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연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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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꿈의 크기 지도교수님의 말이 종종 귓가를 울린다. “본인의 경쟁자는 옆에 앉은 동료도, 옆 연구실의 친구도 아니에요. 태평양 건너에서 맨날 밤새우는 연구자들이에요.” 이 한마디 덕에, 한국에 사는 연구자의 아이덴티티로 최대한 다른 시선에서 제시할 수 있는 연구들을 국제학회에서 선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거라고 설득하는 것에도 퍽 애를 먹었다. 본인들이 속한 나라에선 별다르게 코멘트도 하지 않으면서, 꼭 한국인을 대상으로 연구하면 일반화를 운운하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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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리듬을 맞춰요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 왔다. 세상 일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돌아간다지만, 집 밖을 나서는 발걸음까지 막기에는 날이 너무 좋다. 그러다보니 길목마다 차량이 가득하다. 드나드는 구간마다 차들은 각각의 박자로 내 앞에 들어오기도 하고, 내게 앞길을 내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 순간마다 깜빡이를 반짝이며 상대에게 신호를 한다. 이제는 내가 들어갈 차례라고, 혹은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경쾌하게 노란빛을 발산한다. 그렇게 한발 들이대 볼 수 있는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우리는 뒤에서 오는 차의 속도를 감지하고, 빈틈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의 속도를 예측한다. 우리는 그 도로의 리듬을 따르며 움직인다. 홀로 다른 박자를 타면, 사고가 나거나 크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치밀하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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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환대가 사라진 세계 종종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어떤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연간 12t(2024년 한국인 평균)의 탄소를 배출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럼에도 이웃과 사회에 조금은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사회적 자아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한 발씩 나아가 보는 거다. 글을 쓰고, 사람을 모으고, 생각을 키우고, 주장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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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우리, 자부심을 가져요 “출근하는 것도 힘든데, 주식까지 공부해야 하나요”라는 문구를 보았다. 출근길의 바로 옆 차로 버스에 붙은 광고였다. 주가가 크게 오르는 사이 주식 계좌 하나 없는 나만 벼락을 맞은 기분, 인공지능(AI) 시대 생산성이 이삼백 프로씩 오른다는데 나만 별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기분. 그러니 뭐라도 시작은 해야겠어서 유튜브와 교육 플랫폼과 책을 접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하루 종일 너무 열심히 일했다. 에너지가 부족해 머릿속에 무얼 넣을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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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증강된 아름다움 새해를 맞아 프로필 사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쓰던 사진은 몇년 전 셀프 스튜디오에 무턱대고 가서 찍은 터라 정돈된 느낌이 아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기에도 어색했다. 하지만 날은 너무 춥고, 치장을 하고 나가기는 귀찮았다. 인공지능(AI) 도구로 내 프로필 사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챗GPT를 켜고, 내가 예쁘게 나온 사진을 대여섯장 골랐다. 이 얼굴들을 참고해서 내 증명사진을 만들라고 했다. 머리 길이는 어깨에 찰랑거리는 정도, 입은 다물고 살짝 미소 띤 모습으로, 잡다한 액세서리는 전부 빼고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만들라고 했다. 몇차례 결과물에 깐깐하게 피드백을 하고 나니 정말 누가 봐도 내 얼굴이라고 생각할 법한 사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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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모네의 ‘수련’ 시리즈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 전시관은 역사 속에서 주변화되거나 지워진 사람들에 대한 전시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 작가나 딜러, 뮤즈로만 소비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 많은데, 현재는 베르트 베이유라는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활동한 한 여성 화상의 서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전시의 부제가 ‘젊은이들에게 자리를’(Place aux jeun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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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열다섯 살이 막 된 아들이 있는데요. 이 아이에게 무엇을 전공하고, 어떤 것을 배우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 나중에 어떤 일을 해도 좋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인공지능(AI)과 관련한 포럼이나 대화마다 단골로 마주하는 질문 앞에서, 오늘도 만족스러운 답을 하지 못할 게 뻔했다. 대체 전 세계 어느 누가 그 답을 알겠나. 그래도 조금이라도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게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내 전공은 인간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의 시너지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간의 관찰을 엮어 설명을 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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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내 머릿속의 오케스트라 “우유 하나 사 와. 아, 달걀 있으면 여섯 개 사 와”라는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이, 달걀이 있는 슈퍼마켓에서 우유 여섯 통을 사 갔다는 우스개가 있다.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면, ‘만약 …하면’이라는 조건절을 많이 쓰는데, ‘달걀이 있으면’을 일종의 조건절로 받아들이며 생긴 어느 개발자의 경험담으로 구전돼온 얘기다. 다양하게 변주되기도 한다. 아이의 이유식 재료와 명절 선물, 생활 잡화를 몇가지 주문받고 깔끔하게 미션을 완수했다는 식의 경험담은 손쉽게 S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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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피자와 절망의 도미노 인공지능(AI)은 보이지 않게 사람들의 서비스 사용성을 높여주고 더 높은 효용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 기술이다. 맥락 파악도 잘하고, 개인화에도 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정전이 나야 전기가 느껴지듯, 서버가 다운돼야 비로소 체감되는 인프라처럼 작동한다. 로그아웃 상태에서 새 기기로 유튜브에 들어갔을 때, 취향과 전혀 다른 목록이 나타나는 경험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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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가장 빠르게 풀어야 할 문제 정말 사소하지만 오래전부터 풀고 싶던 문제가 있었다. 해외 웹사이트 가입이나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주소지나 소속을 넣어야 하는 순간 ‘한국’을 찾는 번거로움을 해소하는 일이다. 한국은 South Korea, Republic of Korea, Korea (South) 등 사이트마다 죄다 다른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나라 이름들은 대개 ABC 순으로 나열돼 있으니, 우리는 K와 S, R을 거쳐 가며 내 나라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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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내 일은 조각나 있지 않은데 계획을 세워두지 않으면 마음을 졸이는 습관이 있다. 이 버릇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거라고 확신한다. 컴퍼스로 둥글게 그려둔 24시간 안에서 기상과 취침, 공부와 놀기를 토막토막 내어 두는 ‘생활계획표’ 탓을 해 본다. 물론 그대로 지킬 턱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계획대로 살고 있지 않기는 하다. 계획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최근 기가 막힌 변명거리를 찾았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조각난 시간 구멍에 한 단어나 문장으로 표상한 나의 일과를 채워 넣는 행위다. 모호하게 ‘놀기’ ‘일하기’로 쓰는 이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노트 정리하기’ ‘성수동 카페 ○○에서 에스프레소 마시기’처럼 더 구체적 행동을 기입하기도 한다. 여행 계획표를 보면 그 사람의 꼼꼼함이 나온다고 하지 않나. 모든 동선과 지출 내역과 짐의 무게가 그 토막 난 시간표 안에 다 반영돼 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한다면? 계획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오면서 인간의 삶은 더 많은 변수들과 얽히게 됐다. 휴가 기간에는 온전히 쉬려던 계획을 접고 원격으로 업무를 하는 일이 다반사다. 공부하다가도 세상사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스마트폰을 꺼냈다가 릴스 지옥에 빠진다. 기술만 1과 0으로 디지털일 뿐, 우리의 삶은 더 복잡하게 변수를 이고 지고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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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과정의 생략 밀키트를 자주 구입한다. 식구는 둘뿐이고 집밥 먹는 빈도도 낮으니, 직접 찬을 해 먹는 것보다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결정이 가능했던 건 생략된 과정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장에서 직접 고를 정도로 괜찮은 품질의 식재료가 쓰였으리라는 기대,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깨끗하게 손질됐을 거란 믿음, 조미료를 과도하게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들이 뭉쳐서 조리 과정의 꽤 많은 부분을 온전히 외주화할 수 있게 된 거다. 여기에 주변 사람, 예를 들면 엄마나 친구들의 한마디도 보탬이 됐다. “요즘 밀키트 깔끔하게 잘 나오더라” “남는 식재료 냉장고에서 굴리지 않으니 더 낫겠어.” 같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