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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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어느 법무부 장관의 뒷모습 1981년부터 1986년까지 프랑스의 법무장관을 지낸 로베르 바댕테르가 10월9일 파리에 있는 판테온에 안장되었다. 그의 안장식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스 정계의 전현직 주요 인사가 모두 참석한 국가적 행사로 엄수되고 프랑스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댕테르는 프랑스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교도소 인질 사건을 벌인 피고인을 변호했는데, 최선을 다한 변호에도 불구하고 그 의뢰인은 1972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다. 이 사건의 경험으로 인해 그는 사형 위기에 처한 피고인을 변호하는 일과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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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보통 사람들에게 설명해라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사법권의 독립 혹은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표현이 헌법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나 그 개념에 관한 논란은 접어두자. 사법개혁 논의와 관련해 지난 9월24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접견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사법부의 독립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재판이 독립돼 있어야만 국민 모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지켜지고 또 그래야 판결의 신뢰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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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원칙이다. 프랑스는 헌법 제1조에서 ‘라이시테’ 즉 비종교성을 규정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국교 금지와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다. 전자의 경우 종교를 사적 신앙으로 한정해 공적 영역에 대한 침투를 금지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후자의 경우 종교의 자유에 좀 더 강조점이 있다. 예컨대 무슬림의 신념에 따른 히잡 착용이 프랑스에서는 법적 규제 대상이 되지만 미국에서는 개인의 종교적 표현이니 규제할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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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더 큰 권력이 주어졌을 때 노예해방 이후 100년이 지나서야 흑인의 투표권을 실제로 보장한 1965년 투표권법은 1964년 민권법과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입법이다. 지난 8월6일이 투표권법 제정 60주년이었는데, 미국의 정권이 교체됐음을, 역대 어느 정부와도 다른 트럼프 2기라는 점을 실감했다. 작년 7월2일 민권법 60주년은 바이든 정부가 성대하게 기념했지만, 올해 투표권법 60주년은 연방 차원에서 기념하지 않았고 미국 사회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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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며 여러 분야에서 제도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제도 개혁은 결국 법의 문제이기에 여러 법률가들이 관여하거나 외부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제도 개혁 과정에서 그 분야의 실무를 해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의견은 물론 들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전문 분야는 오랜 생업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에 이해관계와 편견을 피할 수 없다. 사람은 원래 자기 일이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 같은 경우, 이혼소송에서는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변화가 있더라도 남의 일처럼 넘길 수도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 청사에 출입하는 행정 절차는 조금만 까다로워져도 불편함을 호소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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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공화국에 ‘왕은 없다’ 지난 주말인 14일 미국에서는 매우 대조적인 성격의 두 행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하나는 트럼프 정부가 워싱턴에서 벌인 군사 퍼레이드였다. 명목은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부터 대규모 열병식을 원했다는 사실과 행사 날짜로 잡힌 6월14일이 그의 생일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이 미국 전역에서 참여한 ‘미국에 왕은 없다’ 집회였다. 트럼프의 독재적 행태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집회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노 킹스’(No Kings)라는 구호는 영국 왕의 자의적 지배에 반발해 독립한 미국의 기원을 떠올리게 했다. 대선 토론에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쓰고 나왔다가 파면으로 끝난 그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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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어느 대법관의 뒷모습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데이비드 수터가 지난 8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수터’라는 이름은 공화당과 보수 진영에는 악몽이다. 1990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사건에서 진보 진영과 의견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수터가 임명된 직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재검토할 기회가 왔다. 보수파의 기대와 달리 그는 1992년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사건에서 임신중지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재확인했다. 판결 이유에서 “선례 구속의 원칙은 안정된 사회가 요구하는 법치에 필요하다. 개인의 성품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정당성도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형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1973년에 숙고해 내린 대법원 판결을 20년도 되지 않아 뒤집을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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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6인의 규칙, 재판관의 절제 1956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윌리엄 브레넌은 대법관실에 신임 로클럭(재판연구원)이 들어오면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 무엇인가?”라는 퀴즈를 냈다. 로스쿨을 갓 졸업한 젊은 로클럭들은 적법 절차, 평등 보호, 언론의 자유, 투표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앞다투어 얘기했지만 브레넌 대법관의 정답은 ‘5인의 규칙’이었다. 아무리 헌법상 원칙과 기본권이 중요해도 이를 연방대법원의 구속력 있는 법정의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반수인 대법관 5명의 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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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의 변론 동영상은 헌법재판소 웹사이트에 모두 공개돼 있다. 변론 종결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선고가 이뤄지지 않으며 평의 진행 및 선고 예상에 관해 억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적어도 변론 과정에 대하여는 그럴 일이 없다. 헌법재판관 그리고 소추위원과 피소추인이 심판정에서 한 발언과 행동을, 언론 매체의 개입을 거치지 않고, 국민들이 스스로 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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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인권의 최전선 트럼프 2기 정부가 공격 대상으로 삼은 소수자 집단은 트랜스젠더다. 지난 21일 전미 주지사협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재닛 밀스 메인 주지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트럼프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부 스포츠 참가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는데,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이끄는 메인주가 이에 따르지 않으면 연방정부 지원을 끊겠다며 위협했다. 이에 대해 밀스 주지사가 ‘법정에서 보자’고 맞받아치며 화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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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회의하고 의심하는 유권자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마디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심경이 복잡하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2013년 10월21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나온 그 한마디가 아니었으면, 검사 윤석열이 전 국민에게 이름을 알리고,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이 되고, 이를 발판으로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면 혹시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와 그 이후의 악몽 같은 사태도 없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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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여성의 발자취를 지우려는 사람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는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12월14일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여의도 집회 참가자를 분석했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21%로 가장 많았고, 성별로는 여성이 61.1%로 남성을 크게 앞섰다. 성별·연령대별로 세분해 측정한 결과, 20대 여성이 17.9%, 30대 여성이 1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20대 여성의 적극적 참여가 20대 그리고 여성 전체의 비율 상승을 견인했다고 할 수 있다. 20대 여성의 참여 비율은 직전 주인 12월7일 집회에서도 가장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