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최신기사
-
경제와 세상 절차 무시된 ‘예타 면제’ 유감 문재인 정부가 24조1000억원에 달하는 개발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일괄 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국가재정법상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는 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진보 성향을 지닌 경제학자는 시대착오적 토건사업의 재현이라는 이유로, 보수 성향의 경제 전문가는 무책임한 재정 낭비의 전형이라는 이유로 비판의 날을 세웠다. 두 지적 모두 타당하다. 강을 헤집거나 땅을 파거나 절차를 무시하면서 토건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차원에서는 4대강 사업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1999년 예비타당성조사 사업을 도입한 가장 큰 이유가 정치인으로 하여금 국민 세금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을 제고하자는 것이었다.
-
경제와 세상 문제는 사회적 책임성이다 2018년은 내 연구영역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의 공론화에 참여하느라 바쁜 시간이었다. 정부 위원회와 민간단체 등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이해당사자를 만났다. 모든 사안이 이들 사이의 첨예한 충돌에 따른 사회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대와 실망과 동지애와 무력감이 교차한 한 해였다. 갈등을 줄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바로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책임성을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2018년 나에게 소중했던 일들 중 공적 영역과 관련한 일부를 해설을 덧붙여 공유하려 한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간절히 바라며 헌신하는 소수의 힘과 열정이 새해에는 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소망하면서.
-
경제와 세상 입시비극, 제도 문제가 아니다 두 딸에게 학교 시험문제와 답안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교사가 구속됐다. 법원이 시험문제 유출에 대한 정황증거를 인정한 셈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해당 교사와 두 딸의 행적에 관한 언론 보도가 넘쳐났다. 시험 답안지가 교무실 금고에 보관된 직후 야근을 했다, 정정되기 이전의 오답을 답안에 그대로 적었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컴퓨터를 교체했다….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만한 정황들이다. 숙명여고 학부모로 이루어진 ‘숙명여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고 한다. 그분들의 분노가 느껴진다. 관련자들을 단죄하고 이러한 부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한다. 입시제도 개편도 주장하고 있다.
-
경제와 세상 기후변화 경제학과 노벨상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가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주류 경제학자로서 이미 1970년대에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에 따른 경제성장과 기후 관련 논문을 썼으니 쉽지 않은 통찰력을 가졌다. 노드하우스 교수의 문제의식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세상에 나왔다. 신고전학파 경제성장 모형에 기후요소를 결합하여 성장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내재한 동태통합 기후-경제(Dynamic Integrated Climate-Economy, DICE) 모형이 그것이다. DICE 모형은 기후변화라는 제약을 성장모형에 결합하여 최적 소비와 성장 경로를 제시한다. 기후변화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감안할 때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정책수단을 지금부터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시사한다.
-
경제와 세상 공항 없이 흑산도 주민이 잘 사는 법 또다시 개발의 거대한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4대강사업의 상흔이 여전한데, 지역 곳곳에서 정치인이 추동하고 개발업자가 후원하는 각종 사업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는 공항이다.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한 흑산도에 비행장을 지으려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연공원법을 개정하여 법적 근거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가 철새 보호대책을 이유로 승인을 보류하며 힘들게 버티고 있다. 철새도래지로서 국제적인 공동자원이자 전국 22개 국립공원 중 하나인 흑산도에 공항을 건립하는 문제, 어떻게 봐야 할까? 아니, 공항 건설이 흑산도 주민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전략이 될 수 있을까?
-
경제와 세상 에너지전환은 애국운동이다 문재인 정부가 선보인 대표적인 국내 정책을 꼽으라면 단연 소득주도성장과 에너지전환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동반성장과 균형발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부 5년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소득주도성장과 에너지전환 정책의 성공 여부로 문재인 정부를 평가할 것이다. 과거 정권의 사회경제 정책들과 확연히 차별화되기에 논쟁적이기도 하다. 소득주도성장은 기존의 생산성과 투자 중시 성장방식에서 소득양극화와 내수부재 타개를 통해 성장을 모색해 보자는 전략이다.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정책수단에 대한 준비가 철저했다는 인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 보편적 성장전략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많다. 최근에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사이에서 정부가 고민하는 모양새다.
-
경제와 세상 글 써지지 않는 밤에 쓰는 편지 R형에게. 칼럼 마감 전날 찾아오는 은근한 긴장감이 오늘도 저를 감쌌어요. 한두 시간 그러고 나면 주제 하나 잡아 쓰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오늘은 유달리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경향에 칼럼을 연재한 지 딱 1년 되는 때라 그런가요. 그러다 퍼뜩 형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새 경제와 세상 돌아가는 걸 바라보는 후배의 푸념이라고 봐 주세요. 오늘 기사를 보니 진보성향 학자와 교수들 300여명이 과감한 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선언을 한다고 하네요. 재벌, 부동산, 노동 분야에서 개혁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를 담겠다는 것입니다. 하긴 제가 참여하고 있는 재정개혁특위에서 종합부동산세 개혁방안을 권고했는데, 논의과정에서 이 정도 증세로 공평과세가 실현되겠는가, 부동산시장이 잡히겠는가,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정부는 이보다 더 낮은 수준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는 바람에 위원들이 아쉬워했던 게 사실입니다. 시장에 내성을 더 키워준 꼴 아니냐는 거죠.
-
경제와 세상 경유값 이제 올릴 때 됐다 “그것은 네가 택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代價)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 <대부3>의 명대사다. 주인공인 알 파치노가 자신의 후계자를 자청하는 앤디 가르시아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라며 주문했던 말이다. 개인은 물론 조직과 정부의 의사결정에 적용할 수 있는 경구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할 값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변화와 개선의 시발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에 따르면 국민이 불안을 느끼는 가장 큰 위험요소로 경기침체, 실업, 고령화를 뛰어넘어 미세먼지가 꼽혔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으로 집과 직장 주변의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수치가 낮으면 안도하고, 높으면 불안하고 짜증스럽다. 미세먼지가 심혈관계 및 폐 질환 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결과는 차고 넘친다. 미세먼지 농도가 시험성적과 학업, 업무와 노동 등 생산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연구들도 등장하고 있다.
-
경제와 세상 국토부와 환경부 사이에 낀 4대강 “물관리일원화가 뭐야?” 의아해하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전문적이면서 지엽적인 용어로 들린다. 한마디로 하천 수량과 수질 정책을 단일 부처가 통합 관리하고 집행하자는 말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수량은 건설과 개발의 산 주역인 국토교통부가, 수질은 오염방지와 보전을 지향하는 환경부가 담당하는 이원관리 체계에서는 우리나라 젖줄인 4대강을 포함한 물관리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국회정상화를 위해 여야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관리일원화에 졸속 합의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불거졌다.
-
경제와 세상 대한항공과의 인연을 끊는다 나와 우리 가족의 대한항공과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1972년 여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대한항공을 타고 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해 4월 김포-하네다-호놀룰루-LA를 경유하는 대한항공 첫 미주 노선이 개설됐다고 한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1971년 겨울 이민 준비를 위해 처음 도미했을 때는 일본항공(JAL)을 타고 갔지만, 국적 항공기가 생긴 마당에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호놀룰루 공항과 LA 공항은 대한항공 B707이 도착하자 “태극 마크를 단 항공기를 본 교민들이 감격해 흘린 눈물로 공항이 눈물바다가 됐다”는 일화가 있다. 미국 이민생활 적응이 쉽지 않아 1년 반 만에 가족 모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대한항공은 유학이나 출장을 떠나는 나의 날개가 돼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대한항공 46년 고객이다. 온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조씨 집안 자녀들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는 대한항공 고객이었다.
-
경제와 세상 에너지전환의 닻을 올리며 2002년 3월21일 목요일 오후였다. 학부 수업을 하고 있던 나는 난데없는 학생들의 웅성거림에 적잖게 당황했다. 그 순간 한 학생이 말했다. “교수님, 밖을 보세요.” 창밖에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커먼 먹구름이 건물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황사였다. 이날 관측된 PM10 시간당 최대 미세먼지 농도는 2000㎍/㎥를 훌쩍 넘었다. 현재 ‘매우 나쁨’ 일평균 기준이 151㎍/㎥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였다. 역대 최악의 황사였다. 다음 해인 2003년 봄 기상학자, 지리학자, 국제정치학자, 경제학자로 구성된 10명의 황사대책팀에 속해 중국 사막화 지역을 탐사할 기회를 가졌다. 황사는 비 없는 건조지역과 편서풍이라는 기상조건, 목축이나 벌목과 같은 농업활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 이후 상황은 훨씬 복잡해졌다. 중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에너지 소비 증가로 온갖 종류와 크기의 미세먼지를 쏟아냈고, 그중 일부는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있다.
-
경제와 세상 평창 올림픽의 교훈 ‘사육 말고 교육’ 나는 스포츠 마니아다.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보는 걸 너무 좋아한다. 어떤 종목은 해설도 자신 있다. 유학시절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 운동 생중계를 해주는 통에 이러다 졸업 못하겠다 싶어 텔레비전 코드를 뽑아 옷장 속에 집어넣었다. 그런 나도 동계올림픽 종목은 낯설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 전반은 스켈레톤이, 후반은 컬링이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다. 하나는 지나치게 빠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느린 종목인데 느끼는 희열은 같았다. 윤성빈과 팀 킴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성공에는 배경이 있다. 이름조차 생소한 운동 종목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데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신림고등학교를 다닌 윤성빈에게는 김영태 선생님이 있었다.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에게 양정고보 시절 은사인 김교신 선생님이 있었듯이 말이다. 위험천만해 보이는 운동을 만류하고 싶은 어머니에게 김영태 선생님은 말했다고 한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개척해야 성공한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