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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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증오를 주장하는 이들과 종교를 공유할 것인가 9월 말 온라인으로 개최됐던 총회는 반나절 만에 폐회했다. 그래서 조용했던 모양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가 11월9일 속개되었고, 거기서 소란이 벌어졌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그 주역이다. 그 직접적 발단은 7월1일,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지지 성명을 발표한 것에서 시작된다. 당시 많은 언론들은 개신교 교단 중 처음으로 기장이 차별금지법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교단 산하 위원회의 성명이 교단의 공식적 입장인지 여부는 논란이 있을 법하다. 해서 몇몇 교회들이 교단을 탈퇴하겠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반대 성명을 발표한 목사와 장로들도 있었다. 또 교단 게시판에서는 반대 주장이 연일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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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매년 9월 말이면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이 총회를 연다. 거대 교단의 경우 총대(총회대의원)가 1500명이 넘고, 그 밖의 교단들도 1000명 안팎이나 된다. 총회는 하루 종일 혹은 이틀간 한 장소에서 벌어진다. 당연히 올해는 그런 총회가 열릴 수 없다. 아니 일부 교단은 강행하려 했다. 하지만 전광훈 사태 이후 악화된 여론 덕에 온라인총회로 열렸다. 시간도 반나절 만에 끝냈다. 각 교단 총회 자료집에 실린 교세통계를 종합하면 지난해 교인 총수는 전년에 비해 약 2.3% 줄었다. 지난 몇 년간의 교단 총회 자료집들을 분석하면 개신교 교세는 2011년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매년 평균 감소율이 1.8%쯤 되니 지난해 감소폭은 조금 큰 셈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의외로, 완만하게 감소했다. 이상은 각 교회가 소속 교단 총회에 제출한 교회보고서를 교단별로 종합한 것이다. 물론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는 각 교회의 목회자들이다. 즉 이 통계는 목회자들이 말하는 교인수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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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예배의 본질이 대면성에 있다고? 요한복음 공동체가 직면한 심각한 신앙의 문제는 ‘신의 부재’였다. 삶이 평탄했다면 신의 부재를 그토록 절절히 체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절박했다. 한데 아무리 부르짖어도 신은 메아리로도 돌아오지 않는다. 원래 예루살렘에서 유래한 종교의 특성은 신의 부재에서 시작한다. 두꺼운 벽이 사람들이 신에게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그 벽들을 지나 성전 깊은 곳, 신이 계신다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 대규모 제사가 진행될 때만. 하지만 사방이 꽉 막힌 그곳엔 공간을 밝혀줄 불빛 하나 없다. 아무리 눈을 휘둘러도 칠흑뿐이다. 해서 그곳에서도 신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고대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신의 흔적만 있을 뿐이라는 신학을 탄생시켰다. 곧 철저한 비대면성이 이들의 신학을 지배했다. 그런데 그 종교는 그 안에 들어갔다는 대제사장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세팅된 종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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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코로나 시대, 작은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가폭이 다시 위험스럽게 상승하고 있다. 이번엔 교회가 집단감염의 원인이다. 특히 수도권의 작은 교회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수천 혹은 수만명이 모이는 대형교회가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다. 한데 ‘작은 교회’라는 점이 갖는 의미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집단감염이 일어난 모 교회는 담임목사가 이 교회의 지표환자, 즉 처음 발견된 환자인데, 그가 어느 다단계업체에서 근무하는 중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목사의 이중직 금지’는 많은 개신교 교파들이 아직도 고수하는 목회자 규칙이다. 그런데 최근 여러 교단들에서 생계형 이중직 허용을 요청하는 안건이 각 교단 총회에 제출되었다. 그것은 목회자들의 빈곤 현상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장로교의 한 교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대도시 미자립교회 목회자의 5인 가족 연 생활비가 1740만원 정도다. 그해 정부가 발표한 4인 가족 최저생계비는 2004만원이다. 감리교단의 2018년 미자립교회 비율은 47%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 중 족히 40%가 미자립교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많은 목회자들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현실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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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교단정치는 교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이번엔 정의당이 발의했다. 한데 정부나 거대정당이 발의했던 과거보다 저항은 강렬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차별금지법 반대 전선의 최전방엔 개신교가 있었다. 이번에도 예외 없다. 한데 다른 종교나 시민사회의 동조가 시원찮다. 실은 개신교도 전에 비해 맹렬하지 않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파(예장통합) 총회장 발의로 성명서가 나왔고,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감독회장직무대행 명의의 입장문이 나왔으며,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주최한 기도회가 열렸다. 몇몇 목사들은 설교를 통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 찬성 인사들을 향한 조직적이거나 개별적인 문자나 전화 공격이 있다. 그 정도다. 이제까지 차별금지법 제정 논란에서 이번처럼 조용한 교회 모습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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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마음의 차별금지법’이라도 필요하다 장로교에 대해 더 많이 비판적이었지만, 오늘 나는 감리회에 대해 심사가 뒤틀렸다. 며칠 전 읽은 기사 때문이다. 감리교 경기연회에서 젊은 목사 한 사람을 재판에 회부했는데, 그 징계 정도가 대단히 엄중했다. 그에게 부가된 법조항에 의하면 그가 받을 징계는 정직·면직·출교 중 하나다. 출교는 교회법이 가할 수 있는 최고형이며, 면직은 목사직 박탈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직은 일정 기간 목사직의 중지를 뜻한다. 도대체 그가 받은 혐의는 무엇일까? 2019년 8월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 때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다. 그의 소명에 의하면 좌절하고 절망하거나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모습 그대로를 하느님이 기쁘게 맞이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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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용서한다’는 말 어제 하루 종일 뉴스매체들을 뒤덮은 말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와 “용서한 것 없다”였다. 용서라는 말의 쓰임새 하나는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해야 하는 말이다. 가령 전두환이 광주 5·18 희생자들에게, 그리고 n번방 운영자 조주빈이 성착취 피해자에게 해야 할 말이다. 두 번째 쓰임새로는 생살여탈권을 장악당한 약자가 강자에게 구걸하듯 애원할 때 쓰는 말이다. 물론 이 두 경우는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용례일까. 내게 가장 익숙한 표현인데, 신을 대리하는 성직자에게 신자가 종종 사용하는 말이다. 이때 신자는 흔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성직자는 신을 대리하는 자처럼 연기하고, 신자는 간절함을 과시하듯 무릎 꿇는 행위로 그 모든 죄를, 생각나지 않는 것들까지 모두 퉁쳐서 용서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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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가 자성해야 할 것 처참한 3년간의 전투가 양측 합의로 중단되었음이 선포된 직후, 남한 사회에는 매우 흥미로운 종교현상이 개신교 언저리에서 일어났다. 1954년 이후 수만명의 대중이 운집한 부흥집회를 이끈 나운몽과 박태선은, 개신교 주류로부터 ‘이단’ 시비에 휘말렸지만, 한국적 부흥사들의 원조가 되었다. 1970~1980년대 전무후무한 성장을 이룩한 순복음교회의 조용기는 나운몽의 부흥집회를 따라다니면서 부흥사의 꿈을 키웠던 인물이다. 또 2000년대 이후 급성장한 신천지의 이만희는 한때 박태선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신천지는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종파들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사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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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우리 사회와 신천지, 적대적 공생관계 ‘31번 확진자’의 등장은 코로나19 사태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이는 영남권에서 발견된 최초의 확진자였는데, 이후 한국 사회에서 코로나19는 만연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압도적 다수가 대구·경북 지역의 감염자들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그이로부터 시작해서 이후 계속 발견되는 확진자들은 신천지 대구교회 교인들이었다라는 점이다. 정부의 조치는 신속했고 적절했다. 감염병 대응의 최고 수위인 ‘심각’ 단계를 발령한 이후 한 달이 지난 3월22일 지역 감염은 효과적으로 잡혔고, 현재는 외국에서 입국한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확산되는 사례는 현저히 줄었고, 추적 가능한 확진자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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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잘못이 있더라도 그들도 시민이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긴 글을 쓰고 나서 국가폭력의 장소들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떠났다. 순서가 뒤바뀐 셈이지만 지난해부터 쉴 새 없이 이어졌던 숨 막히는 스케줄 사이에 생긴 ‘틈’이 그때였으니 나의 다크투어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집단체험 시간표에 따르면 그 틈은 떠나는 시간이기보다는 들어앉는 시간이어야 했다. 비행기 값이 대폭 하락했지만 공항은 한산했고 여행지 내내 사람도 상점도 식당도 쓸쓸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공항 풍경은 그간 느꼈던 것들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전설의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인 <더월>(The Wall)의 뮤직비디오 속에 나오는 ‘소시지가 되어 가는 학생들의 얼굴’이 그렇게 되듯 모종의 공포 속에서 얼굴이 지워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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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때로 질병보다 더 치명적인 ‘공포담론’ 초등학교 땐 영화 단체관람이 꽤 많았다. 단 하나가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제목도 주인공도 관람시기도 기억나지 않지만, 북한이 세균전을 위해 만든 배양시설을 남한 특공대 혹은 첩보원이 파괴하는 줄거리의 영화다. 왜 그것만이 기억되었을까? 첫 번째 단서는, 영화 속 세균을 ‘콜레라균’으로 특정해서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콜레라에 걸린 이를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전염병 중 제일 무서운 병으로 기억되었다. 한데 자료를 찾아보니, 콜레라가 1969년에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되었다고 한다. 요즘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그때 한국도 그랬다. 최종 발표에 의하면 1400명이 감염되었고 이 중 사망자가 125명이나 되었다. 그러니 그 영화가 콜레라를 소재로 한 것이든, 그냥 세균이든 내가 콜레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1969년의 콜레라에 대한 사회적 공포증의 여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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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그들의 이름을 망각해온 그리스도교를 반성하며 예수가 체포되고 심문과 재판을 거쳐 형장으로 가서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하루가 안 되었다. 하루 전만 해도 열렬한 추종자였던 그의 측근들은 그 하루 만에 마음이 무너졌다. 해서 대부분의 복음서들은 그 십자가 형장에 그의 제자 중 아무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 살벌한 하루 동안 어떤 이들은 누군가의 추격을 당하면서 숨기에 바빴겠고, 다른 이들은 신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한데 아무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곳엔 예수의 측근이었던 몇 명의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도 실상은 제자단의 일원이었지만 어느 복음서들도 그들을 제자라고 부르는 것을 꺼려했다. 해서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어느 복음서들도 제자는 없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