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지역신문에 기고된 의사들의 칼럼에서는 종종 유사한 한탄이 등장한다. 진단을 ‘못 믿겠다며’ 서울의 대형병원 투어를 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고통을 감수하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례 말이다. 유별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에서는, 다쳐서 지방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왜 서울로 안 갔는지를’ 주변에 자꾸만 해명해야 하는 우주의 기운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런 분위기를 탓하면, 자신은 병원 갈 때 의사가 어느 대학 나왔는지도 꼼꼼하게 확인한다는 말이 돌아오는 세상이다. EBS 프로그램 <명의>는 좋은 취지였겠지만, 명의에 출연한 의사 명단이 ‘오늘 생생정보통에 소개된 맛집’처럼 떠도는 시대의 단면일 거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병원 앞에서 의사를 새로 초빙했다는 현수막을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과학고 출신’이라는 묘한 문구가 이해됐다. 의사라고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저 투박함에, 오만함보단 애잔함이 느껴졌다. 힘들게 의사가 되어서도, “능력 있으면 서울에 있었겠지”라는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이 많아진 시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잘난 걸 하나라도 더 강조해야 하니 말이다.

지역의료를 불신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의사가 유명하면 사람이 몰리고, 그러면 임상사례가 풍부해지면서 시스템도 좋아진다. 그러면 그 의사에게 배우려는 전공의도 많아지고, 환자가 계속 오는 등의 선순환이 줄줄 언급된다. 이를 부정문으로 바꾸면, 지역의료의 악순환도 쉽게 설명된다. 이 고정관념이 머리에 들어오면, 같은 의료서비스일지라도 지역에서는 더 불친절하다, 더 과잉진료한다고 느낀다. 짜증의 크기만큼, “병원만큼은 서울이 최고”라며 주변에 강력히 권장한다. 이 말을 몇 번 들으면, 지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동일치료를 나중에 후회할까봐 사는 곳을 떠나는 수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반복되면, 의사가 지역에 오지 않게 되고 사회시스템은 엉망이 된다. 모든 병원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게 아니다. 지역의료 불신의 본질을 제대로 짚자는 거다.

최소한 의사들은 당사자 문제인 만큼, 이를 사회적 해결과제로 볼 줄 알았다. 하지만 3년 전 의사 정원 확대를 둘러싼 논란에서 “지역병원에선 배울 게 없다”는 이야기는 의사들 입에서부터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의료격차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아니고서야, ‘아프다고 병원 못 간 적 있나요?’ ‘한국처럼 전문의 만나기 쉬운 곳이 또 있나요?’라는 팻말을 과감히 들 순 없었을 거다. 억울하면 서울에 살라는 수준인데, 마치 ‘의사는 다 서울에서만 나고 자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역의료 해결을 위한 의사 정원 확대가 논의되면 의료계는, 그 방법으론 어림도 없다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이유를 든다.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요구가 관철된들, 죽어도 지역은 싫다는 분위기가 의사 ‘내부적으로’ 견고하게 있는 한 문제는 그대로일 거다. 의사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등을 서울 ‘남쪽’이 아니라 ‘아래’로 보며 자란 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돼 있으니 말이다. 생애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이 거친 편견을 의사들이 감추는 한, 의사 정원 확대 논의는 곁다리만 짚게 될 거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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