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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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장애인, 경비원, 외국인, 노인 대학교 1학년 첫 겨울방학, 상경 후에 낯선 타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장애가 있어 어디서도 나를 안 쓸 줄 알면서도, 하염없이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며칠간 알바 사이트에 ‘장애인’이라 검색하다 작은 카페의 구직 공고를 발견했다. 출근길 직장인을 대상으로 자리에 앉아 커피를 파는 일이었다. 똑똑똑. 가게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사장님께 준비한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인쇄물을 훑어보던 그는 “주문 들어오면 먼저 계산하고 앉아서 커피를 내려 건네주면 돼” 하고 처음 말했다. 그의 긍정적 신호에 기분이 벅차올라 “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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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저에게 인권은 시집살이예요 휭휭 칼바람 소리가 교실 내 유리창까지 매섭게 들리는 겨울날. 나는 어느 교실에서 지친 몸을 책상에 겨우 기대어 학업의 열의를 붙들고 있는 중장년의 학생들과 인권을 공부하고 있다. 선생으로서 나는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만 했다. 추상적 질문 앞에 돌아온 것은 두 눈 끔벅이는 무언의 당혹감뿐이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교수자로서 나는 누군가 대답할 때까지 한동안 침묵의 무게를 견뎌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책 몇 페이지를 펼치시라 하고는 한 시간 가까이 자연법과 실정법이 어쩌고저쩌고하고 말았다. ‘교수’다운 침묵 해결 방식 앞에서 학생들은 더더욱 입을 꾹 다물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뭐라 뭐라. 가수 나훈아가 무대 위에서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따 ‘아! 테스형!’하고 깊이 탄식할 때는 공감과 박수가 돌아왔지만, 내가 강당 위에서 비슷한 시대의 지식인을 똑같이 불렀을 때 돌아온 건 오직 절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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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입틀막 시대 ‘대단히 이상한 일’ 대학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할 때 늘 문화예술의 번영을 꿈꿨다. 반면 국가는 이를 원치 않았다. 당시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비판적인 문화예술 작품과 예술가를 검열했다.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은 대표적인 감시 대상이었다. 일찍이 영국의 문화예술정책은 우리와 반대였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제시한 ‘팔길이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국가는 예술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목표를 중요시했다. 팔길이 원칙에 힘입은 예술가들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경제’ ‘문화융성’ 같은 구호만 휘날릴 뿐, 통제와 개입에 몰두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당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수감되는 것을 끝으로 지난한 예술 검열이 종식되고 표현의 자유가 돌아온 줄 알았다. 요즘 때 이른 착각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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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완벽한 미래보다 불완전한 현재서 얼마 전, 한 기자를 만났다. 장애인으로써 불편한 점을 묻는 질문 앞에 나는 늘 했던 대답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죠.” “네.” “불편하죠.” “미래에는…”과 같은 대답들. 장애인 인터뷰이인 나는 늘 사회적 미래를 위해 고백 또는 증언해야 했다. 삶의 어려움과 위태로움을 털어놓건, 사회적 모순을 폭로하건, 시스템과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건 나의 극적인 토로들은 늘 미래를 위해 존재했다. 내 증언은 종종 현상을 유지하는 알리바이처럼 쓰였다. 마치 법이나 예산을 조율할 수 있는 일부 특권층만 장애인의 소외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 차별을 해소해야 하는 역할이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것 아닐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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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그럴수록 앞을 보세요 새해를 맞아 운동을 새로 시작한 독자들을 응원하며 나의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릴 적 의료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이후로 서른 살 가까이 되도록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운동 시설조차 찾을 수가 없어, 모니터 앞에 앉아 유튜브에 ‘장애인 체조’라고 검색하고는 5분 동안 손목을 이렇게 저렇게 돌리며 만족하는 것이 내가 아는 운동의 전부였다. 어느 날 운이 좋게도 뒤틀린 몸의 회원 등록을 받아주는 헬스장을 찾게 되었고, 더 운이 좋게도 나를 대상으로 개인 수업(PT)을 도맡겠다는 운동 선생님까지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천장 누수로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당시 첫 체육관의 첫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은 운동에 입문하는 나를 향해 한 가지 지도를 끝없이 반복했다. “그럴수록 앞을 보세요”라는 간결한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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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망설이는 사랑 안희제 작가는 망설임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찾았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할수록 거칠게 행동하지 않고 쉬이 움직이지 않는 채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 단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망설이는 모습. 그가 말하는 사랑의 숭고함과 어려움은 모두 망설임에 있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요즘, 크리스마스 노래가 일찍이 울려 퍼지는 카페에 앉아 허브차를 두 손 가득 꼭 껴안고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나를 향해 기꺼이 망설여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망설이는 인연들은 상대가 어려움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기꺼이 함께 속을 태우는 표정을 나누곤 했다. ‘이렇게 저렇게 처신하라’는 즉각적인 처방 대신 힘겨운 대화를 끝까지 청하고야 마는 사람들. 망설이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감내하는 대화 속에서 불쑥 치솟는 짜증과 답답함을 인내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망설이는 사람들은 용감한 마음으로 단호한 말들을 절제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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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달 전인가. 혜화 어느 빌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날, 엘리베이터를 함께 기다리는 낯선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스타리아를 타고 왔냐고. 네?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이상했지만, 난데없이 스타리아 차종이 내 차인지를 묻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기에 우선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대답을 듣고는 아 하더니 이어서 스타리아가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이자 문석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장애인권 활동가였다. 그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익을 옹호하는 피플퍼스트센터라는 단체의 소속이었다. 오랜 시간 발달장애인의 권익 운동은 대부분 장애인 가족을 통해 대신 이루어졌지만, 피플퍼스트운동은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 스스로 모여 권리를 옹호하는 참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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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배려와 배제 사이 비 오는 날, 남대문이 있는 회현역에서 서울시청역까지 걸었다. 빗물에 쓸려 넘어질까 위태로운 내 처지를 닮은 목발의 고삐를 쥐는 것만으로 양손이 꽉 찼다. 어느 신호등 앞에 선 순간, 목발과 나의 처절한 관계를 비집고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까지 가세요? 우산 씌워드릴까요?” 민폐일까 죄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고, 상대는 용기 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신호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그 횡단보도 앞에 녹색불이 켜지는 순간까지 함께 머물렀고, 이내 그는 나와 방향이 맞지 않아 각자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흩어졌다. 헤어진 뒤로 잠깐 비를 더 맞기는 했지만, 우산 그늘 아래서 만끽한 휴식시간 덕분에 목발도 나도 다시는 위태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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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학교를 끝까지 함께 다니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 어느날부터 ‘바나나 우유’를 학교에서 볼 수 없게 됐다. 그저 뚱뚱하고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발달장애인 초등학생인 그의 이름은 바나나 우유로 정해졌다. 당시 선생님들조차 나머지 학생들이 발달장애인인 그를 바나나 우유라고 놀리는데 혼내지 않았다. 그는 이름이 있었지만 없는 존재와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밤에 잠이 들었다가 영원히 잠들었다는 사연을 끝으로 그의 책상이 비워졌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죽음의 이유를 되묻는 약간의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이름 없던 그는 한순간에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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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신경은 위에서 아래로 중증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돕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되려면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장애인의 활동 지원을 배운다는 것은 단지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목발을 짚는 사람을 부축하는 것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느 수강생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똥오줌 가리는 행위’의 두려움까지 이해해야만 활동지원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수강생들이 늘 그 문제를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어려워하기에 가르치는 내가 늘 먼저 운을 떼야만 한다. 이렇게. “지금부터 예민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가장 걱정하실 업무에 관한 주제이기도 한데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제 말을 기억해주시겠어요. ‘신경은 위에서 아래로.’ 우리 몸에는 다양한 신경이 있습니다. 신경 하나만 두고도 운동신경, 감각신경, 자율신경 이렇게 자세히 나눌 수 있는데요. 운동신경에 손상을 입게 되면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장애인이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는 이유가 바로 운동신경 손상에 의한 것이죠. 반면 감각신경에 손상을 입게 되면 아픔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오래 앉아 계시면 엉덩이가 배긴다는 느낌 가져보신 적 있으시죠. 해당 감각신경이 손상된 장애인들은 그 ‘배긴다’는 느낌을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짓눌리고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혈액 순환이 차단되고 욕창이 생기거나 피부가 괴사하게 됩니다. 자, 자율신경은 어떤가요. 자율신경은 배뇨와 배변 등에 개입하죠. 자율신경에 손상이 있으면 배뇨와 배변에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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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환대한다는 것 유럽에서 열리는 학술대회 참석이 결정된 날, 온 가족이 시름에 잠겼다. 학술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기쁨보다 중증장애인 홀로 유럽행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 걱정이 더 컸기 때문이다. 작고 휘어진 몸, 뒤뚱거리며 겨우 목발을 짚고 서 있는 장애인이 낯선 타국에서 끼니를 때우고, 화장실에 가고, 한참을 걷고, 잠자리에 들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별일 없으리라 호언장담하고 말았지만, 당사자인 나조차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타국의 공항에 내려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이해 못할 말이 가득 찬 버스 안에서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곤 가방을 꼭 쥐는 것뿐이었다. 나는 작은 체구의 동양인이자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만만한 시비 상대이자 범죄의 표적으로 비추어질까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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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어린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집 근처 골목 안 삼거리 교차점을 지키던 편의점 한 곳이 자리를 떠났다. 아랫목과 윗목, 옆길에서 저마다 새어나온 주민들이 종종 편의점 덱에 놓인 탁자를 사랑방처럼 쓰던 공간이었다. 청년들은 카페에서 만났지만, 어르신들은 그곳에서 모이길 좋아했다. 골목 삼거리는 인파가 시끌대는 지역까지는 못했지만, 개중에서는 가장 목 좋은 자리였다. 건조한 네 글자 문구 ‘임대문의’는 삼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한마디씩 거들게 했다. 편의점에 이어 이곳에 무엇이 들어올까. 다른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들어올 수도, 일본식 선술집이 들어올지도, 카페가 들어올지도 모를 텅 빈 점포를 두고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꽉 찬 가게를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