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장애여성 ‘공감’ 사무국장
최신기사
-
NGO 발언대 후퇴 없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10명 중 9명이 원한다, 차별금지법. 6월23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선 88.5%, 6월18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1대 국회, 국민이 바라는 성평등 입법과제’ 조사에선 87.7%가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더는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룰 수 없다. 인권위 조사 결과 차별 후 무대응한 경우는 71.7%로, 실효성 부재(40%)와 대응 후 보다 심각한 문제 발생 우려(30.8%) 등을 이유로 들었다. 차별받은 사람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기 어렵다. 차별받은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라 차별받은 사람을 구제할 제도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한 시정권고가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실효성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모두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구조에 놓여 있다는 인식도 높아졌다. 누구나 언젠가 차별을 하거나 당할 수 있다는 질문에 90.8%가 그렇다고 답했다. 코로나19로 한층 분명해진 경제적 불평등과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혐오는 차별이 언제든 부메랑처럼 서로에게 찾아올 수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차별금지법이 다수에 대한 소수의 차별이란 역차별 논리는 서로를 향한 부메랑 돌리기를 강요할 뿐이다.
-
NGO 발언대 법무부 인권국장 후보가 갖춰야 할 자격 지난 3월27일 법무부는 인권국장직 경력경쟁채용 절차를 통해 선발된 최종 후보 2인을 공지했다. 인권시민단체는 4월14일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 중 1인인 홍관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임명을 반대했다. 홍 교수가 법무부 인권국 인권정책과 서기관으로 있던 2006~2013년 사이 유엔인권기구 권고의 국내 이행 방안 논의를 한 차례도 추진하지 않았고, 2009년 유엔사회권규약위원 회의에서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주민이 아니라 상인이기 때문에 강제철거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발언하는 등 정권의 인권침해를 두둔하는 일에 나섰기 때문이다.
-
NGO 발언대 동선 위의 사람들 ‘거리로 나가자!’ 서울시 장애인 거주시설 연계사업으로 진행하는 탈시설 활동에 참여하는 거주인들과 만든 단톡방의 이름이다. 채팅과 사진으로 일상을 나누고 관계를 쌓던 공간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조용해졌다.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전화나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취업을 했던 일터에 나가진 못하지만, 시설 내에서 작업을 한단다. 시설 내부에 머무는 것은 정확하지만, 움직이는 공간과 활동은 정확하지 않다. 작년에도 워크숍이나 외부 일정을 잡을 때 거주시설 내 프로그램이란 이유로 비협조적이었던 시설 측과 탈시설 계획을 논의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
NGO 발언대 권리를 더는 포기당하지 않기 위해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지난 2월7일 입학을 포기했다. 여자대학이라는 공간에 트랜스젠더 여성의 진입이 비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혐오와 극심한 반대 속에서 트랜스젠더 여성 당사자에게 학교 생활이라는 ‘일상’은 싸우고 지켜야 하는 ‘현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발달장애학생의 특정 행동이 불안하고 위협적이어서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장면이 겹친다. 비장애학생의 교육권이 침해당하고, 안전이 위협당한다는 주장과 장애학생의 정당한 교육권을 박탈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할 때, 여론과 교육기관은 권리 간 충돌로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만 강조했다. 이러한 현실은 상대방을 탓하며 피해의 강도를 다투게 만들어 구조적인 한계를 바로 짚기 어렵게 한다.
-
NGO 발언대 ‘활동지원제도’ 본인부담금 폐지가 답이다 세밑, 보건복지부가 1주일 사이에 3개의 문자로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본인부담금 인상을 통보했다. 본인부담금은 현재 가구 소득 기준으로 산정해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문자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인상 금액은 최소 2700원에서 6만원으로 1차 문자로 통보받은 액수보다 2차에는 2~3배 인상된 금액이 안내된다. 3차에는 다시 인하된 금액이 문자로 통보된다. 한 장애인의 경우 1차 약 3만원, 2차 약 6만원, 3차 약 1만원으로 2차례 정정 통보 문자를 받았다. 이미 기존 금액으로 납부한 이들은 꼭 인상액을 추가로 내라는 통보도 잊지 않았다.
-
NGO 발언대 여기, 여전히 ‘차별잇수다’ 내가 여성으로서 경험한 차별을 처음으로 쏟아내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혼잣말로 입안에 머물던 감정들이 우르르 말이 되어 쏟아졌다. 불편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편하냐고 아무도 물어주지 않아서 말할 수 없었구나.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자 비로소 내 이야기가 의미를 갖게 됐다. 맞은편 동료가 맞장구치고 분석도 하며 거들었다. 자신이 겪은 경험도 나눠준다. “나만 겪은 게 아니었어.” 안도와 든든함은 용기가 되었다. 밤새 이어졌던 그날의 ‘수다’는 나를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끌었다. 말할 수 있는 장소와 동료는 싸울 수 있는 힘과 언어를 가지도록 응원해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인내, 극복 등 개인의 영역이었던 차별은 사회의 과제가 된다.
-
NGO 발언대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사회보장법에 따르면 사회보장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실업,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질병, 장애, 노령, 실업 등을 사회적 위험으로 정의한 것은 그로 인해 겪게 될 사회경제적 차별이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개인에게 떠넘긴다. 1촌의 직계혈족과 배우자의 소득에 따라 부양의무를 지는 것이 복지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도 100대 국정과제로 폐지를 약속했지만 작년 10월 주거급여만 기준이 폐지되고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기준이 완화되었을 뿐이다. 사회적 합의와 단계를 핑계 삼는 사이 지난여름 서울 관악구 한부모 가정의 탈북여성과 장애가 있는 아들이 아사했다. 9월에 강서구에선 80대 어머니와 50대 장애인 아들이 동생에 의해 살해됐다. 관악구의 탈북여성에겐 부양의무자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중국에서 이혼한 남편과의 이혼확인서를 요구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평가 등 제도는 문턱을 낮추는 대신 장벽을 높여 왔다.
-
NGO 발언대 커뮤니티 케어, 장애인 ‘탈시설’ 보장할 수 있나 커뮤니티 케어의 하나인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모델의 장애인 탈시설 지원 절차 중 ‘탈시설 욕구조사’ 항목이 있다. 다음 단계 ‘대상자 발굴’을 위해 욕구와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당사자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단계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당사자가 욕구를 말할 수 있는 과정으로 보장되려면 거주시설 안팎의 구조와 관계 변화가 절실하다. 제한적 관계와 공간에서 살아온 이에게 선택과 결정은 소중한 권리지만 그만큼 생소할 수 있다. “다음에 언제 만나요?” 탈시설 지원 현장의 참여자들은 종종 활동가에게 질문한다. “언제 시간 괜찮은가요?” 되물으면 답하기 곤란해하며 시설 종사자가 안다고 대답한다.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타인의 ‘허락’에 익숙한 일상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
NGO 발언대 평등한 스포츠, 장애인 선수의 인권 지난 2월 체육분야 구조 혁신을 목표로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5월7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5차례 권고를 발표했다. 1차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권고는 인권침해를 ‘국가주의적, 승리지상주의적 스포츠 패러다임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제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사건을 해결해야 할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등은 체육계 내부와 분리되지 않아 제 기능을 못했다고 지적했다. 1차 권고의 핵심은 체육계 내부로부터 분리된 ‘독립성, 자율성, 신뢰성’를 갖춘 ‘스포츠 인권보호기구 설립’이다.
-
NGO 발언대 장애등급제는 폐지됐지만…갈 길이 멀다 1988년 11월1일. ㄱ씨의 최초 장애등록일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88년 11월 장애인등록제가 전면 시행되었고 학교 교사에 의해 등록되었다. 2003년 2월28일. ㄴ씨가 지적장애가 무엇인지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장애인으로 등록한 날이다. 등록증 뒷면엔 보호자 전화번호가 적혔다. 보호자가 필요한 존재.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인식을 파악하게 하는 단서다. 1994년 6월26일. ㄷ씨는 장애인 등록 후 전화요금, 전기료 등 몇 개의 감면 혜택을 받았다. 걷기 어려운 장애가 있었지만 3급이기 때문에 2급까지 이용 가능한 장애인 콜택시를 탈 수 없었다. 등급에 따라 차등화된 서비스에 맞춘 삶, 자신으로 살기보다 제도가 구획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강요받는 것, 장애등급제가 만든 차별의 구조다. 무엇보다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는 차별은 실재하지만, 개인의 몫이었다. ‘의학적 장애인’ 개념을 강조한 장애등급제의 몰젠더성은 장애인 간의 차이를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31년이 지난 2019년 7월1일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었다.
-
NGO 발언대 진짜 예술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장애가 예술을 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이 몇 주째 소화가 안된다. 장애인의 몸이 표현하는 예술의 가능성과 긍정성을 취지로 한 말일까.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그 예술이란 과연 무얼까. 이런 말이 불편한 건 성격 탓일까. 답답하던 차에 한 문화연구자의 “연극적인 것을 배반하는 ‘춤추는허리’ 연극의 공연 창작 과정”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명치가 뚫린다. 진짜 예술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과연 진짜(정상)가 뭘까를 묻는다. 내가 참여하는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는 장애, 몸, 예술, 배우. 섹슈얼리티, 독립 등에 대한 사회의 정상적 규범을 연극으로 질문한다. 지적장애 여성 배우는 연습장에 대사를 10번 이상 적으며 자기에게 익숙한 말을 찾기도 한다. “너무나 감동했어요. 저는 지금 장애 극복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지적장애 여성은 이 대사를 “감동이에요. 장애 없어요”로 바꿨다. 대사를 바꾸며 자기 말을 만드는 과정이다.
-
NGO 발언대 낙태죄 폐지와 장애인의 재생산권 지난 4월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여성의 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이라는 구도는 선택권과 생명권 둘 다 논의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국가 인구정책의 폭력과 차별의 실체는 드러나지 못했다. 실제로 여성이 선택 가능한 사회적 조건은 마련된 적이 없다. 낙태죄 때문에 안전하게 임신 중단에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고, ‘죄’라는 규범은 성교육에서 피임과 임신 중단 교육을 통제했다. 이제 국가가 임신과 출산의 허용 가능한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