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아무튼, 잠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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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군인이면서 어머니인 여자가 전쟁 영화 주인공일 때 다큐멘터리 영화 <Darvazeye Royaha>(페르시아어로 ‘꿈의 문’이라는 뜻)는 1989년생 이란 태생의 쿠르드족 여성 감독인 네긴 아마디가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ISIS에 대항하여 싸우는,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쿠르드족 민병대에 들어가며 시작한다.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메데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뿌리 깊은 민족이면서 3000만명이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이란 등 주로 국경을 따라 이어지는 자그로스산맥 지역에 산다. 쿠르드족이 머무는 지역, 쿠르디스탄은 30만㎢로 한반도의 1.5배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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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의 반경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들. 상투어가 되어버린 말들. 당연하게 받아 누려 온 역사들. 이것들이 낯설고 새롭게 다가와 마음을 때리는 일은 언제, 왜 일어나는 것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한국을 떠난 사람들을 향한 약간의 미움이 있었다. 나를 버리고 더 좋은 세상으로 떠난 당신…. 막상 나가보니 실상은 달랐다. 오래전 하와이로 떠난 이민자는 독립운동의 자금줄이었고 광부로 또 간호사로 독일에 도착한 이들은 민주화 운동을 다방면으로 도운 사람들이었다. 국내에 있을 때는 해외로 떠난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았는데 밖에서 보니 이들의 발자취가 형형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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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세상은 입맞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유독 개운한 책이다. 시간에 관한 우리의 직관을 하나씩 무너뜨려 종국에는 극단적으로 황량하고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빛나는 공(void)의 풍경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일상을 살아가며 비대해진 자아는 줄어들어 티끌로 느껴지고 이내 상쾌해진다. 인간이 시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장소와 속도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둘째,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사물의 미시적 상태를 관찰하면 과거와 미래 차이가 사라진다. 셋째, 광활한 우주에 ‘현재’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없다. 넷째, 시간은 독립적이지 않다. 시간은 우주의 다른 실체들과 상호작용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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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라는 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쩐지 나는 이곳 어디서도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첫 책을 내고 난 뒤에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떠돌아다녔고 처음으로 강력한 연결감을 느낀 곳은 독일 베를린이었다. 그곳엔 각자의 이유로 모국으로부터 망명한 많은 이주민들이 있었다. 독일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기억하느라 다소 분열적인 느낌마저 주는 곳이었다. 나는 종종 추방당했다고 느낀다. 베를린이 아니라 서울에 있을 때 그 감각은 뚜렷하다. 같은 언어와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데도 이곳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환영하지도 내가 성장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려 할수록 있는 힘을 다해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는 것을, 높은 자살률과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유병률이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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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벽 너머로 낯선 소리가 들려올 때 연말연초가 되면 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책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수록된 엽편소설 ‘벽 -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이다. 소설은 작가인 ‘나’가 의사인 친구에게 가볍게 하소연하며 시작한다. 그럴싸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써서 신문사의 편집장에게 주기로 했는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어떤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벽에 부딪힌 것 같다니까!” ‘나’는 탄식한다. 그러자 의사인 친구가 말한다. “벽이라고? 그렇다면 자넨 이미 멋진 주제를 찾아낸 것 같구먼.” 친구는 어느 해 12월31일 빈민가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