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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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통령발 내전과 내란 용산의 화법이 ‘내란’에서 ‘내전’으로 바뀌었다. 윤석열 변호인단이 ‘대통령 체포를 강행하면 내전으로 갈 수 있다’고 국민을 위협한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대통령과 변호인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라고 직접 확인해 줬다. ‘전쟁’이란 단어를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지 귀를 의심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대선을 앞두고 개봉돼 화제가 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 현실화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이 영화는 <엑스 마키나>와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을 통해 공포와 환상을 절묘히 결합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또 다른 명작이다. 무엇보다 섬뜩한 건 실전의 공포로 묘사된 대통령발 내전이 한국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 개봉일자가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된 12월31일이란 것도 심상찮은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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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내란을 획책하는 괴물 숨막히는 나흘이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를 보고 막혔던 숨이 국회와 시민의 발빠른 대응으로 계엄 해제가 가결된 후에야 터져 나왔다. 하지만 7일 밤 국민의힘이 탄핵소추안 표결을 보이콧하면서 다시 막혔다. 추위에 떨면서 표결을 지켜봤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할 때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10명이 남았다고 할 때 고개를 들었지만, 안철수 의원만 남았다고 할 때 오한이 스며들었다. 44년 전 광주로 플래시백되면서 밤하늘이 하얘졌다. 다음 토요일에 탄핵을 재추진한다는 뉴스를 보고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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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차선은 보수진영의 현명한 결단 ‘잘못한 건 없지만, 미안하다. 사과했으니 넘어가자. 앞으로 더 잘할게.’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의 요지다. 모든 잘못은 휴대폰이 뒤집어썼다. 휴대폰을 교체하겠다는 게 주요 후속조치의 하나다. 윤 대통령 스스로 수사를 지휘했던 공천개입 건이 문제되는 시점에서 증거인멸이 될 수도 있다.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 후에도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외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보수진영에서도 불만과 비판이 쏟아졌다. ‘진솔하고 진심어린 사과’라 자평하던 대통령실도 이런 반응을 감지해 일련의 후속조치를 내놨다. 그러나 후속조치조차 민망하다. 김건희 여사의 해외순방 동행도 임시 중단일 뿐이며, 특검은 또다시 거부하고 제2부속실 설치로 무마하려 한다. 인적쇄신도 ‘적절한 시기’에 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앞으로 더 잘할게’ 내용이다. 사과를 받고 더 기분이 나빠졌다는 국민이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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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노벨 문학상 수상과 ‘K정치’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후 기자회견에서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저도 변형되었고, 그 소설을 쓰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새로운’ 작가 한강이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 국제상 수상, 김혜순 시인의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등 한국 작가들이 이미 굵직한 국제 문학상을 수상해 한국 문학은 K문학으로 불리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이 세계화된 K문학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킨 티핑 포인트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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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대통령 지난 6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불기소 권고를 결정했다. 청탁금지법 위반, 특정범죄가중법상 알선수재, 변호사법 위반, 뇌물수수, 직권남용, 증거인멸 등 6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검찰총장이 최종 처분을 내리면 사건은 마무리된다. 최재영 목사가 가방을 전달한 지 2년 만이며, 김 여사가 고발된 지 9개월 만이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혹시나’와 ‘역시나’의 우연은 필연이 되었고, 윤석열 정부의 정당성은 또 한번 훼손되었다. 수심위는 150∼300명의 외부 전문가 위원 중 무작위로 선발된 15명으로 구성된다. ‘혹시나’하는 기대를 가능케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혐의는 수사가 더 필요하다는 소수 의견이 있었지만, 결론은 위원 15인 전원의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검찰 수사팀의 결정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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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통령의 시간 국민권익위원회를 검색창에 치면 ‘「반부패 총괄기관」 국민권익위원회’라고 뜬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책 정보를 클릭해도 반부패·청렴 정책이 최우선 정책으로 소개된다. 이처럼 반부패와 청렴이 국민의 권익과 직결되는 정치적 덕목이라는 것을 권익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권익위가 이상하다. 지난 8일 청탁금지법 담당부서의 책임자인 김모 국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권익위에서 부패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부패방지국의 국장 직무 대리를 수행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의혹 사건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응급헬기 이용사건 등의 조사를 지휘했다. 업무 과중과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심상치 않은 원인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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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극단주의의 유령 7월 초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에서 각각 노동당과 좌파 연합이 승리함으로써 유럽 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영국에선 노동당이 63.4%의 의석을 차지해 집권했고, 프랑스에선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이 32.6%의 의석을 차지해 제1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득표율과 정당 구도를 보면 승리자는 따로 있다. 영국에서 극우 정당인 영국개혁당이 처음 의회에 진출하면서 14.3%의 득표율을 얻어 자유민주당을 제치고 득표율상 제3당으로 약진했다. 노동당 압승에 가려진 암울한 그림자로 평가된다. 프랑스에서도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이 의석률로는 제3당에 머물렀지만 득표율에서는 29.3%를 얻어 제1당이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양대 진영과 달리 국민연합이 단독으로 참가해 얻은 득표율이다. 프랑스의 극단주의는 암울한 그림자 정도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위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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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ILO 의장국의 ‘드림 시나리오’ 세상에 우연은 많다. B급 영화에 다수 출연하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니컬러스 케이지가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한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우연이 어떻게 필연으로 변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 폴은 한 대학의 종신 교수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연구 업적도 교육 역량도 보여주지 못하는 이른바 ‘찌질한’ 교수다. 그런 그가 불특정 다수의 꿈에 나타나 셀럽이 되고 이를 향유하기 바쁘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유명세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현실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 방관자였던 그가 살인과 강간을 일삼는 범죄자로 돌변하면서 현실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범죄자 돌변까지 우연으로 볼 수는 없다. 사람들을 돕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로 변한 것은 셀럽이 된 이후 그가 취한 행동의 필연적 결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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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 정부 또 하나의 시험대 ‘최저임금’ 2023년 최저임금인 시급 9620원을 받지 못한 근로자가 3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미만율은 국제 기준으로도 높다. 산정 방식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가장 최근에 산출한 최저임금 이하 근로자 비율은 2021년 우리나라가 19.8%로 멕시코(25.0%)에 이어 2위였다. 조사 대상 OECD 25개국 평균 7.4%의 2.7배 수준이었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 통계를 산출하고 배포한 단체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다. 게다가 발표 날짜는 최저임금위원회가 2025년 최저임금 심의 전원회의를 열기 며칠 전인 이달 16일이었다. 현행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이렇게나 많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더 올릴 수는 없다는 논리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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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남은 20여일, 길다면 길다 21대 국회가 임기 종료를 20여일 앞두고 있다. 다행히 이달 초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채 상병 특검법, 전세사기 특별법이 처리되었다. 그중 전세사기 특별법은 민생과 직결되는 것으로 진작에 통과되었어야 할 법안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채 상병 특검법도 국민 안전과 관련된 법안임에도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쉽게 통과되지 못했다. 대통령 거부권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그나마 중요한 성과로 기록될 만하다. 하지만 육아, 돌봄과 관련된 남녀고용평등법 등 모성보호 3법과 위기임산부 지원 법안 등 통과되지 못한 민생 법안은 1만6000여개에 달한다. 이 법안들은 이달 29일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물론 21대 국회에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 법안 발의 건수가 많았다. 20대 국회에서 이미 2만건을 넘은 법안 발의는 21대 국회에서 2만5170건이나 되었다. 사회가 복잡하고 발전해 갈수록 법안 발의는 많아지게 마련이다. 법안 수가 많다는 것이 지연의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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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2030세대가 매긴 학점 D 사전투표 참가율이 31.3%에 달한다. 지난 대선에 버금가는 비율로 역대 어느 선거보다 높은 투표율이다. 이 중 2030으로 대표되는 30대 이하 투표율은 얼마나 될까.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2030세대의 표심에 쏠리고 있다. 4050세대는 범야권, 60대 이상은 여권으로 표심이 양분돼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30대 이하 유권자는 1267만여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28.6%에 달한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4일 발표한 ‘제2차 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비율이 이 세대에서 가장 낮다. 40대 이상은 80%를 초과한 반면, 18세 이상 20대가 50.3%, 30대는 68.8%였다. 다른 대부분의 여론조사도 부동층의 비율이 2030세대에서 2~3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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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공정한 공천? 이기는 사천? 양대 정당은 저마다 시스템 공천을 강조하고 있다. 시스템 공천이란 ‘공정한 공천’을 에둘러 말한 것에 불과하다. ‘공정한 공천’이라는 말도 동어반복이다. ‘공천(公薦)’에는 이미 사사로움의 반대말인 공정함과 공평함을 의미하는 ‘공’이란 글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공천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① 여러 사람이 합의하여 추천함 ② 공정하고 정당하게 추천함 ③ 공인된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할 당원을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세 가지 의미가 함께 엮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우리는 두 번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사로운 추천을 ‘사천(私薦)’이라고 비판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