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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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다시 좋은 건축이란 어느덧 연말과 함께 지난 삼 년간 이어온 ‘도발하는 건축’의 마지막 글이 되었습니다. 건축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형태가 매력적이다’ ‘쓰인 재료가 예쁘다’라고 말합니다. 건축에서는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표현적인 측면이 우선시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건축을 단순히 미적 표현으로 치부하기에는 더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좋은 건축을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우선은 합목적성입니다. 건축이 그 쓰임을 위한 목적에 충실한지 여부입니다. 다음은 시대성입니다. 우리가 유적의 발견을 통해 과거 생활과 그 사회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건축이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담고자 하는 관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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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도넛과 건축의 공백 우리말 중에는 ‘멋’이라는, 외국어로는 정확히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가 있다. 멋이란 기능과는 별개로 필요 이상의 넉넉함을 바탕으로 발휘되는 세련됨을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말이다. 한국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고 김수근 선생은 “멋이라 함은 바로 이 여유로움, 즉 넉넉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런 ‘멋’이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대청이나 누마루, 그리고 사랑방이 가지는 공간적 특징에서 잘 나타난다”고 했다. 대청이라는 넓은 마루방은 낮에는 창호지 문을 전부 걷으면 확 트여 외부에 가까운 공간이고, 밤에는 다시 잠그면 내부가 되는 중간적인 공간이다. 우리의 전통건축은 기능을 위해 그 속에 있는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공간 내에서 다양한 해프닝과 놀이가 이루어지도록 하여 기능적인 것과는 다른 창조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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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독일의 헤르만 핀스텔린(1887~1973)은 실로 특이한 경력의 건축가였다. 그는 뮌헨에서 태어나 물리, 화학, 약학을 전공하였으나 어느 날 문득 바이에른 알프스 정상에서 영감을 받아 예술가로 전향하였다. 20세기 초반, 당시의 전위적 건축가이자 바우하우스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를 만나 건축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생전 많은 건축구상을 하였으나 한 점도 실현되지 못한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세상에 주목을 받는다. 아름다운 조각품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비록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대에 걸쳐 많은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초현실주의적인 자동기술법 그림처럼 그의 도발하는 디자인은 전통적인 건축이 가진 벽, 지붕, 창문과 같은 고정개념을 완전히 흐트러트린다.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동물의 신체 구조와 형태에 매료되어 있었다. 거북이의 등, 새의 날개, 물고기의 아가미 등 다양한 자연의 형태를 디자인으로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러한 매력적인 형태의 핵심은 늘 건축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경계의 한계를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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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배경으로서의 건축 서울은 산과 물의 질서에 순응해 구성된 작은 스케일의 다양한 영역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형성된 매우 독특한 역사 도시이다. 이 도시의 영역을 규정하는 한양도성 또한 이러한 땅의 질서를 존중하여 축조되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순성 안내쉼터는 성곽 길 탐방 안내와 휴식을 위한 시설로, 설계 공모를 통해 만들어졌다. 사직단 뒤편, 경사가 심한 인왕산 둘레길 초입의 자그마한 대지를 이용하는 것이 공모전의 취지였다. 그러나 이 작은 땅은 인근 주민들의 쉼터이자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던 터라 적잖이 고민이 되었다. 공모의 지침을 따르자니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없어질 판이었다. 결국 나는 공모전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잡초들로 무성한, 비탈진 구석 땅을 찾아서 도성 둘레길과 동네 쉼터를 매개하는 정자(亭子)를 제안했다. 이 동네 공동체의 마당을 그냥 둔 채, 옆 성곽 사이의 완충 경사 녹지를 활용하여 지형을 보존하고 주민과 성곽 방문객 모두에게 열린 복합적인 쓰임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늘을 위한 큼지막한 처마가 만들어졌고, 그 하부로는 경사지가 계단식 스탠드로 단단으로 만들어져 탐방객 쉼터이자 작은 문화마당의 관람석 역할을 한다. 이전의 동네 마당은 그대로 비워져 주민들과 탐방객의 여러 행위들이 서로 조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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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오감의 건축 건축에서 장식은 범죄행위와도 같다. 고전주의를 지나 20세기 새로운 모더니즘이 태동하기 시작한 격동의 시대,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장식과 범죄>라는 책을 통해 기존 건축과 디자인 세계에 선전포고를 한다. 로스에게 장식은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된 치장으로 건물을 풍성히 꾸미는 것이었다. 통일된 양식은 그 자체로서 완결을 의미했다. 당시 주목을 받는 건축들은 조명기구, 책상 다리, 벽지, 문고리, 창문틀 등 집 안 곳곳이 모두 하나의 양식으로 채워진 것들이었다. 점점 양식은 번식한다. 그리고 장식의 농도와 통일성 속에서 사람들은 과시감과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 이러한 편집적인 장식은, 말하자면 문신으로 피부의 표면을 모두 덮으려는 욕망과도 흡사해서 병적인 것이었다. 당시 세기말의 장식에 대한 집착은 일견 문화적인 취향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근저에 있는 것은 원시적인 욕망에 불과하다고 로스는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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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좋은 건축은 용기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설계라는 창작활동에 전념하며 몸소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을 뛰어넘는 명작이라 불리는 것을 탄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새로움에 도전하는 용기’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과 창의력도 필요하지만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결국 얼마만큼의 용기가 뒷받침되는지 여부이다. 1975년 오사카 골목 한 모퉁이에 만들어진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협소 주택은 이러한 이론의 대표적인 예이다. 빼곡히 들어선 주택들 사이 폭 약 3.3m 깊이 14m에 불과한 땅에 그 크기만큼의 콘크리트 상자를 만든다. 그리고 그 작은 상자를 다시 3등분으로 나눠서 양단에 방을 배치하고 가운데는 하늘이 보이는 중정을 두었다. 거실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 신발을 신고 중정을 지나야 하고 비가 올 때는 우산까지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러한 불편할 수 있는 공백이 만들어내는 주거의 풍요로움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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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재앙을 피하는 법 인간이 구조물을 세우기 시작한 이래로 구조물의 붕괴와 실패는 시작되었다. 유사 이래 수많은 건축물이 세워졌으나 오늘날까지 붕괴하지 않은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대 7개 불가사의 중 이집트의 피라미드만 남아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말해준다. 그리고 현존하는 과거의 어떤 기념물도 오늘날 결함과 붕괴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전무하다. 그 당시는 올바른 구조적 지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우려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현재에도 끊이지 않는 건물의 붕괴나 화재는 우리를 당황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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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그’ 건축가의 자기 연출 르 코르뷔지에가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만든 작품들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더불어 교묘한 자기 연출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가 남긴 ‘주택은 삶을 위한 기계’ ‘근대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빛나는 도시’ 등 세간의 주목을 받은 강력한 강령들은 자신을 단순한 예술가를 넘어 미래지향적 이상가로서 자리매김하였다. 또 한 예로 그가 주축이 되어 출간한 예술 잡지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는 당시 최첨단 기업들의 광고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 광고들은 해당 기업으로부터 아무런 게재 의뢰를 받지 않았으나 르 코르뷔지에가 멋대로 내보내고 사후에 홍보비를 청구하는 다소 황당한 방법을 취하였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잡지에 적합한 위상을 가진 기업을 스스로 고른 것이다. 이를 통해 잡지가 지향하는 분위기나 방향성을 더욱 명확히 하면서도 갓 발간된 신규 잡지의 인지성도 더불어 높인 일거양득의 홍보 방식이었다. 실제로 광고가 실린 기업으로서 광고료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나간 광고까지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법. 자초지종을 알 리 없는 독자의 눈에는 신간 잡지의 강한 인상이 새겨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권말에 이 잡지가 얼마나 세계적으로 구독되는가를 나타내는 세계지도가 포함된 것도 사뭇 흥미롭다. 어떤 나라에서 한 명이라도 구독자가 발생하면 그 국가 영역 전체에 색칠이 된 것이라 무척 허술하긴 하지만 구독자로서는 분명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로 인식되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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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사청문제도는 죄가 없다 1997년에 개봉된 <넘버3>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죄가 무슨 죄가 있냐, 죄지은 놈이 나쁜 놈이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고위공직자 인선과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인사청문제도가 무슨 죄가 있냐,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지”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정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권력의 끝은 항상 허망하고 냉정하다. 대통령이 임기 초와 달리 고위공직자를 인선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도 사사건건 더 격렬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청문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폐지하거나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정말 그런 것인가? 어디 한번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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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황사에도 안전한 에코 돔 미국의 발명가이자 건축가인 벅민스터 풀러(1895~1983)는 당시 시대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선구적인 이상을 가지고 기상천외한 해결책을 제안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최소한의 에너지와 재료로 최대의 가치를 만든다는 다이맥시온(Dymaxion)의 철학으로 조립식 주택과 자동차를 결합한 이동식 주택을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수많은 아이디어 중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 1960년대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를 덮은 지름 3.2㎞의 투명한 돔(Dome)이다. 돔 구조체는 최소한의 부재로 최대한의 공간을 형성한다는 점과 비교적 얇은 두께로도 높은 강도가 확보된다는 장점이 있다. 신문지를 펴서 달걀을 치면 꿈쩍도 하지 않지만 돌돌 말아서 치면 충분히 깰 수 있는 강도가 되는 원리다. 일찍이 그는 지오데식(Geodesic) 돔이라는 작은 삼각형의 구면 격자로 거대한 곡면을 형성하는 독자적 방식을 개발해 박람회장이나 콘서트홀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들을 실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돔의 규모가 커질수록 비약적으로 재료나 비용이 절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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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대재앙이 만드는 새로운 도시 대재앙은 늘 우리의 도시와 건축의 구조를 크게 변화시켰다. 중세 페스트는 좁고 불결한 도로가 전염병의 확산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후 기하학적 도시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목조건물 중심이었던 미국 시카고는 1871년 대화재 이후 철과 콘크리트의 거대 건축물들로 대체되어 초고층 붐과 함께 세계 경제의 주축이 되었다. 1918년에 발생해 세계 인구 3분의 1을 감염시킨 스페인독감은 대도시의 열악한 공간 구조를 급격히 변모시킨 모더니즘 탄생의 계기가 됐다. 이처럼 재해와 도시 건축의 관계를 짚어보면 매번 도시와 건축은 더욱더 강력하고 거대한 것으로 진화했다. 이번에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은 이러한 도시와 건축의 일관된 흐름을 되풀이할 것인가. 즉 재앙 이후에 도시가 더 강하고 더 큰 것으로 진화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까지 이러한 크고 튼튼한 상자에 밀집한 우리의 생활 스타일 자체가 이번 전염병에 의해 거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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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거주하는 다리 다리는 끊어진 도시의 통행을 연결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교통의 기능에서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 인간이 거주하며 일하는 생활 터전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분명 도시 주거문제나 지역의 단절을 해소하며 걷기 편한 도시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례로는 1345년 만들어진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일 것이다. 두개의 교각과 세 개의 교량 판으로 구성된 다리는 가운데 마차 두 대가 지날 수 있는 도로가 있고 양옆으로 아기자기한 상가가 연속으로 이어져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신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이처럼 베키오 다리는 통행이라는 기본 목적을 수행하면서 도시와 도시를 보다 매력적으로 연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