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
퇴계학연구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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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19세기 한·중·일 선택의 현재 19세기 중반을 지나며 중국, 일본, 한국에서 비슷한 내용의 사회 혹은 정치사상이 대두했다.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가 그것이다. 그 내용은 비슷했고, 동시에 당시 각국 상황과 밀접히 관련됐다.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치러진 제2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완패했다. 곧 그들의 본격적인 침략과 약탈이 중국 안에서 가속화될 것이 명백했다. 중체서용은 중국의 전통 가치를 몸통(體)으로 삼고,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 청 왕조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근대화 전략이었다. 전통 가치의 핵심은 중국의 사회·정치적 기득권 구조, 즉 권력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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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실 660년 7월18일 백제 의자왕이 사비성에서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백제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었다. 백제의 지방군이 거의 온전히 남아 있었다. 백제의 운명은 3년 뒤 663년 8월에 치러진 백강구전투로 결정되었다. 이는 나당연합군 대 백제부흥군·왜국 연합군이 지금의 금강 하구에서 맞붙은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대전급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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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환갑을 맞는 자세 몇년 전부터 가까운 선배들이 하나둘 환갑을 맞더니 어느덧 친구들과 필자도 그 선을 넘고 있다. 선배들이 환갑을 맞았을 때 작은 선물이라도 건넬 생각은 못했다. 평균 기대 수명이 60세에 훨씬 못 미쳤던 시대에 만들어진 풍습이 지금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 자신도 그 시간 앞에 서자 삶의 전환점으로서의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어떤 문제든 자기 문제와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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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세금 내는 니콜라 최근 프랑스에서 연이어 총리가 바뀌고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그 가운데 ‘세금 내는 니콜라(Nicolas paie)’라는 가상의 인물이 유명해졌다. 고물가와 높은 세금에 시달리지만, 긴축 재정으로 인해 복지 혜택이 축소되는 중산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프랑스 정부 정책이 어쩔 수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국가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115%이다. 2010년대 유럽 재정위기를 겪은 국가들 수준이다. 부채 증가의 원인은 연금 지급 대상의 빠른 증가다. 니콜라는 자신의 미래 연금을 위해 세금을 내지만, 그의 미래 복지는 불확실하고 현재 그가 내는 세금은 큰 부담이다. 프랑스의 현 상황은 많은 ‘선진국’도 직면한 것이고, 한국도 조만간 만나게 될 위험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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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삼법사 지난 9월26일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나흘 뒤 검찰청 폐지와 기획재정부 분리를 핵심으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창설된 검찰청은 내년 10월1일 법률이 공포되면 새로운 정부 기관들로 개편된다. 이번에 검찰청을 개편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검찰이 보여주었던 선택적 수사와 기소 편의주의를 들었다. 그에 따라 조직 개편의 방향으로 검찰이 독점했던 수사와 기소 기능의 완전한 분리를 통한 민주적 통제 확립을 강조했다. 그동안 검찰이 수사해야 할 일을 수사하지 않거나, 수사할 일이 아닌 것을 수사해 기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회 여론이 뒷받침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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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평택 미군기지의 지정학 음력 660년 6월18일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대규모 함선들을 이끌고 중국 산둥성 라이저우시를 출발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배 1900척이 동원되었다. <삼국사기>는 “많은 배들이 꼬리를 물고 1000리를 이어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를 함락시키기 위한 당나라의 13만 병력과 신라의 5만 병력 간 연합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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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조선시대 인물 평가 사람들은 조선왕조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로 조선시대의 치열한 당파 싸움, 즉 당쟁을 든다. 그런데 지금의 여당과 야당을 보면 달리 생각해야 할 듯하다. 여당과 야당의 다툼이 조선시대 당쟁보다 덜하지 않다. 그런데, 권력을 두고 대립하는 정치집단 사이에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인들 갈등과 다툼이 없겠는가? 국익보다 당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흔한 일이다. 모두의 이익보다는 내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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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이이의 걱정, 우리의 걱정 윤석열 정부도 집권 초기부터 개혁을 말했다. 검색해보니 국무회의에서 “의료, 연금, 노동, 교육 4대 개혁이 곧 민생”이라는 커다란 글씨를 배경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언하는 사진을 담은 2024년 10월29일자 기사가 뜬다. 많이들 그랬겠지만 지난 정부에서 국정 개혁이 실제로 이뤄지리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국정 개혁은 국정 최고 권력자가 단지 주장하거나 명령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쉬우면 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드물다. 개혁은커녕 전임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정부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기초적 이해도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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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말과 정치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1581년(선조 14년) 10월11일,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 낮에도 캄캄하고 천둥 번개가 크게 쳤다. 닷새 뒤 임금이 이 재이(災異), 즉 기상이변에 대해 대신들을 맞아 자문했다. 영의정, 6조 판서, 한성판윤 등이 입궐했다. “천변이 비상하니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는가”라고 임금이 물었다. 조선시대에는 ‘천견설’ ‘천인감응론’이라는 이론이 있었다. 임금이 덕을 잃으면 하늘이 재이를 일으켜 꾸짖고, 인간의 행위와 하늘의 현상이 상호작용한다는 주장이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보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비중이 훨씬 높았기에 사람들이 자연현상에 더 민감했다. 그래도 임금과 신하들이 두 이론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재이가 발생하면 국정의 잠재적 위험과 문제점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곤 했다. 실제로 재이 대응책을 묻는 임금의 태도가 다소 형식적이자 호조판서 이이가 이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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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조선의 법전, 대한민국의 헌법 조선은 법전(法典)의 나라였다. 건국 직후부터 법전을 편찬하기 시작해서 국운이 기울어가는 19세기 중반에도 법전 편찬을 그치지 않았다. 조선 건국 후 2년 만인 1394년에 <조선경국전>이 나왔다. 건국에 공이 많고, 건국 직후 조선이 제도적 기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정도전의 저술이다. 3년 뒤 1397년에는 조선왕조 최초의 공적인 법제서인 <경제육전(經濟六典)>이 나왔다. <조선경국전>이 정도전 개인의 저술인 반면에 <경제육전>은 좌의정 조준의 책임 아래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편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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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탄핵에 대한 두 의문 1980년 전두환에 이어 2024년 12월3일 현직 대통령이 44년여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판결로, 이것이 불러온 위태로운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이 거리와 광장에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인터넷과 TV를 통해 재판을 지켜보며 애태운 끝에 나온 결과다. 상황은 국면을 바꿔 이어지고 있고, 현실이 정상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이 전체 상황은 형사재판을 통해 검토될 것이고 이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반추하겠지만, 그것과 다소 다른 차원의 의문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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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엘리트의 자격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사대부(士大夫)였다. ‘사’는 독서인이자 지식인이고, ‘대부’는 정부 관리나 정치인이다. 사제와 기사가 지배층을 형성했던 대부분의 서구 전근대 사회와 다른 점이다. 이들 사대부 중에 일종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들이 있다. 정치인·관리 중에 종묘에 배향된 이들과, 지식인 중에 문묘에 배향된 인물들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수도 훨씬 적고 사회적으로 더 명예스럽게 여겨졌다. 문묘는 유교를 창시한 공자의 사당이다. 성균관과 향교에 있는 문묘에 조선시대를 통틀어 모두 14인이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