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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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질 수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다. 강한 자들끼리 싸우는 통에 약한 자가 중간에 피해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뜻하는 사자성어는 ‘경전하사(鯨戰蝦死)’다. 최근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에 딱 맞는 말일 듯싶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고도 했다. 아랫사람의 일로 윗사람에게 해가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와 의료계가 한번쯤 되새겨 봄직한 속담이다. 고래는 오래전부터 우리와 친숙한 동물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의 생태와 습성이 놀라우리만큼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수천년 전 고래고기가 우리의 중요한 먹거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을 ‘술고래’라 부르고, 큰 건물을 ‘고래 등 같다’고 하는 등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고래가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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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닭의 볏’을 닮아 붙은 이름 맨드라미 한낮에는 늦더위가 여전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는 선선함이 제법 배어 있다. ‘가을의 중간에 있는 명절’이라 하여 중추절(仲秋節)로도 불리는 추석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이제 때는 가을의 한복판으로 치닫는다. 이렇듯 가을이 깊어지면 코스모스가 흐드러진다. 코스모스는 원산지 멕시코에서 들이나 길가에 마치 잡초처럼 피던 꽃이다. 18세기 말 스페인의 식물학자가 이 꽃에 ‘질서정연한 우주’를 의미하는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코스모스는 애써 가꾸지 않아도 쉽게 뿌리를 내린다. 가녀린 몸이 바람에 흔들거릴지언정 꺾이지 않고 씩씩하게 자란다. 또한 혼자 고고하지 않고 더불어 핀다. 수수하지만 어여쁨도 뒤처지지 않는다. ‘우주’의 이미지와 꽤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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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학을 떼다’는 말라리아로 고생했다는 뜻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도 지났다. 처서는 ‘곳’이나 ‘때’의 뜻으로 많이 쓰이는 한자 處와 ‘더위’를 의미하는 한자 暑가 결합한 말이다. 따라서 얼핏 ‘더운 때’를 일컫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處에는 ‘쉬다’ 또는 ‘머무르다’ 따위의 뜻도 있다. 즉 처서는 ‘더위가 더는 심해지지 않는 때’를 가리킨다. 이는 처서가 조선 연산군 때 ‘조서(조暑)’로 불린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의 인물 김처선(金處善)은 세종부터 연산군까지 7명의 왕을 섬긴 환관이다. 그는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차례 관직을 잃고, 유배를 가기도 했다. 특히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에게 “고금에 상감과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다”고 직간하다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후 연산군은 그의 이름에 들어 있는 ‘處’와 ‘善’을 쓰지 못하게 해 백성들이 개명을 해야 했고, ‘處暑도 ‘조暑’로 부르게 됐다. 조서는 ‘가는 더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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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초가을 조각구름 몰고 오는 ‘건들바람’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솔바람이 몰고와서 살짝 걸쳐 놓고 갔어요.” 누구나 알 법한 동요 ‘흰 구름’의 가사다. 외국 곡에 시인 박목월이 노랫말을 단 이 동요의 배경은 가을이다. 노랫말에 있는 ‘솔바람’이 이를 말해 준다. 다만 곡의 분위기와 ‘솔바람’의 의미는 조금 괴리감이 있다. 노래는 맑고 밝은 반면 솔바람은 “가을에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주며 부는 으스스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솔바람을 ‘소슬바람’이라고도 한다. 이 동요의 느낌만 놓고 보면 솔바람보다 “초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을 뜻하는 ‘건들바람’이 더 어울린다. “시원하고 가볍게 부는 바람”을 의미하는 ‘산들바람’도 괜찮을 듯하고, 자수(字數)를 생각하면 ‘가을바람’을 줄인 ‘갈바람’을 써도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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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독도, 평균기온 13도 강수량은 1800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독도에 대한 애정이 많다. 하지만 독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여기에는 1983년 만들어져 지금도 많은 사람이 흥얼거리는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의 영향이 크다. 이 노래에는 독도와 관련해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아울러 노래가 만들어지고 40여년이 지나면서 독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행정구역이 ‘울릉군 남면 도동’에서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바뀌었고, 우편번호(799-805)도 생겼다. 평균기온은 12도에서 13도로 높아지고, 강수량은 1300㎜에서 1800㎜로 늘었다. 독도의 면적이 17만평방미터(㎡)가 아니라 19만평방미터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또 동해에서는 이제 명태가 잡히지 않고, 거북이의 서식지도 아니다. 연어도 독도 근처에서 산란하지 않는다. 이 밖에 섬에 분화구도 없으며, 샘물이 흐르는 ‘물골’이 있지만 우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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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크레파스에서 ‘살색’이 없어졌다 오는 7일이 입추(立秋)다. 말 그대로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때다. 하지만 입추를 지나서 말복(末伏)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무렵엔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뜨거운 햇볕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그 기운이 곡식을 살찌운다. 곡식이 한창 여무는 이 무렵 제철 과일 중 하나가 살구다. 살구는 ‘신라의 경주에 살구꽃이 많이 피었다’는 옛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린 세월이 깊다. 오랜 세월만큼 쓰임도 다양하다. 살구의 씨인 행인(杏仁)은 오래전부터 한방에서 기침과 천식을 다스리고 변비를 개선하는 약재로 쓰였다. 살구가 품고 있는 성분들은 현대 의학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동양뿐 아니라 서양도 살구를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더 널리 재배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또 살구의 과육은 부드럽지만 나무의 재질은 아주 단단하다. 옛날에 다듬잇방망이를 만들던 재료 중 하나가 살구나무이고, 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은 그 어떤 목탁보다도 소리가 맑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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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고니는 물에 뜨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백조의 발길질’에 대한 얘기가 있다. 백조가 물 위에서는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물밑에서는 물갈퀴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는 내용으로, 피나는 노력 없이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표현이 그럴싸하고 의미도 좋아 자기 계발과 관련한 글에서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백조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물 위를 한가로이 노니는 백조를 관찰해 보면 발길질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백조의 깃털은 기름막으로 싸여 있어 물이 쉽게 스며들지 않는다. 또 깃털 사이에 공기를 품을 수 있고, 다른 조류와 마찬가지로 기낭(氣囊)을 가지고 있다. 새의 가슴과 배에 있는 기낭은 새의 몸이 뜨도록 돕는 공기주머니다. 게다가 조류의 뼈는 “공기가 차 있는 공간을 가진 뼈”, 즉 ‘함기골’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백조는 물에 뜨기 위해 애써 발길질을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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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행주대첩 전부터 행주치마는 있었다 우리말과 관련해 많은 민간 유래담이 전한다. 이들 유래담은 현대어와의 유사성이나 어떤 지명 또는 사물의 이름과 흡사한 점을 근거로 들고 있어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살피고 언어의 변천을 따지면 그냥 우스갯소리로 흘려들어야 할 것들이 많다. ‘행주치마’의 유래담도 그중 하나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산성 싸움은 군과 민이 하나가 돼 외적의 침략을 막아낸 위대한 승리였다. 특히 부녀자들이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돌을 나르며 적과 맞서 싸운 일은 역사서에도 기록돼 있다. 이를 근거로 “부엌일을 할 때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덧입는 작은 치마”를 가리키는 ‘행주치마’가 ‘행주대첩’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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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안개비나 이슬비보다 굵은 가랑비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다.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누구나 그 의미를 알 법한 말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의 의미만 놓고 보면 이 표현은 조금 이상하다. 가랑비는 가늘게 내리기는 하지만 빗줄기가 제법 굵기 때문이다. 비를 맞는 순간 대번에 ‘옷이 젖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다. <표준국어대사전>도 가랑비가 이슬비보다 굵다고 뜻풀이를 해놓았다. 이슬비는 빗줄기가 가늘어서 안개처럼 부옇게 보이는 비다. 이런 이슬비보다 더 가는 것이 안개비이고,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는개’도 있다. 또 보슬비는 빗줄기가 가늘면서 성기게 내린다. 줄줄 내리지 않고 뚝뚝 끊기듯이 오는 비다. 따라서 아주 적은 양의 비라서 언제 옷이 젖는 줄 모른다는 의미를 제대로 나타내려면 가랑비보다는 이슬비, 는개, 안개비, 보슬비 등을 쓰는 게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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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고양이는 ‘나비’, 원숭이는 ‘잔나비’! 왜? 고양이를 흔히 ‘야옹이’나 ‘나비’라고도 부른다. 고양이가 “야옹야옹” 소리를 내므로 ‘야옹이’는 얼른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비’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하늘을 나는 나비와 땅을 걷는 고양이가 쉽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나비로 부르게 된 데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우선 고양이 얼굴이 나비와 닮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귀를 세운 고양이의 얼굴 상은 나비를 닮은 듯하다. 나풀거리는 나비를 쫓아다니는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고양이의 얼굴이 나비만 닮은 것이 아니고, 고양이가 나비만 쫓아다니는 것은 아니어서 이러한 주장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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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참나물에 이름을 빼앗긴 ‘파드득나물’ 식물 중에는 독성을 지닌 것들이 많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독소를 만들거나 가시를 발달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자기를 보호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일반적인 이론이다. 이러한 독성은 약성이 되기도 한다. 이를 잘 아는 인류는 독초를 약초로 이용해 왔다. 특히 우리 민족은 독성 있는 식물을 약용뿐 아니라 식용으로도 활용했다. 채취 후 삶아 말리거나, 독성이 축적되기 전 어린잎만 채취하는 등 각종 방법으로 독성을 제거해 밥상에 올린다. ‘나물’이다. 나물 중에는 무더운 여름에 보다 쉽게 얻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들 ‘여름나물’에서는 우리 조상의 지혜가 더욱 빛난다. 고춧잎처럼 어쩌면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 채소의 일부분까지 나물이 된다. 쌈으로 많이 먹는 깻잎과 호박잎을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이 밖에 고구마순이나 머위 등 여름나물의 가짓수가 봄나물에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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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낙동강 오리알’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 한국의 발전상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이렇듯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인 ‘한강(漢江)’의 본래 이름은 ‘한가람’이었다. ‘한’은 “크다”는 뜻의 순우리말이고, ‘가람’은 강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이를 한자로 적은 것이 漢江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인 ‘압록강’은 물빛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물빛이 오리의 머리 빛깔과 같아 압록(鴨綠)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기록이 있다. 鴨이 ‘오리 압’ 자이고, 綠은 초록빛을 나타낸다. 실제로 청둥오리 수컷의 머리와 목은 짙은 녹색이다. ‘비단 금(錦)’ 자를 써 유난히 예쁘게 들리는 ‘금강’은 충남 공주의 옛 지명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일대를 예전에 ‘곰’이라 불렀고, 곰이 ‘금’으로 소리가 바뀌면서 한자 ‘錦’을 빌려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