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분노할 때는 이미 늦은 것

김해원 동화작가

오랫동안 공장에서 문짝에 시트 붙이는 일을 하면서 몸 쓰는 일에는 이골이 난 아버지는 설렁탕 가게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열일곱 살 아들이 주방 일까지 한다는 말을 무심히 들었다고 했다. 칼이라고는 과일 깎는 칼이나 쥐어봤을 아들이 식당 주방에서 양파를 썬다고 했을 때도 무심하게 넘겼다. 아들이 양파를 썰다가 손가락을 다쳐 피가 나는 손가락을 쥔 채 집으로 왔을 때, 병원에 가서 상처를 꿰매고 나서야 아버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날 선 칼날이 양파가 아니라 아들의 손가락을 자를 뻔했는데 식당 주인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에 분노한 아버지는 식당으로 한달음에 쫓아가서 따졌다. 홀 서빙을 하는 애를 왜 주방 일을 시켰느냐, 손가락을 여러 바늘 꿰맬 만큼 다쳤는데 어떻게 아이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느냐. 아버지의 탄식에 식당 주인은 무심히 말하더란다. 별로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랬다고.

김해원 동화작가

김해원 동화작가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평택항에서 일하던 청년이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제대하고 복학을 앞둔 청년이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나가 일을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볼 때 나는 차 안에 있었고, 마침 라디오에서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했을 한 청년의 젊은 날의 꿈이 무참하게 꺾이고 말았다는 기사에는 애통한 심정을 표현한 댓글 수십개가 달려 있었다.

이선호씨의 허망한 죽음의 이유는 수년간 산업현장에서 날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죽음과 같았다. 컨테이너에 고정핀이 제대로 장착되지 않았고, 중량물 취급 작업을 할 때 신호나 안내가 있어야 했는데 없었고, 지게차의 활용이 부적절했고, 보호 장구를 지급하지 않았고.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에 의한 인재. 노동부가 발표하는 사망 사고 결과 발표는 매번 똑같다. 청년 노동자의 죽음만 보더라도 컨테이너를 스크린 도어로, 컨베이어 벨트로 명사만 바꾸면 동사는 애써 따로 써넣지 않아도 될 판이다. ‘총체적’이란 관형사도 매번 등장한다.

결국 수년간 노동 현장의 안전 문제는 총체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일터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이 법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간다고 해도, 변화는 더뎌서 당장의 죽음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처벌법에만 떠넘기고 뒷짐 지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정부는 단 한 사람이라도 일하다 죽지 않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총체적인 안전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안전관리를 위한 비용을 절감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부당한 노동에 대한 경각심을 학교에서부터 교육해야 한다.

정부도, 일하는 이들도 무엇 하나 무심히 넘기지 말아야 한다. 죽은 뒤에야 유심히 들여다보지 말고 처음부터 무심히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죽음에 분노하면 늦는다. 부당한 것 하나하나에 모두 분노해야 한다. 홀 서빙을 하는 아이에게 주방 일을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분노하고, 바로 치료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낸 것에 분노하고, 타인의 고통을 무심히 바라본 것에 분노해야 한다. 모두 자기 일처럼 분노해야 한다. 그래야 양파를 썰다 손가락을 다친 아이가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안전하게 일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젊은 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더는 총체적인 인재라는 말을 쓰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분노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대기업 총수들과 마주할 시간이 있다면 다시는 일터에서 자식을 잃는 부모가 없어야 한다고 간절하게 소리치는 이들과도 마주 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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