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

유정훈 변호사

2012년 12월14일, 미국 코네티컷주의 소도시 뉴타운에 있는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20세의 범인 애덤 랜자는 학교에 난입한 지 불과 몇분 사이에 학생 20명과 교직원 6명을 살해했다. 총기 사건 자체는 하루에도 여러 건 일어나는 미국이지만, 샌디 훅 사건은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중 피해자 수가 가장 많았고 피해자 대다수가 6세 또는 7세의 1학년 학생이었기에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샌디 훅 사건이 발생한 날이 본인의 임기 중 최악의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사건 이후 유족과 생존자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고결하면서 한편으로 낯설지만은 않은 내용이다. 그들은 참사로 인한 상실과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거기 머무르지 않았다. 희생자들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아픔을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의명분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참사로 아이를 잃은 학부모들이 창립한 단체 ‘샌디 훅 프라미스’는 총기 문제를 입법과 정책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섰고, 학교 안전 강화 캠페인을 펼치면서 교내 총기 난사 예방 프로그램을 보급했다.

그런 노력이 기대만큼 결과로 이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더욱이 이들이 직면한 것은 미국에서 가장 뿌리 깊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총기 규제였다. 코네티컷을 비롯한 몇몇 주에서는 총기 규제 강화 입법을 했지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기는 어려운 수준이었고, 그런 입법마저 보수 진영이 제기하는 위헌 시비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돋보이는 부분은 이 사건을 국가 차원에서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사건 10주기를 맞아, 그 당시에는 부통령이었다가 지금은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은 2022년 12월14일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샌디 훅 사건 10주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날로 선포했다. 샌디 훅 유족들의 노력에 힘입어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공화 양당이 찬성하는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최근 입법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그런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살상용 총기의 근본적 규제를 위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백악관의 성명에서 샌디 훅과 같은 비극을 막지 못한 ‘사회적 죄책’을 언급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도덕적 의무’를 선언한 부분이 도드라져 보였다.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안전사회라는 과제를 부과했지만,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 2023년 7월15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일상을 살아가던 시민들이 한순간 참사의 희생자가 되는데, 정부는 그 앞에서 무능했고 사건 발생 후에는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의 아버지인 문성철씨가 얼마 전에 집회에서 한 발언이 마음에 남는다. “세월호 가족분들이 저희에게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열심히 했지만 바뀐 게 없습니다. 저희는 오송 참사 가족분들에게 가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4월16일을 맞아 다시 이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한 공동체인 국가적 차원에서 기억해야 한다. 10년이나 지나지 않았냐고, 특별법도 만들고 공식 기구를 통해 진상조사도 여러 차례 하지 않았냐고 말하기엔 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참사를 기억하고 그런 비극을 막지 못한 책임을 계속하여 상기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할 근거를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작은 목소리라도 보태려 한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샌디 훅 사건 이후의 경과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장면이 있다. 샌디 훅 사건이 총기 규제를 위해 민주당 정부가 벌인 날조라는 음모론을 퍼뜨리고 다닌 알렉스 존스라는 극우 논객이 있다. 유족들이 제기한 여러 건의 소송에서 패소하며 그가 지급해야 할 배상금이 15억달러에 이르는데 지금 환율로 환산하면 약 2조원에 해당한다. 알렉스 존스와 그가 운영하는 매체는 이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신청을 했다. 판결 이후 그는 “샌디 훅 사건은 100% 사실”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무고한 희생자를 향한 거짓말을 수단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자들이 한국에도 보이는데, 알렉스 존스의 사례는 법원의 엄정한 판결은 진실을 직면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꽤 괜찮지 않은가.

유정훈 변호사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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