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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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지금 서울역 맞은편 양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이석기(가명)의 생애 구술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일곱 살 때부터 남의 집 살이를 했어요. 키도 작은데 논 물구덩이에 푹푹 빠지고 지게로 나락 져내고, 돈은 없이 밥이나 얻어먹는 머슴살이를 한 거지요. 열네 살 때 친구가 남의 집 쌀가마 하나를 훔쳐 같이 짊어지고 나오다 잡혀서 소년원에서 몇 개월 살고 나왔어요. 구두닦이, 넝마주이, 짐꾼, 청소, 심부름, 그냥 닥치는 대로 하면서 겨우 먹고살았어요. 가게일 도와주다 도둑 누명을 쓰고 소년원에 또 갔다 나와서, 열차 타고 무조건 서울로 왔어요. 주로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에서 파지를 주어 팔거나 짐 나르는 일을 했어요. ‘니야까’나 창고에서 자고 남산에서 노숙도 많이 했어요. 어느 겨울 남산 벤치에서 자다 새벽에 깼는데 눈이 수북이 쌓였더라고요. 저 눈에 묻혀 얼어 죽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에 울음이 나오더라고요. 전남 목포 신안에 있는 염전에 갇혀서 10년 정도 일했어요. 떼어먹힐 뻔한 돈을 겨우 받아 고향으로 가서 농사짓는 형에게 모두 주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주로 노숙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아무리 일해도 내 방 하나를 얻을 수 없었어요. 그러다 서울역에 나오는 목사 따라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에 갔고 거기서 수급자를 만들어줬는데, 십일조랑 감사헌금 내고 담배나 좀 사 피우면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몰래 도망 나와서 다시 서울역으로 왔다가 여기 양동에 방을 얻은 게 2019년이에요. 생전 처음 얻은 방이지요. 남들은 덥다 춥다 지저분하다 말이 많지만 저는 이 방 하나면 충분해요. 사방 벽 있는 내 방에서 자고 밥도 해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양동은 서울역도 가깝고 남산으로 산책도 갈 수 있어서 숨도 트이고 마음도 편해요. 이젠 지하철이 무료니까 서울이랑 경기도 가보고 싶은 데를 여기저기 다녀요. 나 살아온 거 생각하면 참 대단해요. 못 배우고 가진 것 없고 빽도 없어서 남한테 속기도 많이 속고 명의도용도 당하고 ‘니야까’로 남의 승용차를 긁어 모은 돈을 다 털어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그런데 재개발한다고 여기서 또 나가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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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민주당 버전 사기극 코미디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2007년 10월 말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안이고,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정권 말기였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2년 대선 후보 당시 노무현의 공약이었다. 노무현은 약속을 지킨 것인가? 당시도 지금도 나는 그의 진의를 믿지 않는다. 그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의지가 없었고, 임기 말 정부안 발의로 면피성 약속이행만 하는 척했다. 노무현의 진의가 어떻든 정부법안에 대해 인권운동진영은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나가는 활동을 했다. 일부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반대진영의 난리굿판이 벌어졌고, 결국 법무부안조차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 7개의 차별사유를 삭제한 채 주저앉았다.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운동에 대한 집단적 난리굿판은 그때 시작되었고, 시민사회의 적극적 법 제정 활동의 시작도 그때부터다. 노무현은 소란만 터뜨려놓고 물러났고, 이명박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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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생존을 밑천으로 몸소 쓴 글 작가나 전문가들의 글보다 기억과 생각의 흐름을 좇느라 오락가락 헤매다가 결국 글쓴이의 몸과 마음을 닮아버린 글들을 갈수록 좋아하게 된다. 오직 몸 하나로 살아온 사람들이 생존을 밑천으로 몸소 쓴 글을 자주 읽거나, 이제라도 써보겠다며 모인 자리에 끼어들 기회가 많은 것이, 내겐 행운이다. 읽는 이의 마음을 붙드는 조용한 악다구니도 많고, 자신의 생애와 머릿속과 말이 그렇듯 문법과 맞춤법과 시제 따위에서 자유로운 글도 많다. 포장이 없고, 다른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는 세상에 유일한 글이다. 느닷없이 솔직해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론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워 글의 사이에 대한 글쓴이의 설명과 참여자들의 경청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글과 말토막을 실마리로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이 이어지면서 서로와 세상을 더 알게 되고, 글로도 말로도 차마 꺼내지 않은 속과 뒤를 가늠하면서 더 많은 질문과 감수성을 얻게 된다. 외람되지만 우선 내가 배우고 질문을 얻어가자는 욕심에, 불러만 주면 달라들어 꼽사리를 끼거나 사람들을 들쑤셔 글쓰기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섣부른 퇴고나 수정은 생애를 도둑질하는 일이라 여겨, 두 대목을 최대한 그대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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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족 바깥에서 추석 놀기 2005년 동성애 정체성을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면서 겪었던 관계 단절로 인한 명절 우울감이 이번 추석 훨씬 전부터 떠오른 것은, 올해 초 다른 계기로 내 쪽에서 원가족과의 관계 단절을 결정하여 알린 때문인가 보다. 가족중심주의를 많은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여기며 가족과의 거리 두기를 생의 과제로 삼고 살지만, 그럼에도 가족 단절은 특히 명절이면 한바탕의 우울감에 붙들리게 한다. 징그럽게 공고한 가족이데올로기가 남긴 내 속 흉터라 여겨 수긍하면서, 우울감에 푹 빠져버리지 않을 징검다리 두 개를 미리 잡아놓았다. 가족 바깥에서 추석을 지내게 되는 사람들과 즐거운 자리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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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평양 할머니와 창녀 페미니즘 구술생애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제껏 만난 주인공들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마음에 남는 이유가 각기 다르니 순서를 가릴 일은 아니지만, “평양 할머니 김미숙”(가명, 졸저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중)을 빼놓지 않는다. 화신 백화점이 궁금해 10대 말인 해방 몇 해 전 가출해 남한 땅에 왔던 그녀는, 분단에 잘려 결국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편쟁이 서방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6·25 때 피란 갔다 와보니 서방은 쥐약 먹고 죽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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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서울 양동 쪽방촌 이야기 선거철이면 민심을 앞세워 1번과 2번 정권의 부동산정책이 또 한바탕 어떤 변덕을 부리든, 그 변덕을 진원지로 아파트를 선두로 부동산 값이 또 어떻게 출렁이든, 서울역 맞은편 남대문경찰서 뒤 언덕에 사는 양동 쪽방촌 주민들은 그쪽으로는 마음을 접는다. 쪼개고 또 쪼개 만들어져 ‘쪽방’이라고 불리지만 어쨌든 사방은 막힌 한 평 남짓 공간에 몸을 들여 희로애락의 일상을 살아왔다. 쪽방촌을 포옥 묻고 있는 주변 고층 빌딩들이나 거기서 나오는 고급 승용차에도 생각을 안 줘야 편하다. 그들의 마음과 눈길은 건너편 바라다보이는 서울역광장의 노숙인들이다. 그들 대부분이 그곳을 거쳐 왔고, 지금도 사람 만나고 바람 쐬러 가는 곳이다. 부모 잘못 만나 시작부터 가난했든, 생애 어느 시절 몰락했든 험할수록 더 싸구려인 온갖 막장일들을 전전했지만 대부분 방 한 칸을 차지하기 힘들었다. 문맹인 이씨(65)는 구두닦이와 넝마주이를 거쳐 신안 앞바다 소금밭 창고 잠과 시장 바닥 리어카 잠을 자다 난생처음 내 방을 얻은 지 1년째란다. 그래서 이젠 더 바랄 게 없고, 모진 삶을 살아낸 스스로가 대단하다며 순하게 웃었다. 주민들 대부분이 다행히 기초수급자가 돼서 딱 쪽방 방값만큼의 주거급여(약 26만~30만원)가 매달 20일에 통장으로 들어온다. 방값을 빼서 쪽방 관리인에게 건네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건물주들 입으로 쪽쪽 빨려들어 간다. 빈민운동 진영의 투쟁 덕에 수급비가 오르면 인상된 주거급여 딱 그만큼 방값이 오르지만, 물 새고 곰팡이 핀 방과 공동화장실과 계단, 쥐와 바퀴벌레들, 환기·채광·난방 없음 등은 그대로다. 그 돈이라도 아껴보려고 또 쪼개서 더 열악한 방으로 옮기면, 얄짤없이 딱 그만큼 주거급여가 깎인다. 옴짝달싹하지 말고 이렇게만 살다 죽으라는 거다. 그것도 그렇다 치고 살아왔는데, 이젠 그 방에서마저 쫓겨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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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 두 가지 4·7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유일한 바람이라면 1번과 2번 바깥에서 제대로 된 개혁을 지향했던 후보와 선본들이 선거 이후를 잘 도모하는 것이지만, 양당 구도의 정치판을 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파이팅을 외쳐주는 것마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찍지는 않았지만, 첫 정권교체 순간에 맛본 ‘숨통’의 느낌을 아직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당시도 우려했고 내내 증명되듯, 없이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권 교체’가 아닌 ‘집권정당의 교체’일 뿐이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두 보수정당이 발원지가 되어 몰아칠 또 한바탕의 돌풍이 미리 시끄럽게 여겨진다. 특히 전 지구적 생태위기의 긴 터널 속에서조차 부동산과 개발을 놓고 정치권이 앞장서 충동질할 탐욕의 아수라장이 빤히 보인다. 그러니 더 살아볼 생각이라면 내가 즐길 수 있는 터전이나 더 잘 가꾸고 확장해야겠다는 작심만 다시 한다. 그래서 정치의 끝자락 혹은 그 너머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 두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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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를 주목한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4·7 재·보궐 선거에 관한 글을 쓰면서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어, 다른 지역 다른 선거의 시민들에겐 죄송한 마음이다.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는 박원순과 오거돈 두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임 시장의 성범죄가 그 시작이다. 게다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에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날름 붙이는 꼼수개정으로 후보를 낸 민주당의 철면피함을 생각하면, 집권여당이 대놓고 시민을 우롱하는 짓이다. 속속 결정되고 있는 후보들과 선거판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감정과 시간의 낭비이며,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생각하면 보궐선거로 인한 예산낭비 또한 기가 찰 노릇이다.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나 다시 몰려오고 있는 대기오염보다, 작금의 정치야말로 극심한 공해라 하겠다. 보수정당 저들만의 말잔치인 서울시장 선거판에, 신지예 서울시장 예비후보(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푯대에 세운 ‘팀서울’ 선본의 발족과 활동은 더없이 반갑고 감사함을 넘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정치이며 누가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가? ‘팀서울’은 이가현(성평등 부문), 류소연(문화예술), 이선희(여성안전), 은하선(성소수자인권), 공기(살림경제), 소란(기후위기생태전환) 등 여섯 명의 부시장후보들과 더불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끈질기게 제도개선 활동을 해온 현장 활동가들이 동참하고 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여전히 주택과 신공항 건설 등 토목건설정책이 ‘그린뉴딜’이라며 시민을 바보 취급하는 정치에 맞서, 생태와 순환을 통해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팀서울’의 정책이 더 많은 시민들에게 주목받기를 바란다. 서울시장 후보시절 공약했다 당선된 후 혐오세력의 위세에 밀려 박원순 스스로 걷어찬 ‘서울인권헌장’ 선언이 서울시민에게 다시 선택받기를 고대한다. 박원순의 무산에 맞서 서울시청 점거 무지개농성을 했던 2014년 겨울 성소수자들과 지지 시민들의 뜨거운 울음과 열정이, 지난 한 달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전환자 여성 세 명의 원통함이, ‘팀서울’의 선거활동과 투표장에서 다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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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너희 나라’를 위해서라도 노숙인들에게 방을 ‘집에 머물라’ ‘외출을 삼가라’ ‘거리 두기를 하라’류의 코로나19 방역지침은 홈리스들에겐 애초에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최우선이라고 했지만, 노숙인들은 지난 한해 방은 고사하고 밥도 의료도 일자리도 더 엉망이 되었다. 재난지원금 건은 심리적으로 최악이었지 싶다. 당사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이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했건만, 홈리스 인권단체에서 파악한 바로는 국민 99.5%가 받은 그 돈을 최빈층인 노숙인 중 절반 이상이 받지 못했다. 국민에서 제외한 행정 때문이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소리가 다시 나오는 요즈음 옆에 있는 내가 미리 신경질이 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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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공리를 위한 폐기 작년 2월19일 발생한 코로나19 국내 첫 사망자는 종합병원 정신의학과 폐쇄병동에 20년 넘게 갇혀 산 환자였다. 여드레 뒤 27일자 내 칼럼은 이렇게 이어진다. “현재 폐쇄병동 환자 102명 중 101명 감염, 7명 사망. 장애인과 노인 등 집단수용시설에 대해 보건당국은 봉쇄와 감금을 핵심으로 하는 ‘코호트 격리’ 고수. 예천 ‘극락마을’, 칠곡 ‘밀알사랑의집’, 부산 ‘아시아드요양병원’ 등 집단수용시설에서 확진 판정 이어지고 있음.” 그로부터 약 320일간의 혼돈을 지나 3차 대유행이 좀 수그러든다 하고 백신과 치료제가 곧 나온다고 하는 새해 벽두다. 쓸모와 비용을 기준으로 공리(公利)를 타산하는 생체권력에 의해 공(公) 바깥 집단거주시설에서 봉쇄·감금·폐기되는 존재들의 상황은 갈수록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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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프리랜서 건보료, 각자의 싸움을 모아 바꾸자 한해 내내 미루던 싸움을 지난 7일 시작해 9일 끝냈다. 이 칼럼은 그 싸움의 기록이다. 작년 말까지 2만원대였던 건강보험료가 올해 1월부터 7만원대로 올랐다. 나는 2016년 말까지 노인복지현장에서 1일 5시간 최저임금 노동을 했고, 퇴직 후 2019년 말까지 3년간 임의계속 가입자로 이전 기준의 보험료를 냈다. 2020년 1월 지역의료보험으로 바뀌면서 1인 가구 보험료가 7만원대로 오른 거다. 5월경 공단을 찾아갔는데 전세보증금이 3000만원이 더 책정돼 있었고, 프리랜서로 받은 일회성 원고료·강사료·인세 등이 상시수입으로 잡혀있었다. 공단 직원은 돈 준 곳에서 일일이 해촉증명서를 받아오면 정산해 환급하겠다고 했다. 한바탕 싸울까 하다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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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경계가 흐트러지는 질문과 공부 목소리가 크다는 게 내가 느낀 두 번째 특징이다. 웃음소리도 크다. 봉고 안에서 그가 한번 말발을 세우면 일행은 일단 견디면서 누군가 말려주기를 기다린다. 말리면 알겠다는 답은 하는데, 한번 높아진 말발이 가라앉지는 않는다. 나와 만난 지 며칠 안 되어서 용산경찰서 근처 골목 어귀에 둘만 잠깐 서 있을 일이 있었다. 여남은 명의 일행은 3, 4분이면 다 모일 거고, 모두 그 봉고를 탈 거였다. ‘저는 전라도 남원인데, 고향이 경상도신가 봐요?’라는 내 물음에, 울산이라는 답 뒤로 대구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다고 했다. ‘그러셨군요. 어디가 안 좋으셨나 봐요?’라고 받았는데, ‘안 좋은 건 없고 알코올 때문이며, 장애인증이 있어서 입원했는데 너무 깝깝해서 나와 버렸고, 대구 말고도 부산이랑 어디랑 요양병원과 일반병원에 빵에도 있었다’는 거까지 말하다가, 일행이 왔고 봉고도 곧 왔다. 그날 그는 그렇게 내 옆구리를 푸욱 찌르고 들어왔고, 그가 말한 정황을 이해해 보려고 그날 새벽 나는 여러 자료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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