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가 원고가 되는 세상

최정화 소설가

전 세계 기후소송이 2만2000건을 넘어섰다. 기후소송은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을 방지하거나 이미 발생한 손실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송으로, 최근에는 공공 과실 또는 국가 과실 주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가가 기후위기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에 근거해 과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달 23일 기후 헌법소원 변론이 열려,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진해 헌법과 기본권을 침해하고 미래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며 정부에 항의했다. 2020년 3월 소송을 제기한 이후 4년 만에 청소년과 시민, 영유아, 법률가 등이 함께 입을 모았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가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독일의 헌법은 국가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자연과 동물을 보호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밀림개발을 막는 재판에서 승소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 마오리족의 터전인 황거누이강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바다쇠오리 소송에서 동물원고의 권리를 인정했다. 그런데 2018년,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취소하라는 산양 소송에 우리 법원은 ‘동물은 원고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원고에게 1000만원에 달하는 담보제공명령을 청구하면서 전 세계적 재난 상황에 대한 이 나라 법의 무지와 오만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기후소송의 원고는 적격성과 대표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기후위기 문제의 성격상 당사자가 소를 제기하기 어렵거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거나, 피해가 발생지역을 넘어서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 등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아 난관을 겪고 있다. 포르투갈의 청소년이 유럽의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경우와, 프랑스 소도시의 전 시장이 정부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기각되었다. 포르투갈인이 포르투갈이 아닌 국가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원고가 프랑스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법은 불변의 것이 아니다. 사회가 변하면 법도 변한다. 1972년 크리스토퍼 스톤은 <나무도 원고적격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자연의 법적 권리를 논증했다. 남아공의 환경법 변호사 코막 컬리넌은 더 야생적인 법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후위기로 체제 전환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른 법이 필요하다. 지구의 전체 구성원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이윤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며, 서로의 연결을 깨닫고 조화를 이루는 전 지구적 공동체를 이끌어갈 새로운 법 말이다.

기성세대가 단단히 막아선 차별과 착취의 법·제도를, 인간중심주의의 옹벽을,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이, 시민들이, 아기들이 힘겹게 넘어서고 있다. 다음달 21일에 열릴 2차 공개변론에 더 많은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제주 연안에 사는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인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적 권리와 자격을 부여하자는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22대 정기국회에서 무사통과되길 바란다. 성인이 되어 살아갈 터전을 잃어버린 미래세대가 권리를 되찾는 날이, 존재도 생명도 되지 못한 돌고래와 산양이 원고가 되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최정화 소설가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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