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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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대화를 늘릴 방책 여름 휴가철을 틈타 도무지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나라에 왔다. 오지랖 넓은 성격 덕에 이 나라에도 현지인 친구를 몇명 두고 있는데,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메신저로 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구실을 열심히 찾아봤다. 그러나 챗GPT를 비롯한 거대 언어모델 기반 서비스들 때문에 모든 핑곗거리를 놓치고 있다. AI 서비스가 나오기 전이었다면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들을 했을 것이다. 현지 뉴스 사진을 찍어서 “이런 화면이 나오는데 무슨 뜻이야?”라고 물을 수도 있고, “내 이름을 너희 언어로 써 줄래?”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좀 더 나아가서 “이런 말을 들었는데 어떤 뉘앙스야?”라고 되물을 수도 있고, “왜 이 투어에서는 외국인을 우대해 준 것일까?” “근처에 온천이 많은데 어디가 나에게 제일 어울릴 것 같아?” 같은 물음을 속사포처럼 뱉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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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정확도에 민감해질 때 출근하던 아침, 스마트워치의 진동이 울렸다. “깨끗이 씻었어요”라는 메시지가 떴다. 팬데믹 시기에 추가된 기능인데, 20여초 손을 씻으면 이런 메시지가 뜨곤 한다. 그런데 서울 성수동 한복판에서 이런 메시지라니. 분명 매미 울음과 손의 흔들림을 ‘씻는 행위’로 판단한 기계의 실수임이 틀림없었다. 이런 기계적 혼동쯤은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도리어 ‘여름철 곤충 소리가 물소리로도 들릴 수 있겠구나’라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기계의 오류를 활용해 소박하게 우리의 이득을 챙겨온 적도 있다. 휴대전화를 마구 흔들어 ‘1만보’를 걸은 것처럼 가장하기도 했고, 마우스를 툭툭 쳐서 잠들기 직전의 원격 근무 툴을 깨우기도 했으며, 이상한 광고를 눌러 보더라도 황급히 다른 콘텐츠들을 꾹꾹 눌러 ‘검색 세탁’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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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의 데이터가 너를 부를 때 애플이 AI를 ‘애플 인텔리전스’로 재정의했다. 하반기 나올 아이폰에 오픈AI를 비롯한 다양한 AI 모델을 녹여 넣어, 기존의 인공지능을 넘어선 애플 기기와 사용자를 완벽하게 연결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보이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은 벌써부터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주가에 곧장 반영됐다. 스마트폰은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우리의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 담고 있는 걸 모두가 이젠 받아들이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유한 개인 데이터의 가치는 AI와 맞물리며 더욱 높아질 것이다. 오죽하면 일론 머스크도 직접 스마트폰을 만들 거란 뉘앙스를 흘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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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너와 나의 팩트체크 오픈AI와 구글이 한 단계 더 진화한 제품들을 잇따라 출시했다. 영화 <그녀(Her)>에서처럼 내가 발 딛고 사는 오프라인 세계와 인공지능(AI) 기술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파를 탔다. 손가락이 아닌 내 입으로 말을 해도 기계가 기똥차게 알아들으니, 전보다 더 많은 걸 더 다양하게 묻게 됐다. 결심이 섰다. 나의 주말 계획 중 일부를 AI에 맡겨보고, 그가 주는 정보가 얼마나 맞는지 직접 오프라인에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나의 계획은 토요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 투어였다. 내겐 낯선 곳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들이 흥미로워 꼭 가보고 싶던 참이었다. 새로 업데이트된 챗GPT(GPT-4o)에 여러 정보를 이틀에 걸쳐 물었다. TV에 나온 식당의 대표 음식에 대한 평을 묻자, AI는 그 음식엔 사이드 메뉴를 곁들이는 게 좋고, 미국 현지 맛을 잘 구현했다는 호평을 전달하며, 예약이 필수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토요일 오전에 서울 종로구에서 출발할 생각인데 차가 막히지는 않을지도 물었다. 평소엔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외곽순환도로와 3번 도로가 막히는 일이 많아 30분은 더 걸릴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지도 데이터를 확보한 건가? 정체 구간은 어떤 데이터를 쓴 거지? 역시, 팩트체크를 위해 직접 경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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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응원의 외주화 겨우내 체중이 3㎏ 불었다. 처음엔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이 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동그래진 것을 보고는 단순히 살이 찐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도 절제의 기회는 있었다. 올 초 연속혈당측정기(CGM)를 착용하고 실험해볼 일이 있었다. 음식별로 달리 튀는 혈당 스파이크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게 맞는 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었다. 강력한 변수라 할 수 있는 우리집 냉동실은 맛집 그대로의 풍미를 재현한 떡볶이와 리소토, 해장국으로 차 있었고, 나는 이 재고의 양만큼 부지런히 포동포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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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세상을 담는 방법 봄이 오고 있다. 이맘때면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나무 숲 소리 수집 신’이 떠오른다. 배우 유지태가 연기한 사운드 엔지니어는, TV와 라디오라는 디지털 매체 속에 꼭 맞는 음성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오프라인의 소리를 센서로 모아 저장장치에 담는다. 인간 세상을 학습하는 인공지능도 이렇게 오프라인의 세상이 디지털로 전환된 것을 학습한다. 사람들이 찍은 이미지와 영상에 담긴 사물들의 이름을 익히고, 그 이름들의 관계를 학습한다. 눈이 많이 쌓이면 눈사람이 있구나, 숟가락이 있으면 젓가락이 있구나,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구나. 세상을 채우는 관계들을 토대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세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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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각자의 쓰임 150명 정도의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연수 과정에 일주일째 참석하고 있다. 인적 자본을 쌓는 네트워킹이 퍽 중요한 행사인데, 그래서 각자가 스스로를 부각하는 포인트도 다채롭다. “저는 좋은 데 많이 투자했어요” “저는 경력이 빵빵하답니다” “최신 트렌드는 다 저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사람들 모아볼게요” 등등 강점도 다양하다. 비즈니스 인맥을 강화하는 자리인 만큼, 필요에 따라 혹은 공통의 관심사에 따라 그룹별로 뭉쳐지기도 한다. 정확히 1년 전, 이 행사 참가자 수만큼의 글로벌 생성형 AI 스타트업들을 분석해 보고서를 냈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기술을 가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스타트업들이 대체 사용자들의 어떤 필요를 공략하려 들었는지를 촘촘하게 조사해 분류한 내용이었다. 한바탕 매출을 끌어올린 가상 프로필사진 생성 서비스도 있고, 마케팅 문구를 1초 만에 뽑아주는 회사도 있으며, 동영상을 맥락별로 잘라 자막을 자동으로 넣어주는 회사도 있었다. 각자가 포지셔닝하는 니즈는 대부분 더 높은 생산성, 그러니까 개인이나 조직이 생산할 수 있는 가치를 더 저렴한 값에 극대화하는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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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내 노후 대책은 로봇 발굴 며칠 전이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쯤 되니 주변에선 “살 만큼 살았다” “더 이상의 세월을 셈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같은 냉철한 덕담을 남겨주었다. 이 와중에 “아이가 없는데 부부가 붙어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어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서, “왜 나이 먹도록 살고 있느냐”고 묻는 이는 없어도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묻는 이는 많은 세상이니, “출산을 하는 것에 이유가 없듯, 비출산을 하는 것에도 설명을 달고 싶지 않다”는 말을 꾹 누르고, “저희가 금슬이 좋아서요”라며 대충 뭉갰다. 주변에도 자녀 없이 부부 둘이 오손도손 잘 사는 경우가 퍽 많아서, 자녀 없는 부부의 공생법에 대해 굳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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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기술과 인식 변화 사이 연말을 이집트 카이로에서 보냈다. 처음 간 이 사막의 나라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도로 시스템이었다. 우선 왕복 6차로를 별다른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없이도 뛰면서 건너는 사람들이 흔히 보였다. 당나귀와 말, 낙타가 끄는 마차도 혼란에 한몫했다. 근래 새로운 다리와 도로가 빠르게 늘어났는데 표지판은 별로 없어서, 깜빡이를 켜고 후진하는 차량도 곳곳에서 보였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광경은, 차선의 존재가 무의미할 정도로, 두 개 차로 안에서 세 대의 차가 함께 달리는 모습들이었다. 앞차가 느리면 경적을 울려 차들이 옆으로 비켜가게 했다. 차선을 비집고 들어가 추월하는 일이 5초에 한 번씩은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옆 차가 무리하게 끼어들려고 하자 사이드미러를 접는 상황도 빈번히 발생했다. 마치 달리기 대회에서 군중의 빈틈을 빠르게 비집고 나가는 러너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한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진 나에게, 가이드는 이렇게 차들이 가다 서다 끼어들기를 반복하는 큰 원인 중 하나는 합승택시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독특한 교통수단은, 차에 빈자리만 있으면 길가 어디서든 승객을 틈틈이 싣는 작은 승합차를 일컫는다. 수시로 차를 세우기 때문에 정체가 이어진다. 그러나 대중교통 인프라가 취약한 이 도시에서는 이만한 운송수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