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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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베네치아와 날개 달린 사자 지난달에 피렌체 학술대회가 있어 이탈리아를 다녀왔고 이달에는 학생들과 ‘이탈리아 상인과 르네상스 문화’라는 교수인솔해외학습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르네상스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던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파도바 등지를 둘러볼 예정이다. 이탈리아 도시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베네치아는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베네치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가 20년 전쯤이었다. 박사 논문에 필요한 중세 베네치아 상인들이 남긴 기록을 보기 위해서였다. 짧은 기간에 많은 성과를 올려야 하는 부담감, 그리고 라틴어로 된 중세 문헌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베네치아를 본다는 설렘을 압도했다. 게다가 자리가 지정되지 않은 싼값의 야간 기차표를 끊어서 갔기에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베네치아까지 가야 했다. 그렇지만 아침 기차가 베네치아 섬으로 들어갈 때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베네치아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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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연옥, 중세 유럽의 최고 발명품 간혹 사후세계에 대해 상상해보곤 한다. 모든 사람이 한번쯤은 사후의 운명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프랑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영화의 원제목인 <완전히 새로운 성경(Le tout nouveau testament)>이 영화의 내용과 핵심을 더 잘 전달해주는 것 같다]는 죽음과 사후세계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유럽 브뤼셀의 한 아파트에 사는 신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걸핏하면 소리 지르고 인간을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한마디로 심술맞은 고약한 성격의 절대자이다. 아들인 예수는 이러한 아버지 신에 반기를 들고 가출해버렸고, 현명한 딸인 에아는 새로운 신약성서를 쓰기 위해 6명의 사도를 찾아 나선다. 영화 최고의 장면은 에아가 아버지의 컴퓨터에 몰래 들어가 지상의 인간들에게 남은 수명을 문자로 전송하는 것이다. 즉 에아가 아버지의 전지전능한 힘의 원천인 인간의 죽음의 비밀을 봉인 해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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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강진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부총리를 지낸 야권 최고지도자는 “강진 참사는 신이 동성애자에게 내린 벌”이라는 참담한 말을 내뱉었다. 주류 세력이 소수 집단과 주변 세력을 차별하고 더 나아가 탄압하는 일은 오랜 역사에 걸쳐 빈번히 일어났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을 보면 차별과 배제는 인간 본성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기본적으로 다수가 소수를 배척하고 탄압하는 태도들은 대개 무지, 편견, 불관용, 종교적 광신 등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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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진실 아닌 걸 진실로 만들면 폭력” 가짜 뉴스라는 유령이 인터넷, 모바일, 텔레비전을 배회한다. 매일 수많은 가짜 뉴스들이 만들어지고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다. 가장 염려스러운 문제는 근거도 없고, 허무맹랑하기 이를 데 없는 가짜 뉴스들을 사람들이 믿고 다시 퍼뜨린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는 허상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허상은 때론 실제보다 더 많은 힘과 파괴력을 갖는다. 때론 가짜 뉴스는 역사를 왜곡하고 선거의 결과를 바꾸며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가짜 뉴스는 확증편향이라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성을 잘 파고든다. 확증편향이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으로 사실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심리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실은 외면하거나 부인하며 거짓이지만 자신의 성향에 맞는 가짜는 쉽게 수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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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이자는 죄악이었다 2년 전 학생들을 인솔해 이탈리아 도시들을 답사한 적이 있다. 계절학기 프로그램으로 강좌 제목은 ‘르네상스와 근대의 탄생’이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도시는 아니었지만 북부 이탈리아에 있는 파도바에 잠깐 들렀는데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있는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 벽화는 르네상스 시작을 알리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벽화의 여러 장면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천사들의 우는 모습이었다.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위에서 천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격한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일명 ‘피에타’라고 불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은 인간의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의 거룩한 뜻을 상징하는 예정된 역사이기에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로서의 인간적인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격한 슬픔을 분출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의 분출이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요소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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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번역의 힘 최근 교육부가 2023년까지 세계적인 인문학 고전 1000권을 선정해 번역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러한 교육부의 결정은 환영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보면 번역은 지식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명은 800년부터 1300년까지 세계 제일의 과학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명성의 근간에는 활발한 번역 활동이 있었다. 7세기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성장한 이슬람 문명은 초기에 페르시아와 인도의 과학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832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였던 알아문은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아랍어로 바이트 알히크마, 즉 ‘지혜의 집’이라 불리는 도서관을 설립해 번역과 학문 연구를 진흥시켰다. 칼리프의 재정 지원을 받은 학자들은 인도와 페르시아 서적 이외에도 그리스의 과학·철학 서적들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고대 로마제국 시절의 위대한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집대성>이 9세기 초 <알마게스트(Almagest·위대한 책)>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반면 중세 유럽에서는 15세기에 가서야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들이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중세 이슬람 세계가 유럽 기독교 세계보다 지중해의 고전문명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앞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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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파라다이스가 사라졌다 중세 유럽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파라다이스, 즉 에덴동산(낙원)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뜬금없는 질문으로 영문도 모르는 학생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중세 유럽 세계와 당시 기독교인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낙원의 위치를 ‘알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시아 동쪽 끝에 낙원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믿게 된 근거는 창세기의 구절이었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이 동방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셨고, 그 에덴동산에서 강이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4개의 강으로 갈라져 인간 세상으로 흘러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과 나일강을 낙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4개의 강으로 간주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굳게 믿었던 중세 유럽 기독교인들은 낙원이 아시아 동쪽 끝에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리학자들은 낙원을 지도에 그려 넣었고, 교부와 신학자들도 낙원이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모두에게 낙원은 동쪽 끝에 실재하는 구체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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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다른 생각을 가질 권리 움베르토 에코의 역사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초 한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다. 살인사건의 배경이 된 것은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다. 호르헤라는 수도원의 원로 수도사는 젊은 수도사들이 <시학>을 읽지 못하도록 책에 독을 발라놓았고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젊은 수도사들이 지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다 독에 중독되어 죽어갔다. 왜 책을 읽지 못하게 했을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겠지만 호르헤는 수도사는 웃어서는 안되고, 웃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웃음은 악마라면서 웃음을 죄악으로 간주했다. 그에게 웃음이 죄악인 이유는 인간이 웃음을 알게 되면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두려움을 잃게 되면 더 이상 신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문학적 상상물이지만 늙은 수도사의 모습은 종교적 편견과 아집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