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화
한신대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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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스승은 왜 마당만 쓸게 했을까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무협영화나 소설에는 공식이 있었다. 우직한 주인공이 무공 높은 노인을 찾아가 제자를 자청한다. 대부분은 가족을 죽인 악당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급한데 스승은 명성과 달리 수년 동안 무술은 안 가르치고 잡일만 시킨다. 청소, 밥짓기, 물긷기, 장작패기 등. 자신이 문하생인지 가사 도우미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복수도 하기 전에 원수가 자연사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된다. 주인공이 내적 갈등을 겪는 동안 먼저 들어와있던 수제자가 속삭인다. “아무래도 저 사부는 가짜인 듯….” “이건 열정 페이, 노동력 착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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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유튜브, 신세계 혹은 망명지 유튜버로 불리는 1인 방송인이 초등학생들의 꿈 순위 상위에 올랐다고 한다. 연봉 수십억원을 버는 파워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와 함께, 1인 방송계의 유재석이라 불리는 ‘대도서관’이 스타로 등장한 지 오래라 놀랍지는 않다. 변화되는 미디어 환경을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관음증과 노출증에 빠진 철없는 이들의 일탈이나 근본 없이 돈 벌기에 눈먼 사회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부정할 수 없는 면들이 있다. 연예인을 선망하듯 유명 유튜버가 되겠다는 초등학생들로 인한 부모들의 고충이 들리고, 그저 관심 받기 위한 자극성 영상도 부지기수다. 스타가 되는 것은 당연히 하늘의 별 따기이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뼈를 깎는 일이고, 성공한 1%에 가려진 99%의 그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열풍에는 한때의 유행이나 사행심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많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핵심은 새로운 세대의 특성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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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무례한 사람과 공존하기 위한 정신승리법 강의를 하다 보면 젊은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사회생활하면서 심하게 개념 없고 무례한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힘든 질문이다. 나 역시 대처한다기보다는 견뎌내고 있는 삶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아서다. 해가 바뀌었지만 세상은 어김없이 소란스럽고, 사람들은 누군가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호소한다. 서점 매대는 무례한 자들로 인해 허약해진 자존감을 위로하는 책들로 가득한 지 오래다. 너도나도 남 탓만 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드는 세상 같기도 하지만, 그 아픔들이 남의 일일 수만은 없다. 선의를 왜곡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고, 공자님, 예수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일상의 고통을 직면하고 정신승리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니 몇 가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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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식과 교양의 경계에서 몇 년 전 영국에서 만난 루마니아 친구 올리비아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유럽으로 왔다고 했다. 처음엔 프랑스에서 일했는데, 드러나게 동유럽인을 차별하는 태도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파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파리지앵들이 살아가는 낭만적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 속내를 좀 아는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심한 무례한 이들이 많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결국 올리비아는 영국으로 옮겨 왔는데 영국인들은 단지 교양 있게 차별하더라고 얘기해 주었다.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나라들의 고충을 감안하더라도, 두 나라의 성격적 특성을 일부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혼네와 다테마예, 즉 속마음과 드러나는 예의가 다른 일본인과, 솔직함을 장점으로 주장하는 한국인 사이의 차이와도 비슷해 보인다. 어떠한 태도가 더 좋은 것일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지나친 솔직함은 부작용이 따르기 쉽지만, 예의를 갖춘다고 해서 늘 더 신뢰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정도와 상황에 따라 다르고 성향에 따른 선호도의 차이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