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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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한국 근현대음악관’의 필요성 사는 곳 근처에 홍난파 가옥이 있다. 이 작곡가가 1935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6년간 말년을 보낸 집이다. 걸어서 불과 20분 거리인데 찾아가 본 건 이사 온 지 한참 후였다. 윤동주문학관이나 박노수미술관처럼 널리 알려진 장소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많은 음악가들처럼 홍난파는 한국 근대음악사의 아픈 과거여서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홍난파 가옥 인근엔 백범 김구의 마지막 거처였던 경교장,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외신으로 처음 보도했다는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집(딜쿠샤)도 있다. 언덕을 내려오면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문받았던 서대문형무소가 보인다. 건너편에 있던 옥바라지골목은 몇 년 전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형무소는 일제와 군부독재 시절 불의에 맞섰던 수많은 이들의 고통이 새겨진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주변은 아파트촌으로 변모했어도 도심의 골목길 구석구석에는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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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한국의 클래식 작곡가들을 위하여 12년 전 예술학교에서 ‘한국 작곡가와 작품’이라는 수업을 개설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재단의 ‘보호학문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예외적으로 한 학기만 열린 수업이었다.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알고 있는 한국 작곡가의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이 신통찮았다. 윤이상이나 진은숙은 그나마 관심 있는 일부의 답변이었고, 학교에 재직 중인 작곡과 교수의 이름 정도가 거론되었을 뿐, 홍난파나 안익태조차 그들에게는 낯설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전공했다 해도 자신이 연주하는 고전 작곡가들 외에 창작음악을 접할 길이 별로 없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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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누구나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는 세상 언제부턴가 공원이나 거리에 형형색색으로 채색된 피아노가 나타났다. 지나가던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순간 설치작품처럼 서 있던 물체는 악기가 되고, 귀를 사로잡는 음악이 연주될 때면 일상의 장소는 예술 체험 공간으로 변모한다. 2008년 영국 버밍엄의 한 설치미술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거리 피아노’는 5년 후 국내에서 ‘달려라 피아노’라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가정이나 회사에서 쓰지 않는 피아노를 기증받아 전문가의 수리·조율을 거친 후 아티스트의 디자인을 입혀 누구나 연주하고 즐길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이후 광화문과 선유도공원, 서울숲과 경의선숲길 등지에서 페스티벌을 열며 전국 곳곳에 아이디어를 확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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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저마다의 베토벤 연말이면 여기저기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려 퍼진다. 1824년 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첫선을 보인 음악은 오늘날 세계 각지 송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한 해를 보내며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 희망찬 내일을 맞으려는 마음이리라. 4악장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 주제는 누구나 쉽게 흥얼거릴 만큼 유명한 곡조다. 말년의 베토벤은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에서 청년 시절 품었던 실러의 시를 합창으로 노래하게 했다.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되노라.” “얼싸 안으라 수백만의 사람들아.” 이 교향곡은 반목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가 필요한 순간이면 어김없이 소환되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도. 2001년에는 인류 평화의 상징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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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음악 콩쿠르를 대하는 자세 모든 것이 경쟁으로 점철된 시대다. 신자유주의 시대 전 세계가 그러하지만, 유독 우리 사회가 심한 듯하다. 뭐든 이겨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어디서든 ‘최고’라는 수식어가 난무하는 걸 보면 말이다. 조선족으로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비교문화를 전공한 한 연구자는 한·중·일 세 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로 한국 ‘최고’, 중국 ‘중심’, 일본 ‘최신’을 꼽지 않았던가. 클래식 음악계라고 예외일 리 없다. 음악가 프로필에 등장하는 ‘수석 졸업’ 같은 문구는 참으로 한국적인 발상이고, 콩쿠르에 대한 집념은 어려서부터 직업 음악인이 되기까지 그야말로 최고 수준이다. 한국 젊은이들의 국제콩쿠르 우승이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을 만큼 흔한 일이 되었음에도 콩쿠르에 대한 과도한 열기가 줄어들지 않는 건, 취약한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 콩쿠르 입상만큼 자신을 손쉽게 드러내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콩쿠르 입상이 곧 좋은 음악가임을 보증하는 건 아니다. 실력과 개성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해나간 사람만이 직업 음악가로 살아남는다는 당연한 사실이 콩쿠르에 열광하는 사회에서는 쉽게 간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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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아듀,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2006년 시작된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뭐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지만 13년간 일궈온 서울시향의 핵심 콘텐츠가 없어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스 노바’는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였던 진은숙이 만든 프로그램. 2005년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한 서울시향이 국내 최초로 상임작곡가 제도를 도입해 세계무대에서 활약 중이던 진은숙을 불러왔을 때, 20년 만에 고국에서 활동하게 된 작곡가는 자신의 작품 연주보다는 뭔가 한국 음악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현대음악 연주회와 마스터클래스로 진행되는 ‘아르스 노바’는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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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김민기와 ‘지하철 1호선’, 그 한결같은 기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돌아왔다. 1994년 첫 공연 후 2008년 40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그 작품이 10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원작자인 독일 그립스 극단의 내년 창단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된 걸 계기로 12월까지 열리는 100회 한정 공연이다. 15년간 70만명이 관람했다는 이 공연을 처음 본 건 2000년대 초, 베를린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였다. 독일 원작을 한국 상황에 맞게 번안했다는데, 독일 빛깔 전혀 없는 한국 정서에 자연스러운 우리말 노래여서 원작을 완전히 바꿨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 2000회 기념으로 내한한 그립스 극단의 공연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무대도 노래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토록 베를린 느낌 물씬 풍기는 공연이 어떻게 서울의 풍속화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분명 번안과 연출을 맡은 김민기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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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공연장 넘어, 전시장으로 들어온 음악가 음악의 거처는 어디일까? 대개 음악이 기거하는 장소는 그 음악이 만들어지고 향유되던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 곳곳의 콘서트홀이 19세기 번성했던 교향악에 최적화된 공간이라면, 20세기 후반 등장한 전자음악이나 일상의 소음을 소재로 한 실험 음악, 사운드 아트나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같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은 어디를 거처로 삼을 수 있을까? 지난 5월 말 남산자락에 개관한 한 전시공간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라이프, 라이프’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전시장으로 들어온 음악가가 낯선 건 아니다. 현대음악을 배우러 독일로 간 백남준이 1963년 부퍼탈에서 연 첫 개인전이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 아니었던가. 갖가지 소리가 해체·재구성된 ‘소리 콜라주’, 우연과 즉흥의 오브제로 변형되는 ‘총체 피아노’,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되는 ‘인터랙티브’ 소리 작업 등으로 전시공간을 뒤덮으며 백남준은 전통적인 음악 관습을 전복하고 새로운 음악의 존재론을 펼쳤다. 4년 전 베를린에서 본 데이비드 보위 전시회도 떠오른다. 2013년부터 5년 동안 전 세계 12개 도시를 순회했던 이 전시회에는 대중문화의 최전선에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온 아티스트의 공연 실황과 뮤직비디오, 각종 영상 자료, 무대 의상과 세트 디자인, 앨범 아트와 자필가사 등 볼거리가 넘쳐났다. 이때 스피커와 헤드폰을 동반한 시청각적 경험이 중요했음은 물론이다. 이번 사카모토 전시회는 전시장이 음악가의 청각적 상상력을 구현하는 음향 공간으로 변모하며 새로운 음악의 거처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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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사회참여적 음악가로 살아가는 이들 지난달 개봉한 프랑스 영화 <라 멜로디>는 중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파리 변두리 초등학교의 임시 강사로 부임해 천방지축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과 함께 변화해가는 내용을 다룬다. 클래식이라곤 접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처음 만져보는 바이올린으로 몇 달 후 콘서트홀 무대에서 ‘셰에라자드’를 연주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이 그의 과제. 연주자로서의 삶 외에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 없던 음악가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점차 행복감을 느껴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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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전통음악이 깃든 장소들 한때 국립국악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토요상설 국악공연’의 전통음악 레퍼토리를 섭렵해볼 심산이었는데, 예악당 큰 무대에서 스피커를 통해 전해진 연주들은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종묘제례악을 현장에서 듣겠다며 5월 따가운 햇살의 종묘 마당에 앉았을 땐 ‘밤에 해야 멋질 텐데…’ 힘들기만 했다. 2000년대 초의 일이다. 오히려 잊지 못할 장면은 1986년 창덕궁 옆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봤던 사물놀이 상쇠 고 김용배 추모굿. 1990년대 초반 지리산 자락에서 들은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였다. 공간사옥 앞마당까지 가득 메운 인파 속에 처음 본 굿판이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면, 학술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초야의 한 노인이 들려준 역동적인 가야금 소리는 전통음악을 온몸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몇 년 후 석 달 속성으로 배운 가야금을 들고 독일 유학길에 오른 것은 그때의 경험에서 촉발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후반 베를린에서 본 박병천의 진도 씻김굿과 김금화 만신의 진오귀굿 공연도 기억에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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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서사가 있는 음악회 작년 이맘때 출간되어 크게 주목받은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은 스탈린 시대를 온몸으로 버텨낸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권력 앞에 나약한 예술가의 복잡한 내면과 고뇌를 그려내며, ‘체제에 순응해 살아남은 비겁한 작곡가’ 혹은 ‘음악으로 압제에 은밀히 저항한 예술가’라는 이분법적 평가로는 가닿을 수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문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얼마 전 발간된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라는 부제처럼, 혹독한 전쟁 시기 탄생한 교향곡 7번을 둘러싼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구성한 역사서이자 작곡가의 모습에 한층 다가갈 수 있는 평전이다. 솔로몬 볼코프가 쓴 쇼스타코비치 회상록 <증언>이 널리 읽혔음에도 그에 관한 책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음악만큼 격동의 현대사와 맞물려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곡가가 드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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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남북이 공유하는 음악 6년 전쯤 독일에서 출간되는 현대음악 사전에 ‘코리아’ 항목 원고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별 어려움 없이 쓸 거라 여겨 수락했는데, 요청사항에 북한 현대음악도 들어있어 멈칫 당황했다.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기도 했거니와 ‘코리아’에 북한도 포함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야 인식했기 때문이다. 고착화된 분단은 다른 한쪽의 존재조차 의식에서 지워버렸던가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폐쇄된 사회, 지척에 놓여있으나 심리적으로는 머나먼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