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진
미디어문화 독립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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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1990년대 문화적 정서: ‘즐거움’과 ‘친절함’ 많은 사람들에게 20대는 힘들다. 부족한 자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해서다. 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20대의 경험은 나머지 인생 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고려하면 세대 간의 갈등은 현재의 청년과 과거의 청년이 만나 충돌하는 것이다. 따라서 20대와 40대의 대화는 어쩌면 20년의 시간차가 아니라 40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몸이 역사적인 산물임을 보여준다. 과거의 경험은 우리의 몸속에 켜켜이 새겨져 특정한 생각, 물건, 사건들에 대한 현재의 반응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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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지역 소멸’의 늪 최근 몇년 사이 ‘지역 소멸’은 대중매체를 넘어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주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교육과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며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 양질의 대학과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유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올해 대학을 뒤흔들었던 글로컬 대학 정책도 이러한 논의의 일환이다. 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지역 소멸과 관련된 논의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평소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지역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지역 문제의 당사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입을 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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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세탁기의 가정화 새로운 기술이 확산할 때, 우리는 흔히 그 기술의 내재적 속성을 확산의 동력으로 말한다. 예를 들면, 챗GPT나 아이폰의 세계적인 확산은 기술적 성취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가정은 오랫동안 새로운 기술이 친숙한 것으로 자리 잡기 위한 주요한 거점이었다. 기술 연구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가정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기술의 가정화’(domestication of technology)라고 표현한다. 이는 야생 동물이 가축으로 길들여지는 것을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과정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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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어떻게 송이버섯을 사랑할 것인가 송이는 영어권에서는 matsutake mushroom 혹은 pine mushroom이라 부른다. 마쓰타케는 일본어로 마쓰는 소나무를, 타케는 버섯을 뜻한다. 송이는 오래전부터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아왔는데 인공적으로 경작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이가 사라지는 것은 소나무 숲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나 칭은 <사랑받지 못한 타자들: 멸종 시대의 무시된 존재들의 죽음>(2011)에 실은 “포용의 기술, 버섯을 사랑하는 방법”에서 일본과 미국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서 송이가 단지 맛있는 음식만이 아니라, 환경적 웰빙의 상징이 된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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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집의 상실 모든 인류 문화에서 집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집은 비바람, 더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공간이자, 외부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전통적인 의미에서 집은 삶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최근의 미디어 전경에서 접하는 집은 삶의 장소라기보다 죽음의 장소인 듯하다. 일례로 최근 방영한 드라마 <마스크걸> <힙하게>에서 집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는 곳이거나,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는 주요한 공간으로 설정된다. 이제 집은 더 이상 외부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안전한 성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공간으로 상상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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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교권’과 녹음기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은 공교육 현장에서의 ‘교권’ 침해라는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표적을 찾아 단죄하려는 마녀사냥으로 미디어 공간이 소란스럽다. 지난 정권의 청소년 인권조례를 탓하다, ‘문제아’에 대한 학교 체벌을 반대했던 유명 방송인인 소아정신과 의사를 공격하다, 지금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특수 교사를 고발한 웹툰 작가가 주요 표적이다. 여기에 공공시설(소아과 병원, 식당 등)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엄마들에 관한 기사들이 반복적으로 달라붙는다. 이로써 한국 교육 현장의 문제는 ‘갑질 학부모’의 탓으로 귀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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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멀티 유니버스 스파이더맨과 시대 감각 최근 극장에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를 봤다. 흑인 스파이더맨을 탄생시킨 <스파이더맨: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2018)의 후속편이다. 새로운 서사, 그래픽, 음악, 편집으로 현대적 시대 감각을 담은 작품으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 마블 시리즈는 오랫동안 백인 남성 중심의 영웅 서사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멀티 유니버스 소재를 도입해 성, 인종, 나이, 국가, 결혼 상태 등에서 상이한 배경을 가진 스파이더맨들을 총출동시킨다. 스파이더맨의 파워도 개개인이 가진 초능력보다, 다양한 장비를 가진 스파이더맨들과의 결합에 따라 달라진다. 스파이더맨의 상징인 거미줄조차 손목에 착용하는 기술 장치에서 나온다. 악당 또한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 영화는 악당으로부터 도시를 구하려고 분투하는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스파이더맨 세계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내부 권력자에 대항해 자신을 지키려는 아웃사이더 스파이더맨들의 연합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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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닫힌 도시와 열린 도시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이다. 이 문구는 특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든 안 하든,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혹은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자 한다. 따라서 도시화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마주하고 섞이는 과정이자, 이 속에서 동질적인 공간을 구축하려고 끊임없이 분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리처드 세넷은 <짓기와 거주하기-도시를 위한 윤리>에서 이러한 도시화의 양면성을 세밀하게 그린다. 세넷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달아나거나, 그들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이질적인 타자를 기피해왔다고 말한다. 하이데거가 유대인을 피해 산골짜기에 지은 오두막이 전자의 예라면,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는 후자의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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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취업 중심 교육의 ‘함정’ 어느 때부터인지 ‘취업’이 주요한 교육 목표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집에서 가는 잡월드 견학을 시작으로, 초·중·고 재학기간에는 취업을 위한 발판인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내달리다, 대학에서는 또다시 입사지원서에 적을 다양한 활동(공모전, 인턴 등), 자격증, 어학능력시험, 학점 따기가 펼쳐진다. 마치 ‘취업’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한 미션이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게임 속에 있는 듯하다. 내가 일하는 대학도 ‘신입생 세미나’와 ‘커리어 탐색과 설계’와 같은 수업과 학생 면담을 통해 진로 설정 및 취업을 돕도록 강조한다. 다른 대학도 비슷하겠지만,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대학 재정이 취약할수록 취업 중심 교육은 더욱 심해질 거라 짐작한다. 취업률이 신입생 모집을 위한 주요 전략이고, 신입생 모집률에 따라 대학의 존폐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도 대학 교육을 취업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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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기억과 애도, 죽은 자의 생일 축하하기 몇달 전 같은 학과에 계시는 선생님이 전시를 보러 가신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따라나섰다. 내가 일하는 학교 근처에 있는 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전시였다. 전시는 좀비를 주제로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것’에 관한 생각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다양한 양식의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전시장 한편에 일본 작가 후지이 히카루의 작품 두 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하나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문을 닫은 도쿄현대미술관의 모습을, 다른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 참사로 방사능에 오염된 후타바시역사민속박물관 소장품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었다. 잠시 쉴 겸 앉아서 영상물 앞에 마련된 긴 의자에 앉았다. 함께 간 선생님은 첫 번째 영상물에 연결된 헤드폰을, 나는 두 번째 영상물에 연결된 헤드폰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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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방목형 부모노릇하기’의 부상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올바른” 방식인지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변해왔다. 과거 애정표현은 아이를 망치는 것으로 말해졌지만, 지금은 아이의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로 강조된다. 대중매체는 올바른 부모노릇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는 주요한 부분으로, 지난 몇 년만 돌이켜보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올바른 부모노릇을 제안해왔다.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상담 리얼리티 쇼부터 <스카이캐슬>(2018)이나 <일타스캔들>(2023) 같은 드라마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모두 대중들이 마주하는 부모노릇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연료로 성공한 미디어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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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 한국은 해외입양 산업 모델을 만든 나라이다. 전쟁고아와 미군 사생아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작한 해외입양은 이후 수십년에 걸쳐 거대한 초국가 산업이 됐다. 일레이나 킴의 <Adopted Territory>(2010)에 따르면, 해외입양아의 수는 대략 1950년대 3000명이 채 안 되었지만, 1960년대에는 6000명, 1970년대는 4만6000명, 1980년대는 6만6000명에 달했다. 이후 서울 올림픽을 치르며 “세계 최대 아동수출국”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을 줄이기 위한 정책 변화로, 1990년대는 2만2000명으로 줄었다. 2008년까지 해외입양된 아이는 16만명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