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일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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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대통령 부인을 버려라 냉전시대 미국의 대표적 책사 헨리 키신저가 사망했다. 그는 힘과 국익이 정의라고 믿었던 뛰어난 학자이자 냉철한 외교관이었다. 조지 케넌의 현실주의 외교 정책을 계승했으며 총성 없는 전쟁에서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 미국이 우위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00세로 죽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대외 정책에 대한 자문과 저술 작업을 했다. 키신저가 한 세기 동안 완전연소하며 남긴 족적에는 국익 우선의 공과가 뚜렷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키신저를 모델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제작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우발적 사고로 미국 핵폭탄이 모스크바에 투하되고 보복 공격으로 공멸하는 악몽이 플롯이다. <핑크 팬더>로 유명한 팔색조 배우 피터 셀러스가 연기한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수소폭탄 제조에 집착했던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나치의 로켓 전문가 베르너 폰 브라운과 키신저가 혼재된 캐릭터다. 풍자적 원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어떻게 나는 걱정을 그치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는가>가 암시하듯, 키신저를 위시한 핵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편집증적 공산주의 혐오와 냉전시대의 광기를 비꼰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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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탈 좋은 배우 배우의 얼굴에 다채로운 감정의 주름이 공존할 때, 좋은 탈이라 상찬한다. 슬픈 눈빛 사이로 오만하게 솟은 콧대 아래 못마땅한 입술. 잔인한 눈매에 상반되는 짧고 동그란 하관이 빚은 천진함. 무표정을 감당할 수 없는 배우 팔자의 얼굴을 영화판에서 탈이라 부른다. 영화의 장기 중 하나가 클로즈업이다 보니 좋은 탈을 가진 배우는 영화에서 더욱 환영받는다. 화면을 가득 채운 얼굴은 포토그래피를 넘은 장엄한 토포그래피다. 탈이 좋은 배우는 경력을 쌓을수록 자신의 탈을 능란하게 활용한다. 영화 <1900년> 촬영 현장에서 동시녹음기사는 로버트 드니로의 대사를 수음하지 못해 쩔쩔맸다. 드니로는 특정 장면에서 입만 벙긋거렸다. 녹음기사는 할리우드에서 온 스타배우에게 조금 크게 소리를 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어 속만 끓이고 있었다. 어느 날, 드니로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녹음기사에게 다가왔다. 얼굴에 주름이 많은 드니로는 클로즈업 장면을 찍을 때는 되도록 주름이 덜 잡히도록 입을 작게 벌린다며 양해를 구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은 미남배우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은 드니로의 탈은 그렇게 조각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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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테스형의 교실 이데아 2008년 6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가 차지했다. 프랑스로서는 <사탄의 태양 아래>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21년 만의 쾌거였다. <클래스>는 질식할 것 같은 프랑스 공교육의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로 오인할 만큼 사실적이다. <클래스>의 카메라는 파리 20구 소재 공립중학교의 한 교실에 밀착한다. 교사였던 원작자 프랑수아 베고도가 주연 교사를 맡고, 실제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출연해 생생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불어 교사 마랭은 학기 시작부터 곤혹스럽다. 이민자 자녀들이 대거 섞인 교실은 몽롱한 학습의욕과 사춘기 말단의 과민으로 불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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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오펜하이머’에 답하는 일본영화 “B-29를 본 건 열 살 때였지. 방공호에서 나와 보니 히로시마는 사라졌더군. 핵폭풍의 뜨거운 열기가 비를 몰고 왔다. 검은 비였어. 너희 미국놈들은 검은 비를 만들고 네놈들의 가치(돈)를 우리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잊어버렸다. 사토 같은 악마들을 만든 것도 너희들이다. 갚아 줄 때가 되었다.” 잔인하고 무도한 젊은 야쿠자들이 득세하는 원인을 원폭에서 찾은 야쿠자 두목의 음울한 원망과 경고다. 1989년 도쿄영화제에 출품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레인>은 위조 달러를 제조하는 야쿠자를 추적하는 형사액션물이다. <철도원>으로 친숙한 다카쿠라 겐과 마이클 더글러스의 연기 대결과 암투병 중에 젊은 야쿠자 사토 역을 맡아 열연하고 요절한 마쓰다 유사쿠에 대한 추모로 일본에서 화제였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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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자 학창 시절 영어 수업이 그나마 덜 지루했다. 팝송 가사를 이해하기 위한 필요가 공부의 따분함을 덜어줬다. 한덕수 국무총리만큼의 영어 학습 의욕은 없었던지 성적은 그냥저냥이었다. 그 시절 내가 만난 영어 선생님들은 좋은 분들이었지만 영어 발음은 안 좋았다. 독일어 시간으로 혼동할 만큼 경직된 영어 발음으로 학우들을 절망케 한 선생님을 기억한다. 고약한 발음이었음에도 정확한 억양을 중시하며 큰소리로 따라 읽게 했다. 선생님의 문법 설명은 탁월해 발음 장애를 상쇄할 만했다. ‘급진적’으로 풀이되는 형용사 ‘radical’ 어원은 ‘뿌리’에 있다. 뿌리의 다른 말은 ‘근본’이다. 본원적인 것에 매달리면 유연성을 잃는다. 그리하여 근본주의자들은 급진적이다. 근본과 급진은 트윈스다. 두 유 언더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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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좌파가 싫어하는 영화의 대박 지난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개봉한 영화가 화제다. 5년 가까이 창고에 방치되었던 저예산 영화가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평범한 액션물 <사운드 오브 프리덤>이 보인 기염의 배경에는 영화적 허구를 압도하는 극우적 음모론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는 국토안보부 전직 요원으로 인신매매 피해 아동을 구출해온 팀 발라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아동 성매매라는 부담스러운 소재에다 무명의 멕시코 감독이 연출해서인지 수년간 배급이 막혔었다. 넷플릭스마저 거절해 잊혀질 뻔했던 영화가 기적적으로 극장에 걸렸다. 할리우드와 주류 언론은 팀 발라드와 주연배우 짐 카비젤이 공유한 극우적 음모론이 불편해 영화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장기간 배급되지 못했던 불운과 언론의 냉대는 해괴한 음모론의 근거로 활용되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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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전문가 멸시와 르네상스형 검사 탄생 지인들을 시사회에 초대할 때가 있다. 생색도 낼 겸 가급적이면 출연 배우들의 무대 인사가 예정돼 있는 VIP시사회에 부른다. 재밌게 보고 간다는 답례문자를 보내온다. 개중에는 감동했다며 주위에 입소문을 내겠다는 기특한 부류가 있는가 하면 굳이 전화로 영화의 단점을 들먹이며 흥행 실패를 우려해준 지나치게 고마운(?) 친구도 있다. 친구와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이후로 시사회에 부르지 않았다. 주위에 영화 전문가연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한국영화는 이래서 재미가 없고 저래서 돈이 아까운 불량품이라고 투덜거린다. 나는 의지와 무관하게 영화업계를 대표하는 사람이 돼 원치 않는 컨설팅을 들어야 한다. 심지어 <기생충>이 기대보다 별로였다며 나를 원망하는 친구도 있었다. 봉변에 다름없다. 처음에는 웃으며 공감하기도 하고 영화계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한 적도 있지만 친구들의 무례는 반복됐다. 내가 만만하거나 영화가 만만한 것이다. 나의 직업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친우들의 훈수에 정색을 하게 된 속상한 배경이다. 가까운 사이라도 이렇게 금을 쉽게 밟으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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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낯익은 폭력, 낯선 코미디 상품으로서 영화는 경험재라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식당 음식이 맛없어도 값을 치러야 하듯, 재미없는 영화여도 환불을 요구할 수 없다. 많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만 흥행작은 적다. 대부분의 영화 광고가 허위거나 과장이라는 방증이다. 지루한 영화가 제공한 숙면효과를 긍정하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영화의 속성상 상품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은 상업적으로 큰 단점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사람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이야기 소재와 구조를 양식화한 장르를 고안했다. 관객은 구미에 맞는 영화 장르를 골라 볼 수 있게 되었고 불만도 줄었다. 그만큼 영화는 안정적 상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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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반지성주의의 교본 ‘맹신보감’ 예수천국, 불신지옥. 노방 전도의 대표적 캐치프레이즈는 불길한 주문 같다. 기독교 신자조차 시험에 들게 할 만큼 속된 전도 방식이자 쉽게 마주치는 광신의 추태다. 그러나 문구 자체는 기독교리의 핵심을 간단 명쾌하게 전달한다. 예수를 믿느냐 마느냐에 따라 최종 목적지가 달라진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생겼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심란한 시간이 길어진 끝에 발견한 곳이 교회였고 어찌하다 보니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교리문답 시간에 동석한 교우는 유명 여배우였다.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였지만 몇년간 일체의 활동을 중지하고 두문불출했다. 은둔 중인 여배우를 작은 공간에서 마주하니 이것도 은총인가, 잠시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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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자라지 않는 소년의 미학과 역사관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흥행 몰이 속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파벨만스>가 개봉했다. 영화광 소년의 아픈 가족사를 담은 자전적 영화다. 노감독은 부모가 인도한 영화의 세계, 8㎜ 카메라에 찍힌 비극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소년의 심정으로 회고하고 있다.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이 자극한 흥분을 잊기 어렵다. 보물찾기 플롯을 온갖 영화적 기교로 완성해 시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한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갈수록 초조하게 시계를 자주 봤다. 모험극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조바심 때문이었고 유일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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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로보캅에 맡겨진 한국의 치안 1980년대는 할리우드의 제작사들이 걸작 시나리오를 경쟁적으로 뽑아내던 시기였다. 영화산업의 전성기는 아니었지만 시나리오의 품질만 놓고 평가한다면 주목할 만한 10년이었다. 개성적이면서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명작이 대거 제작되었다. 관객의 구미에 예술적 의미를 녹여 제공된 별미였다.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2> 그리고 <로보캅> 등 미래적 상상력을 구현한 SF 장르가 중심이었다. 정교하게 설계된 영화들의 서사와 캐릭터의 영향력은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 속편이 제작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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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불우 2018년 미국 법무부는 북한 경찰국 소속 박진혁을 해킹 혐의로 기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김정은을 희화한 <디 인터뷰>를 개봉하려는 소니 영화사를 해킹한 것으로 의심했다. 명확한 증거는 없으며 내부자 소행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으나 트럼프에게 북한이 제일 만만했다. 2014년에 당한 해킹으로 소니는 미개봉 영화와 임직원의 신상 정보가 노출되어 5600만달러가량의 피해를 입었다. 더 큰 악재는 영화사 대표 에이미 파스칼의 저질 e메일이 폭로된 것이다. 명문 UCLA를 졸업한 후 할리우드의 생존법칙을 빠르게 습득하며 소니를 배경으로 승승장구하던 권력자의 실체는 추악했다. 파스칼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e메일에는 버락 오바마에 대해 인종차별적 험담을 하고 앤젤리나 졸리를 조롱하는 등 이중인격자의 속내가 노골적으로 배설돼 있었다. 영향력 있는 유대인 100인에 속하며 할리우드를 주무르던 파스칼은 이듬해 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