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원
소설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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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죽음에 분노할 때는 이미 늦은 것 오랫동안 공장에서 문짝에 시트 붙이는 일을 하면서 몸 쓰는 일에는 이골이 난 아버지는 설렁탕 가게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열일곱 살 아들이 주방 일까지 한다는 말을 무심히 들었다고 했다. 칼이라고는 과일 깎는 칼이나 쥐어봤을 아들이 식당 주방에서 양파를 썬다고 했을 때도 무심하게 넘겼다. 아들이 양파를 썰다가 손가락을 다쳐 피가 나는 손가락을 쥔 채 집으로 왔을 때, 병원에 가서 상처를 꿰매고 나서야 아버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날 선 칼날이 양파가 아니라 아들의 손가락을 자를 뻔했는데 식당 주인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에 분노한 아버지는 식당으로 한달음에 쫓아가서 따졌다. 홀 서빙을 하는 애를 왜 주방 일을 시켰느냐, 손가락을 여러 바늘 꿰맬 만큼 다쳤는데 어떻게 아이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느냐. 아버지의 탄식에 식당 주인은 무심히 말하더란다. 별로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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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왜 공격받나 알다시피 1997년 4월17일 사법부는 전두환에게 내란과 내란 목적 살인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결문에는 “헌법기관인 대통령·국무위원들에 대해 강압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일어난 광주 시민들의 시위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방위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국가가 5·18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1980년 5월 짐칸에 총을 든 시민들을 태우고 달리는 트럭만 주야장천 영상으로 내보내면서 광주에서 불순분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떠들던 뉴스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사법부가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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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7년이 지났는데 바뀐 것 없는, 그 봄 봄날 다시 남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해 봄, 기차 안에서 바라본 노란 산수유는 눈물이었다. 봄볕으로 반짝이는 푸른 강물도, 새순이 돋아나는 여린 들판도 아려 봄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봄은 여전했다. 봄꽃이 피어나고, 들판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렇지만 7년 전처럼 질금대는 눈물을 남모르게 훔치지 않았다. 이렇게 눈물은 멈추고, 아픔은 옅어지고, 기억은 지워지겠구나 싶었다. 이제는 진도항으로 이름이 바뀌어서 옛 팽목항이 되어버린 항구로 가는 길에는 노란 유채꽃 들판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농가에 도움이 되고 봄날 피어나는 노란 꽃이 섬을 찾는 이들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겠냐면서 유채 농사를 짓자고 한 이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봄볕이 부서진 듯 빛나는 노란 꽃만 넋을 잃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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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18 사과, 세상을 바꾸는 용기 “5월18일에 왜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나요?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는 일이 왜 일어날까요? 너무 속상해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내 동화책을 읽은 4학년 아이가 한 질문이다. 나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전국소년체전 준비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육상 선수들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그려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내 글을 읽은 아이들 대부분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든 5·18민주화운동을 쉽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던 작가로서는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그 시절 TV 만화에 나오는 악당까지 등장시켜 권력을 잡으려는 이의 광기와 폭력을 얘기하고, 책에 부록을 붙여 쉽게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싶었는데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이들은 독재와 저항은 어렵사리 납득한 것 같다가도 군인이 시민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는 혼돈에 빠진다. 왜 군인들은 범죄자나 도둑이 아닌 일반 시민한테 곤봉을 휘둘렀냐고 또박또박 따지듯 묻는 아이도 있었다. 아마도 아이는 ‘왜’가 아니라 ‘설마’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설마 우리나라 군인들이 이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이들의 의심은 군인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존재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독재자가 군인들과 시민들을 사지에 내몰았다고 조곤조곤 얘기해도 아이들은 선뜻 수긍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왜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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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세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들 열아홉 살이 된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는 거 같아요. 나는 그의 말에 쉽게 수긍하면서 열아홉 살이면 다 컸다고, 어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섣부르게 말할 뻔했다. ‘어른’이란 아이보다 ‘성숙’한 존재로 규정짓고 대꾸할 뻔했다. 다행히 내 말보다 그의 말이 빨랐다. “그래서 불안하고, 쓸쓸한 거 같아요.” 그가 말하는 ‘어른’은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와 자신의 두 발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였다. 나는 말간 열아홉 살 어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특성화고등학교 뷰티디자인학과에 다니는 그는 작년 봄에 만났을 적에 미용 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 준비를 한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미용 관련 일이 적성에 맞을 줄 알았는데, 머리를 매만지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그는 키가 좀 자랐구나 싶었는데, 키만 자란 게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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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꿈보다 알바’ 나선 청년들이 안쓰럽다 태권도 시범 선수인 아이는 고3이 되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낼 것 같다고 했다. 대학 입학에 필요한 경기 실적을 쌓으려면 여름까지 치러지는 전국대회에 계속 출전해야 하고, 틈틈이 지역 태권도 시범단에 껴서 공연한다고 했다. 그간 공연을 하고도 대가를 못 받았는데, 올해부터는 공연비가 책정되어서 대학 입학금 일부를 충당할 수 있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엔 훈련이 없는 주말에 아르바이트하면 입학금은 걱정 없다고 했다. 그의 야무진 계획은 봄부터 어그러졌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겨우내 익힌 새 기술을 펼쳐 보일 전국대회는 한 번도 안 열렸고, 태권도 시범을 할 공연도 취소되었다. 무엇보다 대학 입학금이 걱정인 그는 봄엔 여름을, 여름엔 가을을 기다렸다.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속절없이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끝났다. 훈련 중에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그에게 2020년은 가혹했다. 그렇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해서 합격했으니 겨울부터 아르바이트하면 될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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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족도 갈라놓는 ‘불안정한 노동’ 아이들의 눈이 웃고 있었다. 마스크를 썼어도 웃음이, 표정이 훤하게 보였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초등학생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강연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취소되었고, 동영상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거의 1년 만에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 앞에 선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 채 투명한 가림막 앞에 앉아 있는 교실 풍경은 생경했지만, 아이들의 눈빛만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이 났다. 감사했다. 그들이 꼿꼿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그들과 잠시라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고마워서 허리가 절로 굽었다. 말로 떠드는 게 힘들어 매번 강연을 망설인 건 자만이었다. 쉽게 사람들을 만날 수 없고, 게다가 아이들을 마주하기도 어려운 시대를 지나다 보니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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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코로나19, 죽음을 고립시키다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날마다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 소설가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지구가 하나가 되는 ‘지구촌’을 예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염병이 지구를 휩쓸면서 지구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끈끈하게 연결된 이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 반대편의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집계되는 사망자 수를 수개월 동안 보면서 죽음은 삶의 본질도, 타인의 고통도 아닌 피도 눈물도 없는 숫자로만 인식된다. 하루하루 무섭게 늘어나는 숫자는 1의 무거움을 은폐한다. 1은 1이 아니라 때로는 꿈꾸고, 때로는 절망하고, 그러면서도 무던히 버텨냈을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을 감쪽같이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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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동네 책방 좀 살려둡시다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몇 년 전부터 신기하게도 지방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생겨났다. 오래된 골목길 모퉁이에, 낡은 기와지붕이 잇닿아 있는 동네 한구석에, 한적한 시골길 끝에 예전이면 구멍가게나 있을 법한 자리에 생뚱맞게 자리 잡은 책방은 대개 소박하고 간소했다. 오래전 동네에 하나쯤 있던 서점과는 달랐다. 사방 벽에 참고서가 빽빽하게 꽂혀 있지 않았고, 베스트셀러만 모아놓은 큼지막한 가판대도 없었다. 작은 책방에 헐렁하게 꽂혀 있는 책은 주인장이 고심해서 고른 것들이어서 책방마다 자기 빛깔이 있었다. 어느 책방에는 1인 출판사가 낸 책이 많았고, 어느 책방에는 그 지역에서 출판한 책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작은 책방에서 나는 온라인서점에서는 본 적도 없는 인디 가수의 에세이집을 샀고, 서울 대형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지역 고등학생들의 단편집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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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일상화된 죽음과 무감각 내가 사는 지역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 종종 만나는 고등학생한테 문자를 했다. 열흘 전 동네에서 만난 그는 친구 집에 간다면서 큰 가방을 걸머메고 있었다. 가방에는 미용 가운과 가발이 들어 있었다. 특성화고 뷰티학과에 다니는 그는 겨우내 미용 시험을 준비하느라 미용학원에 다녔는데, 학원에 못 가는 친구한테 과외 수업을 하러 간다고 했다. “저도 실기 시험 본 거 떨어질지 모르는데, 누굴 가르쳐 준다는 게 우습죠.” 그는 수줍게 웃으면서 과외비도 받는다고 했다. 얼마나 받느냐고 묻자 아이는 친구가 저녁을 해준다면서 중학교 때부터 자취하는 친구가 라면은 잘 끓인다고 했다. 그는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친구 집에 갈 테니 나는 시청에서 온 안내 문자를 그에게 전달하면서 꼭 마스크를 하고 다니라고, 웬만하면 집에 있으라고 일렀다. 그러고는 어서 세상이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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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교사도 학생도 떠나고 싶어하는 학교 기차역에서 한 시간쯤 버스를 타고 낮은 산 아래 이어진 에움길을 돌아가야 닿는 중학교는 평화로워 보였다. 전교생이 2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는 봄이면 벚꽃잎이 날리고, 여름이면 학교 뒷산을 아까시꽃이 하얗게 뒤덮는다고 했다. 학생들이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간 늦은 오후 학교 숙직실에 모인 교사들은 커피를 마시며 학교가 참 예쁘다고 얘기하다 웃으며 말했다. 학교는 학생들만 없으면 정말 좋다고. 직장인들이 할 법한 말이라 한때 직장인이었던 나도 같이 웃었다. 우연히 만난 이는 청춘을 교단에서 보낸 뒤 마흔 살 넘어 명예퇴직했다면서 아침마다 지옥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로 한동안 그 학교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 싫어서 먼 길을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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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아르바이트생의 소중한 꿈 겨울의 끝이 보인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계절은 바뀔 것이다. 봄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도 움트고 있어 어느 날 아침 창밖을 내다보면 앙상한 가지만 남았던 나무에 나무눈이 파릇할 것이다. 이렇게 일 년 내내 몸은 움직이지 않고 방구석에 앉아 보일러 온도만 올리고 내리는 나 같은 사람은 계절을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듯 얘기한다. 봄은 잎이 돋고, 여름은 우거지고, 가을은 낙엽이 구르고, 겨울은 잿빛이고…. 식상한 말로 계절을 맞이한다. 그런데 아르바이트 4년 차인 열아홉 살 청년의 계절은 달랐다. 그는 계절을 아르바이트 업종으로 구분한다. “사시사철 좋은 건 편의점이에요. 여름에는 배 봉지 씌우기, 겨울에는 택배 상하차 일이 하기 좋은데 힘들긴 진짜 힘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