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재원
작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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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시끌벅적한 도서관 덴마크 여행길 3일 차. 덴마크 제2 도시 오르후스에 도착 후 먼저 향한 곳은 시립도서관이었다. 오르후스 도서관은 미국 타임지가 2016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1위로 선정한 바 있다. 독창적인 도서관 디자인과 바다 전망과 자연광이 투명하게 들어오는 건물 설계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지평을 넓히는 혁신성이 주된 선정 이유였다. 오르후스 도서관 천장에는 서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종이 설치되어 있다. 이 커다란 종은 세계에서 가장 큰 튜브 벨이다. 이 종은 특이하게도 오르후스 대학병원 분만실에서 울릴 수 있다. 대학병원 분만실에서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에 부모들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버튼을 누르면, 도서관에 전달되어 온 사방에 투명한 종소리가 울린다. 도서관에서 차분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청명한 종소리를 들을 때면 도시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났음을 깨닫고 새 생명을 축복한다고 한다. 도서관 방문객 누구나 학업 집중을 방해하는 종소리에 여지없이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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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동짓날 동지가 되어 크리스마스 연휴 중 여행지에 도착해 휴대폰을 켠 순간 시작 전에 여행이 끝나버렸다. 여행지에 송출된 유튜브 추천 영상엔 맥없이 멈춘 트랙터의 모습이 비쳤다. 숙소 입실 시간을 가리키는 늦은 오후 무렵, 8시간의 시차를 둔 한국은 한창 칠흑 같은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 1년 중 가장 긴 어두움과 냉혹한 추위를 가득 품은 동짓날이었다. 동영상은 윤석열 정부의 농정 실패에 항의하는 전봉준 투쟁단이 내란범 윤석열 체포와 구속에 앞장서겠다며 나섰던 상경 투쟁이 사흘 새 서울 진입을 앞에 두고 남태령의 경찰병력에 가로막힌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캄캄한 밤, 뼛속까지 아리게 하는 강추위가 깜깜한 어두움으로 대신 전달되고 있었다. 가혹한 한파가 대치 상황을 종료시키겠거니 하는 마음에 시청을 시작했으나, 대치가 밤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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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내란 진행 중인 국가 12월3일 유럽 시각 오후 6시경. 벨기에 대학 강의실에서 나오는 길. 기숙사에 사는 유럽인 룸메이트 친구로부터 급박한 메시지를 받았다. “재원아. 괜찮아? 너희 가족은? 너희 친구는?” 메시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뭘 묻는지 되물었다. 친구는 나에게 한국의 쿠데타 소식을 알렸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마치 북한 정권이 붕괴하나 생각하며, 북한에 소란이 있냐고 다시 물었지만 그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South’, 남쪽이라는 단어였다. 정신을 놓은 채 기숙사로 돌아가 가방을 던지고 뉴스 시청을 시작할 무렵, 두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MZ세대 대표 소셜미디어 틱톡과 인스타그램의 모든 화면에는 한국 내란 영상으로 가득차 있었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금지하고, 종북좌익세력 및 의사들을 처단한다는 포고령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평소 K팝을 사랑하는 한류팬들은 12월3일 온종일 어떤 아이돌 소식보다 내란 뉴스를 지켜보았다. 친구 중 하나가 물었다. 혹시 한국이 이제 북한처럼 되는 거냐고. 도시를 군인이 점령하고, 지도자가 정치인과 시민을 숙청하는 나라가 되는 거냐고. 너희 가족이나 친구들도 죽는 거 아니냐고. 한국어로 된 뉴스를 읽을 수 없는 그들은 한국의 상황을 우리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도로 우려했다. 그러고는 한국어 공부도 중단하고 한국 대학 교환학생 버킷리스트도 포기할지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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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태어나길 잘했다 얼마 전 서른 살 생일을 맞았다. 생일 직전, 유전자 사회학 강의에서 착상 전 유전 진단 검사에 대해 배웠다. 한정적인 질병만 검사할 수 있었던 과거 유전자 검사가 개선되어, 이제 배아 단계에서 검사를 통해 암, 지능, 키, 조현병 등의 발병 소지 등을 확률적으로 진단하는 새 유전자 검사 기술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심란함을 느꼈다. 정교한 유전자 검사가 등장한 지금 나는 과연 태어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의료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다. 후천적 장애이긴 하지만, 유전적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연 의료사고가 장애 원인의 전부일지 스스로 되묻곤 한다. 어쩌면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언젠가 유전자 문제로 장애인이 될 운명이 아니었을까. 만일 내 부모가 지금 문제적 유전자를 가진 나를 임신했다면 새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 장애 여지를 확인하고 나를 지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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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병실 냄새와 고기 냄새 “병실 안 냄새가 너무 힘들어.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암 수술 후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인 엄마로부터 퇴원 희망 의사를 처음 건너 들었을 때 당황스럽고 기가 막혔다. 대장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마치고, 먹지도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병원을 나가 혼자 살겠다는 건지. 그것도 한낱 냄새 때문에.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 속 단호한 퇴원 의사를 들었을 때 지금 한가로운 냄새 타령을 할 때인지 속으로 화를 냈다. 당신 퇴원은 누가 도울 것이며. 어떻게 그깟 냄새 때문에 온 가족을 힘들게 할 수 있냐고. 가족 그 누구도 삶을 다 바쳐 암환자 곁을 지킬 수만은 없는데, 각자 벌어 먹고살기 바쁜 처지에, 대체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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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싫어하는 마음이란 곧 “일하기 싫어. 어떡하지?” 친한 친구가 일요일에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에게 어느 책에선가 읽은 표현을 읊곤 했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마음은 사실 좋아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마음씨 착한 내 친구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 정말 세상의 좋고 싫음은 나란히 존재하는 문제 같아”라고 대답하고 좋아하고도 싫어하는 출근을 준비하러 떠났다.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복막에 암이 전이돼 고통을 호소하던 엄마의 암 수술 일정이 잡혔다는 내용이었다. 오랜 의료대란으로 진료와 수술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들은 값진 소식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각종 원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병원은 환자의 친자녀인 형과 나를 번갈아 부르기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암 전이로 생명이 위급한 엄마에게 수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이와 별개로 평생 정신질환을 앓은 엄마의 가정폭력으로부터 겨우 벗어난 우리 형제가 엄마의 병실생활을 도맡아 책임지기란 쉽지 않았다. 학대의 가해자를 돌보는 업무란 무섭고 화가 나며 겁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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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먹이는 존재 장면 하나. 친구 집에 놀러 간 날, 1층 세탁기 옆 공간에 누워 높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건물 앞 고시원 명패가 걸린 그곳은 좁은 공간 속 높은 천장을 확보한 복층형 원룸이었다. 친구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로 상경해 천장 높은 집에 둥지를 틀게 되어 좋다면서도 요리를 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곳은 화구를 쓸 수 없어 자신이 초대한 손님과 갓 만든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의 슬픔은 고시원이라는 공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타인을 먹이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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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남해 농부 이야기 저녁 강의차 남해에 들른 날, 오후 늦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 농부를 만났다. 걷지 못하는 나의 남해 구경을 위해 기꺼이 자기 시간을 내준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새하얀 농사용 트럭에 태웠다. 밭일하던 트럭이 더러워 서울 손님 편하게 모시려고 열심히 청소했다는 깨끗한 차를 타고 초면인 우리는 영문 모를 남해 드라이브에 나섰다. “오늘 어느 도로에서 몸이 불편하신 분을 만났어요. 걷고 듣는 게 모두 불편한 분 같았는데, 제 차를 세우고 무어라 말하시더라고요. 알아듣지 못한 나머지 글로 대화하니까 차 좀 태워달라고. 바로 모셨죠. 목적지에 도착하니, 그분이 1만5000원을 주시대요. 안 받겠다 했더니 1만원을. 또 안 받겠다 했더니 5000원을. 결국 5000원 받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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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아이고, 잘못 탔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기차 안. 객실에 오르자마자 나도 모르게 “아이고, 잘못 탔다”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기나긴 기차를 예매하며 몇호 칸에 앉는지 신경쓰지 않았다가 유아 동반석에 자리가 배정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내뱉은 말이었다. 객실 내의 한 어린 아기가 우렁차게 울음을 시작하자, 그 울음이 순식간에 전염되어 침묵하던 다른 몇몇 아기들을 금세 울리고 말았다. ‘앞으로 두 시간. 그리 길지 않을 거야’ 생각하고 늦은 밤 귀가 열차에서 눈을 짐짓 감았지만, 아기가 계속 울어 결국 잠들지 못했다. 실눈을 뜬 채로 아기가 우는 좌석을 바라보자, 아기 부모의 뒤통수가 아른거렸다. 앞뒤로 흔들거리는 머리를 보건대 아마 한창 아기를 달래는 중인 것 같았다. 부모의 어쩔 줄 모르는 모습도 짐짓 우는 아기만큼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해당 칸이 유아 동반석이라는 사실 덕분인지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혼내지 않고 다독여 천천히 그치게끔 해도 되는 분위기가 머무는 칸이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 그렇게 기차 안에서는 저마다의 작고 동그란 머리들이 울고 있었고, 아기 부모들은 아기들의 합창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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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슬플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중학교에서 장애인 인권교육 강의를 마친 뒤 질문 시간에 한 여학생이 나에게 장애인이 되어 억울하냐고 물어보았다. 정확히는 의사의 과실로 인한 의료사고로 장애인이 된 게 원망스럽냐는 질문이었다. 질문한 학생을 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원망스럽지 않다가, 언젠가 문득 원망스러웠다가, 이내 다시 원망스럽지 않게 되었다고. 연이은 수술을 거치며 줄곧 병실에 누워 있던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삶은 힘겨웠지만, 이상하게도 의사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장애, 마비, 질병을 감내하는 시간 자체는 나에게 원망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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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장애인, 경비원, 외국인, 노인 대학교 1학년 첫 겨울방학, 상경 후에 낯선 타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장애가 있어 어디서도 나를 안 쓸 줄 알면서도, 하염없이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며칠간 알바 사이트에 ‘장애인’이라 검색하다 작은 카페의 구직 공고를 발견했다. 출근길 직장인을 대상으로 자리에 앉아 커피를 파는 일이었다. 똑똑똑. 가게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사장님께 준비한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인쇄물을 훑어보던 그는 “주문 들어오면 먼저 계산하고 앉아서 커피를 내려 건네주면 돼” 하고 처음 말했다. 그의 긍정적 신호에 기분이 벅차올라 “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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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저에게 인권은 시집살이예요 휭휭 칼바람 소리가 교실 내 유리창까지 매섭게 들리는 겨울날. 나는 어느 교실에서 지친 몸을 책상에 겨우 기대어 학업의 열의를 붙들고 있는 중장년의 학생들과 인권을 공부하고 있다. 선생으로서 나는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만 했다. 추상적 질문 앞에 돌아온 것은 두 눈 끔벅이는 무언의 당혹감뿐이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교수자로서 나는 누군가 대답할 때까지 한동안 침묵의 무게를 견뎌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책 몇 페이지를 펼치시라 하고는 한 시간 가까이 자연법과 실정법이 어쩌고저쩌고하고 말았다. ‘교수’다운 침묵 해결 방식 앞에서 학생들은 더더욱 입을 꾹 다물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뭐라 뭐라. 가수 나훈아가 무대 위에서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따 ‘아! 테스형!’하고 깊이 탄식할 때는 공감과 박수가 돌아왔지만, 내가 강당 위에서 비슷한 시대의 지식인을 똑같이 불렀을 때 돌아온 건 오직 절망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