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버전 사기극 코미디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2007년 10월 말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안이고,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정권 말기였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2년 대선 후보 당시 노무현의 공약이었다. 노무현은 약속을 지킨 것인가? 당시도 지금도 나는 그의 진의를 믿지 않는다. 그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의지가 없었고, 임기 말 정부안 발의로 면피성 약속이행만 하는 척했다. 노무현의 진의가 어떻든 정부법안에 대해 인권운동진영은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나가는 활동을 했다. 일부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반대진영의 난리굿판이 벌어졌고, 결국 법무부안조차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 7개의 차별사유를 삭제한 채 주저앉았다.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운동에 대한 집단적 난리굿판은 그때 시작되었고, 시민사회의 적극적 법 제정 활동의 시작도 그때부터다. 노무현은 소란만 터뜨려놓고 물러났고, 이명박이 들어섰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기대할 것 없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시민사회의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끈질기게 이어졌고, 퀴어문화축제 등 기회 있을 때마다 반대진영의 난리굿판도 점점 극렬해졌다. 대통령을 두고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외치던 10년의 시간이 지나 박근혜가 탄핵되고 이어진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빤한 문재인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지 않겠다고 답했고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나중에”로 미뤘다. 15년 전 노무현 대선 후보는 약속이라도 했는데, 문재인 후보는 그 약속도 하지 않았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을 주워 먹게 된 문재인 후보가 암울한 10년 세월에도 일궈온 인권운동과 여성주의진영을 중심으로 한 법제정운동의 성과를 뭉개고 난리굿판에 편승한 거다. 2007년부터 7차례의 의원 발의가 있었지만 논의의 첫발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거듭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청원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에 10만명 이상이 동의해 올해 6월14일 법사위에 회부됐다. 법사위는 심사기간 90일 동안 어떤 심사도 하지 않았다. 두 시민의 500㎞ 도보행진 대장정 과정에서 오만가지 평등길이 전국 곳곳으로 넓어졌다. 심사 마감일인 11월10일의 딱 하루 전인 9일, 법사위는 법안 심의를 2024년 5월29일까지로 또 미뤘다. 21대 국회가 끝나는 날이니 사실한 무기한 연기다. 발표에 43초 걸렸고, 연장사유는 “심도 있는 논의”란다. 차라리 웃자! 국회의석 과반 이상인 민주당이 벌이는 사기극 코미디이고, 난리굿판의 의원 나리들 버전 되시겠다.

“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한다.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냐고 묻자 문지기는 말한다.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지금은 안 되오. 그렇게 들어가고 싶으면 내 금지를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시오. 나도 막강하지만 나는 최하급 문지기에 불과하오. 방 하나를 지날 때마다 문지기는 갈수록 막강해질 것이요.’ 시골 사람은 평생 동안 법 안으로 들어가기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법의 문 앞에서 죽어간다.” 1914년 카프카가 쓴 <법 앞에서>에 나오는 말이다.

그 후 107년이 흐른 2021년 한국 정부와 국회의 문은 카프카 시절과 똑같다. 내년 대선에서 누가 되든 또 한 번의 퇴행은 확연하다. 그 시절 그 시골사람 하나가 아닌 2021년의 시민들이 난장을 벌일 차례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 8일부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다. 한바탕 울어지더라도 죽지는 말자! 하염없이, 저들에 대한 희망 없이, 때론 전략적으로 좀 쉬면서, 우리들의 놀이판을 벌이며 싸우자. 즐겁게 놀며 싸우는 것이 사는 맛 중에 최고임을 아는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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