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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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창 모호하고 유동하는 거리 정치 2016년 11월 촛불집회 때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면 대개 “그럴 리가” 하고 반응한다. 민주당이 일찌감치 탄핵 선봉에 선 줄 안다. ‘박근혜 탄핵=민주당 덕’이라고 여긴다. 민주당이 촛불집회 성취를 전유했기 때문이다. 그해 11월 광장에서 박근혜 수사와 구속을 외치는 목소리가 고조에 이르렀을 때 당시 민주당 고문 문재인은 ‘명예로운 퇴진’, 원내대표 우상호는 ‘질서 있는 퇴진’을 말했다. 서울대 교수를 하던 조국은 ‘탄핵이 불가능한 이유 세 가지’를 주장했다. 탄핵이 국회에서 이뤄질지, 총리 황교안이 권한대행을 맡는 게 옳은지 되물었다. 그는 헌법재판관들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이들은 거리 정치와 의회 정치를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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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창 고통을 들여다본다는 것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백가쟁명으로 쏟아진 분석 중 공통의 단어 하나를 추리면 ‘고통’이다. 번역가 정은귀는 “한강은 응시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시선이 머문 곳이 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 가부장제 억압과 폭력에 놓인 여성들 고통이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 정인섭이 지난 15일 환경노동위 국감장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셀카를 찍었다는 기사를 읽을 때 떠오른 단어도 고통이다. 사망 노동자들과 동료, 유족들의 고통 말이다. 올해만 5명의 원·하청 노동자가 거제사업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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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창 한결 같지는 않은 사제단 50년, 그리고 신부 문정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을 처음 만난 건 2009년 5월5일 어린이날이다. 신부 3명이 서울 용산참사 현장에서 ‘생명평화 미사’를 집전했다. 일회성 미사가 아니었다. 그해 3월18일부터 주일 빼고 매일 열었다. ‘거리 미사’를 이끈 신부 중 한 명이 문정현이다. 어깨 근육 힘줄이 끊어졌는데도 희생자들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버티며 천막에서 먹고 자며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 뒤 근처 공사 예정지인 폐허를 함께 산책할 때 “왜 거리로 나왔냐”고 물었다.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수십년간 이뤄왔던 삶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극소수를 위한 개발 논리가 너무 뼈저리게 느껴졌다”고 했다. “곁에 있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고 했지만 온 힘으로 “여기저기 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말로 행동”으로 도우려 했다. 거리 미사는 그해 9월 국무총리 정운찬의 유가족 조문을 끌어냈다. 개신교와 불교·원불교 성직자들 참여도 이끌며 참사 현장을 ‘종교의 성지’로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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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창 안창호와 김문수, 그리고 개소리에 관하여2 ‘전광훈 그리고 개소리에 관하여.’ 2019년 6월 쓴 칼럼 제목이다. 미국 철학자 해리 고든 프랭크퍼트(1929~2023)의 <개소리에 대하여>를 참조했다. ‘개소리’는 ‘bullshit’의 번역어다. 요약하면 개소리는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고,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 무관심하며, 정확성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말이다. 당시 칼럼에서 예로 든 게 개신교 우파 목사 전광훈의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은 사탄” 같은 말이다. 인물도, 자리도 다르지만 한국의 인권 인식은 5년 사이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문제를 두고 전광훈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태극기 집회장이 아니라 공공의 장에 나와 5년 전 주제로 다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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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올해도, 내년에도 2000명이 죽는다 리튬전지 공장 아리셀의 화재 참사는 희생자가 한두 명이었다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한두 명 죽는 일은 예삿일이라 사람들은 그러려니 한다. 시민사회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진보 언론사 몇 곳이 보도하면 그 죽음은 잊힌다. 다시 한두 명이 죽으면 이 과정을 되풀이한다. 두 자리 숫자라야 세상이 그나마 들여다본다. 그것도 전제가 있다. 화성 참사처럼 한꺼번에 죽어야 한다. 같은 업종이라도 따로 죽으면 잘 모른다. ‘13’. 올 1~5월 조선소에서 죽은 노동자 숫자다. 계단에서 떨어져 죽고, 중량물에 깔려 죽고, 폭발로 죽었다. ‘위험의 외주화’에 ‘위험의 이주화’가 겹쳤다. 13명 중 12명이 하청노동자, 그중 2명이 이주노동자다. ‘조선업 빅3’라는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뉴스 검색창에 ‘조선소’를 검색하면, ‘회장 방문’ ‘미·중 갈등 반사이익 기대’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이, 몇 안 되는 이들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은폐하듯 도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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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창 출생률 제고를 위한 성욕과 교미의 정치경제학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보고서에다 “여성들은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도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적은 게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 매력은 ‘성적 매력’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성욕’이다. 테스토스테론이나 프로게스테론 같은 성호르몬 분비에 관한 생리학적 고민을 담은 이 구절을 두고 황당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이 구절은 유명 고전 경제학자 이론에 기댄다. “성욕이 인구 증가를 일으킨다.” 토머스 R 맬서스가 <인구론>(1798)에서 내린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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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한국 사회 부적응자가 남긴 이야기 2011년 여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홍세화를 봤다.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을 응원하는 희망버스가 갔을 때다. 홍세화는 무대 먼발치 담벼락 쪽에서 홀로 행사를 지켜봤다. ‘진보 셀럽’들이 맨 앞자리 어디 앉을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걸 목격한 뒤라 그 모습이 오래 남았다. 2013년 홍세화가 제안해 만든 학습 협동조합 이름이 ‘가장자리’라는 걸 알았을 때 경계를 지키거나 버티려던 마음으로 담벼락 쪽에 선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자리’ 창립과 ‘말과활’ 창간을 두고 인터뷰했을 때 홍세화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벼랑 끝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죠. 중심을 지향하는 게 아닙니다. 중심이 점 하나라면, 가장자리는 평등한 점들이 모여 만드는 선입니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맞잡는 연대의 선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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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한국 사회 부적응자’ 홍세화가 남긴 이야기 2011년 여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홍세화를 봤다.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을 응원하는 희망버스가 갔을 때다. 홍세화는 무대 먼발치 담벼락 쪽에서 홀로 행사를 지켜봤다. ‘진보 셀럽’들이 맨 앞자리 어디 앉을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걸 목격한 뒤라 그 모습이 오래 남았다. 2013년 홍세화가 제안해 만든 학습 협동조합 이름이 ‘가장자리’라는 걸 알았을 때 경계를 지키거나 버티려던 마음으로 담벼락 쪽에 선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자리’ 창립과 ‘말과활’ 창간을 두고 인터뷰했을 때 홍세화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벼랑 끝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죠. 중심을 지향하는 게 아닙니다. 중심이 점 하나라면, 가장자리는 평등한 점들이 모여 만드는 선입니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맞잡는 연대의 선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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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왜 성범죄자를 변호했나 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들 얼굴에 또렷한 고문 흔적을 보면서 2011년 노르웨이 연쇄 테러 사건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생채기 하나 없던 얼굴이 떠올랐다. 구타나 고문 없이 정식 재판도 받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이라고 테러범에 관대할 리 없다. 많은 사람이 브레이비크가 희생자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처형되길 원했다. 사람들은 변호사에게도 분노를 터뜨렸다. 변호사 예이르 리페스타드가 쓴 게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그러나)다. 재판 전후 상황과 소회를 담은 책에서 그는 ‘희대의 흉악범’의 변호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말을 들었을 때 평판 등을 우려하며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리페스타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 당원이었고, 브레이비크가 우퇴이아섬에서 무차별 학살 대상으로 삼은 게 노동당 캠프에 온 청소년들이다. 간호사인 아내가 브레이비크가 병원에 실려 왔다면 누구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따지지 않고 돌봤을 것이라며 말했다. “그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당신의 직업 아닌가요?”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다. 한국 헌법도 제12조 4항에도 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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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안내원들 몸수색 저항은 선구적 반성폭력 운동”···‘박정희 정부의 활용’과 ‘기계-인간 대결’까지 조민지(서울대 강사)가 ‘사회와 역사’ 제 140집(2023년 겨울)에 실은 논문 <1960~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인권’ 문제와 버스안내원이라는 사례>는 ‘여성에 대한 폭력’ ‘박정희 정부의 인권 개념 재규정과 버스안내원 활용’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3가지 문제에 주목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해당하는 게 몸수색이다. “범죄를 적발하기 위해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일회적인 사건이라기보다 날마다 노동자들의 복종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례”에 가까웠다. 조민지는 “격리된 합숙소 속에서 이루어지던 몸수색이 대중들의 시선에 노출되기까지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저항하여 사건을 만들어내야 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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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녹색운동’의 가능성은 없을까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알렙)은 생태철학 연구자 신승철의 유고다.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사장일 때 조합 연구자이자 공저자인 정유진, 최소연과 함께 글을 쓰던 중 작고했다. 저자들은 “거대 세력에 맞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즉각적 대전환을 추구하는 ‘근본파(근본주의적 생태주의)’와 기성 정치와 타협하며 점진적으로 변화를 추진해 나아가려는 ‘현실파(현실주의적 환경주의)’로 양분”된 생태 운동 전선 구도 속에서 ‘새로운 녹색 운동’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책이 규정한 거대 세력은 사회 핵심 의제를 늘 경제 성장으로 환원하려는 정치·경제 관료들, 핵발전소만이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다는 핵 마피아들, 전력(電力) 대부분을 독점하면서도 그것을 가장 저렴한 형태로 유지하려는 산업 자본가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기업 경영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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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순수주의자가 문화를 파괴한다”···‘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마틴 푸크너(하버드대 영문학과 비교문학 교수)의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허진 옮김, 어크로스) 원제는 ‘Culture: The Story of Us, From Cave Art to K-Pop(문화: K팝부터 동굴 예술까지,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K팝 이야기는 별도 장에서 다루진 않고, 에필로그에 나옵니다. 강남스타일’ 패러디 영상이 수없이 만들어진 사실을 두곤 “K팝 해외 팬들의 창의적 에너지를 잘 보여준다”고도 했습니다. 푸크너가 K팝 과거와 현재를 두고 말하려는 건 문화의 ‘이동과 공유’입니다. K팝을 “문화사가 순환과 혼합을 향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