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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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보수도 살 기회 ‘반윤석열대행 연대’ 국민의힘이 배수진을 쳤다. 살아남기 위한 배수진이 아니라 죽음을 초래하는 배수진이다. 현대 정당으로서 수구가 아닌 보수로 거듭나기를 기대했다. 한동훈 후보가 국민의힘을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극우적 행보를 지속해왔으며 사죄해야 할 자리에서 꼿꼿했던 김문수 후보가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김문수 후보는 “이재명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세력과도 강력한 연대를 구축”한다고 했다. 그가 대선에 출마하는 가장 큰 명분은 ‘반이재명’이다. 특정한 인물을 반대하기 위한 정치를 내세우는 것은 스스로 대의명분이 없다는 것의 방증이다. 당선 후 수립할 정권의 명칭을 ‘반이재명 정권’이라 부르는 것처럼 희화적이다. 게다가 그 특정인은 파렴치범도 아니며 국헌 문란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니다. 내란죄를 범한 세력과 그 수괴를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범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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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지식의 권위 상실과 극단주의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간단하다.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것. 122일을 기다려온 판결이다. 국민의힘도 승복을 선언했다. 판결문은 분명히 지적했다. “신속하게 비상계엄이 해제된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계엄군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독재의 인습을 버리지 못한 미발육 정치를 성숙한 민주 시민들이 막아냈고, 헌재는 이를 제대로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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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 대통령 석방과 민주당 ‘중도 보수론’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 취소로 석방되었다. 내란죄와 관련된 형사재판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탄핵심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거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기 대선을 앞둔 국민의힘의 전략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강성 보수화든 극우화든 국민의힘에는 계륵이다. 대선 승패는 대개 중도층에 달렸기 때문이다. 정당 스펙트럼을 극좌에서 극우로 정렬하면, 대선 정국의 스펙트럼은 급진 좌파에서 극우(극단 우파)까지 나타난다. 현재 한국에서 극좌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녹색당 등은 급진 좌파에 속한다. 민주당은 중도에 자리하며 중도 보수까지 진출하려 한다. 국민의힘이 극우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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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극단주의 시대 극단주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독일의 대안당과 프랑스의 국민전선이 급부상했으며,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재집권했고, 이탈리아에서도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이 집권했다. 최근 극단주의의 특징은 주로 우파와 결합한다는 것이다. 극단주의는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이념과도 결합할 수 있는 ‘이즘(ism)’의 하나이며, 이때 ‘이즘’은 이데올로기나 태도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이념 스펙트럼이 좌-우 혹은 진보-보수로 나뉘어 대립했다. 반권위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도 신좌파나 신우파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차원 구도에 극단-온건이라는 새로운 축이 추가되어 현대 정치를 특징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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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통령발 내전과 내란 용산의 화법이 ‘내란’에서 ‘내전’으로 바뀌었다. 윤석열 변호인단이 ‘대통령 체포를 강행하면 내전으로 갈 수 있다’고 국민을 위협한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대통령과 변호인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라고 직접 확인해 줬다. ‘전쟁’이란 단어를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지 귀를 의심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대선을 앞두고 개봉돼 화제가 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 현실화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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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내란을 획책하는 괴물 숨막히는 나흘이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를 보고 막혔던 숨이 국회와 시민의 발빠른 대응으로 계엄 해제가 가결된 후에야 터져 나왔다. 하지만 7일 밤 국민의힘이 탄핵소추안 표결을 보이콧하면서 다시 막혔다. 추위에 떨면서 표결을 지켜봤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할 때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10명이 남았다고 할 때 고개를 들었지만, 안철수 의원만 남았다고 할 때 오한이 스며들었다. 44년 전 광주로 플래시백되면서 밤하늘이 하얘졌다. 다음 토요일에 탄핵을 재추진한다는 뉴스를 보고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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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차선은 보수진영의 현명한 결단 ‘잘못한 건 없지만, 미안하다. 사과했으니 넘어가자. 앞으로 더 잘할게.’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의 요지다. 모든 잘못은 휴대폰이 뒤집어썼다. 휴대폰을 교체하겠다는 게 주요 후속조치의 하나다. 윤 대통령 스스로 수사를 지휘했던 공천개입 건이 문제되는 시점에서 증거인멸이 될 수도 있다.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 후에도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외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보수진영에서도 불만과 비판이 쏟아졌다. ‘진솔하고 진심어린 사과’라 자평하던 대통령실도 이런 반응을 감지해 일련의 후속조치를 내놨다. 그러나 후속조치조차 민망하다. 김건희 여사의 해외순방 동행도 임시 중단일 뿐이며, 특검은 또다시 거부하고 제2부속실 설치로 무마하려 한다. 인적쇄신도 ‘적절한 시기’에 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앞으로 더 잘할게’ 내용이다. 사과를 받고 더 기분이 나빠졌다는 국민이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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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노벨 문학상 수상과 ‘K정치’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후 기자회견에서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저도 변형되었고, 그 소설을 쓰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새로운’ 작가 한강이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 국제상 수상, 김혜순 시인의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등 한국 작가들이 이미 굵직한 국제 문학상을 수상해 한국 문학은 K문학으로 불리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이 세계화된 K문학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킨 티핑 포인트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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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대통령 지난 6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불기소 권고를 결정했다. 청탁금지법 위반, 특정범죄가중법상 알선수재, 변호사법 위반, 뇌물수수, 직권남용, 증거인멸 등 6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검찰총장이 최종 처분을 내리면 사건은 마무리된다. 최재영 목사가 가방을 전달한 지 2년 만이며, 김 여사가 고발된 지 9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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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통령의 시간 국민권익위원회를 검색창에 치면 ‘「반부패 총괄기관」 국민권익위원회’라고 뜬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책 정보를 클릭해도 반부패·청렴 정책이 최우선 정책으로 소개된다. 이처럼 반부패와 청렴이 국민의 권익과 직결되는 정치적 덕목이라는 것을 권익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권익위가 이상하다. 지난 8일 청탁금지법 담당부서의 책임자인 김모 국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권익위에서 부패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부패방지국의 국장 직무 대리를 수행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의혹 사건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응급헬기 이용사건 등의 조사를 지휘했다. 업무 과중과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심상치 않은 원인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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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극단주의의 유령 7월 초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에서 각각 노동당과 좌파 연합이 승리함으로써 유럽 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영국에선 노동당이 63.4%의 의석을 차지해 집권했고, 프랑스에선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이 32.6%의 의석을 차지해 제1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득표율과 정당 구도를 보면 승리자는 따로 있다. 영국에서 극우 정당인 영국개혁당이 처음 의회에 진출하면서 14.3%의 득표율을 얻어 자유민주당을 제치고 득표율상 제3당으로 약진했다. 노동당 압승에 가려진 암울한 그림자로 평가된다. 프랑스에서도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이 의석률로는 제3당에 머물렀지만 득표율에서는 29.3%를 얻어 제1당이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양대 진영과 달리 국민연합이 단독으로 참가해 얻은 득표율이다. 프랑스의 극단주의는 암울한 그림자 정도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위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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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ILO 의장국의 ‘드림 시나리오’ 세상에 우연은 많다. B급 영화에 다수 출연하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니컬러스 케이지가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한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우연이 어떻게 필연으로 변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 폴은 한 대학의 종신 교수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연구 업적도 교육 역량도 보여주지 못하는 이른바 ‘찌질한’ 교수다. 그런 그가 불특정 다수의 꿈에 나타나 셀럽이 되고 이를 향유하기 바쁘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유명세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현실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 방관자였던 그가 살인과 강간을 일삼는 범죄자로 돌변하면서 현실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범죄자 돌변까지 우연으로 볼 수는 없다. 사람들을 돕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로 변한 것은 셀럽이 된 이후 그가 취한 행동의 필연적 결과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