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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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대학이 ‘청춘’들을 길들이는 법 “여러분의 새로운 여정을 축하하며, 지금부터 주어질 자유와 낭만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다양한 지식을 접하는 희열을 느끼면서 시민으로 성장해 주세요.” 12년간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3월 첫 강의 때마다 했던 말이다. ‘어른들이 가라고 해서’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비싼 돈 들여 발을 내디딘 새내기들에게, 여기는 취업사관학교고 목표는 오직 기업의 노예로 선발되는 것이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학과 작별하는 마당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를 하기는 싫다. 빌어먹을 대학이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고 길들이는지를 ‘시작부터’ 아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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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스타벅스에 위로받는 이상한 여행 17년 만에 유럽여행을 했다. 이번에도 시작은 독일 항공사 승무원의 편안한 모습들이었다. 한국의 동종업계 종사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이도 많았고, 날씬하지도 않았고, 또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편안했다. 한국인 승무원도 여러 있었지만 안경을 낀 ‘여’승무원은 전부 독일 사람이었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여전했다. 교과서에나 보던 건축물, 엽서에서나 보던 풍경을 마주하는 기쁨도 대단했지만 역시나 기억에 남는 건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모습들이었다. 어떤 식당을 가더라도 수다 삼매경인 노인들로 붐볐다. 혼자서 맥주 한 병만 테이블 위에 두고 온종일 사람구경만 하는 할아버지, 신문의 가로세로 낱말 퀴즈에 몰두하는 돋보기안경을 쓴 할머니들의 여유는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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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나, 한국 나이 안 써”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 나는 마흔두 살이다. 사십대 중반의 길목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다.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뀐 지가 어느덧 2년이다 보니 불혹이라는 말도 예사롭지 않게 이해된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세상 풍파에 연연하지 않고 의젓하게 살고 싶다. 사실 이 말은 무엇에 도전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체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마흔둘이면 자타공인 아재다. 그런데 오랜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최근에 귀국한 동년배 친구는 나보다 훨씬 젊게 산다. 친구는 내게는 예전이었던 ‘사십대의 시작’이 기대된다면서, 이를 기념하고자 제주 올레길을 무작정 걸을 예정이라 했다. 느낌이 좋으면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도보로 올라오겠단다. 내가 국토대장정은 젊은 애들이나 하는 거라면서 ‘우리 나이쯤 되면’이라는 추임새를 멈추지 않자 친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의 차이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나, 한국 나이 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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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교수들의 쓸데없는 강사법 걱정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 16주 동안 시간이 구속된다. 겨우 60만~70만원의 급여를 받는 한 과목만 담당할지라도 거의 반년은 운신의 폭이 제한되기에 다른 스케줄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다음 학기에도 강의가 지속되는지를 제때라도 알려주면 좋겠지만, 12년간 12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런 시스템을 경험한 적은 없다. 강사는 일방적인 통보를 마냥 기다린다. 왜? 대학은 강사를 그렇게 대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이제 비루한 강사 인생이 달라진다. 강사법이 드디어 국회를 통과했다. 원래부터 교원의 역할을 했던 사람에게 교원의 지위를 최소한으로 인정하는 법이니 그간 강사들이 무슨 신세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동네북 신세의 역사가 긴 만큼, 강사법도 대단한 것이 아니라 빈민구제 수준에 불과하다. 6개월마다의 고민이 1년 단위로 바뀐다고 불안이 사라지겠는가. 두 과목을 배정받아 고작 연봉 1000만원이 보장된다고 삶이 안정적으로 변하겠는가. 게다가 공개채용이라니, 귀찮아질 일만 생겼다. 교원 신분인 만큼 구속은 얼마나 심할까. 각종 행사나 회의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게 있을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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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자기소‘설’서 과잉의 시대 그릇된 고정관념이 일상에 얼마나 만연한지를 확인하는 글쓰기 강의를 대학에서 하고 있다. 만연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로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만큼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상한 문화를 쉽사리 거부하지 못한 채 관성에 젖어 저지르는 자신의 과오를 ‘모름지기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는 학생들이 사회학을 현미경 삼아 자신의 순간순간을 관찰하여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발견하고 성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학력차별에 둔감한, 성별 차이를 분류하는 데 익숙한, 거대 자본의 소비문화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들’에 자신이 예외일 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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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여자만의 촉’은 없다 “정말 여자에게는 남자와는 다른 촉이 있다니까요!” 부부 사이의 고충을 말하는 예능 방송에서 남자, 여자 그리고 좀 다른 말을 하라고 앉아 있는 전문가들까지 ‘여자만의 무엇’이 있다면서 맞장구다. 여자들은 자신의 ‘감’이 맞아떨어진 사례를 말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남자는 ‘여자의 신통한 재주’를 인정하는 듯 머리를 긁적거린다. 얼핏 그 장면만을 보면 남자라는 존재는 여자 손바닥 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꼴이다. 방송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성만의 직감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다. 여자를 무능력하게 묘사한 기존의 경우와는 다른 성별 특성 구분이기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이 ‘슬프고도 위험한’ 말을 종종 내뱉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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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유은혜 장관 내정 반대를 반대하며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대학교수가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순식간에 세상에 공유되고 많은 이들이 지탄한다. 예전에는 태연히 했던 말들이 문제가 되니 교육자의 자기검열은 심해졌다. 진작 그랬으면 세상은 지금보다 평등했을 것이다. 그래도 차별이 조금씩이라도 줄어들 거라는 희망은 보인다.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에 비해 ‘학력주의’에 기반하여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은 그대로다. 더 노골적이다. 교수는 과제가 어렵다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 수준을 어렵다고 투덜거리면 나중에 길바닥에서 박스 깔고 자야 해요.” 교수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표정이다. 학생들도 키득키득 웃는다. 교수의 언행을 규탄하는 대자보 같은 건 어디에도 붙지 않는다. 말 그대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학력차별의 문법은 오랫동안 성차별이 유지되었던 상황과 다르지 않다. 모든 비열한 차별처럼 ‘그럴 만한 객관적 이유’가 탄탄한 토대가 된다. 공부를 못했으니 사람답게 살지 못해도 별 수 없다는 논리가 가능한 이유다. 성별 임금격차 등의 문제를 지적할 때, ‘객관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또박또박 따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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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가난한 사람답게 살기? 대학원 시절에 나는 장학금을 자주 받았다. 그것도 대학원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장학금이었다. 돈 받았다고 연구 성과를 억지로 내야 할 부담이 없으니 누구나 군침을 흘렸다. 하지만 이런 장학금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후원하는 형태가 많아서 수혜자의 조건이 굉장히 선명해야 한다. 학교 관계자나 학과 교수가 해당자를 추천하는 간단한 절차지만 고배를 마신 자를 납득시킬 이유가 로또 당첨자에게 있어야지만 논란이 발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바닥에서 최고의 적임자였다. 이유는 내가 힘든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살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서였다. 나는 고시원과 옥탑방에서 5년을 살았고 그 시절 내내 신문배달을 했다. 다른 사람보다 형편이 나빴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풍기는 상징성이 고만고만한 무리들이 모인 곳에서 군계일학이 되기에 충분했다. 장학금을 추천하는 자가 새벽 2시부터 신문을 배달하고 학교에 와서 강의를 듣는 나를 먼저 떠올리는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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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난민을 향한 ‘아무 말 대잔치’ 20XX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한국은 더 이상 안전한 나라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경제는 엉망이 되었고 의료시스템도 붕괴하여 전염병도 돌았다. 하루는 정부군이 와서 사람을 끌고 갔고 하루는 반군이 나타나서 협조하지 않는 자를 죽였다. 도무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났다. 대사관 업무가 마비되어 비자 발급이 어려웠기에 이들은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중 무사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서 한 달간 체류할 수 있는 어느 나라의 작은 섬으로 무작정 향한 이들도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나라였지만 동계,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유치한 경제규모 세계 11위의 나라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자신들을 내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나라는 난민법도 있는 인권국가가 아닌가. 실낱같은 희망을 지닌 한국인 500명이 인구 5000만명의 어느 나라의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살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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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기계의 진보, 더러운 문화의 진화 12년 전의 일이다. 옛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스마트폰도 없었고 일베도 소라넷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강남역 사건 한참 전이었던 만큼 서점에 페미니즘 코너가 따로 있지도 않았다. 선거 포스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글귀를 본다는 건 상상조차 못하였던 시절이었으니 지금과는 꽤 다른 시대였나 보다. 여대에서 강의를 할 때였는데 한 학생이 수업용 인터넷 카페에 익명으로 고민을 남겼다. ‘남자 친구가 이상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내용이었다. 상대는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찍는 그런 수준의 사진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데 이런 애인을 계속 사귀어야 하느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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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드라마 ‘모래시계’와 광주 1995년 1월, 드라마 <모래시계>는 대구에서 방송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고의 화제작을 놓칠 리 없는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녹화테이프를 당당하게 유통시켰고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이를 통해 작품을 접했다. 불법이지만 드라마 안에 장엄하게 펼쳐지는 ‘불법의 대한민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솔직히 국가권력이 개인의 역사에 어떻게 침투하는지, 그래서 우리는 이 빌어먹을 사회에 끊임없이 상식을 요구해야 한다는 묵직한 감상은 이후 나이가 들어 재방송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었고 당시에는 드라마가 나열하는 조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렸다. 학교에는 이정재와 하나도 안 닮은 친구가 검도 목검을 들고 나타났고 나는 대구에서 정동진까지가 기차로 참으로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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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박한 지식 노동의 단가 ‘강연 요청’이라는 제목의 e메일을 여는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 딱 50분만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찬강연을 해달라면서 ‘약소해서 죄송하다’는 표현과 함께 제안된 강연료는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사람들이 기업 전문강사가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를 알 만했다. 게다가 너무 논쟁적인 주제는 피해달라면서 평소 책에서 하던 이야기를 가볍게 언급하면 충분하다니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없다. 최저임금으로 하루 8시간씩 한 달을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을 1시간 만에 벌 수 있다니 어찌 호흡이 가빠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수락을 못했다. 하필 그날이 대학교 개강일이었다. 수업시간인 9시까지 도착할 수 없는 일정이라 아쉽지만 거절했다. 휴강의 유혹도 있었으나 내가 그래도 대학 교육자라는 사실을 차마 스스로 부정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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