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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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이사 벌써 몇 달째 이 지면에서 코로나19 얘기만 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렇게 오래 가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몇 달이 이렇게 흐르다보니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든다. 공존한다는 말이 아니다. 누가 이런 것과 공존하고 싶겠는가. 다만 일상은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코로나19가 아무리 무서워도 간절한 것들, 더 무서운 것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조지 플로이드 사태로 인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홍콩은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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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바다와 하나 되기, 프리다이빙 “심해는 놀랍고 신기한 생물들, 낯선 물고기들과 젤리 같은 공 모양의 생물들을 비롯해 난생처음 보는 생명체들로 가득했다. 수심 700미터에 접근할 즈음 물은 생각과 달리 검은색이 아니라 아주 탁한 푸른색이었다. … 이곳에선 탐조등이 꺼지고 나면 노란색과 주황색 그리고 빨간색은 머릿속에서조차 자취를 감춰버린다. 사방을 가득 메운 푸른색에 압도되어 다른 색깔들은 생각할 수도 없다.”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네스터의 책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에서 인용한 글이다. 작년 여름에 출간된 이 책을 틈틈이 펼쳐보곤 하는데, 심해의 바닷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프리다이버들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바닷속의 소리와 빛과 색깔들을 전해주는 글의 감동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바닷속을 보고 싶으면 영상으로 보면 그만이다. 이 책에서는 아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뛰어드는 프리다이버들이 얼마나 깊이 내려갈 수 있는가만이 아니라 얼마나 바다와 가깝게 밀착할 수 있는가를 역설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힘을 빌려 재생하는 바닷속은 훨씬 더 실재에 가까울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고 엿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영상으로 옮겨진 바다 역시 실재는 아니다. 바닷속을 알기 위해서는 그 바다를 느껴야 할 터인데, 우리는 무엇으로 그 깊은 바닷속에서의 호흡과 폐의 압박과 부력과 중력이 전도되는 순간과 무엇보다도 그 순간들의 압도하는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심해를 체험하는 방법은 작가의 바다를 내 머릿속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혹은 내 폐와 심장 속으로. 그것은 놀랍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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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술이 익어가는 닷새 동안 술이란 걸 빚어봤다. 술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그것도 넉넉히 마시는 걸 좋아하거니와 코로나19 시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 시국에도 술은 사다가 마시면 그만이다. 나는 혼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사람들과 만나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때때로 피로가 쌓이는 일이기도 하다.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은 쓸쓸한 일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피로를 푸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시절에는 딱히 쓸쓸히 여길 일도 없다. 혼자 술을 마시며 홀로 피로를 푸는 일이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을 하는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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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꽃보다 투표 토요일인 지난 11일, 사전투표 이틀째 날에 투표를 하고 왔다. 우리 동네 투표소 가는 길이 마침 산책로와 이어져 있어서 모처럼 벚꽃길도 걸었다. 꽃이 활짝 핀 벚나무 아래 꽃잎들이 잔뜩 떨어져 있어 그야말로 꽃길을 걸었다. 도심에서 떨어져 사는 덕분에 근방에 꽃을 보면서 걸어다닐 길이 많다. 봄이면 산책이 즐겁곤 했다. 물론 올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꽃놀이는 고사하고 천천히 걸어다닌 기억조차 없으니 말이다. 집 밖을 나서면 빨리빨리 볼일을 보고, 또 빨리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꼭 필요한 일 때문에 한 외출이었음에도 그냥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눈치가 보였다. 올봄, 거의 모든 집안의 풍경,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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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월드워Z’를 다시 떠올린 이유 <세계대전Z>라는 소설이 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좀비 영화 <월드워Z>의 원작으로 맥스 브룩스의 작품이다. 어느 날 좀비 바이러스가 출현을 하고 세계와 인류가 존재의 운명을 걸고 그 바이러스와 맞서 싸운다는 내용은 소설과 영화가 다를 바 없다. 다만 소설은 영화와 달리 좀 특별한 구성과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서사의 기승전결을 인터뷰로 모두 채웠다는 점이 그렇다. 소설은 바이러스 사태가 모두 종식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어 원작에는 부제 자체가 ‘구전하는 좀비 전쟁의 이야기’로 되어 있기도 하다. 화자는 유엔의 전후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좀비 전쟁의 실태 조사가 그 임무인 바, 우리는 ‘인간적인 요소’에 가려지지 않은 분명한 사실과 수치를 원한다는 위원장의 말에 반하여 이렇게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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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공감 없는 농담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고나면 어떤 문장이나 장면이 오래 남기 마련이다. 남아서 간직되었다가 문득 떠올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서늘한 반성이 되기도 하고, 난데없이 웃음이 터져나오게 하기도 한다. 혼자 잘 웃고 혼자 잘 놀라는 나는 툭하면 그런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의 한 장면을 가끔 떠올릴 때가 있다. “인생은 스케이트장이야. 모두가 넘어지지”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모두가 넘어질 뿐 아니라 계속해서 넘어지게 되기도 할 터인데, 그 뒷말이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이 장면, 혹은 이 대사는 위로가 되는 여운을 남긴다. 넘어지겠으나 일어날 것이고, 또 넘어지겠으나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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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우리의 울퉁불퉁 삶 닮은 ‘데클에지’ 예전에는 가끔 페이퍼나이프를 선물받곤 했었다. 그런 선물을 받고 나면 어디서 우편물 올 데가 있을까 기다리곤 했는데, 그 날렵하다고 할 수 없는 칼날로 봉투 끝을 가르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에 페이퍼나이프를 선물받곤 하던 시절에도 손으로 쓴 편지 같은 게 오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러니 기껏해야 페이퍼나이프를 써서 열어볼 게 고지서 따위들이었는데 그래도 그 사각사각 종이를 가르는 소리가 좋아서 기분 좋게 봉투를 열어보곤 했다. 지금은 그나마도 쓸 일이 없게 되었다. 대개의 우편물은 e메일로 오고, 택배로 받는 물건들은 페어퍼나이프로는 개봉이 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니, 이 나이프들은 이제 내 책상 위 장식품이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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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홍콩 ‘울고 있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안톤 슈나크의 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첫 문장이다.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슬퍼지는 것은 나 역시 언젠가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어서일 것이다. 굶주린 세월을 살지는 않았으니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울지는 않았을 것이고,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충격적인 공포와 상실로 인해 울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에 비견할 만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없지 않으나 대개는 아주 사소한 이유, 어린아이들의 별것 아닌 다툼, 터무니없는 서운함, 사소한 소외와 사소한 외로움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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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좋은 서점 오래전에 살았던 집 앞을 지나가볼 기회가 생겼다.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 집들을 일일이 다 추억하지는 않는다. 기억은 하지만 딱히 추억할 만한 일이 없는 집들도 많다. 해외에서 살았던 집들은 다르다. 짧게 살았거나 길게 살았거나 그 집들을 떠날 때마다 내 평생 이제 여기 다시 와볼 일은 없겠구나 싶어져서 한참 동안 그 집을 쳐다보곤 했었다. 2000년대 초반에 베이징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는데, 최근에 그 집 앞을 다시 가보게 되었다.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뀐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집의 위치조차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집이 이제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 열배쯤 올랐다고 동행을 했던 중국인 친구가 말해주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때도 내 집이 아니었으면서도 괜히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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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콜럼바인 ‘비극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은 책 <콜럼바인>을 며칠에 걸쳐 무서운 마음으로 읽었다. 무섭다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1999년 미국 컬럼비아주의 고등학교 콜럼바인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에 관한 책이다. 700쪽에 가까운 두꺼운 책인데, 단순히 사건에 대한 취재와 분석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부제로 붙은 말마따나 그 비극에 대한 총체적인 보고서이다. 도대체 그런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그런 일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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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원세개와 가짜뉴스 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사실이 아닌 거짓된 뉴스. 인터넷을 찾아보면 ‘가짜뉴스’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가 이렇게 나온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유포의 목적이 뚜렷하다는 점이 가장 특징적이라 하겠다. 재미 삼아 한번 해보는 거짓말이거나 실수로 잘못 옮긴 말이 아니라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다. 당연히 고도로 기술적이고 계산된 수단이 쓰인다. 내용의 진실 혹은 사실 여부는 물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만큼 유포되고,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때로는 유포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듯싶다. 믿고 싶은 뉴스, 그랬으면 하는 뉴스, 그럴 줄 알았다는 뉴스, 그런 것들에 대한 열렬한 반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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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더닝크루거 10년 쓴 노트북을 바꿨다. 그동안 이렇게 오래 쓴 노트북은 처음이다. 그만큼 내가 사용을 잘했다는 건지, 아니면 제품의 내구성이 그만큼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10년이란 정이란 게 들어버릴 만한 세월이다. 내가 일용했던 모든 양식이 10여년에 걸쳐 내 오래된 냉장고를 거쳐갔던 것처럼 이 노트북에는 내가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머물렀다. 생각뿐만 아니라 잘 표현되지 않았던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노트북을 열어놓은 채 한 글자도 치지 못하고 스크린이 슬리핑 모드로 넘어가는 걸 보며 시간만 보냈던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