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현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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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혐오 또는 동경, 우리는 마약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동아시아 펴냄 “우리는 무언가를 모를 때, 그것을 동경하거나 혐오한다.” *************** ▶태초에 마약이 있었다 아프리카에 살던 고대 인류는 우연히 환각물질인 실로시빈이 포함된 버섯을 섭취하게 됩니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아졌겠죠. 그러니 그 버섯을 찾아 계속 섭취합니다. 그런데 이 버섯이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뇌를 자극하고, 더 좋은 시력을 얻게 해줍니다. 그 덕분에 이들은 경쟁자보다 뛰어난 사냥꾼이 될 수 있었고, 그 결과 생식에도 유리했을 겁니다. 또 환각을 보게 되면서 도구 제작, 언어, 자기 성찰, 종교와 관련된 상상력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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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맨스플레인을 걷어차버리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지음, 민음사 펴냄 “한 사람에게 어떤 운동 하나가 삶의 중심 어딘가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일이다. 몸의 자세가 달라지고 마음의 자세가 달라지고 몸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달라진다.” ********************* 아니, 다들 몇 십 년 동안 축구광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며 축구를 해야겠다는 열망에 휩싸였다든가, 삶이 공허하고 힘겨웠던 어느 날 길을 걷다 어딘가에서 굴러온 축구공을 무심결에 툭 찼는데 발끝에서 전해지는 짜릿한 전율에 힘이 샘솟으며 ‘그래, 다시 한 번 제대로 살아 보자!’라는 희망이 솟구쳤다든가, 그런 비장한 이유로 축구를 시작한 게 아니란 말이에요? (…) ‘그냥 얼결에(모두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얼결에!)) 아무 운동이나 하게 됐는데 그게 축구였네’라니. 아, 평범해. 아, 시시해!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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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명랑 유쾌한, 그러나 가볍지 않은 요네하라의 '교양노트' <교양 노트 >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석중 옮김, 마음산책 펴냄 “낮별은 밤별보다도 밝고 아름다운데 태양의 빛에 가려져 영원히 하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 “별은 언제 어느 때에도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 남자는 말했다. 낮별은 밤별보다도 밝고 아름다운데, 태양의 빛에 가려져 영원히 하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 현실에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반대로 압도적인 현실로 인식되던 것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뒤편에 놓인, 틀림없는 또 하나의 현실, ‘낮별’은 그러한 모든 것들에 대한 비유였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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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잘 할 수 있는 건 뭘까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김재인 지음, 동아시아 펴냄 “결과란 나의 노력과 우주의 조건이 어우러져서 생겨나는 법이다.” *********************** 알파고를 볼까요. 바둑은 경우의 수가 정말 많아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수보다도 많다고 하지요. 그렇긴 해도 바둑은 어쨌건 수학 계산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비인간적인 활동이에요. 인간은 본래 계산을 잘 못해요. 그게 정상입니다. 계산 대결에서 컴퓨터가 인간에게 이겼다고 충격적일 것도 없어요. 인간보다 컴퓨터가 계산을 더 잘하는 건 당연하니까요. 컴퓨터는 ‘계산기’라는 뜻이고, 계산 기능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잖아요. 컴퓨터가 인간보다 잘하는 모든 분야는 컴퓨터가 ‘원리상’ 더 잘하는 분야일 수밖에 없어요.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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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사대문 안이 진짜 서울? 공화국 시민의 '서울 선언' <서울 선언> 김시덕 지음, 열린책들 펴냄 “현대 한국의 변화는 언제나 서울의 ‘땅끝’에서 시작되었다.” ******************** 이 책은 찬란한 ‘우리 문화유산’을 찬미하려고 쓴 게 아닙니다. ‘아픈 근대의 흔적’을 반추하고자 쓴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역사성, 상징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건물이나 공간의 그늘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서울 곳곳의 건물과 공간들을 살폈습니다. 그곳들은 평소에 우리가 통학· 통근할 때 무심히 지나치다가, 철거된 뒤에야 ‘그런 곳이 있었지’하고 문득 떠올리는 곳들입니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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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취향이 다른 부부의 티격태격 교환독서 '책 읽다가 이혼할 뻔' <책 읽다가 이혼할 뻔> 엔조 도·다나베 세이아 지음, 박제이·구수영 옮김, 정은문고 펴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것은 어쩐 일인지 쉽지가 않다. *************** 먹지 않으면 살이 빠진다. 절대적인 진실이지만 계속 먹지 않으면 죽어버린다는 것이 딜레마다. 여러 가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다이어트는 굶어 죽는 것보다 귀찮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귀찮다는 말과 비슷하게 말이다. 다만 굶는 다이어트를 하면 대개는 요요현상이 온다. 식사량을 파악한다. 술을 삼간다. 운동한다. 체중 변화를 기록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하는 일이다. 이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것은 어쩐 일인지 쉽지가 않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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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방탄소년단, 예술혁명, 그리고 들뢰즈 <BTS 예술혁명-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이지영 지음, 파레시아 펴냄 “살아가는 법을 몰라 날아가는 법을 몰라 결정하는 법을 몰라 이젠 꿈꾸는 법도 몰라 눈을 눈을 눈을 떠라 다 이제 춤을 춤을 춤을 춰봐 자 다시 꿈을 꿈을 꿈을 꿈을 꿔봐 다” -‘No More Dream’ ******************** 방탄은 이른바 ‘헬조선’을 만든 언론과 어른들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구조적 문제를 경쾌하게 비웃음으로써 기존의 권위를 무력화시킨다. 기득권의 논리와 비난을 ‘적’ enemy으로 규정하고 이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가려졌던 눈을 떠 희망을 가지자고 말한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니 서로의 에너지를 받아 새로운 춤을 추고 새로운 꿈을 꾸자고 한다.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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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어쩌다 약자를 괴롭히는 시대가 되었나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조지 오웰 지음, 김영진 편역, 한빛비즈 펴냄 우리는지금 이렇게 물어야 한다. ‘약자를 괴롭히려는 욕구가 어쩌다 현시대 인간의 주된 행동 동기가 되었는가?’ *************** 인류가 진정으로 싸우기 시작한 건 싸울 이유가 사라진 때부터다. 세계를 지배하는 이들의 행동을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경제적 동기는 찾기 어렵다. 부에 대한 욕망보다는 순수한 권력욕이 훨씬 더 우세함을 느낀다. 흥미롭게도 인간의 권력욕은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인 본능인 양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식욕처럼 말이다. 하지만 권력욕은 생물학적 필요성을 기준으로 음주자 도박만큼이나 자연스럽지 못한 욕구다. 우리 사회가 역사상 최고 수준의 광기에 이르렀다면- 나는 그렇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물어야 한다. ‘약자를 괴롭히는 욕구가 어쩌다 현시대 인간의 주된 행동 동기가 되었는가?’ -오프닝 ‘인류는 비이성적이고,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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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밥값 내놔라 이놈들아" 타락한 세상을 향한 큰스님의 죽비 '성철 평전' <성철 평전> 김택근 지음, 모과나무 펴냄 “가장 낮은 곳은 자연히 큰 바다가 되지 않은가.” ******************* 비상을 품에 넣고 영원한 행복, 영원한 자유를 찾아 헤매는 영주를 식구들은 비상하게 지켜봤다. 영주의 고뇌는 부모의 눈에 방황으로 비쳐졌다. 사서삼경 안에 살아가는 이치가 다 들어있건만 아들은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유림의 소양을 쌓아 선비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믿음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타고난 큰 그릇에 아들은 다른 것을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 이상언은 아들 영주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서둘렀다. 결혼을 하면 해와 달 대신 색시를 쳐다보고, 책 대신 제 자식을 볼 것이라 여겼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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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위대한 소설들을 '납치'한 '난폭한 독서' <난폭한 독서> 금정연 지음, 마음산책 “어떤 작품을 정말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품 전체를 고스란히 다시 쓸 수밖에 없다.” ************** 라블레는 먹고 마시고 자고 싸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그것이 그의 위마니슴이다. 그러니 그걸 인문주의나 인본주의가 아닌 인분주의(人糞主義)라고 부른다고 해도 라블레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25쪽 이미 누군가 어떤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면 그보다 잘하지 못할 게 뻔한 내가 구태여 수고를 반복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이 내가 인용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다. 무릇 작가라면 자신의 문장을 써야 한다는 고지식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있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① 좀처럼 2차 텍스트라고는 찾아보지 않는 게으름이거나(60퍼센트) ② 단어 몇 개와 문장구조를 바꿔 자신의 말처럼 도용하며 그것을 자신의 문장으로 소화했다고 믿는 뻔뻔함(35퍼센트) 혹은 ③ 쉬운 길도 돌아가는 괴팍함일 뿐이다(5퍼센트). 원한다면 ③을 가리켜 성실함이라고 해도 좋다. 뭐라고 부르건 마감과 쥐꼬리만 한 원고료로 영원히 고통받는 자유기고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미덕이다.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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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다시 읽는 진보경제학자 정운영의 유려하고 도도한 '시선' <시선> 정운영 지음, 생각의 힘 “흙에 지친 어머니의 투박한 손길처럼 우선 겸손해지는 일, 그것이야말로 귀향에 앞서 우리의 가슴에 준비해야 할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 ■저 낮은 경제학- 경제학을 전공하려는 J양에게 주인이어야 할 노동력이, 즉 인간이 오히려 그 도구에 예속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소외’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대의 경제학이 이 소외의 문제를 대단히 소홀하게 다루는 것은 사실이고, 또 그런 점에서 크게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밥을 만들고 나누는 가장 구체적인 현상에서 시작하여 그 밥을 만들고 나누는 사람들의 관계로 관심을 돌릴 때, 경제학은 ‘밥과 사람의 관계’를 따지는 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거기에 내재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밝히는 학문으로 그 본연의 사명을 회복하게 됩니다.-78,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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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의 한 줄 책 정의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공자왈 '다시, 논어' <다시, 논어> 박영규 지음, 한빛비즈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 이것이 정의로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 ■공자가 말하는 정의의 기본 조건 공자는 백성 모두를 부유하게 잘살도록 해주는 것이 정의의 기본 조건이라 여겼다. 그런 연후에 보편적 교육으로 문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 못지않게 파이를 키우는 것도 정의로운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책무라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다.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다음 대화에서는 상품의 유통과 거래를 중시하는 공자의 시장주의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스승님께서는 이걸 상자에 넣어 숨겨두시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찾아 파시겠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값 쳐주는 사람을 기다릴 것이다.”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