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

한국은 해외입양 산업 모델을 만든 나라이다. 전쟁고아와 미군 사생아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작한 해외입양은 이후 수십년에 걸쳐 거대한 초국가 산업이 됐다. 일레이나 킴의 <Adopted Territory>(2010)에 따르면, 해외입양아의 수는 대략 1950년대 3000명이 채 안 되었지만, 1960년대에는 6000명, 1970년대는 4만6000명, 1980년대는 6만6000명에 달했다. 이후 서울 올림픽을 치르며 “세계 최대 아동수출국”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을 줄이기 위한 정책 변화로, 1990년대는 2만2000명으로 줄었다. 2008년까지 해외입양된 아이는 16만명에 달했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해외입양아들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문화와 인종이 다른 공동체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70년의 해외입양 역사 속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해외입양인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국에서 여전히 버려지고 잊혀진 존재이다.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기술의 확산 속에서 전 세계에 흩어져있던 해외입양인들은 초국가적 연결망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최근 몇 년간 이러한 노력의 성과물이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 해외입양인의 삶에 관한 대중적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독립 다큐멘터리 코너에 <Given Away>(2019)라는 한국 입양인들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이 작품은 1960년 미국으로 입양된 글렌 모레이가 부인과 함께 서구 사회에서 성장한 한국 입양인 100명을 인터뷰한 <Side by Side Project>의 일부분으로,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나라로 입양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인터뷰에서 해외입양인들은 나이, 성별,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상실감과 부정적인 자기인식을 진술한다. 전후 시대 미군 기지 근처에서 일했던 기지촌 여성과 백인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한 여성은 “기지촌 혼혈아동”인 자신을 “국가의 인간쓰레기로 국제 입양이 시작된 이유”로 표현했다.

1970년대 초 독일계 미국 가구로 입양된 한 남성은 스스로를 “우주선에서 떨어진 화성인”으로 느꼈다고 한다. 1980년대 입양된 또 다른 여성은 어릴 때부터 “욕실 거울을 보며 무엇이 나를 다르게 만드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여성은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버려진 공간을 방문한 경험을 말하며, 태어난 지 3일 된 신생아로 버려졌던 곳을 방문한 순간 자신이 현재 좋은 가족, 좋은 교육,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하나도 의미가 없어졌다고 한다.

<Given Away>가 해외입양인의 삶을 기록하는 생애사적 접근을 취했다면, 같은 해 발표된 또 다른 해외입양인 감독의 작품 <Forget Me Not>은 현재진행형의 해외입양 과정을 담는다. 감독 선희 엔젤스토프트는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됐다. 자신의 출산모를 찾지 못한 감독은 대신 제주도에 있는 10대 미혼모 쉼터에서 생활하며 자신을 버린 엄마의 상황을 이해해보고자 했다. (해외입양을 보내는 엄마의 대다수는 미혼모이다.) <Forget Me Not>은 10대 미혼모들이 주위의 시선을 피해 제주도에 있는 쉼터로 오는 과정, 출산을 준비하며 아이를 포기할지 말지 고민하는 과정, 부모와 기관들의 지속적인 개입 속에서 출산 후 결국 아이의 해외입양을 선택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두 작품에서 해외입양인들은 어린 시절 경험한 상실감이 자신의 삶에서 근본적인 외로움, 슬픔, 고통을 만들고 있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실감과 고통을 말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깊이감과 따뜻함이 깃들어있다. 이들의 아픔은 이들에게 세상과 인간을 깊이있게 이해하는 능력을 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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