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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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왜 성범죄자를 변호했나 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들 얼굴에 또렷한 고문 흔적을 보면서 2011년 노르웨이 연쇄 테러 사건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생채기 하나 없던 얼굴이 떠올랐다. 구타나 고문 없이 정식 재판도 받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이라고 테러범에 관대할 리 없다. 많은 사람이 브레이비크가 희생자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처형되길 원했다. 사람들은 변호사에게도 분노를 터뜨렸다. 변호사 예이르 리페스타드가 쓴 게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그러나)다. 재판 전후 상황과 소회를 담은 책에서 그는 ‘희대의 흉악범’의 변호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말을 들었을 때 평판 등을 우려하며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리페스타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 당원이었고, 브레이비크가 우퇴이아섬에서 무차별 학살 대상으로 삼은 게 노동당 캠프에 온 청소년들이다. 간호사인 아내가 브레이비크가 병원에 실려 왔다면 누구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따지지 않고 돌봤을 것이라며 말했다. “그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당신의 직업 아닌가요?”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다. 한국 헌법도 제12조 4항에도 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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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안내원들 몸수색 저항은 선구적 반성폭력 운동”···‘박정희 정부의 활용’과 ‘기계-인간 대결’까지 조민지(서울대 강사)가 ‘사회와 역사’ 제 140집(2023년 겨울)에 실은 논문 <1960~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인권’ 문제와 버스안내원이라는 사례>는 ‘여성에 대한 폭력’ ‘박정희 정부의 인권 개념 재규정과 버스안내원 활용’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3가지 문제에 주목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해당하는 게 몸수색이다. “범죄를 적발하기 위해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일회적인 사건이라기보다 날마다 노동자들의 복종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례”에 가까웠다. 조민지는 “격리된 합숙소 속에서 이루어지던 몸수색이 대중들의 시선에 노출되기까지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저항하여 사건을 만들어내야 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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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녹색운동’의 가능성은 없을까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알렙)은 생태철학 연구자 신승철의 유고다.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사장일 때 조합 연구자이자 공저자인 정유진, 최소연과 함께 글을 쓰던 중 작고했다. 저자들은 “거대 세력에 맞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즉각적 대전환을 추구하는 ‘근본파(근본주의적 생태주의)’와 기성 정치와 타협하며 점진적으로 변화를 추진해 나아가려는 ‘현실파(현실주의적 환경주의)’로 양분”된 생태 운동 전선 구도 속에서 ‘새로운 녹색 운동’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책이 규정한 거대 세력은 사회 핵심 의제를 늘 경제 성장으로 환원하려는 정치·경제 관료들, 핵발전소만이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다는 핵 마피아들, 전력(電力) 대부분을 독점하면서도 그것을 가장 저렴한 형태로 유지하려는 산업 자본가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기업 경영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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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순수주의자가 문화를 파괴한다”···‘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마틴 푸크너(하버드대 영문학과 비교문학 교수)의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허진 옮김, 어크로스) 원제는 ‘Culture: The Story of Us, From Cave Art to K-Pop(문화: K팝부터 동굴 예술까지,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K팝 이야기는 별도 장에서 다루진 않고, 에필로그에 나옵니다. 강남스타일’ 패러디 영상이 수없이 만들어진 사실을 두곤 “K팝 해외 팬들의 창의적 에너지를 잘 보여준다”고도 했습니다. 푸크너가 K팝 과거와 현재를 두고 말하려는 건 문화의 ‘이동과 공유’입니다. K팝을 “문화사가 순환과 혼합을 향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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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불평등 칸막이’에서 ‘모두의 화장실’로···‘화장실 전쟁’ 이번 주 ‘책건문’은 <화장실 전쟁>(알렉산더 K. 데이비스 지음, 조고은 옮김, 위즈덤하우스)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하실 수 있듯 미국의 공중화장실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다룹니다. 출판사는 “가장 사적이면서 공적인 공간에서 펼쳐진 특권, 계급, 젠더, 불평등의 정치”라는 선전 문구를 달았네요. 출판사 선전 문구는 과할 때가 많은데, 이 문구는 적절해 보입니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화장실과 젠더 문제를 두고 미국은 진보 추세에서 퇴행 또는 정체를 반복합니다. 2015년 4월8일 미국 오바마 정부는 백악관 아이젠하워 행정동 건물에 성중립 화장실을 선보이죠. 백악관 단지에 최초로 설치한 성중립 화장실입니다. 같은 해 12월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TV토론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 무대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세인트 안셀름 대학에 설치된 토론 무대에서 여자 화장실까지 “들렀다 오는” 데 남자 후보들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여자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보다 먼 데 있어 벌어진 일입니다. 클린턴 측이 사전에 연단과 화장실까지 거리를 측정하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체육관 환경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가 클린턴이 화장실 간 일을 두고 역겹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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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나는 나다.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다” 헤세는 “개인이 군중을 헤치고 나와, 인간이 되고 개성적 존재로 우뚝 서는 것”, 즉 “자기답게 사는 것”을 강조한다. ‘정신의 깨어남’ ‘용기와 고집,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책은 편지, 일기, 시, 산문에서 발췌한 글을 함께 엮었다. 미번역 원고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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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접고 싶었지만 2040년 9월 20일 1000호를 내겠다”···한기호 ‘잡지, 기록전쟁’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600호 발간에 맞춰 나온 출판인 한기호의 신간 <잡지, 기록전쟁>(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엔 생사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부제가 ‘출판전문지 발행인의 25년 생존 일기’다. 레거시 미디어 몰락, 종이잡지 죽음의 와중에 ‘살아남음’과 ‘살아 있음’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온몸을 바쳐 최선을 다하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치겠다”는 뜻이다.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하기 전 출사표에 적은 이 말을 한기호는 ‘들어가는 말’에 넣었다. 99세에 작고한 언론인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기사 쓰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한 칼럼에 인용된 말이다. 창비를 떠난 지 만 25년이 되던 2023년 9월12일 이 칼럼을 읽고는 이렇게 썼다. “그날 나는 다시 한번 온몸을 바쳐 최선을 다하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출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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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춤추는 염소 전설’에서 ‘모카 원산지 속이기’, ‘여성 배제 카페’까지 ···‘커피의 시대’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보신 분들은 주인공 강인구(하정우 분)가 현지 군인에게 ‘코리아 트레디셔널 커피’라며 커피 믹스를 선물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군인이 맛있게 마시는 장면과 함께요. 먼저 인스턴트커피 이야기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가장 인기 있는 커피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인스턴트커피는 프랑스의 유머작가이자 저자인 알퐁스 알레가 1881년 처음으로 발명했고요. 스위스 네슬레사가 1938년 네스카페 브랜드로 인스턴트커피를 출시했습니다. 미군에 보급된 게 바로 네스카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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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은 교형” “친족 같은 관청 근무 금지”···조선 후기 민⸱형사소송 실무지침서 ‘결송유취보’ 완역 조선 후기 민형사소송법서 <결송유취보(決訟類聚補)>가 최초로 완역돼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31일 “그 내용과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해제와 해설도 수록한 신간 <결송유취보 역주>(전경목·김경숙 외 역)를 펴냈다”고 알렸다. <결송유취보>는 의령현감 이지석(1652~1707)이 1649년 편찬된 <결송유취(決訟類聚)>를 증보해 1707년 개간한 사찬 소송법서다. 전경목(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과 김경숙(서울대 교수) 등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서울대 연구팀이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년 동안 번역, 수정과 첨삭 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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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되는 인문학 구하자”··· 소통과 연대, 자성의 한국현대문학자 대회 “전 지구적 재난과 한국 사회의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인문학 학술장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5~26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 중 나온 ‘한국현대문학자 공동선언’ 한 구절이다. 가장 최근의 학술장 붕괴 사례는 정부가 무전공 입학 확대를 대학 재정지원과 연동하려는 일이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신입생 선발부터 수도권 대학은 모집정원의 20%, 국립대는 25%를 전공 구분 없이 모집하는 대학에만 대학혁신지원사업·국립대학육성사업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했다. 공동선언은 이렇게 이어진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학생의 급감,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심화, 산업적 수요를 내세운 사회적·정책적 홀대 및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한 학과 폐지 등 인문학 연구와 교육은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문학 연구 및 교육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현대문학자들도 “진리 탐구와 자유의 실현이라는 학술의 내재적·사회적 가치 추구에 전력을 다하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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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돈으로 행복 살 수 없다”에 깃든 복종과 감내, 내 탓···‘체제 정당화의 심리학’ “당연히 살 수 있죠. 그건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짓말일 뿐이에요.”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한 에피소드에서 부자 가브리엘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매리 수녀의 말에 이렇게 대꾸합니다.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사회·정치행동연구소 공동 책임자인 존 T. 조스트는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신기원 옮김, 에코리브르) 책 7장에서 이 대화를 인용합니다. 읽기 딱딱한 이 책에서 ‘체제 정당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쉬운 사례 중 하나입니다. 아래 동영상 50초쯤 보시면 해당 대화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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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인류라는 추상물 이야기는 그만두자” 브라질 크레나키 원주민 운동가 아이우통 크레나키는 2000~3000년에 걸쳐 ‘우리’가 구축한 인류라는 관념을 문제 삼는다. “역사에 등장한 그토록 많은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했던 나쁜 선택의 기원에 그 인류라는 관념이 있지 않은가.” 그는 폭력과 생태학살의 식민화 과정이 유럽 백인 남성, 즉 “개명한 인류”가 “야생의 어둠에 남겨진 인류”를 만나 빛을 비춰주려 했던 원칙을 따랐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원주민들은 노동력과 근대화라는 명목 아래 “소속 집단과 고향에서 뿌리째 뽑혀 ‘인류’라는 이름의 분쇄기 안으로 내던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