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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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숙명여대 사건과 페미니즘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한 장면이다. 냉전시대에 소련 스파이를 변호하는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에게 CIA 요원은 정보를 요구한다. 변호사는 규정보다 국가안보가 중요하다는 요원에게 말한다. “당신은 독일 출신이고 나는 아일랜드 출신이다. 무엇이 우리 둘을 ‘미국인’으로 만들었을까? 단 하나다. 규정집. 이걸 ‘헌법’이라고 하지. 그러니 규정 따위 없다고 건방 떨지 마!”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지닌다. 이는 내가 싫어하는 성별을, 괴상한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를, 자신을 귀족이라 생각하는 꼴불견 인간을 같은 강의실에 마주한다고 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푸념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인간이 공공선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편견으로 차별이 정당화될 순 없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총학생회 선거에 나가 “내가 숙명의 후예다!”라고 외치기라도 했다면 작금의 논쟁을 약간이라도 이해하겠지만 공간에 발을 딛는 걸 막는 건 자유도, 권리도 아니다. 생물학적 여성만큼 피해의 총량을 지니지도 못했고, 코르셋 문화를 수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기에 ‘그래서’ 싫어할 순 있겠으나 ‘그렇다고’ 규정집에 천명된 내용을 어길 순 없다. 인간이 비둘기가 어찌 되냐 등의 F학점 논리가 여기저기 등장하지만 설사 A학점 수준이라도 그렇게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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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교실의 정치화를 환영한다 고교에 강연을 가면 ‘용기를 얻었다’는 메모를 전하는 학생들을 만난다. 하루는 내용이 상세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맹목적 찬반토론에 집착하는 학교의 사회과목과 달리 ‘무엇이 틀렸다’는 비판을 확실히 해 줘 고마웠다, 교사들의 기계적 중립성이 답답했는데 좋은 사회를 위해 나쁜 선택을 하지 않는 법을 알려줘 좋았다 등. 하지만 같은 내용을 학부모 연수에서 언급하면 항의가 빗발친다. 정치적 선동 그만해라, 특정 정당 떠올리게 하는 발언 삼가라 등. 빨간 띠 두르고 혁명에 동참하라고 강요했다면 모르겠는데, 양극화를 방관하는 일상의 씨앗을 찾고 편견을 깨자는 내용을 문제 삼는다. 나도 따진다. “왜 저한테만 정치적이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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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차별이 인간 본성이라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다는 그 사람, 집에서는 가부장적이네. 젊을 때는 부모를, 결혼해서는 아내와 자녀를 힘들게 하면서도 당연한 줄만 아네. 자신은 밖에서 힘든 일 한다는 핑계로 차별에 둔감하네. 그러면서 성차별 말만 들으면 요즘 세상 좋아졌다면서 지금은 남자가 힘든 시대라고 하소연이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성차별에 반대한다는 그 사람, 학력주의는 찬성하네. 대학 이름은 사람의 성실함을 대변한다면서 주변 사람을 무안하게 하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말만 나오면 공정하지 않다고 분노하네. 어쨌든 시험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기에 공정한 것이라면서, 그 빌어먹을 노력을 동등하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외면하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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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정시냐 수시냐가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클러스터 수업을 몇 해 한 적이 있다. 개설된 다양한 교과를 학생들이 직접 신청하여 참여한다. 생활기록부에 독서활동, 소논문 작성 등이 기록되고 자기소개서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입시와 무관하지 않으니 강사로서 공정한 평가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교사들이 특정 학생에 대한 기대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토요일 수업이라 교사들이 돌아가며 출근해 공지사항이나 간식을 전달해줬는데,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늘 한 명을 애지중지한다. “착한 예쁜이, 이 수업 들어? 공부도 잘하고 정말 부지런하구나.” 내게도 슬쩍 말을 흘린다. “저 친구 잘하죠? 학교 에이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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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기회만 균등하면 평등할까? 몇 해 전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청년 노동자가 들어오는 지하철을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안전수칙을 지키면 저성과자가 되는 해괴망측한 구조가 사고의 원인이었기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조차 효율성이라는 저울에 올라가는 사회가 어찌 상식적이겠는가. 게다가 청년의 가방에는 뜯지 못한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이걸 보고 평생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한 정치인이 이런 글을 남겼다. “가방 속에서 나온 컵라면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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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부자의 품격’이란 허상 부모가 교수인 자녀가 대학원 장학금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부유했다. 모든 장학금이 집안의 금고까지 따져가며 지급기준을 정하진 않는 이유를 알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부모 도움을 성인이 되어서도 거절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자녀 부양을 중년이 되어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복잡한 개인사를 죄다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전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자의 도리를 지키지 않은 양 융단 폭격을 가하는 건 가난을 줄 세워 돈을 주는 방식이 불평등을 줄여줄 거라고 믿어서다. 듣기에는 아름다운 세상 이치처럼 보이지만 불평등이 자연스레 유지되는 케케묵은 관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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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팩트 망상 불평등의 크기가 그리 심하지 않은 나라를 찾아가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그 비결을 묻는 시사프로의 한 장면이다.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게 된 이유를 알려달라는 말에, 자국의 복지체계 자랑을 밤새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답변이 이렇다. “그건 모르겠고요. 아직 이 사회에는 문제점이 많아요. 제가 할 일은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일은 조금이라도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복지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제도를 정비하려는 걸 방해하는 사람들의 그릇된 고정관념도 깨야 해요. 그게 제 의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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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고교 입시가 유별날 때 벌어지는 일 자사고와 특목고가 늘어나면서 교육 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고 사회 공동체의 신뢰관계가 무너졌다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먼저, 낙담의 시기가 빨라졌다. ‘성공하려면 좋은 대학에 가라’는 과거의 나쁜 조언은 더 악랄해져, ‘이상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큰일 난다’는 협박이 부유한 지 오래다. 이는 특별한 곳에 가니 마니가 중학교 교실에서 가려진다는 말이니,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쓴맛을 느끼는 개인들이 많아졌음을 뜻한다. 성인들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하는 ‘실패자’라는 오명을 열다섯 살 남짓한 청소년들이 마주하면서 “대학 가기 글렀다. 내 인생은 망했다”면서 자조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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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내가 ‘기생충’을 못 보는 이유 기억이 희미한 이름으로 전화가 왔다. 15년간 휴대폰에 저장만 돼 있었지 안부도 몰랐던 그는 내가 고시원에 살 때 옆방 사람이었다. 창문이 있을 리 없는 지하, 방 가운데서 양팔을 벌리면 손끝에 벽이 닿는 공간을 마주하며 살던 우리는 내가 바퀴벌레 살충제를 빌려주면서 잠시나마 친밀했었다. 그는 영화 <기생충>을 보고 옛날 생각에 사무쳤단다. 우리는 장마철에 하수구가 역류하면 지하로 똥물이 뚝뚝 떨어졌을 때의 참담함과 그걸 욕하면서 아껴뒀던 컵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던 애처로움을 떠올리며 근황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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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학교가 세상의 차별을 외면할 때 ‘오찬호 작가가 말하는 미래 인재가 되는 법.’ 중·고등학교에 강연을 가면 가끔 민망한 현수막을 본다. 승자독식의 경쟁사회를 비판해 달라고 초대받았으니 황당하다. 이유인즉, 섭외 교사가 ‘진로특강’ 명목으로 윗선에게 결재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강사 초청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맥락을 모르는 교장, 교감은 여기가 지역 명문이다, 작년 입시결과가 어떠하다는 등 학력주의가 가득한 인사말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학부모도 함께하는데, 내 이야기가 자녀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속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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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당신은 꼰대가 아니십니까 “어떻게 해야 꼰대가 되지 않을까요?” 강연을 가면 자주 듣는 말이다. 나는 저서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서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늙은 꼰대와 자유로움에 취해 의미 있는 조언조차 무시하는 젊은 꼰대를 함께 다룬 바 있는데, 인권감수성이 높아진 사회의 공기를 의식해서인지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음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으니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어찌 말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상처를 받거나 주는 경우를 모으면 어떤 사람이 이상한지는 어렴풋이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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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인생을 건 부동산 투기 그는 공공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1인 시위 중이다. 이미 자신의 지역에 대규모 임대아파트가 있는데도 서울 외곽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주택이 더 들어서는 건, 근처 주택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매우 불평등한 정책”이라고 했다. 권리와 평등이란 단어를 오용하는 그는 2년 전까지 나와 같은 임대아파트에 살았던 이웃사촌이었다. 나는 8년 전, 서울 하늘 아래서 새 아파트에 전세로 살 행운에 당첨되었다. 2년마다 꼬박꼬박 이사하는 삶을 청산하고 20년간 거주할 수 있게 되니 이웃과도 친밀해졌다. 서울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절망감을 이제는 안 느껴도 된다는 그와도 회포를 몇 번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