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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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 ‘서울의 봄’ 입을 모아 한국 영화의 침체를 걱정하는 시절이다. 아니,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 이미 궤멸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영화 투자는 개점휴업 상태다. 제법 잘 만들었다는 작품들도 개봉하자마자 씁쓸하게 퇴장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 와중에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다. 여느 영화들처럼 이미 제작했으니 개봉을 안 할 수는 없고, 의례적인 과정을 거쳐 사라지려니 했다. 그런데 호평이 계속 들려오자 극장에 안 갈 수 없었다. 관객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이견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의미도 잡고 재미도 잡은 보기 드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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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카카오는 어디로 갈 것인가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은 카카오 택시의 횡포에 대해 “부도덕하다” “약탈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미 관계당국의 조사를 받는 기업을 직접 비난하는 것이 적절한 정치행위인지는 의문이다. 공무원의 속성에 비추어 대통령이 알려준 정답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 나도 택시기사들로부터 카카오의 횡포에 대한 하소연을 여러 차례 들었다. 대통령의 지적은 카카오와 택시기사의 관계에 관한 것이지만, 택시 사용자로서 느끼는 불편도 있다. 예를 들어, 카카오 택시 앱을 사용할 때 원치 않는 팝업 광고가 성가시다고 느낀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한 푼이 아쉬운 업체들에서나 볼 수 있는 불쾌한 사용자 환경을 카카오가 제공하는 건 뜻밖이다. 택시가 잘 안 잡힌다 싶으면 고가의 택시 호출을 유도하는 것도 대기업답지 못하다. 못마땅해서 다른 택시 앱도 사용해 보았지만 워낙 점유율이 낮아 불편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카카오 택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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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검찰의 좁은 회랑 법적 절차는 사실관계를 법조문에 적힌 개념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밝혀진 사실관계가 법조문에 적힌 추상적인 개념과 부합하면 법이 적용된다. 단순명료한 사건에서는 수사하고, 법을 적용하는 과정이 어느 정도 기계적이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의 경우 운행 사실과 혈중 알코올농도를 확인하면, 처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한 사안에서는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물증이 확보되지 않으면 주변인의 진술에 의존해야 한다. 사건과 이해관계가 없는 이의 진술이라면 믿어볼 만하지만, 자신도 감옥에 갈 처지에 있는 사람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슨 진술이든 할 수 있어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 게다가 어떤 범죄행위의 동기나 가능성을 추측하게 하는 정황은 모호한 것이라서 해석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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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역사적 행위의 미적분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라는 책이 있다. 평범한 놀이공원 정비공이 전쟁의 상처를 안은 채 자신의 생을 무의미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는 천국에서 이전에 자신이 알았거나 몰랐던 다섯 사람을 만나면서,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과거를 물리적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던 과거의 사실과 의미가 드러나면서 완전히 다른 내러티브로 재구성될 수는 있다. 그렇게 부활한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규정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삶도 마찬가지다. 역사가 E H 카아의 널리 알려진 이 문장은 그걸 정식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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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사회 중국의 마오쩌둥에 대해 “공(功)이 7이고, 과(過)가 3”이란 말이 있다. 후대의 평가든, 마오 자신이 그 정도 평가면 만족한다는 말이든, 그런 실용적 관점은 중요하다. 선과 악의 스펙트럼에서 한 극단에는 천사가, 반대편 극단에는 악마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중간 어디쯤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영웅이나 천사로 또는 역적이나 악마로 보려는 경향을 피하지 못한다. 이 사회는 증명에 소홀하다. 누가 어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대의 목소리나 다른 가능성을 따져 볼 여유 없이 공격성을 드러낸다. 멀쩡하게 살아가던 유명인이나 평범한 사람이 한순간에 죽일 놈이 된다. 그런 성향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인지라 동서고금에 흔한 일이기는 하다. 더 신중한 사람과 덜 신중한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차피 평균적인 사람들은 남의 일을 쉽게 말하고, 군중심리에 휩싸이며,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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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내러티브의 종말 꼬마 때 동네에서 밤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어떤 아이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치면, 아이들은 전율을 느끼며 들었다. 간혹 솜씨 좋은 어른이 이야기를 꺼내면 흡사 마법의 세계가 열린 듯했고, 달뜬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초등학교 때 기차역이 있는 수색으로 주산을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주산학원 선생님이 이따금 무협지를 육성으로 전달해주었는데, 그때마다 학생들은 이야기에 흠뻑 빠져 몽롱해졌다. 당시만 해도 이야기에 어떤 주술적인 요소가 남아 있었다. 소설도, 영화도, 드라마도 귀했기에 그것을 즐기는 시간은 삶의 각별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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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뒤늦게 만난 ‘몽실 언니’ 유명하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의 목록이 누구에게나 있다. 내게는 <몽실 언니>가 그중 하나였다. 자주 가는 도서관의 인터넷 계정에는 ‘관심 도서목록’이 있는데 <몽실 언니>를 그 목록에 올려둔 지도 일 년이 넘었을 것이다. 어쩐지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려 읽지 못했다.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가 예사롭지 않은 날, 글을 쓰려고 도서관에 갔다가 문득 이 책이 생각났다. 서가에서 찾은 <몽실 언니>는 무척 낡아 있었다. 저자인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이십여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이것도 글이 될까 싶은 소재를 가지고 써내려간 책을 읽다가 감동에 젖은 기억이 있다. 나는 도서관 창밖의 초록이 넘치는 나무들을 힐끗 바라보고 나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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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일생의 공부 모 교수님의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얼마 전에 읽었다. 도움이 될 내용이 많았지만, 나보다는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었다. 지난주에는 어느 작가가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독서하자는 칼럼을 모 매체에 실었다.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인데도, 공감과 반대로 나뉘어 SNS가 소란스러웠다. 덕분에 공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업무상 전문분야를 천착하는 것 말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공부의 대명사는 독서인데, 책은 버림받고 있다. 나만 해도 제대로 읽는 책의 수가 현저히 줄었다. 읽겠다고 제목을 메모하거나 손에 넣은 책은 많지만, 정독한 책은 드물다. 대개 발췌독을 하게 된다. 우선 영상매체, SNS를 비롯한 인터넷 등 책과 경쟁하는 매체가 너무 많다. 호흡도 짧아졌다. 현대의 가공할 속도는 책에 침잠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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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한국 문화의 위상과 태도 주말에 자주 고궁에 간다. 경복궁에 가면 주변을 둘러싼 인왕산, 북악산의 산세도 건축물과 어우러져 눈을 즐겁게해 준다. 고궁은 더 이상 나이 지긋한 분들이 주로 오는 공간이 아니다. 주변 가게에서 화려한 한복을 빌려 입은 젊은이와 외국인들이 주인공이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이 전에는 신기했지만, 이제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내가 고궁을 찾는 이유 중에는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기꺼운 점도 있다. 개인적인 일로 곧 출국하여 독일어권 사람들을 만날 일이 생겼다. 한국 문화에 우호적일 그 사람들과 어떤 태도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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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인공지능에 따르는 위험성의 대비 지난 3월15일자 뉴욕타임스는 스티븐 존슨의 ‘역사상 가장 큰 실수를 두 번 저지른 뛰어난 발명가’라는 글을 실었다. 그 발명가는 토머스 미즐리다. 그가 1944년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들은 자동차와 냉장고를 발전시킨 그의 획기적인 발명품을 찬미하는 기사를 실었다. 오늘날 미즐리는 비운의 발명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납을 섞은 유연휘발유를 발명했고, 오존층에 구멍을 낸 프레온의 상업적 사용을 고안했다. 유연휘발유와 프레온의 위험성은 당시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으므로, 끔찍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심지어 프레온의 경우에는 인류가 환경문제와의 관련성을 인지할 기술적 수단 자체를 가지지 못했다. 존슨은 이 위험한 발명들을 언급하면서 ‘위험의 주기’를 고민한다. 인류는 장기적으로 축적될 위험에 관하여 얼마나 고려하는 것이 타당할까. 유전자재조합 생물체(GMO)는 과연 충분히 장기간 검증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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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챗GPT와 혼술을 친구를 만나도, 기사를 살펴봐도, 모두들 ‘그’에 관해 말한다. 최근 눈부시게 발전한 자동번역기 덕분에 자주 살펴보는 외신도 마찬가지다. BTS의 인기가 무색하다. 인공지능 ‘챗(Chat)GPT’ 이야기다. 너무 명민해서 ‘그것’이라고 지칭하기 미안하니, ‘그’라고 부를까 싶다. 나는 ‘그’를 내 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 등록했고, 스마트폰 첫 화면에도 바로가기 아이콘을 만들었다. ‘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기절할 정도는 아니지만, 깊은 인상을 준다. 칼럼도 쓰라고 재미 삼아 지시해 본다(이 칼럼은 아니다). 쓰려는 칼럼의 방향을 알려주니, 실제 글쓰기에 참고할 만한 결과물을 내민다. 인공지능을 과제 작성에 사용하는 학생들 때문에 미국 학교가 고민에 빠진 이유를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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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의 아이러니 알고리듬으로부터의 자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941년 네 가지 기본적 자유, 즉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했다. 한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한 ‘신앙의 자유’를 제외한다면, 어떤 자유를 넣을 수 있을까. 요즘 돌아가는 사정을 보고 있노라면, ‘알고리듬으로부터의 자유’를 넣는 게 합당해 보인다. 알고리듬은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원하는 출력을 유도하는 규칙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지금 전 지구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가 된 알고리듬은 거대 플랫폼 기업이 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맞추어 결과를 산출할 때 사용하는 알고리듬이다. 그 알고리듬은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단을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