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화
소설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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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법이 살인하라 말한다 법이 차별하라 말한다. 반도체 산업에 한해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돼 있는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노동자의 건강이야 어찌 되든 처벌하지 않을 테니 더 본격적으로 착취하라 말한다. 법은 입 다물고 있을 테니 눈치 볼 것 없이 내키는 대로 하라 말한다. 노동자들은 아파도 모른 척하라고, 죽어도 신경 쓸 것 없다고 말한다. 반도체면 된다고, 대놓고 봐줄 테니 염려 말고 차별하라고 말한다. 이 법의 이름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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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삼겹살을 위한 죽음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정인철 국장을 만나 산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지난겨울 산양 100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데 산양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산양이 누구인지에서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인철은 한국에서 산양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다. 지금은 새벽 4시 서울을 떠나 산양이 있는 설악으로 가는데, 머지않아 그쪽으로 터전을 옮겨 본격적으로 산양을 연구할 생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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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새는 인간이다 1996년 봄, 한강은 조류 충돌을 다룬 단편소설 ‘철길을 흐르는 강’을 발표했다. 국내 언론이 조류 충돌을 처음으로 언급한 시기가 같은 해 9월20일이니, 이 소설은 언론보다 앞서 최초로 국내에 조류 충돌을 소개한 셈이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나’는 성당의 유리창에 부딪친 새의 죽음을 사무국 직원에게 알리는데, 직원은 늘 일어나는 일이라며 현실논리를 들이댄다. ‘나’는 죽은 새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내 손이 새인지 새가 내 손인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소설의 제목인 ‘철길을 흐르는 강’ 또한 새 떼의 비유다. ‘나’는 죽은 새를 묻은 철길에서 강의 환영을 보는데, 그 물살은 ‘나’의 몸을 덮쳤다가, 다시 새 떼로 바뀌어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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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진짜 바다와 만나야 한다 환경재단이 15회째 추진하고 있는 그린보트가 그린워싱(green washing·친환경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위장환경주의)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거대한 오염물질을 내뿜는 크루즈에 그린보트라는 이름이 붙고, 관광사업에 가까운 운항을 환경단체에서 주최한다는 점은 출항을 재고해야 할 중대한 사안으로 보인다. 크루즈에서 진행되는 인문학 강연이 사치와 휴양을 힐링과 휴식으로 둔갑시켜, 인간과 바다의 진짜 만남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두 번 위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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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못생긴 사과가 필요하다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하면서 가장 바꾸기 어려웠던 생각은 ‘벌레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사실이었다. 크기가 똑같고 상처 하나 없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사과란 자연 상태에서 불가능하며, 못생기고 울퉁불퉁하고 벌레 먹은 사과야말로 건강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상품을 고르듯 자연을 대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철학>에서 이진경, 최유미는 경제학의 식민주의에 빠진 세태를 비판한다. 생태적 가치, 미적 가치, 기술적 가치, 공동체적 가치 등 다양한 척도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경제적 가치, ‘얼마나 돈이 되는가’만을 기준으로 선택되고 도태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과학적 형식으로 구성된 지식일 뿐 과학적이지 않은 미신에 가깝다면서, 경제학의 미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반시대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제학과 다른 척도의 다른 계산의 방법을 찾아, 생산과 구매로 인해 파괴되는 것들의 가치를 계산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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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버리지 않는 미래는 가능하다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의 저자 카트린 드 실기는 농촌이 도시에 먹거리를 제공하고 도시는 농촌에 비료를 제공하며 자원의 순환을 이루었다고 설명한다. 쓰레기는 농촌의 토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자원이었고, 이 오물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권 논쟁을 벌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쓰레기가 처치곤란이 된 것은 도시가 팽창하면서 농촌과의 교류가 사라지면서 일어난 변화다. 다른 원인은 쓰레기의 내용물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분해되지 않는 유리나 철 같은 물질이 뒤섞이자 쓰레기를 더 이상 퇴비로 사용할 수 없었다. 발효된 거름 대신 화학비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원의 순환은 마침내 깨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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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드론은 사랑을 모른다 팔레스타인 학살이 1년 넘게 지속되며 4만명 넘는 희생자를 낳고 있다. 사망자의 3분의 2가 여성과 어린이다. 사회, 정치, 경제적 실체로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가 갈가리 해체되고 사라지는 정치적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실험실>의 저자 엔터니 로엔스틴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실험실’로 이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첨단무기와 사이버기술을 이용한 통제와 분리를 실험하고, 이 점령기술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가 장기집권 중인 이스라엘은 세계 10대 무기수출국으로, 이스라엘의 사업가들은 세계적인 무기상이다. 이스라엘의 사이버 감시기업 NSO는 ‘페가수스’라는 시민감시 스파이웨어를 개발해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대외 문제와 안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언론매체와 출판물이 이스라엘 방위군 수석 군사검열관의 규제를 받는다. 방송 채널에서는 어린이들이 가자에서 ‘전부 다 죽일 거야’라는 노래를 부르고, 소셜미디어에서는 여자들이 노출이 심한 위장복을 입고 전쟁무기를 홍보한다. 군대에서는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공격이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하고 피자집에서 피자를 주문하는 일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법원은 소셜미디어 기업들과 은밀한 거래를 통해 온라인 단속기관이 이용자와 협의 없이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저명한 역사학자는 ‘팔레스타인이 싫고, 엮이고 싶지 않으니 주변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분리 장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방송에서는 군인과 인질들의 가족들만 내보낼 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누구도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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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산불에 응답해야 한다 볼리비아 국방부 장관이 72건의 산불이 진화되지 않는다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협력을 요청했다. 에콰도르에서도 14군데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미국도 서남부 지역의 산불을 끄지 못하고 있다. 폭염이 토양과 식물을 건조시키면서 화재에 취약해진 위험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고성, 2022년 강원 동해안, 2023년 강릉 경포에서 연이어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의 저자 신하림은 ‘재난의 교훈을 되새기고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없다면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경제적인 고통을 개인에게 전담시켰을뿐더러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고 치유하려는 공동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그는 산불을 비롯한 재난상황에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방-대비-대응-복구’라는 국내 재난관리 시스템에 ‘학습’이라는 단계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상황에 대한 복기와 재난이 남긴 교훈을 찾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관뿐 아니라 민간·민간 간의 소통을 강조하고, 복구가 아닌 복지라는 관점에서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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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기후위기 대응 댐이란 없다 지난 7월30일 환경부에서 기후위기 대응 댐을 14곳 짓겠다고 발표했다. 극한 홍수와 가뭄 등으로 물 공급량이 불안정해질 것에 대비하겠다는 계획이라면 매우 위험한 결정으로 보인다. 기상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워 강수량의 변화를 충분히 고려할 수 없는 시기에는 댐이 실패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효과는커녕 홍수로 인한 댐 붕괴가 연쇄적으로 일어나 오히려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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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온라인이 편하다는 거짓말 쿠팡은 지난 1년간 가장 높은 고용증가율을 보이며 올해 노동자 7만1370명을 고용해 삼성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노동자들의 사고·질병 건수도 2015년 29건에서, 2020년 758건으로, 2022년엔 2300건으로 급증했다. 쿠팡의 산재율은 동종업계인 CJ대한통운, 로젠, 한진의 산재를 합한 것보다 25~28배가량 높다. 지난 9일 새벽 폭우가 내릴 때 배송을 강행하던 쿠팡 노동자가 또다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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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 오는 7월 열리는 하계 올림픽을 이유로 프랑스 정부는 지난 13개월간 1만명이 넘는 노숙인들을 파리에서 쫓아냈다. 도시정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버스에 태워 지방의 임시수용시설로 퇴출시키고 거처로 삼던 텐트를 철거하는 등,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비인간적 처사로 물의를 빚었다. 겉으로만 그럴듯해 보이는 도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쫓겨났는지를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홍대의 두리반, 이태원의 테이크아웃 드로잉, 서촌의 궁중족발…. 핫플에 자리 잡은 가게들이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쫓겨난다는 이야기는 어느새 익숙하다. 더 비싼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자가 나타나면 도시는 언제라도 공간을 일구어낸 자들을 쫓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떠난 자리마다 엄청난 양의 건축물 쓰레기가 버려지고, 화학물질로 범벅된 고급 인테리어에 눈길을 빼앗긴 사이 정든 이웃은 쉽게 잊힌다.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해 매년 이사를 다니는 우리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이웃 간의 살벌한 갈등은 사람들의 마음이 팍팍해서가 아니라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신뢰와 정을 나눌 틈이 없기에 발생한다. 미처 이웃을 만나기도 전에 우리는 서둘러 이사를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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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힐링이라 말한다 휴일에 식물카페에 갔다. 언뜻 숲을 그대로 실내에 들여다 놓은 아름다운 정경으로 보였는데, 막상 들어가니 나무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심지어 쓰러져 있는 나무도 있었는데, 테이블 앞에 펼쳐진 맛의 향연에 정신이 팔려 나무들을 찬찬히 살필 겨를은 없었다. 병든 나무들은 반짝이는 조명과 플라스틱 전시물에 가려 포토존으론 손색이 없었다. 손님들은 이국의 차와 고급 디저트를 맛보며 나무들이 무참히 병들고 죽어가는 순간들을 배경음악처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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