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연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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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열다섯 살이 막 된 아들이 있는데요. 이 아이에게 무엇을 전공하고, 어떤 것을 배우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 나중에 어떤 일을 해도 좋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인공지능(AI)과 관련한 포럼이나 대화마다 단골로 마주하는 질문 앞에서, 오늘도 만족스러운 답을 하지 못할 게 뻔했다. 대체 전 세계 어느 누가 그 답을 알겠나. 그래도 조금이라도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게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내 전공은 인간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의 시너지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간의 관찰을 엮어 설명을 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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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내 머릿속의 오케스트라 “우유 하나 사 와. 아, 달걀 있으면 여섯 개 사 와”라는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이, 달걀이 있는 슈퍼마켓에서 우유 여섯 통을 사 갔다는 우스개가 있다.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면, ‘만약 …하면’이라는 조건절을 많이 쓰는데, ‘달걀이 있으면’을 일종의 조건절로 받아들이며 생긴 어느 개발자의 경험담으로 구전돼온 얘기다. 다양하게 변주되기도 한다. 아이의 이유식 재료와 명절 선물, 생활 잡화를 몇가지 주문받고 깔끔하게 미션을 완수했다는 식의 경험담은 손쉽게 S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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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피자와 절망의 도미노 인공지능(AI)은 보이지 않게 사람들의 서비스 사용성을 높여주고 더 높은 효용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 기술이다. 맥락 파악도 잘하고, 개인화에도 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정전이 나야 전기가 느껴지듯, 서버가 다운돼야 비로소 체감되는 인프라처럼 작동한다. 로그아웃 상태에서 새 기기로 유튜브에 들어갔을 때, 취향과 전혀 다른 목록이 나타나는 경험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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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가장 빠르게 풀어야 할 문제 정말 사소하지만 오래전부터 풀고 싶던 문제가 있었다. 해외 웹사이트 가입이나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주소지나 소속을 넣어야 하는 순간 ‘한국’을 찾는 번거로움을 해소하는 일이다. 한국은 South Korea, Republic of Korea, Korea (South) 등 사이트마다 죄다 다른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나라 이름들은 대개 ABC 순으로 나열돼 있으니, 우리는 K와 S, R을 거쳐 가며 내 나라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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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내 일은 조각나 있지 않은데 계획을 세워두지 않으면 마음을 졸이는 습관이 있다. 이 버릇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거라고 확신한다. 컴퍼스로 둥글게 그려둔 24시간 안에서 기상과 취침, 공부와 놀기를 토막토막 내어 두는 ‘생활계획표’ 탓을 해 본다. 물론 그대로 지킬 턱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계획대로 살고 있지 않기는 하다. 계획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최근 기가 막힌 변명거리를 찾았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조각난 시간 구멍에 한 단어나 문장으로 표상한 나의 일과를 채워 넣는 행위다. 모호하게 ‘놀기’ ‘일하기’로 쓰는 이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노트 정리하기’ ‘성수동 카페 ○○에서 에스프레소 마시기’처럼 더 구체적 행동을 기입하기도 한다. 여행 계획표를 보면 그 사람의 꼼꼼함이 나온다고 하지 않나. 모든 동선과 지출 내역과 짐의 무게가 그 토막 난 시간표 안에 다 반영돼 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한다면? 계획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오면서 인간의 삶은 더 많은 변수들과 얽히게 됐다. 휴가 기간에는 온전히 쉬려던 계획을 접고 원격으로 업무를 하는 일이 다반사다. 공부하다가도 세상사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스마트폰을 꺼냈다가 릴스 지옥에 빠진다. 기술만 1과 0으로 디지털일 뿐, 우리의 삶은 더 복잡하게 변수를 이고 지고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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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과정의 생략 밀키트를 자주 구입한다. 식구는 둘뿐이고 집밥 먹는 빈도도 낮으니, 직접 찬을 해 먹는 것보다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결정이 가능했던 건 생략된 과정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장에서 직접 고를 정도로 괜찮은 품질의 식재료가 쓰였으리라는 기대,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깨끗하게 손질됐을 거란 믿음, 조미료를 과도하게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들이 뭉쳐서 조리 과정의 꽤 많은 부분을 온전히 외주화할 수 있게 된 거다. 여기에 주변 사람, 예를 들면 엄마나 친구들의 한마디도 보탬이 됐다. “요즘 밀키트 깔끔하게 잘 나오더라” “남는 식재료 냉장고에서 굴리지 않으니 더 낫겠어.”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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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의 가치가 국경을 극복한다면 간단한 외신 기사는 원어 대신 한글로 읽는 일이 일상이 됐다. 나고 자란 땅의 말과 글이 익숙하니, 빠르게 정보를 얻기 위해 아무래도 웹페이지의 한글 번역 버튼을 누르게 된다. 번역 성능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개선됐다. 문득 떠오른 것은 지난해 이맘때 즈음의 걱정이었다. 외신을 번역해서 옮기는 미디어들은 분명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뉴스뿐이랴. 언어 장벽을 허물고 국경 넘는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로컬 시장 중심으로 이득을 가져갔던 꽤 많은 산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새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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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연결의 방법 학회 참석차 일본 도쿄 인근 요코하마에 와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이라는, 어떻게 하면 인간이 기술을 더 잘 써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에 관한 연구들이 한가득 공개되는 학술 축제다. 6000명 가까운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데, 아무래도 가장 인기가 많은 세션은 인공지능(AI)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한 디자인을 제안하는 곳들이다. 어느 뾰족한 지점에서 AI를 쓰는 것이 기존 방법론에 비해 더 나을지를 살펴보는 세션마다 인파가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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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소득과 소비 3년 후, 5년 후 미래를 내다보고 연구·개발(R&D) 관련 투자를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평가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 생태계뿐 아니라 국제 정치 상황과 경제 전망까지 덩달아 울렁이고 있으니, 당장 다음주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안 되는 와중이다. 그래도 세상은 균형을 이루어 나간다는 큰 전제를 깔고, 한편에서는 오늘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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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분류되기를 거부할 때 갓 대학생이 된 어느 봄날이었다. 누군가 넌지시 “너는 우파야, 좌파야?”라 물어온 적이 있었다. 스무 살의 나는 “그런 경계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나요?”라며 넘어갔었다. 정확히 20년 전 이야기다. 그렇게 가르마 타기를 거부했던 것 치고, 이후의 나는 변수에 따라 비슷한 것을 묶고 나누는 기계학습 연구를 진행했고, 레이블러들이 데이터에 이름을 더 정교하게 붙일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 디자인에 대한 논문을 썼으며, 남들처럼 MBTI 신봉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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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결국엔 벌어질 일들 세상엔 예측해볼 법한 일들이 퍽 많다. 언젠간 빨래를 대신 개어줄 로봇이 나올 테고, 우주여행도 가능해질 것이며, 불로장생의 꿈도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그 꿈이 달성되는 시기와 주체가 불분명할 뿐이다. 언젠간 벌어질 일이지만, 그걸 직접 생애 안에 이뤄보겠다고 달려드는 이와 그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아서다. 그래선지 엑스프라이즈(XPrize) 재단처럼,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할 사람들을 모으고 지원해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더 빠르게 만들어보려는 주체들에게 유독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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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고백을 쑥스러워할 수 있기를 한 해를 돌이켜보며, 그간 새겨둔 데이터들을 꺼내어 보았다. 1년 동안 쓴 글, SNS 포스팅, OTT 시청 기록, 찍어둔 책 사진들, 일정 수첩에 박힌 지난 약속들을 나열하고 보니 2024년도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다. 연초에 호기롭게 세웠던 목표 가운데엔, 우선순위에서 밀려 은근슬쩍 소멸된 것들도 있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개인을 아주 뾰족하게 파헤쳐서 기어이 그 사람의 목표를 다 달성하도록 돕고 심지어 조종까지 하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일본어 가타카나 철자를 끝끝내 못 외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