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온도

고재열 여행감독

애도의 온도, 분노의 탄착점, 2차 희생양. 이태원 핼러윈 참사 뒤에 보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이 3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납득할 수 없는 참사에 대해 어떤 이들은 ‘애도의 온도’가 적절하지 않다고 탓했고, 어떤 이들은 진실 규명에 앞서 분노의 대상을 지목하는 데 집중했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적 애도의 희생양이 되었다.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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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번 참사에 대한 애도의 온도를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했다. 그런데 타인의 애도가 나보다 애도의 온도가 낮다고 질책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의 애도 온도가 상대 온도가 아닌 절대 온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절대 온도에 도달하지 않는 애도를 질타했다.

이는 MZ세대의 차별적 표현을 쓰지 않으려는 PC(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현상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게 왜 이태원 같은 곳에 가서 그런 일을 당하나’고 말하는 기성세대에 반발해서 애도의 온도를 강조했다. 그런데 자신이 설정한 애도의 온도를 강요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참사가 일어난 뒤 서둘러 분노의 탄착점을 찾는 사람들도 보였다. 사실에 기반해서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의견에 기반해 사실을 소환해서 자신이 원하는 분노의 탄착점을 강요했다. 정치인들이 하는 짓을 일반인들이 앞서했다. 대체로 의견이 앞서서 성급한 사실의 재구성이 이뤄졌다.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갈라진 대한민국에서 선택적 인지, 선택적 기억, 선택적 해석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야당은 행정안전부 장관과 총리를 비롯해 정권을 공격하고, 야당의 공세에 정부는 경찰을 희생양으로 삼아 경찰 수뇌부에 분노의 탄착점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 이런 정치 공세를 사고가 발발하자마자 SNS에서는 미리 경험할 수 있었다.

참사 뒤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면서 공연예술인들은 2차 희생양이 되었다.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면서 공연예술인들은 코로나19 때만큼이나 피해를 입게 되었다. 갑자기 취소되는 공연과 행사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애도의 언어는 공연일 수도 있는데, 국가는 그들에게 무조건 상복을 강요했다. 공연의 내용 따위는 감안하지 않고 자신들이 공격받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취소 통보를 하기 일쑤였다.

핼러윈 참사에 대한 이런 반응은 대체로 세월호 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사실보다 의견이 앞서는 대한민국에서는 이슈 전개가 가파르다.

세월호 때도 진실 공방이 정치 공방으로 비화되어 불과 50여일 뒤에 벌어진 지방선거에서 ‘제가 박근혜 대통령을 끝까지 지켜내겠습니다’는 정치인이 나왔다. 이 흘러간 노래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도 들렸다.

사고에 대한 대응이 미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참사에 대한 반응에서도 한국 사회는 총체적으로 미숙했다. 갈라진 대한민국의 갈등만 더 선명해졌다. 세월호가 그랬듯이, 또 평택 쌍용차 공장과 영도 한진해운 조선소와 강정 해군기지와 밀양 송전탑과 성주 사드기지가 그랬듯 핼러윈 참사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이 되어버리는 날이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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