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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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혼술 예찬’ 쇼지 사다오 별세 직장인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만화와 음식 에세이 등으로 알려진 일본 만화가이자 수필가 쇼지 사다오가 지난 5일 도쿄 한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별세했다고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이 전했다. 향년 88세.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 러시아문학과를 중퇴했다. 1960년대부터 만화가로 활동했다. 상을 많이 받은 만화가다. 1970년 <단마 군> 등으로 문예춘추 만화상을, 1995년 <돼지, 통째로 맛보기>로 고단샤 에세이상을 받았다. 2001년 <아삿테 군>으로 일본만화가협회상 대상을 수상했다. 2000년 문화훈장 등을 수훈했다. 그는 50년째 이상 연재한 주간지 만화가 2개나 될 정도로 장수한 만화가였다. -
‘어린이 눈 건강 헌신’ 구본술 실명예방재단 설립자 별세 한국에서 실명예방과 안(眼) 보건 발전에 헌신한 구본술 한국실명예방재단 설립자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별세했다고 재단이 16일 알렸다. 향년 101세. 고인은 1925년 7월5일 서울에서 태어났고, 194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1950년 11월 수도육군병원에서 육군 안과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총탄에 눈을 잃거나 다친 환자들을 치료했다. 국립의료원 안과 과장으로 일한 1958년 당시 북유럽의 실명예방 활동을 벌이는 의사들 정보를 듣는다. 1960년대 초 국립의료원에서 일할 때 스칸디나비아 지역 의사들과 교류하면서 서구 의료복지와 안 보건 정책을 배웠다. 1966년에는 미국 국방부 병리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실명예방 활동을 공부했다. -
어린이 눈 건강 평생 헌신한 구본술 한국실명예방재단 설립자 별세 한국에서 실명예방과 안(眼) 보건 발전에 헌신한 구본술 한국실명예방재단 설립자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별세했다고 재단이 16일 알렸다. 향년 101세. 고인은 1925년 7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4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1950년 11월 수도육군병원에서 육군 안과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총탄에 눈을 잃거나 다친 환자들을 치료했다. 국립의료원 안과 과장으로 일한 1958년 당시 북유럽의 실명예방 활동을 벌이는 의사들 정보를 듣는다. 1060년대 초 국립의료원에서 일할 때 스칸디나비아 지역 의사들과 교류하면서 서구 의료복지와 안 보건 정책을 배웠다. 1966년에는 미국 국방부 병리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실명예방 활동을 공부했다. -
‘혼밥·혼술 예찬’ 쇼지 사다오 별세···직장인의 일상 담은 만화·수필 대가 직장인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만화와 음식 에세이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만화가이자 수필가 쇼지 사다오가 지난 5일 도쿄 한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별세했다고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이 전했다. 향년 88세.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 러시아문학과 중퇴했다. 1960년대부터 만화가로 활동했다. 상을 많이 받은 만화가다. 1970년 <단마 군> 등으로 문예춘추 만화상을, 1995년 <돼지, 통째로 맛보기>로 고단샤 에세이상을 받았다. 2001년 <아삿테 군>으로 일본만화가협회상 대상을 수상했다. 2000년 문화훈장 등을 수훈했다. 그는 50년째 이상 연재한 주간지 만화가 2개나 될 정도로 장수한 만화가였다. -
‘사회복지종사자 공익신고상’ 이가희씨 등 수상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는 제2회 사회복지종사자 공익신고상 수상자를 12일 발표했다. 1등 ‘희생과 변화’상 수상자는 이가희씨(십대여성건강센터)다. 이씨는 십대여성건강센터 운영 종료 과정에서 발생한 이용자 지원 공백, 민감정보 처리 적정성, 종사자 불이익 조치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노조는 “위기 청소년의 건강권과 비밀보장, 사회복지 서비스의 지속성 문제를 공론화했다”며 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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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고투 ⑪“한 소녀를 교육하는 건 세상을 교육하는 것”…‘아동 결혼’ 종결자 카친다모토 추장 테레사 카친다모토는 아프리카 말라위 중부 데드자 지역 최고 족장이었다. 2025년 8월13일(현지시간) 간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그가 사망했을 때 유엔 말라위 사무소 등이 애도 성명을 냈다. “3500건 이상의 아동 결혼(조혼)을 무효화하고, 수천 명의 소녀를 학교로 돌아가게 했다”며 업적을 기렸다. 그는 ‘아동 결혼 종결자’로 불리곤 했다. -
“약물 중독, 처벌보다 두려움 벗어나도록 응원을” 아들 ‘중독’에 충격받고 공부 시작…‘내뱉는 욕설은 회복 과정’ 깨달아“가족끼리 울며 북돋아야 삶 건강해져”…사회복귀 희망 전하려 책 출간 “약(藥)을 했던 사람들은 악(惡)한 사람이 아니라 약(弱)한 사람들입니다.” 황금용 사람과배움 대표가 약물 중독자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격리·추방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같은 구성원으로 살아나갈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중독 회복에 애쓰는 여러 청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
“약물 중독자는 ‘약(弱)’한 사람들”···‘오물 쓰나미’에서 찾은 회복의 희망 “약(藥)을 했던 사람들은 악(惡)한 사람이 아니라 약(弱)한 사람들입니다.” 황금용 사람과배움 대표가 약물 중독자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회에서 격리·추방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같은 구성원으로 살아나갈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회복에 애쓰는 여러 청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
‘전두환 정권 법무장관’ 배명인 법무법인 태평양 설립자 별세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를 만들고, 안기부장도 지낸 배명인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1932년 11월8일 경남 창원군 웅동면 대장리(현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에서 태어났다. 진해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 북부지청장, 광주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차장검사, 광주고검장으로 일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2~1985년 2년9개월간 법무부 장관(제33대)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 때 3년6개월을 일한 고 민복기 전 장관 다음으로 장수한 법무부 장관이다. 1988년엔 안기부장을 맡았다. -
전두환 정권 법무장관 배명인 ‘법무법인 태평양’ 설립자 별세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를 만들고, 안기부장도 지낸 배명인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1932년 11월 8일 경남 창원군 웅동면 대장리(현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에서 태어났다. 진해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 북부지청장, 광주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차장검사, 광주고검장으로 일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2∼1985년까지 2년 9개월간 법무부 장관(제33대)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 때 3년 6개월을 일한 고 민복기 전 장관 다음으로 장수한 법무부 장관이다. 1988년엔 안기부장을 맡았다. -
앤젤리나 졸리 딸 샤일로, K팝 댄서로… ‘우주소녀 다영’ 뮤직비디오 깜짝 등장 앤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의 딸인 샤일로 졸리가 우주소녀 다영의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에 깜짝 등장했다. 샤일로는 지난 2일 유튜브에 공개된 다영의 싱글 <What’s a girl to do>에 뒤로 넘긴 머리에 갈색 레이스 소재 상의와 링 귀걸이를 착용한 모습으로 나온다. 미국 매체 피플과 한국 연예매체 보도를 보면, 샤일로는 미국 현지 오디션에서 뽑혔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한다. -
‘안젤리나 졸리 딸’ 샤일로가 K-팝 댄서로?···다영 뮤직비디오 티저 깜짝 등장 앤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의 딸인 샤일로 졸리가 우주소녀 다영의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에 깜짝 등장했다. 졸리는 지난 2일 유튜브에 공개된 다영의 싱글 ‘What’s a girl to do’에 뒤로 넘긴 머리에 갈색 레이스 소재 상의와 링 귀걸이를 착용한 모습으로 나온다. 미국 매체 피플과 한국 연예 매체 보도를 보면, 졸리는 미국 현지 오디션에서 뽑혔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한다. 2006년 5월 태어난 졸리는 지금 19세다. 2016년 부모 이혼 이후 안젤리나 졸리의 보살핌 속에 자랐다. 18세 생일이던 2024년 5월 27일 법원에 개명을 신청해 샤일로 졸리-피트에서 샤일로 졸리로 아버지 성을 공식적으로 없앴다. 당시 현지 언론은 아버지와 관계가 나빠진 점 등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