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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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ISD, 전문가란 무엇인가 최근 민변과 참여연대가 함께 ISD(투자자-국가 분쟁) 제도의 개선 및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ISD라는 제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던 시작부터 끝없는 논란을 불러왔던 제도였다. 민간의 투자자들이 협정 상대국 국가의 정책과 조치가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판단할 경우 국제 중재를 걸어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로서, 국가의 경제 주권을 무너뜨리고 국제 투자자들과 법률 집단의 잇속만 채우는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나도 여기에 얽힌 기억이 있다. 논쟁이 촉발되었던 2006년 ISD 제도의 문제점을 경고하는 책을 낸 적이 있었다. 나는 관료, 학자, 법률가들에 의해 공석과 사석에서 조리돌림을 당하였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어처구니없는 괴담을 퍼뜨려 불안을 조성하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제도는 완벽하게 안전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이익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이며, 이 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국제법도 국제 경제도 모르는 문외한들의 무지의 소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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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혁신 성장엔 ‘재정 확장’ 필수 정부의 재정 정책은 사실상 긴축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기조에서는 정부가 내건 소득주도성장은 물론 혁신 경제라는 목표 또한 달성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 그리고 이와 함께 벌어지는 사회적 변동을 지혜롭게 아우르고 조화시켜 새로운 산업사회를 건설해야 할 변혁기에 있다. 국가의 재정 구조를 (세수에서나 지출에서나) 더욱 적극적인 방향으로 확대해야 하는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여기가 바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였던 슘페터와 케인스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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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동물 국회, 메아리 방, 의회 정치 오늘은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4월30일 행한 여론조사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국회의 패스트트랙 처리를 긍정적으로 보는 여론은 51.9%,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은 37.2%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후자가 무려 37.2%나 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동물 국회’의 저 끔찍하고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 국민들은 한마음 한뜻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후의 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엄격한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은 45.9%에 그친 반면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정치적으로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은 오히려 47.2%로 오차범위 안에서나마 더 높게 나타났다. 사회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 정당 해산 청원이 100만을 돌파하여 200만을 향하여 가고 있건만, 사회 전체 여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랫목은 펄펄 끓어 이불이 탈 지경이지만 윗목은 냉골이라 고드름이 열리는 옛날 한옥집 사랑방의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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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왜 흑자 재정인가 정부의 통합재정수지가 31조원을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실업의 고통이 가중되고 디플레이션 위협이 출몰하는 가운데 정부가 재정 긴축의 고삐를 바짝 잡아당기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서 관리재정수지는 여전히 10조원 정도의 적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관리재정수지도 추세로 볼 때 그 적자 규모가 지난 4년간 거의 4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점을 보면 정부의 재정 편성 기조가 어떤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지는 명백하다. 국가 재정과 관련하여 오늘날까지 경제학자들과 관료들과 정치가들의 의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오래된 관념이 있으니, ‘균형 재정’의 강박증이다. 이는 서로 다른 몇 가지 생각이 중첩되어 구성되어 있다. 첫째, 나라 살림도 집안 살림과 다르지 않으므로 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은 방종이며 결국은 과도한 부채로 인해 파산의 길을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정주부로서 살아온 오랜 경험으로 볼 때 부채는 무조건 나쁜 것입니다.” 영국의 대처 총리가 내놓았던 이 무지막지하지만 직관적으로 대단히 호소력 있는 명제는 오늘날까지도 경제학과 경제 정책의 방향까지 결정해 버렸다. 둘째, 국가의 재정 확대 특히 적자 재정은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빼앗아가서 그 활력을 죽여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잠깐 반짝 경기를 호전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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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보편적 복지에 대한 회의 우리나라에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쟁이 대중적으로 벌어진 계기는 무상급식 논쟁이었던 듯하다. 그때까지 복지란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돕는 것이라 여겨졌지만, 그 논쟁을 계기로 복지는 발전된 산업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보편적 삶의 권리로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는 복지국가 운동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우리나라도 복지국가의 건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중산층 심지어 중상층까지도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굳건히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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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영화계, 후졌다 지난달 26일 또 한 사람의 영화 노동자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고인은 사망 전 일주일 동안 하루 평균 14시간 30분씩 주 73시간 33분을 일했다. 밤샘 작업으로 새벽에 퇴근하고 그날 아침에 또 출근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영화 및 드라마 산업에서의 장시간 노동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홍태화 사무국장의 글을 보자. 2015년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OECD 월평균(142.16시간)보다 영화는 169.74시간, 방송은 213.24시간 더 장시간 근로하고 있으며, 한국 월평균(171시간)보다 영화는 140.9시간, 방송은 184.4시간 더 장시간 근로하고 있다. 결국 영화 및 방송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장시간 근로를 하는 한국 일반노동자보다도 2배 더 장시간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영화 노동자들의 외침이 계속 있어왔지만, 업계도 정부도 모르쇠였고 이 살인적인 노동 조건은 지금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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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학, 랭킹에서 나오라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겐트 대학은 세계 대학 순위 50위에 드는 유수한 대학이다. 이 대학의 총장은 올해 초 연설에서 새로운 대학 모델로의 전환을 내걸면서 무의미한 “랭킹” 경쟁에서 빠져나오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큰 방향은 “대학을 관료들의 손에서 학자들의 손으로”라는 것으로서, 연구자들, 여러 학과, 다른 대학과의 무의미한 순위 경쟁으로 인해 낭비되는 시간과 자원 그리고 진정한 지식 탐구를 방해하는 온갖 관행들을 철폐할 것을 표방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조치의 하나로 2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개인, 학과, 대학에 대한 각종 평가를 5년 단위로 늘리는 개혁을 약속하였다. 이 사례에서 고무된 우리들은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학의 혁신과 개혁이 현행의 “랭킹”이라는 관행과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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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국은 ‘신분제 산업 사회’인가 분명히 산업의 합리성과 효율성의 논리는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는 사람을 여러 등급으로 나눈 뒤 힘들고 위험하고 하기 싫은 일들은 ‘아래’에 있는 이들에게 몰아서 시키면서 박한 처우와 신분의 불안정으로 내모는 전통 사회의 신분제와 심하게 닮아 있다. 200년 전 프랑스의 생-시몽은 이제 전통적 미신과 권력의 논리로 조직되는 옛날의 사회는 사라지고 오로지 과학과 산업의 합리성과 효율성의 논리로 조직되는 ‘산업 사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들은 한국이 과연 이러한 의미에서의 ‘산업 사회’인지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져간 비정규직 노동자의 참혹한 죽음을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위험하고 힘들어서 산업 재해의 위험이 크게 따르는 업무들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밀어 놓는 구조가 안착되었다는 지적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들도 산업 재해에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사회 전반에 팽배한 안전 불감증이 문제라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제의 서부발전주식회사가 지난 몇 년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4명이나 산업 재해로 목숨을 잃는 와중에서 ‘무재해 사업장’으로 표창을 받고 정직원들에게 상여금까지 지급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관행이 다른 시설 관리 업계에도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그릇된 것인가?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이러한 관행에 도대체 어떤 ‘산업의 합리성과 효율성’이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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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87년이냐 91년이냐 권경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1991년, 봄>이 영화관에 걸렸다. 민주주의와 민중해방을 외치며 10명이 넘는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이른바 유서대필이라는 황당무계한 이유로 강기훈이라는 청년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1991년 5월과 그 후의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이다. 당시를 몸소 겪고 기억한 분들은 도저히 이 영화를 보러갈 용기와 엄두가 나지 않으실 수도 있겠다. 나도 힘겹게 망각 속으로 밀어 넣었던 그날들의 기억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이 너무 두려워 한참을 주저한 끝에 가방 속에 소주 두병을 숨겨서 겨우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가서 보시라. 영화는 우리를 고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 그 시절을 겪으며 아물지 못한 상처를 마음에 지고 살게 된 이들은 극장을 나올 때 후련하면서도 정제된 마음으로 영혼의 ‘대속’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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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시어스의 파산과 도시의 변화 미국 백화점 체인의 대명사인 시어스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이미 1990년대부터 값싼 중국제 물건들을 앞세운 월마트 등 할인업체의 도전에 부딪혀왔다. 최근 10년간에는 파상적으로 확장하는 아마존에 거의 속수무책으로 고객을 빼앗기다가 드디어 이런 지경에 처한 것이다. 시어스는 19세기 말 상품의 목록을 우편으로 보내서 우편 주문과 배송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업체로 시작하여 ‘19세기의 아마존’이라고 불렸다. 그랬던 시어스가 현실 세계의 백화점 공룡으로 변하여 어찌 보면 자신의 후예라고 할 아마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와 분석이 안팎으로 넘쳐나고 있으니 여기에서는 한발 물러나서 좀 동떨어져 보이는 큰 역사적 변화의 그림 속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21세기의 ‘새로운 도시 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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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출산율과 ‘여성 기본소득’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염려는 해묵은 이야기이며, 이것이 극복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 또한 보수와 진보가 한목소리를 내어온 문제이다. 이러다 ‘배달민족’이 소멸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초월적·거시적 관점도 있으며,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로 인한 잠재 성장률 하락을 걱정하는 실용적 관점도 있지만 결론은 항상 무조건 출산율 제고의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여기에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도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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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붉은 깃발법’의 진정한 교훈 문재인 대통령이 ‘붉은 깃발법’을 언급하였다. 1865년 영국에서 통과된 법으로서, 자동차는 도심에서 시속 3㎞ 이상으로 속도를 낼 수 없으며 그 전방 50m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 셋이 걸어가면서 자동차가 온다는 것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는 법이다. 문 대통령은 이 예를 들어 우리도 인터넷은행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은산분리라는 ‘낡은 규제’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역설하였다. 현대인이라면 누가 보아도 우스꽝스러운 법이다. 하지만 1865년의 도로는 오늘의 도로가 아니었고, 그 ‘자동차’ 또한 오늘의 자동차가 아니었다. 당시의 도로는 포장이라고 해봐야 돌을 깔거나 박아 넣은 정도로 지나가는 말들의 발굽과 마차 바퀴에도 쉬이 망가지는 취약한 도로였다. 그리고 자동차 또한 증기 기관차였기에 크기와 중량도 엄청나서 (폭이 2.7m에 무게가 14t) 길을 막기 일쑤였던 데다, 조금만 속도를 올리면 무시무시한 소음과 증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당시 도로의 주된 통행자들은 말과 마차였다. 따라서 이러한 도로에서 그 ‘자동차’가 막 달릴 경우 도로 파손의 위험이 없지 않았고 말들이 놀라 날뛰게 만들어 큰 사고를 낼 위험도 높았다. 즉 당시의 기술 수준과 사회 관행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정당화될 만한 법이다. 이후 기술 진보를 통해 내연 기관이 확산되고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게 되자 1890년대에 들어서 없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