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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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농단’하는 자 밑에 ‘농간’ 부리는 자 있다 옛날에 한 시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각자 필요한 것을 물물교환하는, 굳이 잇속을 챙기기 위해 아웅다웅할 일이 없는 장터였다. 그런데 이 시장을 눈여겨본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순박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시장이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곳임을 직감했다. 그는 먼저 시장 근처의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장을 내려다보며 목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찾은 뒤 그곳에 자리를 깔았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필요로 할 만한 것을 사 모은 후 독점적으로 비싸게 되팔았다. 서로 물건을 교환할 뿐 아무도 돈벌이를 하지 않던 곳에서 장사꾼은 그동안의 질서를 교란하며 독점을 통해 혼자 큰 이익을 챙겼다. 이런 행태에 사람들은 장사꾼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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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늑대처럼 사랑해야 낭패를 안 당한다 ‘남자는 다 늑대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 부모가 딸에게, 혹은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남자를 조심하라’는 의미로 쓰는 이 표현에는 ‘늑대는 나쁜 동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람들 가까이에 살면서 가축을 해치기도 하는 늑대는 그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분명 나쁜 동물이다. 그러나 늑대로서는 삶을 꾸려 가기 위한 먹이활동이자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사투다. 또한 늑대는 일부일처의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짝을 지은 뒤에는 다른 늑대들에게 절대 한눈을 팔지 않는다. 짝을 잃은 뒤에는 슬픔에 젖는 동물로도 알려져 있으며, 둘 사이에 난 새끼는 끝까지 책임진다. ‘누군가와 사랑하려면 늑대 같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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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다. 조개는 겨울을 지나 날이 풀려야 맛이 좋아지고, 낙지는 찬 바람이 불어야 맛이 들기 시작한다는 소리다. 요즘이 낙지의 제철이다. 낙지는 조선 순조 때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 ‘낙제어(絡蹄魚)’로 쓰여 있다. 낙(絡)은 ‘잇다’ ‘둘러싸다’ ‘얽히다’ 따위를 뜻하고, 제(蹄)는 ‘굽’ 또는 ‘발’을 일컫는 한자다. 즉 ‘8개의 발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물고기’가 낙지다. 낙지는 예부터 보양식 재료로 쓰여 왔다. ‘쓰러진 소에게 낙지를 먹이면 벌떡 일어선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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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버려야 할 말 ‘을사보호조약’과 ‘창씨개명’ 1905년 11월17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압해 협정 하나를 맺었다. 이 협정의 목적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와 이사청(통감부의 지방 조직)을 두어 대한제국의 내정(內政)을 장악하는 데 있었다. 통감부는 병력 동원권과 시정 감독권 등을 가진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일본은 이 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 식민지배의 음모를 구체화해갔다. 이 협정을 가리켜 ‘을사보호조약’이나 ‘을사조약’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다. 30여년 전만 해도 중고교 교과서에 을사보호조약으로 실려 있었고,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을사조약이 마치 바른말인 것처럼 올라 있는 탓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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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싸라기밥을 먹은 사람이나 하는 ‘반말’ 옛말에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 했다. ‘입은 재앙의 문’이란 뜻으로, 말을 함부로 하면 화를 당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는 설참신도(舌斬身刀)도 같은 의미다. 이 밖에도 말 한마디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금언(金言)이 많다. 하지만 천 냥 빚을 갚을 한마디의 말로 만 근의 화를 쌓는 이들을 자주 본다. 남을 불편케 해 자신에게 화가 미치게 하는 말투 중 하나가 반말이다. ‘안녕하세요’를 ‘안녕’으로 반 정도 줄인 것이 반말이다. 반말의 반(半)이 절반을 뜻하는 한자다. “존대해 말해야 하는 상대에게 반말하다”를 뜻하는 관용구 ‘말이 짧다’도 그래서 나왔다. 속담 ‘싸라기밥을 먹었나’도 같은 의미다. ‘싸라기’는 “부스러진 쌀알”이다. 즉 ‘싸라기밥을 먹었나’는 부서져 반토막이 된 쌀로 지은 밥을 먹어서 말도 반토막으로 하느냐고 빈정거리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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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복을 부르고 재물을 지켜주는 ‘두꺼비’ 무더위를 푸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입동(立冬)이 코앞이다. 이제 곧 많은 생명이 땅속에 굴을 파고 몸을 숨길 터이다. 그중에는 여름밤을 구애의 울음으로 보낸 개구리와 두꺼비도 있다. 일상에서는 이 둘을 뚜렷이 구분한다. 하지만 생물학계에서는 두꺼비도 개구리의 일종으로 본다. 개구리 중에서도 청개구리에 가깝다는 것이 생물학계의 설명이다. 피부가 울퉁불퉁하고 어두운 얼룩무늬를 띤, 마치 두꺼운 갑옷을 입은 듯한 청개구리가 두꺼비다. 두꺼비란 이름도 “두께가 보통의 정도보다 크다”를 의미하는 ‘두껍다’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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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오소리감투가 둘인 조직은 망한다 우리나라에는 야생동물이 의외로 많이 산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지, 저마다 서식지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오소리도 그중 하나다. 오소리의 이름은 다양하다. 한자말로는 토저(土猪)나 토웅(土熊)으로 불린다. 민간에선 ‘작은 곰’이란 의미에서 소웅(小熊)으로도 쓰지만, 이 말은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는 않다. 오소리는 얼굴이 원뿔 모양이고, 다리가 짧고 굵은 것이 특징이다. 외형에서 강인함이 풍긴다. 이런 오소리의 고기와 기름은 오래전부터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여 왔다. 그 효능이 <동의보감>에 실려 있기도 하다. 그런 탓에 오소리를 함부로 잡는 일이 많아 지금은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허가를 받으면 가축으로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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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왕에게 아첨하고 받은 벼슬 ‘오행당상’ 조선의 15대 임금인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세자로서 분조(둘로 나뉜 조정)를 이끌며 왜적과 싸웠다. 즉위 후에는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 노선을 취해 백성이 사지로 내몰리는 일을 막았다. 전후 복구에 힘쓰고, 대동법 등 합리적인 정책도 펼쳤다. 성군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머니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비인간적 악행도 저질렀다. 잦은 옥사(獄事)로 많은 신하의 목숨을 앗은 폭군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그릇된 풍수론에 사로잡혀 국가 재정을 거덜내고 백성들의 삶을 곤궁하게 만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백성들에게 버림받고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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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객지살이가 원망스러울 된장잠자리 가을 하면 바로 연상되는 곤충이 있다. ‘잠자리’다. 이맘때 도심을 벗어나면 파란 하늘 아래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과 들판의 가을꽃 위에 내려앉은 잠자리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잠자리는 ‘가을 곤충’이 아니다. 잠자리는 초여름부터 우리 곁을 날아다닌다. 다만 가을이면 잠자리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이는 태풍과 관련이 있다. 태풍이 한반도로 향할 때 많은 곤충이 바람에 휩쓸려 ‘이주를 당한다’는 사실이 현대 과학에 의해 밝혀졌다. ‘된장잠자리’도 그중 하나다. 이름에 ‘된장’이 붙어 있고,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어 우리나라 토종처럼 생각되지만, 된장잠자리의 본래 서식지는 동남아시아다. 그런 까닭에 된장잠자리는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못한다. 추운 겨울 탓이다. 한가하고 자유로운 모습과 달리 된장잠자리로서는 원망스럽고 서글픈 객지살이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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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한자말 오남용이 ‘낮은 문해력’ 부추긴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에 대한 얘기가 최근 들어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나중에 알리겠다”는 의미의 ‘추후(追後) 공고(公告)’를 ‘추후공업고등학교’의 준말로 이해했다거나 “매우 깊고 간절하게 사과드린다”는 뜻의 ‘심심(甚深)한 사과’를 “지루하고 재미없게 사과한다”로 받아들였다는 말이 그 사례로 떠돌기도 한다. 그러면서 문해력이 부족한 원인 중 하나로 ‘한자 교육 미흡’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가 평소 쓰는 말 중 6할 이상이 한자말이므로, 그런 주장은 꽤 설득력 있다. 아울러 한자말 중엔 한글 표기가 같지만 의미가 다른 말이 많아 한자 공부가 부족하면 말하는 사람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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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하릅강아지’와 ‘애돝’은 동갑이다 소의 새끼를 가리키는 말은 ‘송아지’이고, 말의 새끼를 일컫는 말은 ‘망아지’다. 이들 말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아’는 “작고 어린 것”을 뜻한다. 그래서 “나이가 어린 사람”이 ‘아이’이고, “어린 젖먹이 아이”가 ‘아기’다. ‘강아지’도 당연히 개의 새끼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다 큰 개를 이야기하면서 강아지로 표현하는 일이 흔하다. 특히 반려동물로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나 반려동물과 관련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쓴다. 그러나 성견(成犬)을 ‘강아지’로 부르는 것은 바른 언어 사용으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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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질 수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다. 강한 자들끼리 싸우는 통에 약한 자가 중간에 피해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뜻하는 사자성어는 ‘경전하사(鯨戰蝦死)’다. 최근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에 딱 맞는 말일 듯싶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고도 했다. 아랫사람의 일로 윗사람에게 해가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와 의료계가 한번쯤 되새겨 봄직한 속담이다. 고래는 오래전부터 우리와 친숙한 동물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의 생태와 습성이 놀라우리만큼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수천년 전 고래고기가 우리의 중요한 먹거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을 ‘술고래’라 부르고, 큰 건물을 ‘고래 등 같다’고 하는 등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고래가 널리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