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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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비상계단이 막혀 있었다면 며칠 전 울산의 33층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다행이었다. 누구도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지 않았다. 신속하게 대응한 소방관과 침착하게 대피한 주민들 덕분이었다. 피해복구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람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런데 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다음과 같은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그 건물의 비상계단은 막혀 있지 않았던가?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는 비상계단이 막혀 있다. 10층과 11층의 계단을 막아선 콘크리트 벽은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놓은 것이다. 울산의 그 건물도 이렇게 비상계단 어딘가가 막혀 있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에 구조되었다는 일가족 3명은 33층부터 1층까지 소방관이 업고 내려와 무사했다. 비상계단 어느 한 층이 막혀 있었다면 그들은 지금처럼 건강히 구조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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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세입자의 정당한 권리 세입자도 임대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다. 임대인이 집값을 올려달라고 요구한다면 임차인은 협의를 거처 거절할 수 있고, 재계약 시 나가 달라는 요구를 하더라도 세입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퇴거를 거절하고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다. 임대인의 제안을 임차인이 상황에 따라 거절하는 것은 막무가내 이기심의 발로도 아니고 합리적이지 못한 규칙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주택임차인의 거주권은 주택을 빌린 사람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며, 주택의 점유 형태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든 우리 사회의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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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청년기본법’이 의미하는 것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간절한 삶의 문제를 말해보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어주기,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으니 우선순위를 정해보기,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들과 앞선 과정을 반복하기. 이 단순하고 작은 일들이 반복되어 법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너무 큰 비약일까. 지난 8월5일 ‘청년기본법’이 시행되었다. 청년을 ‘취업을 원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을 넘어 청년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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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불안을 다루는 방법 2012년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2000년대 중반 집값이 폭등할 때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유년 시절을 보낸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집값이 오르면서 친구를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아요. 주택에 실거주하면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서 우리 집도 시세차익을 위해 이사를 해야 했고 제가 이사 가지 않아도 제 친구들이 비슷한 이유로 떠나야 했죠.”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안을 토대로 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은 대출 한도, 부동산 세율, 임대차 계약 기간 등 주거와 부동산 관련 기사 하나에 댓글이 수백개씩 달린다. 집과 관련한 불안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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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멀어지는 내집 꿈 오래전의 일이다. 좁지만 그렇게 좁지는 않은 집.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코앞은 아니어도 걸어 다닐 만한 곳에 있는 집. 주거계획을 세울 수 있는 집. 그래서 여긴 내 동네다 싶은 집. 그런 집에 사는 꿈을 잊어버린 것은…. 지난 17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부동산대책에 대해 언론의 비판이 거세다. 기사는 “부동산대책이 3040 무주택자들의 꿈을 박살 냈다”며 집값 상승으로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사람들이 무주택자에겐 대출을 풀어달라고 한 말을 인용했다. ‘박살 났다’는 표현을 오랜만에 활자로 보았다. 집을 사려고 기다렸던 누군가의 꿈이 사라졌다는 의도겠다. 대출한도가 10~20%가 줄었으니 당혹스럽기도 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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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고정불변한 것에 대하여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얼마나 큰지 함부로 가늠하긴 어렵다. 하지만 하루하루 근로계약서를 쓰는 노동자나 매출이 나날이 줄어드는 자영업자에게 그 위기는 구체적이다. 위기의 끝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들의 삶은 통째로 흔들린다. 가계부의 모든 수입 항목은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변함없이 예측할 수 있는 항목도 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월세 임대료나 상가 임대료다. 미국 UC버클리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한 미국인들을 4개 계급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 계급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위기 이전과 거의 동일한 임금을 받는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이고, 두 번째는 일자리를 잃지는 않지만 간호사나 배달 노동자와 같이 코로나19 감염의 위험 부담이 따르는 ‘필수적 일을 해내는 노동자’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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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선거법에 얽매인 정책선거 “왜 국회의원 후보들은 인사만 하고 명함만 주는 거야?” 이번 선거에서 한 친구가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후보들의 정책이나 비전을 알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 친구는 왜 나에게 질문했을까? 그 이유는 지난 총선에 내가 어느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부터 시작하여 4월15일 투표일까지 선거 과정을 치렀다. 선거 과정에서 몇몇 뉴스와 우편으로 배송되는 한두 장의 공보물을 제외하고 후보자는 자신을 드러낼 방법이 많지 않았다. 유권자 역시 공직 후보자에게 질문하거나 답변을 받는 등 생생한(?) 정보를 얻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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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선행’을 넘어 ‘선한 제도’로 요즘은 코로나19로 일상이 시작된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공기 같은 두려움을 마주한다. 나와 똑같이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걷는다. 나도 모르게 나온 기침에 내가 놀라 주변을 돌아본다. 사람들이 놀라진 않았을까.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내게 열은 없는지, 어제 방문한 곳이 위험하진 않았는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주변을 경계하게 한다. 위기가 지나가기까지 마음 편하게 일상을 멈춰뒀다가, 위험이 싹 사라진 다음에 일상을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하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멈추어지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집을 나선다. 보통의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스스로 감염을 조심하고 주변을 돌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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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빌려 쓰는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 며칠 전 서울 목동에 대규모 재건축이 가능해졌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목동 집값 훈풍”이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는 그 소식을 환영하는 지역주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재건축 규모는 84㎡의 주택 51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되는 수준이다. 그 지역은 7년 전 교통 혼잡과 학급 과밀을 발생시킨다는 주민들의 반대로 ‘행복주택’이 무산되었던 바로 그곳이다. 소유한 사람과 빌려 쓰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일까? 법 앞에선 누구나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러한가? 2013년 행복주택 공청회장에서 자신을 목동 주민이라 밝힌 한 사람은 “청년들이 (행복주택에) 입주해서 내 자식을 때리면 네가 책임질 거냐”라고 소리쳤다. 목동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행복주택의 취지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목동은 이미 교통과 교육이 과밀화돼 있으니 다른 곳에 지으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