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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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문장 “차드의 15세 소녀 15명 중 1명은 아이 낳다가 죽는다” 로즈칼리지 정치학 교수인 제니퍼 D 스쿠바가 책 3장 ‘죽음은 불평등하다’에 쓴 내용이다. “산모들이 보건의료 기관을 찾아갈 수 있거나 아이를 낳을 때 분만 보조를 받을 수 있다면, 임산부 사망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소득 국가의 임산부 사망률은 11이다. 북미는 그 수치가 16인데, 흑인 여성이 임신 또는 출산 관련 합병증으로 죽을 확률이 백인 여성보다 243% 높다. 스쿠바는 출생, 죽음, 이주라는 3가지 키워드로 인류의 현재를 들여다본다. 인구 크기·구조·구성의 변화와 세계의 폭력과 평화, 억압과 민주주의, 빈곤과 번영의 관계를 분석한다. 건조한 수치에서 끌어낸 ‘인구통계학적 사유’ 중 하나이자 결론은 “우리는 상호의존적이고 서로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론에 아이 셋을 낳아 기르면서 다시 임신한, 소말리아 여성 파두마의 고통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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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도 한민족?···친일·파시즘·제국주의·이승만과도 이어지는 ‘유사 또는 사이비 역사학’ “아담과 이브도 소호족의 한 갈래였으리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문정창(1899~1980)이 이 1979년 낸 <(한국~슈메르) 이스라엘의 역사>에 쓴 문장이다. 문정창은 한국인과 수메르인이 다 같이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예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곧 소호씨국 즉 동방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호금천씨는 신라김씨(경주김씨)의 유래로 알려진 성이다. 기경량(가톨릭대학 국사학과 조교수)은 ‘한국 사이비 역사학의 성격과 그 형태’에서 “한민족을 근원에 놓고 세계 문명의 성립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라고 썼다. 기경량은 이 논문을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주최로 지난 1~3일 열린 국제학술대회 ‘민족적 과대망상과 만들어진 고대’에서 발표했다. 이 국제학술대회 참가한 한국인 학자들은 고거 유사 또는 사이비 역사학의 전파와 최근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공격 등을 두고 여러 비판적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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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필립스전구·마르크스‘자본’과 이어진 설탕·커피·모피 이야기···‘자연의 악’ 카를 마르크스 후원자로 유명한 이는 친구 프리드리히 엥겔스죠.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자본>을 쓸 때 재정 지원을 한 이가 또 있습니다. 어머니쪽 친척 리온 필립스입니다. 필립스는 네덜란드에 담배 공장과 커피 유통 회사를 세웠죠. 손자도 회사를 만듭니다. 세계 최대 전구 회사인 ‘필립스’입니다. 네 번째 ‘책건문’ <자연의 악>(알렉산드르 옛킨트 지음·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그 커피와 담배의 작은 일부는 <자본>이라는 텍스트로 전환되었던 것”이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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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사이 중세는 어둠·무질서·미신·야만이라는 농담과 편견 서양 ‘중세’ 하면 ‘암흑시대’를 떠올린다. 주경철의 <중세 유럽인 이야기>(휴머니스트)와 댄 존스의 <중세인들 1·2>(이재황 옮김, 책과함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책이다. 주경철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찬란한 문화의 빛이 사그라든 후 칠흑 같은 어둠이 유럽을 휘감았다는 식”의 “잘못된 이미지가 덧칠”됐다고 말한다. “무질서 상태와 미신에 가까운 종교가 인간 정신과 사회를 옭아맨 몽매의 시대”란 설명을 구닥다리라고 말한다. ‘중세 이미지’는 유럽에서도 비슷한 듯하다. 존스는 중세가 “거창한 역사적 농담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 ‘중세적’이라는 것은 자주 더러운 용어로 안배된다. 특히 신문 편집자들은 이를 자기네가 어리석음, 야만성, 제멋대로의 폭력을 나타내고 싶을 때 손쉬운 도구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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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비욘세 콘서트에서 ‘어려운 아름다움’을 보다···‘이지 뷰티’ ‘책건문’ 네 번 째 책은 클로이 쿠퍼 존스의 <이지 뷰티>(안진이 옮김, 한겨레출판사)입니다. ‘easy beauty’ 뜻을 담은 문단은 중반 이후 소개하겠습니다. 존스는 장애인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나에게는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엉치뼈)이 없었다.” 의학 용어로 ‘천골무형성증(Sacral Agenesis)’입니다. 존스는 “어떤 것이 생성되지 않았거나 생성에 실패했다는 뜻”의 그리스어 ‘agenesis’를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에게 없는 천골, 나의 누락된 요소.” 이 ‘누락’은 삶에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길에 나가면 낯선 사람이 빤히 쳐다보기 일쑤죠. “(사람들은) 나를 걸어 다니는 비극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보지 않으려” 합니다. 여행지에 가면 자신을 세워두고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도 나옵니다. “나는 작았고, 난쟁이였고, 그건 웃기고 기막힌 일이었다. 나는 진짜가 아니었다. 그냥 골목길의 이상한 물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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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문장 “요리란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기술이다” 미니멀리즘 열풍에 일조한 <심플하게 산다> 저자 도미니크 로로의 신작이다. ‘요리?’ 재료는? 시간은? 배달 음식이 편하고, 맛도 보장한다. 배달 음식이나 3분 요리에서 “자부심, 기쁨, 삶의 즐거움”을 누리기는 어렵다. 가공식품의 유해성도 문제다. 요리는 명상이라고 로로는 말한다. 거창한 게 아니다.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명상에 들어가는” 일이다. 칼과 도마를 깨끗이 씻은 뒤 ‘파 송송’ 써는 행위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명상은 식사 뒤 주방을 깨끗이 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로로는 배달 음식을 기다리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상을 보는 것보다 “손을 바삐 움직이며 촉각으로 느껴지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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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민족주의와 국경에 갇힌 안중근···“‘조작된 허구’의 ‘장엄한 역사’ 편입 막아야” 도진순(창원대 사학과 교수)이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끈 곳은 서울 남산 안중근기념관 앞 동상이다. 동상 하단부에 새긴, 유묵에서 따온 ‘大韓國人(대한국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한국은 ‘대한제국’을 뜻합니다. 즉 ‘대한국인’은 ‘대+한국인’ 즉 ‘위대한 한국인’ ‘영웅’이 아니라 ‘대한국+인’ 즉 ‘대한제국의 국민’ ‘One Korean’이란 뜻입니다. 이름 앞 국명 ‘대한국’은 국제용이라는 것입니다. 이 서명 유묵을 받는 이는 외국인(일본인)라는 걸 의미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보통 안 의사의 국제용 서명인 ‘대한국인’을 국내용으로, 또 ‘대+한국인’의 영웅으로 해석하기 일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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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활동은 포기할 수 없는 기본권…전태일에 진 빚 어떻게 갚을까 고민” “‘기레기’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자 박도제씨는 1999년 한 신문사에 들어갔다. 2016년 공인노무사 자격을 취득한 뒤 기자노조 위원장, 통합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노조 설립 과정을 기록한 게 수상작 ‘애완견이 된 감시견’이다. 박씨는 “자본이 아무리 애완견의 역할을 요구해도 언론인은 기본적으로 감시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애완견이 된 감시견’은 “박 팀장, ○○기업 이번 달 광고 집행이 어렵다는군. 한번 알아 봐봐”라는 데스크 전화로 시작한다. “다 쓴 치약을 칫솔로 밀어내듯 영혼을 짜내야 한다. 기자 업무도 아닌데 몇 년째 그러고 있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자위도 더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박 팀장은 “고상한 앵벌이”인 광고 협찬 전화를 하려고 기자실 밖으로 나와 ○○기업 최 부장에게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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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당한’ 공장에서 갈망한 자유…‘나다운 시’ 찾아 사람답게 살고파” “노동자란 말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안철수씨 말이다. 그는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35년 전 부산노동자문학회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노동자의 삶과 인권을 토론하고, 문학으로 표현·실천하며 알려 나가자고 다짐하던 때를 떠올렸다. 20대 중반 공장에서 일하던 때다. “늘 문학책을 가까이하면서 지적 배고픔”을 채우던 때다. 그때 “시를 쓴다”는 한 친구를 만나 시를 배웠다. 좋은 시어를 쓰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문학 모임 중에 “노동자 현실에 먼저 눈을 뜬 또 다른 친구”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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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해 쓸 수 있는 건 큰 기쁨…이면의 폭력에 맞서는 글의 힘 믿어” 조수현씨의 단편 소설 ‘개미인력 남쁘로모따’의 ‘남쁘로모따’는 이주노동자 청년이다. 한국 청년 주인공인 ‘나’는 인력사무소 ‘개미인력’에서 남쁘로모따를 만난다. 네팔에서 온 지 5개월 됐다. 월 45만원짜리 월세방 ‘투투장’에서 지낸다. 내가 사는 원룸에서 5분 거리다. 65층 펜트하우스 자재 운반 등 같이 노동하면서 친해진다. 남쁘로모따가 어느 날 약속한 일에 나오지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수만원, 수십만원을 빌린 뒤 잠적했다. 나는 투투장 방으로 찾아갔다. 스포츠토토 종이가 어지러이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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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전맹의 미술관람자’ 시라토리···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미술 담당을 할 때인 2021년 9월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란 전시 기사를 썼습니다. 발달 장애와 정신 장애 작가 16인의 작품을 모았습니다.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및 정신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표현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인 밝은방이 기획한 전시입니다. 장애인과 관람의 문제라면? 휠체어도 편히 오가게 시설을 만들거나 청각 장애인 영화 관람을 위해 자막을 다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정책을 떠올릴 겁니다. 극장 ‘무장애 영화’는 시각장애인의 감상을 위해 ‘화면 해설’도 넣습니다. 장애인이 찾기 힘든 상영 시간에다 상영 횟수가 부족한 문제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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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사이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하마스의 무도한 선제공격과 이스라엘의 잔인한 반격에서 떠오른 건 <폭격>(김태우, 창비)에 인용된 에드거 스노의 말이다. “공습은 급강하 폭격기를 피하려고 지하실에 처박히고 들판에 얼굴을 파묻어 본 적이 없거나, 혹은 자기 아들의 떨어진 머리를 찾고 있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거나, 불에 타버린 학생들의 고약한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누구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는 완전한 개인적인 증오를 일으킨다.” 가짜뉴스와 허위 선전 속에서 진실의 가닥을 잡긴 쉽지 않지만, 분명한 건 주고받는 미사일 공격 와중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간다는 점이다. 폭격은 민간인 목숨 따윈 안중에 없는 호전적인 이들만 겨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