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저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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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총동원해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는 날이면 대학원에 다니며 기숙사에 살던 때가 떠오르곤 한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가며 공부를 지속하는 것이 점점 벅차던 때였다. 장학금 기회는 학부 때보다 적었고, 아르바이트 없이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선후배 동기들이 부러웠다. 재능이나 집중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던 시기는 지났고 누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느냐로 성과가 갈리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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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으뜸상은 누구에게 스물한 살 겨울 나는 청담동의 한 학원에서 멘토 교사로 일했다. 방학마다 아이들을 고급 레지던스에서 재우고 먹이며 밤늦게까지 공부시키는 기숙 학원식 프로그램이었다. 초등학생 대상이었다. 대표는 학부모에게 “이미 많이 늦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채린(가명)은 첫날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청담동 애들이 좀 되바라진 면이 있기는 했지만, 개중에서도 유독 어린애답지 않았다. 사람을 늘 똑바로 쳐다봤고 누구와 마주쳐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혼내거나 재촉할 때도 느긋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생님 말씀 따위 듣지 않아도 인생에 별일 일어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채린에게 너무 빨리 들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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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생존 본능을 앞서는 사로잡힘 때때로 나는 인터넷 세계를 탐험하며 인류학자처럼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언젠가는 유튜브로 미국 경찰이 공익을 위해 올린 실제 상황 영상을 하나 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바람에 여자가 신고해서 경찰이 들이닥쳐 남자와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함께 살던 사이에서 일어난 가정폭력으로, 말다툼하는 도중 남성이 여성을 세게 밀쳐 여성이 벽에 부딪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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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좋아질 때까지 좋아해본 것 20대 초반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시기, 학교 근처 작은 와인바에서 일한 적이 있다. 주말 저녁에 그곳에서 일했다. 친구들과 MT에 가서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카스 같은 술만 마시다가 다양한 와인과 위스키, 코냑, 칵테일 등을 접하며 미식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읍 단위 지역에서 나고 자라 이제 막 서울로 온, 김치찌개와 청국장 등 한식에만 익숙하고 기껏해야 아웃백이나 애슐리를 가는 것이 연중 최고 경사였던 내게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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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비일관성을 허락하기 일상생활을 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때는 비일관적인 성격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어느 날은 다정했다가 어느 날은 차가우면 아이 입장에서 불안할 것이다. 팀원이 많은 상사가 기분이 오락가락하면 일하는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마음은 끊임없이 요동치고 변화한다.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았지만 다음날이 되면 우울해진다. 어제는 사랑스러웠던 친구와 오늘은 절교하고 싶다. 몇년간 홀딱 빠졌던 취미가 어느 날 아침 하기 싫어지고, 오랫동안 미워했던 아버지를 갑자기 용서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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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묘사하기 얼마 전 나는 글쓰기 모임에 온 사람들에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글감으로 글을 쓰자고 했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쓴 동명의 시집에서 영감을 얻어 정한 글감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기를 통과하는 데에 힘이 되어주는 글쓰기를 함께 연습해보고 싶었다. 나는 고통이 있어야만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창작 활동이 고통을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해준다는 데에는 크게 동의한다. 수많은 예술가가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기 위해, 어두운 기억을 소화하기 위해 창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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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무섭거나 웃기거나 얼마 전 내게는 혼자만의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몇년간 시달렸던 악몽을 시로 써서 사람들 앞에서 낭독한 일이었다. 이 일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여태껏 글을 써오면서 한 번도 내 안의 어두움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내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침대에서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던 때에도,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육체적으로 연약해져 있는 상태일 때에도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기만 하면 의젓해졌다.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이 세상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달래고 누르면서 내가 받고 싶은 위로를 담은 글을 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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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수치심 넘어, 보이는 존재 되기 베를린에서 열리는 다양한 예술 행사에 참가하다 보면 생각보다 행사의 밀도가 높지 않아 놀랄 때가 잦다.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거칠게 말하면 별것 없을 때가 많다.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돌아오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럴 때면 두 가지 마음이 든다. 하나는 나도 (그리고 내 친구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 다른 하나는 이렇게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고 기회를 주는 환경이어서 훌륭한 작가 혹은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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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탁월하지 않기 요즘 매일 독일어학원을 간다. 우리반에는 아르헨티나, 인도, 튀르키예, 이스라엘, 스페인, 러시아, 그리고 한국에서 온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있다. 선생과 학생 사이에 공통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모두에게 처음인 독일어를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방법은 모두가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첫 시간, 선생님은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출석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고. 다시 한번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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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리를 구하는 것은 나는 대체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지난겨울 계엄 이후 내 시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떨어져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한국 친구들과 단절된 채로 스스로 판단해야 했던 고립된 시간이 사고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내전으로까지 이어지는 내부 분열을 겪는다는 것과 그렇게 되도록 조작하는 일이 역사적으로 반복됐다는 것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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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목욕재계 최근 몇년간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은 것은 언니들과 가까워진 것이다. 감탄, 존경, 질투, 거부감, 즐거움, 애착, 두려움, 기대, 실망, 불편함, 거리감, 이해할 수 없음, 답답함, 슬픔, 안쓰러움, 편안함… 다양한 감정을 거치면서 나는 세대가 다른 여자들과 친구가 되는 법을 알아갔다. 그들이 나의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어떤 역할도 지우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들이 자애로운 어머니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버텨준 덕분에 한없이 인내하고 이해하는 어머니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한 여성에게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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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보석함을 열면 있는 것 여름이 끝났음을 직감한 어느 날의 아침 나는 평소처럼 차를 마시다가 이번 여름을 보내며 수집했던 순간들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순간들. 기껏해야 1초에서 3초 정도로 이루어진 기억들이었다. 다음은 그때 적은 것 중 일부다. 바람에 작은 파도처럼 일렁이던 들판 / 시를 낭독한 뒤에 사람들 사이에 감돌던 달콤한 정적 / 오랜만에 듣는 여름 풀벌레 소리에 한없이 위로를 받았던 것 / 처음 들어간 여름 바다에서 오랜만에 숨을 참고 잠수하자 뛰었던 심장. 호흡을 멈추고 수심이 깊어지니 천천히 가라앉던 심장 박동 소리. “그래 이거였지. 이 살아있는 느낌” /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빠져나올 수 없는 현실의 한가운데에 멈춰 있던 때에 멀리서 날아온 존경하는 사람의 편지 한 통. 우리가 만났던 것이 꿈이 아니고 내게도 있을지 모를 다른 삶의 가능성이 아주 헛되지 않다는 희망으로 느껴지던. / 나무 그림자의 경계를 밟으며 놀았던 어느 날. “내가 경계로 간 거면서 그렇게 징징댄 거구나. 지가 간 거면서!”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풀잎과 그림자 안에서 살짝 축축해진 풀잎을 동시에 밟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