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민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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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시대에 따라 변한 옥, 감옥, 형무소, 교도소 현직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구치소(拘置所)는 “구속영장에 의해 구속된 사람을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수용하는 시설”이다. 판결에 의해 징역형, 금고형, 노역장 유치, 구류 처분 등을 받은 사람은 교도소(矯導所)에 수감된다. 재판 중에 있는 사람이 교도소에 수감될 수도 있다. 우리말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가둬 놓는 시설을 일컫는 말은 ‘옥’ ‘감옥’ ‘형무소’ ‘교도소’ 등으로 변해 왔다. 두 마리의 개 사이에 말씀 언(言)이 들어 있는 ‘옥(獄)’ 자는 자신이 옳다며 서로 다투는 모습을 개의 공격성에 비유해 만든 글자로, 본래는 ‘시비를 논쟁하다’를 뜻한다.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개 같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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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소설 ‘태백산맥’ 덕에 표준어가 된 꼬막 조개는 봄이 제철인 먹거리다. ‘봄 조개 가을 낙지’란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겨울에 맛이 들어 이즈음에 많이 찾는 조개도 있다. 그중 하나가 ‘꼬막’이다. 꼬막의 어원과 관련해 “어린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 또는 “조그마한 사물을 귀엽게 이르는 말”로 쓰이는 ‘꼬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꼬막은 조개 중에서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해 얼핏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언어학적으로는 ‘고막합(庫莫蛤)’이 변한 말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여기서 고막은 ‘작은 집에 사는 것’을 뜻하고, 합은 조개를 일컫는 한자다. 꼬마든 고막이든 작다는 의미는 일맥상통한다. 꼬막은 ‘안다미조개’로도 불린다. 안다미는 “담은 것이 그릇이 넘치도록 많이”를 뜻하는 순우리말 ‘안다미로’의 변형이다. 즉 크기는 작지만 속이 알찬 조개가 꼬막이다. 이런 꼬막을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즐겨 먹었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 정약전이 전라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지은 어류학서(魚類學書) <자산어보>에도 “크기는 밤알만 하며, 조갯살은 노랗고 맛이 달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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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자리는 같지만 결이 다른 ‘수반’과 ‘수괴’ ‘수반(首班)’은 본래 “품계나 신분의 차례에서 으뜸가는 자리”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국어사전에도 “행정부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뜻풀이가 돼 있다. 수반의 유의어로는 ‘수장(首長)’과 ‘수뇌(首腦)’가 있다. 이 중 수장은 “위에서 중심이 돼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통솔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국회 의장은 국회의 수장으로 국회의 제반 업무를 관장한다”라는 문장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사용례로 올라 있다. 수뇌는 “어떤 조직·단체·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리의 인물”로, 수반이나 수장과 의미가 비슷하지만 쓰임이 조금 다르다. ‘한·일 수뇌회담’처럼 최고 지위를 뜻하기도 하고, ‘정보 당국의 수뇌들’처럼 비슷한 지위의 여럿을 의미하는 말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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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새해 예수의 나이는 2025세보다 많다 난데없는 계엄령 선포와 대통령 탄핵소추 등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올해가 저물고 있다. 이제 이틀 후면 새해인 서기 2025년이 시작된다. 서기(西紀)는 ‘서양의 기원’을 줄인 말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예수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삼아 연도를 표기한다.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타내는 영어 약자 ‘B.C.’와 ‘A.D.’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로, 직역하면 ‘예수 탄생 이전’을 뜻한다. ‘A.D.’는 Anno Domini의 약자로, 이는 ‘예수가 태어난 해’라는 뜻의 라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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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 동지(冬至)가 막 지났다.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인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해가 짧으니 날이 춥고, 날이 추우니 꽃을 보기 어렵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란 표현에 이 무렵의 계절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옛날에는 동지를 설 다음가는 큰 명절로 여겼다. 조선 순조 때의 세시풍속서 <동국세시기>에 “동짓날을 아세(亞歲), 즉 ‘작은 설’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동지를 ‘작은 설’로 부른 데에는 ‘태양의 부활’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동지에는 팥으로 죽을 쒀 먹거나 팥죽을 집 안 곳곳에 뿌리는 풍습이 있다. 팥의 붉은빛이 나쁜 기운을 쫓아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임금의 곤룡포가 붉은색이고, 옛날에 시집가는 여자의 얼굴에 붉은색의 연지와 곤지를 찍은 것도 같은 이유다. 또 팥죽에는 찹쌀가루나 수수가루로 동그랗게 만든 것을 넣는다. 이를 ‘새알’로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 바른말은 ‘새알심’이다. 알이 생명을 상징하듯이, 새알심에는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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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오라에 묶여 끌려갈 신세 ‘우라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이 있다. 먹고살기 위해 온갖 더러운 짓도 마다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포도청은 조선시대 때 범죄자 잡는 일을 맡아 보던 관아다. 오늘날의 경찰청이다.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를 참고해 포도청 조직을 대강 살펴보면, 현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포도대장 아래에 포도종사관, 포도부장(포교), 관할 구역을 순찰하고 죄인을 잡아들이는 일을 하던 하급 병졸인 ‘나졸’ 등으로 구성됐다. 나졸은 “지방 관아에 속한 군뢰(군대에서 죄인을 다루는 일을 맡아 보던 병졸) 등을 통틀어 이르던 말”이기도 하다. 포도청의 나졸은 “포도청에 속한 군졸”이란 의미에서 ‘포졸’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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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농단’하는 자 밑에 ‘농간’ 부리는 자 있다 옛날에 한 시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각자 필요한 것을 물물교환하는, 굳이 잇속을 챙기기 위해 아웅다웅할 일이 없는 장터였다. 그런데 이 시장을 눈여겨본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순박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시장이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곳임을 직감했다. 그는 먼저 시장 근처의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장을 내려다보며 목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찾은 뒤 그곳에 자리를 깔았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필요로 할 만한 것을 사 모은 후 독점적으로 비싸게 되팔았다. 서로 물건을 교환할 뿐 아무도 돈벌이를 하지 않던 곳에서 장사꾼은 그동안의 질서를 교란하며 독점을 통해 혼자 큰 이익을 챙겼다. 이런 행태에 사람들은 장사꾼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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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늑대처럼 사랑해야 낭패를 안 당한다 ‘남자는 다 늑대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 부모가 딸에게, 혹은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남자를 조심하라’는 의미로 쓰는 이 표현에는 ‘늑대는 나쁜 동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람들 가까이에 살면서 가축을 해치기도 하는 늑대는 그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분명 나쁜 동물이다. 그러나 늑대로서는 삶을 꾸려 가기 위한 먹이활동이자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사투다. 또한 늑대는 일부일처의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짝을 지은 뒤에는 다른 늑대들에게 절대 한눈을 팔지 않는다. 짝을 잃은 뒤에는 슬픔에 젖는 동물로도 알려져 있으며, 둘 사이에 난 새끼는 끝까지 책임진다. ‘누군가와 사랑하려면 늑대 같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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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다. 조개는 겨울을 지나 날이 풀려야 맛이 좋아지고, 낙지는 찬 바람이 불어야 맛이 들기 시작한다는 소리다. 요즘이 낙지의 제철이다. 낙지는 조선 순조 때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 ‘낙제어(絡蹄魚)’로 쓰여 있다. 낙(絡)은 ‘잇다’ ‘둘러싸다’ ‘얽히다’ 따위를 뜻하고, 제(蹄)는 ‘굽’ 또는 ‘발’을 일컫는 한자다. 즉 ‘8개의 발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물고기’가 낙지다. 낙지는 예부터 보양식 재료로 쓰여 왔다. ‘쓰러진 소에게 낙지를 먹이면 벌떡 일어선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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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버려야 할 말 ‘을사보호조약’과 ‘창씨개명’ 1905년 11월17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압해 협정 하나를 맺었다. 이 협정의 목적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와 이사청(통감부의 지방 조직)을 두어 대한제국의 내정(內政)을 장악하는 데 있었다. 통감부는 병력 동원권과 시정 감독권 등을 가진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일본은 이 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 식민지배의 음모를 구체화해갔다. 이 협정을 가리켜 ‘을사보호조약’이나 ‘을사조약’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다. 30여년 전만 해도 중고교 교과서에 을사보호조약으로 실려 있었고,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을사조약이 마치 바른말인 것처럼 올라 있는 탓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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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싸라기밥을 먹은 사람이나 하는 ‘반말’ 옛말에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 했다. ‘입은 재앙의 문’이란 뜻으로, 말을 함부로 하면 화를 당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는 설참신도(舌斬身刀)도 같은 의미다. 이 밖에도 말 한마디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금언(金言)이 많다. 하지만 천 냥 빚을 갚을 한마디의 말로 만 근의 화를 쌓는 이들을 자주 본다. 남을 불편케 해 자신에게 화가 미치게 하는 말투 중 하나가 반말이다. ‘안녕하세요’를 ‘안녕’으로 반 정도 줄인 것이 반말이다. 반말의 반(半)이 절반을 뜻하는 한자다. “존대해 말해야 하는 상대에게 반말하다”를 뜻하는 관용구 ‘말이 짧다’도 그래서 나왔다. 속담 ‘싸라기밥을 먹었나’도 같은 의미다. ‘싸라기’는 “부스러진 쌀알”이다. 즉 ‘싸라기밥을 먹었나’는 부서져 반토막이 된 쌀로 지은 밥을 먹어서 말도 반토막으로 하느냐고 빈정거리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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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복을 부르고 재물을 지켜주는 ‘두꺼비’ 무더위를 푸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입동(立冬)이 코앞이다. 이제 곧 많은 생명이 땅속에 굴을 파고 몸을 숨길 터이다. 그중에는 여름밤을 구애의 울음으로 보낸 개구리와 두꺼비도 있다. 일상에서는 이 둘을 뚜렷이 구분한다. 하지만 생물학계에서는 두꺼비도 개구리의 일종으로 본다. 개구리 중에서도 청개구리에 가깝다는 것이 생물학계의 설명이다. 피부가 울퉁불퉁하고 어두운 얼룩무늬를 띤, 마치 두꺼운 갑옷을 입은 듯한 청개구리가 두꺼비다. 두꺼비란 이름도 “두께가 보통의 정도보다 크다”를 의미하는 ‘두껍다’와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