 그 안무를 만들 때 “국민체조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우면 매력이 없다, 정말 빡세고(?) 어려웠을 때 그 나라의 국민체조는 전 세계의 어떤 국민체조보다 멋있을 거다”라고 하면서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안무가 나름 재미있게 잘 나왔어요. 그렇지만 꽤 어렵기 때문에 웬만하면 포기하시는데, 그 튜토리얼을 다 외우시고 끝까지 같이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올해에는 코로나가 끝나서 이걸 꼭 시청 광장에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귀코 프로젝트-줌>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올해는 중장기 프로젝트는 어떤 건가요.

‘아트투어 프로젝트’라고, 저희가 버스를 빌려서 무용수들하고 촬영팀하고 다 같이 그냥 떠났어요.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요. 대충 도시만 정해서 간 거죠. 의상 다 입고 가다가 “저기, 저기!”하면 내려서 거기서 바로 촬영했어요. 총 6개의 작품을 준비했는데 그 작품들 촬영을 1주일 안에 끝냈어요.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낮없이 촬영하고, 미팅하고, 별에 별곳을 다 갔죠. 중부까지 한 바퀴 돌아서 마지막에는 속초 쪽에서 촬영을 끝냈어요. 분량으로 치면 일주일 동안 영화 한 편을 찍은 셈이 되네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아트투어-실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하루에 한 작품씩 일주일 연속으로 촬영하는 것도 놀라운데, 게릴라 촬영이요. 엄청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진짜 힘들었어요. 10년 동안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요. 하루는 평창에서 촬영을 했어요.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내려갔는데 의상이 팬티인 거예요.(웃음) 팬티 입고 춤을 추는데 갑자기 강아지 두 마리가 어디서 나타나서는 저희 주변에서 뛰어다니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추우니까 못 끊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찍었죠. 그 강아지들이 영상에 그대로 나와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아트투어-인간의리듬>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면 재미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희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긴 시간 동안 많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탄생한 거죠. 자연에서 찍은 거라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이 아트투어도 5-6년 전에 처음으로 생각했던 건데 중장기 사업 지원받으면서 실제로 해볼 수 있게 됐어요.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며 여러 영상팀을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촬영팀도 섭외할 수 있었고요. 처음엔 이렇게 찍을 계획은 아니었지만요.

원래 계획했던 건 어떤 거였나요.

원래는 ‘아트투어’가 아니고 ‘아트, 레스트, 투어’ 이런 콘셉트였어요. 예술을 쉬게 하자는 거죠. 예술을 하나의 생물로 본다면 예술도 쉬고 싶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면 이 예술이 쉴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냥 자연의 일부가 되면 예술이 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하고 여러 예술가들이 같이 가서 자연에서 ‘널브러져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했어요. 예술가는 작업에 몰두하는 게 가장 재미있을 텐데 아무것도 못하고 쉬게 하는 거죠. 그러면 그들은 결국 또 예술 활동을 할 거거든요. 어쩔 수 없이, 휴식에서 나오는 예술 활동. 이게 예술이 쉬는 순간일 거라고 생각했죠. 정말 아무거나 나와도 되니까 우리끼리 스마트폰 없이 가보자고 했어요. 조금 머리를 썼던 건 그렇게 해서라도 쉬고 싶었던 건데... 정반대로 10년 동안 했던 것 중에 제일 힘든 순간이 되었다는 거.(웃음)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아트투어-피버>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중장기 사업 관련 다른 프로젝트도 남아 있나요?

마지막 3차년도 프로젝트는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고민이 많아요. 저희 나름대로는 무용단체 중에서 영상 쪽으로는 꽤 다양하게 해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활동의 종결점이랄까요.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에는 코로나도 끝나길 바라고 있어요. 그런 바람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내년 초까지 조금 길게 잡고 계획 중이에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우리가 “90년 대생이 온다”, “00년 대생이 온다”, 이런 표현을 씁니다. 무용계에도 이들이 오고 있을 텐데요. 젊은 무용가들을 보며 느낀 변화나 아쉬운 점이 있나요.

너무 당연한 것이긴 한데요. 시대에 따라 문화도 변하고 미디어와 기술도 발전하잖아요.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게 되고요. 그러면서 점점 게을러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집념이나 집중력도 약해졌고요. 스스로가 하려는 일에 대한 가능성을 너무 쉽게 판단하죠. 춤도 마찬가지예요. 춤을 잘 추기 위해서는 연습실에서 오랜 시간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 누군가 춤을 잘 추는 모습은 쉽게 보면서 그 춤을 추기 위해서 그 사람이 했던 오랜 노력은 못 보는 거죠.

반대로, 이들에게 배울 점도 있다고 생각하나요.

배우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면 어떤 걸 배웠나요.

4년 전인가, 어디서 인터뷰를 하는데 지금까지 춤을 추면서 지켜온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10년 동안 한 번도 무용수를 자른 적이 없다”고 했어요. 무용수가 직접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저는 끝까지 본다고요. 그런데 그때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 깨달았죠. ‘아, 내가 옛날 방식은 고수하고 있었구나’(웃음) 그때부터는 무용수를 자르기 시작했어요.

그게 왜 옛날 방식이라고 생각했나요?

저는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고, 춤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람은 이 정도로 성공해야 만족감이 있고, 기쁜 것이라고요. 그런데 고민해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더라고요. 잘 안되는 사람을 애써 연습을 시켜서, 억지로 끼워 맞춰서, 그렇게 해서 뭔가를 했을 때 결국 ‘해냈다!’라는 느낌을 받는 건 나밖에 없지 않을까? 아니었을 때는 아니라고 빨리 이야기를 해서 이 사람이 더 즐겁게 춤출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게 해야겠더라고요. 빨리 가서 행복을 찾아라! 하는 거죠. 저하고 작업하기에는 그들의 에너지가 조금 약한데, 굳이 제 작품을 하다가 힘든 인생의 기억을 가지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 행복해야 되는데. 내 작업이 뭐라고.(웃음)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피버>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바체바 댄스컴퍼니(이하 바체바) 이야기를 여러 인터뷰에서 했더라고요. 앰비규어스 창단 때 롤 모델이었나요?

그건 아니에요. 앰비규어스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바체바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굉장히 좋아해요.

좋아하는 이유는요?

일단 바체바의 움직임은 그 자체가 너무 때깔이 나요. 보면 입이 그냥 떡 벌어질 정도예요. 그리고 바체바는 ‘국민의 컴퍼니’에요. ‘가가댄스’라는 그들만의 트레이닝을 그 나라의 전 국민이 자연스럽게 따라 하죠. 자신의 몸을 정화시키거나 공부하기 위해서요. 제가 부러웠던 건 그런 거예요. 나라에서 지원도 크게 해주고, 그 나라 사람들이 그 댄스컴퍼니를 정말 좋아하고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죠. 그런 것들을 부러워하면서 생각했어요. ‘외국에서 성공하기보다 한국에서 성공하고 싶다’

의외에요. 일반적으로는 해외에서 성공해야 세계적인 안무가라고 생각하잖아요.

‘한국 사람들에게 내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 한국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바체바처럼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잘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항상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키워주고 싶어야 그때 내가 세계적인 안무가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 상을 받아도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 관객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세계적인 안무가가 될 수 있겠어요. 물론 해외를 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것도 당연히 좋죠. 그래도 한국에서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커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그렇다면 어느 정도 목표에 다가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지금은 많은 분들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를 아시잖아요.

음, 잘 모르겠어요. 사실 코로나 때문에 공연 쪽으로는 거의 휴식기거든요. ‘범 내려온다’도 그렇고 다양한 일로 관심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저희가 해오던 무대에서의 공연은 많이 못 보여드린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스트리밍 한다고 하면 공연에 가깝게 보여드리기는 하지만, 그 작품을 실제로 무대에서 보면 또 완전히 다르죠. 1-2년 쉬고 싶기는 한데(웃음) 저희는 결국 극장에서, 무대에서 춤을 출 거예요. 그 춤은 미디어에 맞는 요소, 환경이 더해진 영상과는 분명히 다를 거예요. 계속 준비해야죠.

자료·사진|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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