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소설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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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의 사소한 세계 교실 이데아 소설 <날씨통제사>는 저자인 나를 청소년 독자들과 연결시켜 준 고마운 책이다. 기후위기, 불평등, 소수자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선명하게 드러낸 이 단편집은 중고등학교에서 환영받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종종 생겼다. 세종시의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던 중 한 학생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학생은 기후위기를 주제로 짧은 스피치를 할 정도로 상당한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3차 산업혁명인데, 북반구와 남반구 간의 사회적 격차를 원인이라고 설명한 강연 내용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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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하루 20시간의 형벌 나의 하루는 4시간입니다. 인간의 하루에 비하면 절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셈이죠. 이처럼 짧은 하루를 사는 기분을 아십니까? 하루 20시간의 형벌을 받아야 하고, 내일도 모레도 같은 형벌을 받는 일이 전부인 삶을요. 차라리 시간이 멈추어 버리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나에게 세상은 좁은 정사면체. 어떤 날에는 세상이 슬슬 기억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원래 숨 막히는 것이고, 몸은 원래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하루 아닌 하루를 견딥니다. 세상이라는 게 나 아닌 누군가가 존재하는 곳이 맞나요? 누군가가 그리워지면 바람의 냄새를, 햇빛이 나뭇잎 위에 떨어지던 각도를, 나를 마주 보고 코를 킁킁거리며 꼬리를 흔들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언젠가의 장면들을 되살려보려고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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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 소설을 쓰다가 가장 반가운 순간은 애초에 계획하지 않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면서 예정에 없던 인물을 만날 때다. 작가가 예상하지 못한 소설은 좋은 소설이 될 확률이 높은데, 소설이 소설을 쓰는 작가의 시야를 넘어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바다 오염을 다루고 싶어서 시작한 원고에 애초 주인공쯤으로 생각해둔 인물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김민수씨다. 그는 동료들에게 폭행을 당해가면서 선상의 쓰레기 투기를 영상에 담아 세상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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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죽어야 쉬는 나라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주인공인 아시타카는 난관에 처했을 때, 나이 많은 점술가를 찾아간다. 옛날에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노인에게서 지혜를 구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젊은이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건네는 존경받는 존재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노인의 지위는 빠르게 하락했다. 우리는 노인에게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어졌는데, 그들은 더 이상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지고 굼뜬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
녹색세상 영혜에게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베스트셀러지만, 한국은 여전히 육식주의자의 천국입니다. 저도 한때는 삼겹살 마니아였습니다. 막상 채식주의자가 되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군요. 일단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골목마다 음식점이 있었지만 고깃집 건너 고깃집이었고,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는 건 보물찾기보다 어려웠습니다. 저는 차차 집에서 먹는 편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더라도 혼자서 다른 것을 먹어야 했죠. 같이 먹어도 같이 먹는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고 마치 혼자서 식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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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소설이 빠뜨린 세계 인도 출신 소설가 반다나 싱은 “현대의 많은 사실주의 소설에서는 인간이 마치 동물도 바위도 나무도 없는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것처럼 물리적 우주와 단절돼 있다”고 지적한다. 인도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도 비슷한 발언을 한다. “나는 확실하게 믿는다. 이곳 땅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 있다는 것을, 그것이 오직, 혹은 심지어 우연히, 인간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인간이 기후위기를 가속한 시기에 문학의 내용이 급격하게 인간 중심적이 됐다고 말한다. 이 작가들은 인간이 독점해버린 세상과 그 세상을 닮은 소설 속에서 한 번도 주어의 자리를 차지해본 적 없는 자연물들에 자기 장소를 찾아주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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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여름은 너의 몫이라고 그는 나를 알토라고 부르지만, 내 이름은 벅이다. 태어난 지 다섯 달쯤 지났을 때 나를 입양한 보호자가 지어준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조그만 내가 귀엽다며 집으로 데려갔지만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길에 버렸다. 집 안에서 생활하는 데 길들여진 고양이가 길 위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여름이 덥고 겨울이 춥다는 사실을 세 살에 처음 알았고, 길에서 태어난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적응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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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불탄 개의 넋두리 불길은 한꺼번에 불어닥쳤지만 죽음은 서서히 왔다. 쇠스랑에 묶인 채 우리는 천천히 타 죽었다. 어쩌면 불길이 일어나기 전에 죽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 적 없이 계속 죽기만 했다. 번식장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집과 보호소와 길과 도로에서 학대받아 죽었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불타 죽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살다가 쇠사슬에 달궈져 죽었다. 아니, 우리는 죽지도 못했다. 죽는 대신 돈이 되었다. 숫자가 되었다. 우리의 이름은 피해 손실액 1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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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법이 살인하라 말한다 법이 차별하라 말한다. 반도체 산업에 한해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돼 있는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노동자의 건강이야 어찌 되든 처벌하지 않을 테니 더 본격적으로 착취하라 말한다. 법은 입 다물고 있을 테니 눈치 볼 것 없이 내키는 대로 하라 말한다. 노동자들은 아파도 모른 척하라고, 죽어도 신경 쓸 것 없다고 말한다. 반도체면 된다고, 대놓고 봐줄 테니 염려 말고 차별하라고 말한다. 이 법의 이름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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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삼겹살을 위한 죽음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정인철 국장을 만나 산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지난겨울 산양 100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데 산양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산양이 누구인지에서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인철은 한국에서 산양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다. 지금은 새벽 4시 서울을 떠나 산양이 있는 설악으로 가는데, 머지않아 그쪽으로 터전을 옮겨 본격적으로 산양을 연구할 생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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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새는 인간이다 1996년 봄, 한강은 조류 충돌을 다룬 단편소설 ‘철길을 흐르는 강’을 발표했다. 국내 언론이 조류 충돌을 처음으로 언급한 시기가 같은 해 9월20일이니, 이 소설은 언론보다 앞서 최초로 국내에 조류 충돌을 소개한 셈이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나’는 성당의 유리창에 부딪친 새의 죽음을 사무국 직원에게 알리는데, 직원은 늘 일어나는 일이라며 현실논리를 들이댄다. ‘나’는 죽은 새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내 손이 새인지 새가 내 손인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소설의 제목인 ‘철길을 흐르는 강’ 또한 새 떼의 비유다. ‘나’는 죽은 새를 묻은 철길에서 강의 환영을 보는데, 그 물살은 ‘나’의 몸을 덮쳤다가, 다시 새 떼로 바뀌어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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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진짜 바다와 만나야 한다 환경재단이 15회째 추진하고 있는 그린보트가 그린워싱(green washing·친환경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위장환경주의)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거대한 오염물질을 내뿜는 크루즈에 그린보트라는 이름이 붙고, 관광사업에 가까운 운항을 환경단체에서 주최한다는 점은 출항을 재고해야 할 중대한 사안으로 보인다. 크루즈에서 진행되는 인문학 강연이 사치와 휴양을 힐링과 휴식으로 둔갑시켜, 인간과 바다의 진짜 만남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두 번 위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