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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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참여소득제’에 주목하자 재난지원금 지급을 거치면서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도 그 정책의 파격적인 상상력에 주춤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무엇보다도 아무 대가 없이 지급한다는 ‘무조건성’이라는 기본소득 원칙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고 보인다. 이런 이들에게 기본소득과 무척 닮아있지만, 이 ‘무조건성’의 원칙 대신 ‘사회적 가치를 갖는 활동’이라는 조건을 내건 참여소득제의 개념에 관심을 갖도록 권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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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용보장제에 주목하라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미국과 영국의 진보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고용보장제’라는 정책이 있다. 장기 실업에 빠진 사람들 중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정부의 재정으로 최저임금에 일정한 수당 패키지를 더한 임금으로 고용하여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이다. ‘자연 실업률’로 대표되는 주류 경제학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 무슨 황당한 포퓰리즘이냐고 여겨질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노동시장이 곳곳에서 붕괴하고, 다시 활발한 고용이 민간 부문에서 살아나는 날을 기약하기 힘들게 된 지금 이 정책은 많은 이들이 심각하게 고려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기본소득만큼이나 익숙한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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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래가 온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궁지에 몰렸던 인류는 2020년 말 여러 백신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간신히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2021년은 아무쪼록 코로나19를 퇴치 혹은 정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빈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2021년이 시작되는 지금, 우리의 다짐은 이러한 미래의 급격한 도래라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적응과 대응으로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면서 그러한 미래의 세상을 열어나가겠다는 담대한 약속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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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개문발차’의 백신 접종 코로나19가 온 지구를 덮친 올해, 미국과 유럽 여러 국가는 국민들 다수의 ‘불신’과 ‘불만’에 직면했다. 한편으로는 국가가 코로나19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질병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불만에 휩싸여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가 내놓는 정보와 지침 그리고 취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극심한 불신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시민들의 각종 불복종 행동이 일상화되어가고 있으며, 미국은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집단으로 갈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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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트럼프는 살아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볼 때 미국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 보인다. 트럼프 측에서 소송 등 딴지를 걸겠지만, 대세는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트럼프는 버틸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갔던 트럼프의 4년 시절은 이것으로 일단 종식되었다고 믿고 싶은 이들이 많지만, 최소한 당분간은 트럼프 진영의 결사항전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 결사항전의 성공 여부를 떠나, 악몽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는 혹은 트럼프현상은 끝나지 않는다. 지난 4년간 미국 국내에서나 세계적으로나 트럼프에 대한 비판과 비난과 욕설은 차고 넘쳤고, 그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무뢰한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그런 황당한 인물이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라는 불편한 질문은 대부분 회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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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나훈아씨에 대하여 나는 1987년과 당시의 사회 상황을 아주 잘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 떠도는 거짓말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불법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대해 모든 시민들이 분노했고 그래서 1987년의 6월항쟁으로 터졌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다. 1987년 3월부터 6월까지 열심히 시위를 구경했던 나는 안다. 화염병 등의 시위 도구를 나르던 여학생들은 심한 고초를 당했고, 현장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학우들이 잠깐 5분 정도의 ‘해방구’를 만들어 “제헌의회”니 “민주정부”니 하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장사 안 되고 도로가 시끄러워지니 “저놈의 빨갱이들 잡아가라”는 것이 최소한 1987년 5월까지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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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뉴딜 펀드’와 사회적 수익성 그동안 숱한 말을 낳았던 ‘뉴딜 펀드’에 대해 지난 3일 홍남기 부총리 등이 입장을 밝혔다. 말도 탈도 많았던 ‘원금보장’ 문제에 대한 설명도 분명했다. 정부 출자와 국책금융 등의 방법으로 이 펀드의 35퍼센트를 후순위로 투자해 밑돈을 깔아서 원금 손실이 민간 투자자들에게 돌아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두둑한 세제 지원이 더해진다. 국가가 책임지고 벌이는 사업이니, 35퍼센트 이상의 원금 손실이 벌어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목표 수익률은 그 전에 이야기 나오던 대로 대략 연 3퍼센트 이상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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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동산, 경제원론은 그만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해 수많은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아직도 원시적인 “수요와 공급의 시장 법칙” 운운의 경제원론 식 주장들이 범람하고 있다. 부동산은 내구재 즉 재화인가 아니면 주식·채권 등과 같은 자산인가? 전자라면 경제원론의 영역일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지식과 전문성을 지닌 이들이 이를 의식하지 못할 리 없건만, 막상 발언할 때는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 질문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피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질문에 답한다고 해서 뾰족한 해법이나 은색 탄알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뭉개고 간다면 영원히 똑같은 혼란이 반복될 것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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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A씨, 당당하셔요 A씨. 힘내세요. 그 누구도 당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런 뻔뻔한 자들이 있다면 저부터 우리 모두 당신과 함께 서서 막아내겠습니다. 법적으로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길은 막혔습니다. 자초지종이 제대로 드러날지도,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을지도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영원히 A씨로 남게 될 듯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우리이니 앞으로도 서로 알게 될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렇지만 어제 밤새도록 당신이 생각나서 못 잤습니다. 독자들께는 죄송하지만, 이 지면을 훔쳐서라도, 당신께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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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기본소득과 고용보험의 우선순위 기본소득이냐 전 국민 고용보험이냐는 논쟁이 일각에서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워낙 복잡하고 큰 주제들이라 거두절미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만 짤막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이 두 정책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므로, 양자택일의 문제로 논의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현재의 코로나19 사태라는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선후를 정하자면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이 제도가 전면적으로 채택된다면 향후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결정적인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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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실로 간특한 바이러스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말 밉다. 독성과 흉측한 모습만이 아니다. 우리 산업 문명의 운영 원리와 가치관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깔깔거리며 지켜보고 있는 그 간특함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선언되고 주요 산업국가들을 위시하여 수많은 나라들이 폐쇄 상태로 들어간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았지만, 벌써 대부분의 나라들이 폐쇄를 지속할 것이냐 완화할 것이냐의 갈등 상황으로 몰리고 있으며, 그중 후자 쪽으로 기울어 가는 나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확진자 증가율도 사망률도 줄어들고 있지 않지만 어쨌든 폐쇄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경제를 살린다고 이렇게 섣불리 폐쇄를 완화했다가 두 번째 물결이 시작될 경우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이라는 각국 보건 당국자들의 경고도 계속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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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회적 방역’에서의 ‘곡선 평탄화’ 많은 의료인들과 시민들과 공무원들의 헌신에 힘입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질병의 방역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지금, 우리가 시급히 착수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방역’이다. ‘사회체(social body)’라는 어휘에 잘 드러나 있듯이, 사회도 엄연히 몸뚱어리를 가진 생물학적 실체이다. 하지만 이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방역’의 전선은 바이러스와의 전선보다 훨씬 더 길고 꼬불꼬불하다. 바이러스가 파괴하는 것은 사람의 허파와 신체이지만,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터지는 일련의 사태는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게 되어 있다. 해저의 지진과 화산은 지층과 마그마의 문제이지만, 거기서 생겨나는 쓰나미와 그로 인해 파괴당한 원자력 발전소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들을 낳는다. 의료인들과 공무원들이 바이러스를 막는 1차 전선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면, 우리는 이제 그로 말미암아 터져 나오는 다양한 사회적 재난과 위험들을 막을 ‘사회적 방역’의 2차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