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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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생활 속 쓰임과 사전 뜻풀이가 다른 ‘모닥불’ 며칠 새 바람이 많이 차가워졌다. 겨울의 문턱. 오래전 이맘때면 시골 마을에선 ‘모닥불’에 밤이나 고구마를 넣어두고 밤늦도록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과거의 향기가 지금 라일락 꽃밭의 향기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타닥타닥’ 불꽃을 날리던 그때의 모닥불이 잘 찍은 사진보다 또렷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라는 노랫말로도 익숙한 ‘모닥불’은 사람들의 추억 한 귀퉁이에서 시시때때로 타오른다. 그러나 사실 ‘모닥불’은 거의 모든 사람이 뜻을 잘못 알고 쓰는 말이다. 모닥불의 국어사전상 의미가 “잎나무나 검불 따위를 모아놓고 피우는 불”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은 오래가지 못하고, 불꽃도 크지 않다.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기에는 너무 ‘빈약한’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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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잡풀 없이 탐스러워야 ‘금잔디’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지금 중년이라면 한 번쯤 웅얼거렸을 노래 ‘옛날의 금잔디’의 도입부다. 이 구절에 나오는 ‘매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노래는 원래 우리 가요가 아니다.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박사인 조지 존슨은 매기 클라크라는 여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고 매기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에 존슨은 사랑의 추억과 슬픔을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당신과 내가 어렸을 때, 매기)’라는 시에 담아 시집 <단풍잎>에 실었고, 이후 영국에서 이민 온 제임스 오스틴 버터필드가 이 시에 곡을 붙였다. 이 시를 의역한 것이 ‘매기의 추억’이고, 이를 다시 우리말 가사로 번역·편곡한 것이 ‘옛날의 금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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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학교는 불평등의 주범이 아니라고 외치는 ‘학교의 재발견’ ‘학교는 불평등하다.’ 이 말에 선뜻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 사회는 자라나는 모든 아동·청소년들에게 공정하게 교육이 제공돼야 한다고 합의하고 있고, 이를 위해 늘 ‘공교육의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은 ‘학교는 불평등하다’고 인식한다. 고등교육으로 이행하는 관문으로 기능하는 고등학교는 자기네가 얼마나 많은 학생을 ‘좋은 대학’에 보냈는지 경쟁하고, 그 ‘좋은 대학’을 판별하기 위해 학원가·교육자·학부모 모두가 뜻을 모아 대학을 줄 세운다. 그뿐만 아니라 “학군이 좋으면 아파트 가격이 올라간다”는 말처럼 ‘부동산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집값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학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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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우리 시대 공정성에 대한 모든 질문의 해답 ‘공정이란 무엇인가’ 현대인의 삶에서 경쟁과 분열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협동 또는 협의와 멀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를 하거나 맞춰 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본인의 이익, 혹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큰 소리로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 행동은 올바른가? 어쩌면 현대인들은 위험할 정도로 ‘경쟁과 협력의 균형’에서 벗어난 게 아닐까? 공정성은 타고나는 것이라 한다. 불공정한 대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는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즉 공정한 태도를 갖는 것이야말로 각자의 본능적인 부분을 존중하는 일이자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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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우리말이 오르면 우리나라도 오른다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시경 선생이 한 말이다. 백번 천번 옳은 가르침이다. 말과 글이 병들면 그 말과 글을 쓰는 이들의 정신이 피폐해지고, 그런 정신으로 위대한 문화를 이룰 수는 없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가장 힘쓴 정책도 ‘우리말글 말살’이었다. 우리말글을 없애야 한민족의 정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우리말글을 지켜냈고, 그 정신으로 식민의 황폐함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의 한국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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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사전 뜻풀이가 바뀌어야 할 말 ‘곶감’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국어사전의 내용은 시간이 오래 지나서야 수정·보완된다. 그러다 보니 국어사전의 뜻풀이와 현실의 쓰임이 다른 말이 많이 생긴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온 이 무렵에 흔히 볼 수 있는 ‘곶감’이 대표적 사례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모든 국어사전은 곶감의 뜻을 “껍질을 벗기고 꼬챙이에 꿰어서 말린 감”으로 풀이해 놓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중에서 팔리는 곶감을 보면 꼬챙이에 꿴 것이 없다. 곶감의 ‘곶’은 ‘꽂다’의 옛말인 ‘곶다’의 어근이다. 즉 원래는 꼬챙이에 여러 개를 꽂아 말린 것이 곶감이다. “애써 모아 둔 재산을 조금씩 헐어 써 없앰”을 이르는 속담 ‘곶감 뽑아 먹듯 한다’가 그래서 생겼다. 그러나 꼬챙이에 꿰어 놓은 곶감은 보기에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냉장고 등에 보관하기도 수월치 않다. 이 때문에 요즘의 곶감은 하나씩 예쁘게 만들고, 말리는 정도도 다양하게 해서 상품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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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박이강 첫 소설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눈길 소설가 박이강의 첫 작품집이 나왔다.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교유서가)다. 앤솔러지 ‘폴더명-울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안녕, 끌로이’로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을 거머쥐며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문장과 작품의 높은 완성도로 주목받고 있다. 9편의 단편을 모은 이번 작품집에서 저자는 관습처럼 이야기하는 ‘믿음’의 실체를 거침없이 파헤친다. 누군가에게 ‘믿음’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디는 방패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란 얻고자 하는 것, 보고자 하는 것, 결국 욕망으로 단단히 응고된 환상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헛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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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휠체어도 편히 갈 수 있는 아름다운 ‘무장애 여행지’는 어디? 여행의 기본은 이동이다. 여기에 먹고 쉬는 일이 더해진다. 여행지에서 장애인을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유는 특별교통수단 보급률과 관계가 깊다.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2021년 기준)은 30.6%다. 이 수치를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으로 치환하면 버스 3대 중 2대는 그냥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장애인전용콜택시(장콜)의 법정 기준 대수는 150명당 1대이지만 이를 채우고 있는 지자체는 많지 않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나무발전소)는 전동휠체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신만의 여행지도를 그려온 전윤선 작가가 휠체어를 타고 직접 확인한 바로 그곳 ‘무장애 여행지’를 소개한다. 그 여행지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휠체어 사용인의 눈높이와 체험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작은 네 바퀴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인지, 쉴 곳과 먹을 곳은 어디인지, 장애인 전용 화장실 위치와 편의객실이 마련된 숙소까지 세세한 여행정보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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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노화와 질병에서 품격을 지키는 법에 관한 ‘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의사의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성찰한 ‘참 괜찮은 죽음’의 저자 헨리 마시가 이번에는 ‘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이현주 옮김 / 더퀘스트)로 독자를 만난다. 전작과 궤를 같이하는 책이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아울러 이 책은 저자의 마지막 원고일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이자 섬세한 문필가로 잘 알려진 헨리 마시는 70대가 돼 은퇴를 하고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이후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즉 이 책은 말기 암 환자가 된 의사가 우아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삶의 끝에서 가장 ‘나다움’을 되찾는 여정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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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책갈피에는 책갈피를 꽂아두지 마라 가을을 흔히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고 한다. 글자만 놓고 보면 “등불과 친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책을 읽기 좋은 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당나라의 학자 한유가 공부를 하러 떠나는 아들에게 지어 준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이란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시에서 한유는 아들에게 “가을이 돼 여름내 내리던 비가 그쳐 날이 개고, 서늘한 바람이 마을과 들판에 가득하여, 이제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으니, 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라고 권한다. 책을 읽는 데 특별히 좋은 계절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한유의 말마따나 볕 좋고 바람 좋은 이때에 잠시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책장을 넘기며 조금의 여유를 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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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지 않는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온갖 열매들이 살을 찌우고 있다. ‘해바라기’도 그런 열매 중 하나다. 해바라기는 ‘꽃이 해를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해바라기의 두상화(頭狀花)가 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피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는 해를 따라 봉오리를 움직이는 꽃은 세상에 없다. 해바라기도 마찬가지로, 꽃대가 해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아주 비과학적인 얘기다. 특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이 무렵에 잘 여문 해바라기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땅 쪽으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해바라기는 한자말 항일규(向日葵)를 그대로 옮긴 것이지, 실제로 해를 따라 봉오리가 움직인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서양에서도 해바라기는 ‘해를 닮은 꽃’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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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더 깊어지고 더 담백해진 서정의 미학 ‘차마고도 외전(外傳)’ 눈길 지난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로 등단한 조현석 시인이 시단 데뷔 35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차마고도 외전(外傳)’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51번으로 출간했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조현석의 시가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는다. 서정시의 근원으로 회귀했다는 의미다. 특히 ‘도시적 서정’에서 ‘전통적 서정’으로 그의 시가 변했다. 표제시 ‘차마고도 외전(外傳)’과 ‘차마고도’의 주인공들처럼 이제 그는 자신의 슬픔과 아픔과 절망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도통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큼 그의 ‘내공’이 쌓였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