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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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느금마 엔터테인먼트’와 ‘한국남자’ “한국남자야, 이게. 이 XXXX야! 이게 한국남자라고. 너 뒤질 준비해.” BJ ‘갓건배’ 살해협박 사건 당시 갓건배 추격 방송을 시작하면서 BJ ‘이병욱’이 한 말이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정의구현을 위해 길을 나선다. 무엇보다 갓건배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행했던 ‘BJ특수반’은 갓건배를 처치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시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남자란 도대체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속해 있는 BJ 네트워크 안에서 집단으로 움직였다. 그 네트워크의 이름이 ‘느금마 엔터테인먼트’다. 느금마 엔터는 명확한 실체는 없지만 느슨한 동아리라 할 만한 집단이다. 여기서 ‘느금마’(느그 엄마)는 상대방의 어머니를 비하하는 말이다. 느금마 엔터는 ‘신태일 패밀리’라고도 불린다. 유명 BJ ‘신태일’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신태일은 자동차로 자기 다리를 깔아뭉개거나 형광등을 씹어 먹고, 지하철 객차 한가운데서 부탄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이는 등 엽기적인 행각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 공중파에 출연해 이런 콘텐츠로 한 달에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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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위대함과 특별함의 앙상블 ‘아이 캔 스피크’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장동건, 김윤석, 현빈, 유해진, 송중기, 황정민, 소지섭, 조인성, 정우성, 류준열, 박서준, 강하늘, 한석규, 김래원, 이성민, 조진웅, 김성균, 정우, 이선균, 안재홍, 김명민, 변요한, 설경구, 임시완, 이정재, 여진구, 김수현, 손현주, 고수, 김주혁, 박성웅, 박희순, 이종석, 박해일, 김남길, 오달수, 김무열, 유재명, 정웅인, 신성록, 이경영, 이경영, 그리고 또 이경영. 2017년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남자 배우 리스트다. 조만간 개봉할 영화들까지 생각한다면 여기에 유지태,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마동석, 윤계상, 배성우 등이 더 추가된다. 자, 그렇다면. 여자 배우는 몇 명이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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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다짐 1970년대 미국.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소설가인 다나는 집에서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휘청,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진다. 이어 눈을 뜬 곳은 1815년 메릴랜드주의 숲속이다. 그곳에서 다나는 호수에 빠진 ‘백인 소년’을 구한 뒤 1970년대로 되돌아온다. SF 거장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 <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후로 다나는 소년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1800년대로 끌려간다. 처음에는 몇 분, 그 다음에는 몇 시간, 그 다음에는 며칠, 그리고 또 그 다음에는 수어달. 그렇게 1800년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나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흑인 여자’로서의 생존술을 익히게 된다. 즉 점차 노예로 생존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1970년대의 다나는 자유인이자 ‘엘리트 여성’이지만, 1800년대에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건방진, 따라서 다소 위험한 여자 노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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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시간을 거스르는 남자들 최근 시간여행 이야기, 즉 타임슬립(time slip)물이 유행이다. 2012년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와 <옥탑방 왕세자> 등이 화제를 모으고 2013년 <나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시간여행자들의 사랑은 팔리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타임슬립의 매혹은 2014년 4월16일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바로잡고자 하는 대중적 욕망과 만났다. 전 국민이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생방송으로 304명의 생명이 사그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그날 이후, 대중문화는 이 집단적 트라우마에 말을 걸고 문화적으로라도 위로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렇게 드라마 <시그널>(2016)을 비롯해서 영화 <시간이탈자>(2015),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2016)에 이어 <하루>(2017)까지, 시간을 거슬러 살면서 재난이나 사고, 소중한 이의 죽음을 막으려는 이야기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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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마음껏 음란하라 지난 19대 대선 기간 중 있었던 일이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다. “군 동성애는 국방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문 후보는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홍 후보는 “그래서 동성애에 반대하십니까?”라고 재차 물었고, 문 후보는 “반대하지요”라고 확답했다. 당시는 대한민국 국군이 위헌 요소가 다분한 군형법 92조 6항에 따라 그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A대위를 구속 수감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말은 국가에 의한 부당한 억압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국민에 대한 차별 및 국가폭력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대선 이후 A대위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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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자라지 않는 남자들의 연대 ‘자라지 않는 아재들’은 최근 한남 엔터테인먼트의 흥미로운 광경 중 하나다. <아는 형님>(JTBC)에서 아재들은 여전히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으며, <미운 우리 새끼>(KBS)에서는 아직도 ‘생후 오백 몇 개월’을 사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아재 독립 만세!! 거기서 만나>(TV조선)의 내레이션은 원로배우 김영옥이 맡았다. 나이든 ‘어머니뻘’ 여성이 아재들을 굽어보며 행동 하나하나에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코멘트 하는 것이다. 이 퇴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특히나 우리 시대에 아버지란 <명량>이나 <국제시장>과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70~80대 어르신의 얼굴이 되어버린 지금, 대중문화는 왜 40~50대 남자를 어른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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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얼굴을 되찾는 용기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알려지자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로 모여들었다. 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슬픔과 공포, 분노의 마음들이 그려졌고, 당신이 바로 나라는 고백, 잊지 않겠다는 다짐, 이 세계를 바꾸어나가겠다는 약속 등이 빼곡하게 적혔다. 무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가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번져갔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우리에게 그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으로 요동쳤다. 2015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일었던 페미니즘 운동이 드디어 거리로 나섰다. 다양한 단체들이 결성되었고, 담론은 확장되었으며, 페미니즘 시장 역시 형성되었다. 각성하기 시작한 페미니스트들은 촛불광장에도 참여했다. ‘페미존’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깃발이 나부꼈다. “나라 바꾸는 계집, 호모, 가난뱅이, 페미”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로부터 비롯된 한계 역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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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여혐을 팝니다” 예능이 남자들 판이라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규라인, 유라인, 강라인이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여자 예능인은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이렇게 남자판인 예능, 즉 한남 엔터테인먼트는 <남원상사>에서 그 완성을 본 것 같다. 그간 한국 예능은 경제적 몰락 속에서 기가 꺾인 남자들을 위로하는 재현 전략을 취해왔다. 예컨대 지난 10년간 대표 예능이었던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무모한 도전’을 하는가를 보여주던 콘셉트에서, 점차로 지치고 힘든 국민정서에 말을 거는 거대 프로젝트에 대한 ‘무한한 도전’으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고난 끝에 기어코 성공하고야마는 루저의 성공담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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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1990년대 공주’가 돌아왔다 에마 왓슨의 <미녀와 야수>가 개봉했다. 책을 읽고, 질문을 던지는 여성이자,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여성인 ‘벨’. 그는 대중문화로 스며들어간 페미니즘 제2물결의 영향 아래에서 1980년대 말 등장한 2세대 디즈니 공주였다. 물론 “진정한 미녀라면 짐승을 ‘인간’으로 만들어 결혼에 성공해야 한다”는 20세기 판본의 평강공주 스토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캐릭터를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에마 왓슨이 연기했다. 이는 ‘셀렙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왓슨은 2014년 유엔에서 ‘HeforShe’ 연설을 했고, 그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유명인이 페미니즘 운동의 아이콘이 되는 것을 ‘셀렙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말한 패트리샤 아퀘트의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 여성영화를 만들기 위한 리즈 위더스푼의 영화사 설립, 세계여성공동 행진에서의 애슐리 주드의 연설 등은 이런 셀렙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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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3시 STOP!’ 캠페인의 메시지 2016년 10월24일 오후 2시38분. 여성 수천명이 아이슬란드의 거리로 뛰쳐나왔다. 남성에 비해 평균 14~18% 적은 임금을 받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임금격차로 보자면 여성들은 매일 2시38분 이후부터는 공짜로 일하고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어서 11월7일 오후 4시34분에는 프랑스 여성들이 손에서 일을 내려놓았다. 성별임금격차 15.5%를 기준으로 봤을 때, 여성들은 이날, 이 시간부터 연말까지 무급 노동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항변이었다. ‘이퀄 페이 데이(Equal Pay Day·동일임금의 날)’로 불리는 이 시위는 같은 해 11월10일 영국으로도 이어졌다. 이뿐 아니다. 호주의 한 대학 여성 모임은 ‘페미니스트 주간’을 맞아 임금격차분을 반영하여 남성에게는 컵케이크를 더 비싸게 파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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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영화계 ‘남성 카르텔’을 부숴라 얼마 전 영화계에서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15세 관람가로 알고 출연을 결정한 여배우 ㄱ은 부부강간 장면을 촬영하면서 상대역인 남배우 ㄴ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남배우 ㄴ은 “표정연기 등을 통해 강간상황을 암시한다”는 합의된 수위를 넘어 여배우 ㄱ의 상의와 속옷을 찢고 어깨를 주먹으로 가격했으며, 여러 신체 부위를 더듬었다. 여배우 ㄱ은 이를 신고했고, 검찰은 남배우 ㄴ을 강제추행치상으로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은 그가 연기에 “과몰입”한 것뿐이라며 무죄를 선고한다. 더 문제적인 것은 감독이 여배우 ㄱ 몰래 남배우 ㄴ에게 “미친놈 같은” 강간 연기를 지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배우가 영화 현장에서 어떻게 대상화되고 도구화되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