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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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 2012년 12월14일, 미국 코네티컷주의 소도시 뉴타운에 있는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20세의 범인 애덤 랜자는 학교에 난입한 지 불과 몇분 사이에 학생 20명과 교직원 6명을 살해했다. 총기 사건 자체는 하루에도 여러 건 일어나는 미국이지만, 샌디 훅 사건은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중 피해자 수가 가장 많았고 피해자 대다수가 6세 또는 7세의 1학년 학생이었기에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샌디 훅 사건이 발생한 날이 본인의 임기 중 최악의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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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국정에 관한 정보를 국민에게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주로 부각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도 작년에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았다. 부통령 퇴임 후 자택으로 가져간 문서에 기밀자료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밀문서 반출 사실은 확인되었지만 로버트 허 특별검사는 2월8일 불기소 결정을 했다. 대통령의 기억력 한계를 지적하며, 기소를 하더라도 바이든 측에서 “악의는 없지만 기억력은 나쁜 노인”이라고 주장하면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아내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표현은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왔다.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의 고령을 유권자들이 우려하는 상황에서, 공화당은 이를 문제 삼아 선거운동에 활용하겠다는 태세를 보였고, 민주당은 공화당원이자 트럼프 정부에서 연방 검사장으로 승진했던 로버트 허의 편파성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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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전쟁은 누가 끝내야 하는가 곧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2주년이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은 진행 중이지만, 우리가 알아 왔고 익숙하던 국제질서의 붕괴를 알리는 사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루하게 계속되는 전쟁 상황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17일 러시아 군과 격전을 벌여 오던 동부 도네츠크주 아우디이우카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요충지인 아우디이우카를 러시아가 장악한 것은 작년 5월 바흐무트를 점령한 후 거둔 최대의 전과로 평가된다. 전쟁이 장기화되며 국제사회의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우려가 크다. 유럽연합은 작년 12월 500억유로 규모의 추가 지원에 합의했지만 상당 기간 우여곡절을 거친 결과였다.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계속 지원을 위한 예산안이 상원에서는 통과되었지만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하원에서는 통과 여부나 시기 모두 불확실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군이 물자 부족으로 아우디이우카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 의회가 행동하지 않은 결과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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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한 표 한 표가 소중하다면 2024년은 60여개국이 대선 또는 총선을 치르는 민주주의 사상 최대 선거의 해다. 발표 기관·매체에 따라 구체적 수치엔 차이가 있지만 인구 또는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세계의 절반 이상이 올해 선거의 영향을 받으며, 2048년까지 이에 필적할 해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할 대표자를 뽑는 선거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선거를 치른다는 사실 자체는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예컨대 러시아는 올해 3월에 대통령을 뽑지만,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고 이 선거에 의미가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즉 민주주의는 절차와 형식도 지켜야 하지만 그 내용과 가치가 중요하다. 보통선거 혹은 평등선거처럼 법전에 써 있는 원칙이 아니라 그 원칙이 구현되는 실질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누군가를 애초부터 투표장에서 배제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면, 그런 민주주의가 온전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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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재임 중 백악관에서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을 종종 열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집안 출신 젊은 극작가 린-마누엘 미란다가 2009년 5월에 초청받았는데, 그는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소재로 한 힙합 뮤지컬의 첫 곡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오바마는 정중하게 격려하면서도 내심 회의적으로 여겼지만, 그가 무대에서 랩을 시작하자 객석은 열광했고 대통령 부부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침내 2015년 무대에 오른 뮤지컬 <해밀턴>은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티켓을 구하기 힘든 작품이다. 가사에 여러 번 나오는 것처럼 ‘사생아, 고아, 부정한 여인의 아들’이 건국의 아버지, 웬만한 대통령보다 후대에 큰 영향을 남기는 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밀턴은 조지 워싱턴의 측근으로 미국 연방정부의 기초를 세우는 과정에서 매우 많은 업적을 남겼고, 10달러 지폐에 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한편 정적이자 현직 부통령 에런 버와 1804년에 결투를 벌이다 사망한 풍운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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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1955년 12월5일의 벌금 10달러 1955년 12월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사는 재봉사 로자 파크스(1913~2005)가 퇴근 후 버스로 귀가하던 중 사건이 발생한다. 정류장을 지날수록 승객이 늘어나자 버스 기사는 “백인 승객이 앉도록 흑인 승객은 양보하라”고 지시한다. 당시 미국 남부는 대중교통에서 인종 분리가 합법이라, 흑인은 별도로 지정된 구역에 앉고 필요하면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 했다. 로자 파크스는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이것 때문에 경찰에 체포된다. 12월5일 그는 법정에 출석하여 벌금 10달러를 선고받는다. 30분 만에 끝난 형식적 재판이었고 지금의 가치로 환산해도 150달러가 안 되는 벌금이지만, 미국 사회를 바꾸는 도화선이 된다. 이 사건에 주목한 흑인 사회는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조직하여 로자 파크스의 재판 당일부터 실행에 옮긴다. 연방대법원이 1956년 11월13일 앨라배마주의 인종 분리 조치가 위헌이라 판결하고,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 대중교통 인종 분리가 철폐된 1956년 12월20일에야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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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모두에게 당연한 일은 없다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 무렵이면 지인들의 대화나 소셜미디어에서 수능 경험담이 화제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 때는 ‘역대급 물수능’이라 한두 문제 틀리면 어떻게 됐다, 언제는 ‘불수능’이었다는 식의 고생담이 주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1993년 처음 시행된 수능을 치른 데다 한 해에 수능을 두 번 본 유일한 경우이고, 8월 수능과 11월 수능의 충격적 난이도 격차를 겪었기 때문에, 수능 경험담으로 할 얘기가 적지는 않다. 이런 얘기가 오가는 것은 당사자들이 모두 수능을 치른 대졸 이상 학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수능 얘기를 거리낌 없이 꺼낼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나 전반적 학력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점점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교류하고 살아가는 세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 갇혀 있으면 실제 세상의 모습을 놓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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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군은 무엇을 지키는가 미국 합참의장 마크 밀리의 이임·전역식이 지난 9월29일 열렸다. 미군 최고위직인 합참의장은 영향력이 크고 주목을 받는 직위이지만, 그의 이임사 중 한 부분은 이례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미국의 군대가 지키는 것은 국가, 집단이나 종교가 아닙니다. 군주, 폭군 또는 독재자도 아닙니다. ‘독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의 헌법, 미국이라는 가치를 수호하겠다고 서약했고, 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습니다.” 여기서 ‘독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명확하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칭한다. 밀리는 2018년 트럼프에 의해 합참의장에 임명됐지만, 대통령 자신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는 트럼프와 불편한 관계였다. 이임사를 통해 군 통수권자였던 전직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했기에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 반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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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아무 일도 없게 하는 일 ‘아무 일도 없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새만금 세계잼버리에 참여한 수만명의 청소년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먹이고 마음 편히 화장실을 사용하고 깨끗하게 씻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일이 생기고 나서야 절감했다. 태풍이 와서 폭우가 쏟아지는데, 도로가 잠기지 않도록 하고 위험 지역에서 사람을 대피시키려면 누군가 끊임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전국에 있는 수십만명의 학생이 매일 등교해서 수업을 하고 급식을 먹고 친구들과 지지고 볶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는 이유는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 일도 없게 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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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폭염이 알려주는 것 ‘찌는 듯한 더위’ 같은 오래된 표현으로는 담아내기 부족할 정도의 폭염이다. 전기에너지를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어컨이 결국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가책을 느끼면서도, 당장의 더위를 견디기 힘드니 에어컨을 찾는 모순이 계속되는 나날이다. 재해 수준에 이른 폭염은 개인의 나약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약한 부분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가짜뉴스는 굳이 구체적으로 언급해서 키워주고 싶지 않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대응은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거대한 탄소 발자국을 남긴 국가들과, 선진국들은 유지하기 힘든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개발도상국들이 공평하게 부담을 나누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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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적극적 우대조치의 끝?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9일 대학 입시에서 소수인종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지원자 개인의 성적이나 성취가 아닌 인종을 입학 전형에 고려하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을 규정한 수정헌법 제14조에 어긋난다는 판단이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시작돼 1978년 캘리포니아, 2003년 미시간 그리고 2016년 텍사스의 각 주립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의 합헌 판결을 받아 이어지던 적극적 우대조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미국의 보수 진영이 수십년에 걸쳐 그 철폐를 위해 노력한 결과인데, 이번 판결 역시 정확하게 대법관들의 이념 성향에 따라 의견이 갈렸다. 미국에서 찬반 양측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인종 차별과 입시가 겹친 민감한 문제인 데다, 특히 이번 소송에서 아시아계가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비해 역차별을 받았다는 점이 주된 쟁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적 좋은 한국계 유리’ ‘공부 잘하는 아시아계는 왜 하버드의 소수인종 우대에 반대했나’ 같은 기사 제목은 한국 언론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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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법관의 자격 미국의 연방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는 인종차별, 총기 규제 등 미국 사회가 당면한 쟁점에 관해 치열한 법적 논증이 오갈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백악관과 후보자의 목표는 인준 통과이고, 이를 위해 검증된 전략은 답변을 회피하는 것이다.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나중에 재판 대상이 될 수 있는 법적 이슈에 관해 구체적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는 식으로 넘어간다. 보는 입장에선 맥 빠지기도 하지만, 법관은 개별 사건에 관해 선입견을 배제하고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만하다. 그래도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됨됨이를 직접 보고 사법철학을 본인의 입으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에 따라 흑인 여성 케탄지 브라운 잭슨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2022년 3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패트릭 레이히 상원의원은 “후보자는 어떤 대법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다. 잭슨 후보자는 본인이 대법원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보다 먼저 대법관을 지낸 선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과 관점이라고 답변했다. 구체적으로는 국선변호인, 양형위원회 위원, 연방법원 법관으로 쌓은 역량의 총합이고, 무엇보다 민권운동의 혜택을 받은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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