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최신기사
-
산책자 아주 보통의 글쓰기 우리 출판사에서는 최근 ‘아주 보통의 글쓰기’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했다.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이끌어갈 저자들이다. 너도나도 책을 내는 시대에 평범한 저자들의 등장은 그리 새로운 시도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어떤 테마나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떻게 보면 자기 삶의 고백, 자서전적인 글쓰기를 담게 될 것이다. 지난가을 출판사로 투고되어온 원고들 중에 유난히 눈길이 가는 글 두 편이 있었다. 이들이 최근 연달아 책으로 나왔다. 출간을 결심한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삶이 소설 한 권을 써도 좋을 만큼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랬다면 책을 내는 데 주저했을 수도 있다. 책을 내보지 않은 이들이라 판매나 인지도 측면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좋은 글에 이골이 난 눈으로 볼 때도 뛰어난 글쓰기로 자신을 표현해냈다. 강호의 숨은 고수들이랄까. 글로 다듬어져 나온 이들의 생애는 때론 눈물이 날 정도였고, 분노와 고통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질투나 자책의 감정을 느끼게도 했다.
-
산책자 한 무지렁이의 제주 4·3 여행 아무 계획도 없이 가을 제주에 다녀왔다. 한림 해변 쪽에 3일, 성산 해변 쪽에 3일 숙소를 예약한 6박7일의 일정이었다. 첫날에 한라산을 올랐다. 성판악에서 출발해 백록담을 보고 원점 회귀하는 코스였는데 꼬박 8시간이 걸렸다. 힘들긴 했지만 백록담을 실제로 봤으니 나름 대만족인가. 구렁이처럼 경사면을 넘어온 구름에 거대한 분지가 가려졌다가 맑아졌다가 하는 대자연의 풍광은 비록 많은 등산객의 시끌벅적함 속에서도 충분히 신비로웠다. 다음날엔 좀 쉽게 다니자며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그렇게 고른 게 둘레길 10번 코스.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제주의 아픈 역사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중일전쟁 당시 일제가 중국 대륙을 폭격하기 위한 거점으로 만들어놓은 알뜨르비행장과 비행기 격납고,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으로 죽은 사람들의 위령비를 거치면서 천천히 제주의 역사에 젖어들었다.
-
산책자 간장게장과 허난 대기근 인류의 역사는 ‘굶주림’ 극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굶주림은 수십만년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자연이 오작동을 일으키면 인류는 늘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 됐지만 인간의 DNA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굶주림에 대한 공포가 새겨져 있다. 며칠 전 중국 소설가 류전윈 선생이 방한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신작 소설 초판을 90만부나 찍을 정도로 중국에선 잘나가는 거장이다. 그의 소설을 보면 먹고살기 위해 발악하고, 배신하고, 사기 치는 인간 군상이 자주 등장한다.
-
산책자 다이알 비누의 습격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 댁에 가족이 모였다. 우리 집안은 추석을 변칙적으로 보내는데 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각자 개인플레이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부모님 댁에 모이기도 한다. 추석 전날 오전에 출발해 점심시간이 갓 지날 무렵 도착했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탕국 냄새가 코를 어지럽혔다. 나는 명절 음식 중에서도 이 탕국을 가장 좋아한다. 처음 한 들통 끓여놓았을 때는 무와 두부가 싱싱하게 살아 있고, 이틀 정도 내리 먹다보면 국물이 짜지고 무와 두부도 절여져서 더 맛있게 되는 국이다. 집집마다 끓이는 방식은 다르지만 두부, 무, 소고기는 공통으로 들어가며 우리 집은 여기에 토란과 바지락을 더해서 끓인다. 생선은 조기와 가자미를 굽는데 이번 추석에는 조기 대신 민어조기가 올라왔다. 요즘 같은 때 참조기야 언감생심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부세조기나 백조기가 더 좋은데 모친께선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민어조기가 더 고급이라고 하신다. 색깔도 거무튀튀한 것이 전형적인 민어 새끼처럼 생겼다. 먹어보니 감칠맛도 훨씬 떨어지고 좀 비리더라.
-
산책자 ‘자발적 사과’는 없다 일본은 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못할까. 이런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독일의 사례가 불려 나온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반성하고, 교과서에 낱낱이 기록해 교육시킬 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를 역사 기억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을 모셔놓고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치고 있다. 이 극단의 대비가 주는 인지적 충격은 꽤 크다. 그런데 독일이 처음부터 순순히 과오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전후의 폐허에서 패전국 국민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물리적 생존과 정신적 회복이었다. 이윽고 전범 재판이 열렸을 때 독일은 범죄 내용을 최소화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최호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검사 측이 제출한 기소 항목에 있던 ‘제노사이드 범죄’ 부분이 심리에서 빠졌다. 몇 년 뒤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범 재판에서는 기소 항목에서 ‘반인도 범죄’가 독립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고 전쟁범죄 항목에 예속됨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독일보다는 낫다”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조성했다. 이 과정까지는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게 된 것일까. 196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재판 이후부터 기류가 달라졌다. 독일 국민은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이가 지극히 평범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 이 ‘악의 평범성’ 앞에서 비로소 책임은 몇몇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자각이 싹텄다.
-
산책자 일본의 잘못된 계산 일본의 경제보복이 철저한 계산에 따른 기습공격이며 한국은 준비 없이 뒤통수를 맞았다는 인식은 문제가 있다. 특별한 근거가 없다면 미리 이런 식의 추정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잘못된 계산을 한 가장 대표적 사례다. 1942년 당시 일본은 승승장구 중이었다. 조선과 중국의 일부, 위만주국, 동남아의 여러 섬을 장악해 소뿔처럼 휜 제국 판도를 그리고 있었다. 일본이 태평양으로 뻗어나올 기세를 보이자 미국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석유 수출을 금지시킨 것이다. 석유의 대미의존도가 50% 이상이었던지라 배신감을 느낀 도쿄 권력의 최상층부는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마침 인구 팽창과 도시 집중으로 주거와 식량, 임금 등 여러 사회문제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군국주의적 팽창에 모든 걸 쏟아붓다보니 내부 살림에 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 자원이 많은 필리핀이 특히 탐스럽게 여겨졌다. 그때 미국이 많이 먹었으니 그만 먹으라고 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욱일승천 중이던 쇼와 군부는 강공을 택했다. 히틀러와 손잡고 전쟁을 준비하면서 대미 협상에 나선 것이다. 이런 이중 행보가 몇 번이나 탐지되면서 미국 또한 협상의 문턱을 더 높여버렸다. 히로히토 천황은 어떻게든 외교적 해결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내각과 군부는 격론 끝에 ‘전쟁만이 답이다’로 달려갔다. 마치 전쟁을 하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이들처럼 화친론자들을 몰아부쳤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일본 정치의 시스템적 문제다.
-
산책자 미래의 책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가 도래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과학기술이나 문명의 진보에 따라 차츰 가까운 미래가 되었다가 현실로 출현해왔다. 각종 질병은 극복되거나 되고 있고, 이동 수단, 커뮤니케이션 수단 등이 생겨나 과거엔 불가능한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우리의 현실을 이루고 있다. 상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미래는 현실의 적이다. 현실을 지배하는 기득권은 미래의 새로운 권력에게 결국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산책자 일본의 ‘작은 집’들 일본을 여행하면서 줄곧 이런 궁금증과 함께했다. 왜 집이 이렇게 작을까. 호텔에 묵어도 그렇고 에어비앤비로 일반 가정집에 묵어도 그렇다. 한결같이 작다. 그럼에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구석구석 공간 활용이 기가 막히다. 욕실은 한 걸음 내디딜 여유 공간도 없지만 욕탕은 갖춰져 있다. 물을 받아놓고 들어가면 꼭 목욕놀이 하는 기분이 든다. 반면에 역사 유적을 대표하는 절들은 무척이나 크다. 나라(奈良)시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를 처음 봤을 때 들어가는 입구부터 그 규모에 충격을 받았다. 이곳 대불전은 동양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높이 16m에 무게 380t의 청동대불상이 있다.
-
산책자 부연마을에 가서 지난주에 오대산 북쪽 자락의 한 오지마을을 다녀왔는데 이름이 부연동이라 했다. 솥 부(釜)에 못 연(淵)자를 쓴 마을이다. 바야흐로 산천초목이 새의 혀 같은 이파리를 밀어내는 계절. 1000m 고봉을 사방으로 끼고 실낱같이 이어진 도로를 따라 부연마을 가는 길은 수묵담채화가 수묵채색화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산색이 어찌나 맑고 아름다운지 신세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때 인솔자가 “여긴 전쟁 난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만큼 깊고 외부와 단절된 마을이다. 과연 얼마나 깊을까. 가도 가도 길은 계속됐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무렵 눈앞이 확 트이면서 넓은 분지가 나타났는데 바로 부연마을이었다.
-
산책자 욱하는 버릇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뭔가 중요한 기획회의였는데 누군가가 던진 말에 내가 다소 흥분했다. 한참 날을 세워 말이 오가는데 구석에서 제3의 인물이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권 감수성도 없는 주제에!”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말을?’ 의심도 잠시,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했어?” 그는 별말 아니라고 발을 뺐고 이후 회의는 급하게 종료되었다. 잠시 후 그를 따로 불렀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할 말이 아니지 않으냐, 내게 문제가 있다면 따로 지적해주면 고칠 용의가 있다는 등 좋게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괘씸하고 억울해 다시 흥분 상태가 되면서 “한 번만 더 그런 일이 있으면”이라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말았다.
-
산책자 나는 왜 ‘시리즈’를 내는가 단행본 출판사들은 비슷한 주제나 성격의 책을 연차적으로 묶어 ‘시리즈’를 펴내곤 한다. 시리즈엔 그 출판사가 좋아하고 지향하는 바가 담기게 마련이다. 어떤 종류의 책들을 몹시도 내고 싶은데 한 권으로는 그 욕망을 다 담을 수 없을 때 시리즈라는 ‘주머니’를 만들게 된다. 나도 시리즈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지난 10여년을 돌아보면 꽤 많은 시리즈를 꾸려왔다.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지금까지 13권을 낸 ‘현대의 고전’ 시리즈는 ‘고전’과 ‘현대’의 언밸런스를 의도했다. 고전이라 하면 적어도 수백년 동안 살아남은 책이라는 게 상식이지만, 우리는 20세기에 나온 책들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 만한 것을 골라보고 싶었다. 내 눈에 콩떡이라고 내가 고전이라 부르고 싶은 책들을 낸다는 의미다. 16권을 낸 ‘걸작논픽션’ 시리즈에서는 치열한 취재와 성찰, 글쓰기를 통해 웅혼한 리얼리즘을 구현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
산책자 걷는 인간 주말마다 서울 시내를 걷고 있다. 편집자인 내가 주말에조차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이들이 주말에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침에 집을 나와 합정역에 차를 대놓고 내처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없고 종로, 신림, 한남동 이런 식으로 방향을 잡는다. 골목이 보이면 저긴 뭐가 있을까 호기심에 차서 들어가고, 길을 잃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만큼 미로를 헤맨다. 8시간쯤 걷는데, 거리로 따지면 25㎞ 전후이고 걸음수로 3만보가 넘는다. 늘 드나들던 서울이지만 찻길을 벗어나면 못 가본 곳 천지다. 한 번도 발 디뎌본 적 없는 공간에 두 발을 딛고 공기를 들이마신다. 이것이 주는 즐거움은 크다. 서울 시내에는 스타벅스만 많은 게 아니라 시장도 많다. 종로의 방산시장과 중부건어물시장은 이번에 처음 가봤다. 거대한 규모로 도열한 굴비와 그 가공 현장은 여기가 법성포인가 싶을 정도였다. 종로서적이 사라지고 그 많던 극장도 없어지면서 머릿속의 종로는 노인들의 공간으로 이미지화되었는데 이번에 생각을 고쳐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