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열
여행감독
최신기사
-
인생+ 착각 지향의 한국인 여행은 본심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본심을 드러낸다. 일상은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이라 꾸역꾸역 참아내지만 여행은 보는 것, 먹는 것, 하는 것 모두 행복의 쟁취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사람들도 여행에서 달라지곤 한다. 한국인의 여행법에는 한국인의 본심이 담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여행지는 ‘한국 사람은 안 온다’는 여행지다.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지만 한국인은 모르는 곳, 그런 곳이다. 내가 한국인이지만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지를 유혹할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 ‘한국인들은 아직 모르는 곳’이다. 한국인들은 회를 평가할 때와 소고기를 평가할 때 관점이 다르다. 이웃 일본인은 소고기를 평가할 때 마블링 위주로, 회를 평가할 때도 감칠맛 위주로,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소고기를 평가할 때는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마블링 위주로 보지만 회를 평가할 때는 식감을 중시한다. 그래서 일본인은 붉은살 생선과 선어를 좋아하지만 한국인은 흰살 생선과 활어를 좋아한다.
-
인생+ “나만 남편 있어, 젠장” 에피소드 하나. 사회생활에 치여서 신혼여행 말고는 아내와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못했다고 생각한 남편이 은퇴한 뒤에 아내에게 패키지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아니지.” 부부 중 한 명은 사회생활에, 한 명은 가정에 집중하면서 ‘부부적 거리 두기’를 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에피소드 둘. 유럽은 호텔 객실에 트윈 베드가 있는 방이 적은 편이다. 얼마 전 동유럽 여행 때도 트윈 베드 방이 좀 부족했다. 그래서 일부는 더블침대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 부부를 주로 더블 침대 방에 배정했다. 그때 한 부부가 동시에 항의했다. “아니 부부라고 더블침대를 쓰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 부부는 진심으로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
인생+ 애도의 온도 애도의 온도, 분노의 탄착점, 2차 희생양. 이태원 핼러윈 참사 뒤에 보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이 3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납득할 수 없는 참사에 대해 어떤 이들은 ‘애도의 온도’가 적절하지 않다고 탓했고, 어떤 이들은 진실 규명에 앞서 분노의 대상을 지목하는 데 집중했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적 애도의 희생양이 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번 참사에 대한 애도의 온도를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했다. 그런데 타인의 애도가 나보다 애도의 온도가 낮다고 질책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의 애도 온도가 상대 온도가 아닌 절대 온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절대 온도에 도달하지 않는 애도를 질타했다.
-
인생+ 세계 온천 기행 여행감독으로서 ‘어른의 여행’ 코스를 짤 때 꼭 넣으려고 하는 아이템이 온천이다. 비유하자면 온천에 가는 일은 그들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을 가로질러 곧장 욕실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들의 삶을, 그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를,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순간을 바로 관찰할 수 있다. 여행의 맛 중 하나가 관찰인데 온천은 최고의 관찰 소재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상을 살아가지만 여행에서는 하나하나의 행위가 바로 행복의 쟁취다. 현지인들이 느끼는 행복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이 여행인데 온천욕은 가장 맛있는 반찬을 집는 일이다. 탕에 몸을 담그고 혹은 사우나에서 몸을 달구며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현지인들 사이에 앉는 일은 최고의 행복 나눔 방식이다.
-
인생+ 비아 페라타 일행은 모두 눈을 의심했다. ‘돌로미테 대자연 산책’ 일정표에는 ‘비아 페라타(Via Ferrata)’가 세 번이나 예정되어 있었다. 아무도 이 다섯 글자에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행을 준비한 원로 산악인 임덕용과 백승기는 빼도 박도 못하도록 일정표에 이 ‘어른의 모험’을 박아 놓았다. ‘철로 만든 길’을 뜻하는 비아 페라타는 클라이밍(암벽 등반)과 다르게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가파른 암벽에 오를 수 있도록 해주는 등산로 혹은 등반기술을 말한다. 가파른 암벽에 굵은 와이어를 고정시켜 놓고 Y자형 고정줄의 카라비너(등반용 고리) 두 개를 번갈아 끼워가면서 오르게 한다.
-
인생+ 정의의 저편에서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나를 위해 무려 여섯 번의 회사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그 여섯 번의 징계위원회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다만 시작 1분 전까지, 담당자에게 ‘거의 다 왔다’고 문자를 보냈다. 시작 1분 후부터는 전화를 안 받았다. 3심 법원도 아닌데 삼세 번의 징계위원회를 마친 후 회사는 무기정직 통보를 보냈다. 시사저널 기자들 중 세 번째 무기정직이었다. 무기정직을 당한 기자들은 ‘무지 정직’한 탓이라고 웃으며 그 징계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였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 파업하던 우리를 취재하던 <PD수첩> 담당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편집하다 보니 ‘짝퉁 시사저널’이라는 멘트가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그 ‘짝퉁 시사저널’이라는 말 때문에 무기정직을 당한 터였다. 카메라 앞에서 시원하게 ‘짝퉁 시사저널’이라 일갈해 주었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되었지만, 누군가 나서서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그게 나여야 한다고 여기는 소명의식이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삼세 번의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이번에도 역시나 가겠다고 하고 가지 않았고, 또 무기정직을 받았다.
-
인생+ 관계의 희열 그런 일이 있었다. 여행클럽에서 단체여행을 갔는데 룸메이트가 코를 곤다며 방을 바꿔달라는 멤버가 있었다. 그래서 방을 바꿔주었더니 그 다음날은 새로운 룸메이트가 불만을 토로했다. 방을 바꿔달라고 했던 사람 자신이 코를 곤다는 얘기였다. 나이가 들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단점도 빨리 본다. 하지만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여행그룹을 구성할 때, 비호감인 사람까지 올 수 있으니 우리끼리만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놀라곤 한다. 나라면 뺐을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인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끼리만 가서 놀자’며 자신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 안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고 형사사건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자신이 호감을 품는 사람이냐는 것과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사람들은 쉽게 착각한다.
-
인생+ 지방 소멸의 뒤안길 여행을 하다 보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방 소멸의 잔상이다. 수치화될 수 없는 지방 소멸의 징후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그 소멸의 뒤안길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지방 소멸 시대에 짧게 반짝 빛나는, 혹은 가슴 시리게 빛나는 ‘소멸산업’이 있다. 지방에서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잔치를 둘러싼 산업이 활발하다. 한때 예식장이었던 곳이 장례식장으로 바뀌고 있다. 도시에 아파트가 들어설 때 지방에는 요양원이 들어선다. 그 지역의 가장 큰 건물이 요양원으로 바뀌거나 새로 지어지는 가장 큰 건물의 정체는 대체로 요양원이다. 소멸하고 있는 지방에서 우리의 삶도 소멸한다.
-
인생+ 그 남자의 작업실 중년의 남자에겐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중년에 들어선 지인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만약 나를 위한 아지트를 만든다면 몇 명을 초대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하겠냐고. 4명, 6명, 8명…. 대답은 제각각이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분명 ‘나를 위한 아지트’라고 했는데도 다들 사람을 모아 살롱을 구축하려 든다. 20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대가의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가 많았다. 어느 날 문득 그 작업실의 공통점을 깨달았다. 그들의 작업실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초대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공간에서 모임을 할 때는 편안하면서도 뭔가 불편함이 있었다. 주인을 위해 이 공간을 빨리 내줘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
인생+ “영원히 재밌는 건 없어” 이외수 선생이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 여행감독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는 ‘방구석 여행자’였다. 강원도 화천군의 집필실에 고립되어 있지만 소셜미디어로 전국 곳곳의 ‘루저’들과 소통했다. 대선 주자부터 일반인까지 많은 이들이 감성마을 집필실을 찾아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 또한 지인들과 자주 그를 찾았다. 그의 부고를 듣고 맨 처음 떠올린 말은 “재밌을 땐 재밌는 거 해, 세상에 영원히 재밌는 건 없어”라는 말이었다. 인터넷 중독이 큰 이슈가 되었던 때인데 그의 해법은 간단했다. 그 또한 ‘인터넷 폐인’들이 모여있는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밤마다 들락거렸고 트위터에 몰입했다. 재밌을 때 재밌는 걸 해도 독이 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사례로 설명했다.
-
인생+ 부자 연습 ‘나중에 부자 될지도 모르는데 궁상맞게 아꼈다가 후회할 수도 있으니, 우리 저축은 하지 말고 버는 만큼 그냥 다 쓰자’고 아내를 설득했다가, 진짜 부자가 된 지인이 있다. 철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미래에서 가불해서 쓴 덕분에 그의 과거는 궁상의 그늘을 피할 수 있었다. 재운을 당겨쓴 지인의 부자가 된 이후 경험담도 흥미로웠다. 부자가 되어보니 먼저 부자가 된 선배 혹은 자기보다 나중에 부자가 된 후배와 마주치게 되는 곳이 세 군데였단다. 고급 룸살롱, 비싼 수입차 판매점 그리고 회원권이 비싼 골프장. 성실했던 사업가들이 예측 가능한 졸부의 길을 걷게 된다고.
-
인생+ 루틴이 있는 삶 얼마 전 트렌드 분석가를 만났는데 요즘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루틴이 있는 삶’을 꼽았다. 다들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내려 하고 이를 반복한다고 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소중히 하는 세대라서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루틴을 구성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MZ세대의 루틴은 대부분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루틴 짜는 법’으로 유튜브 검색을 해보았더니 ‘데일리 루틴, 습관보다 더 효율적인 반복 목표 실천법’ ‘아침형 인간 - 모닝루틴 시간대별로 공개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겐 그만의 루틴이 있다’ ‘인생을 바꿔줄 규칙적인 루틴 만드는 법’과 같은 제목의 동영상이 줄줄이 나왔다. 루틴을 짜는 데 있어서도 스펙 강박이 엿보였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