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최신기사
-
정동칼럼 길모퉁이에서 2012년 12월20일 중앙지검에서 근무하던 시절, 공판부장의 백지구형 지시에 반발한 제 이의제기로 부회의가 벌어졌지요. 제 의견인 무죄구형과 백지구형(법원이 법과 원칙에 따라 알아서 판결해 달라) 중 무엇이 옳은지가 논의되었습니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듯 외로웠습니다. “백지구형 하라면 하라는 대로는 하겠지만, 검사로서 사건 관계자들 보기 부끄럽다”고 사족을 단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검사들은 백지구형에 적극 동조했으니까요. 상급자 지시 앞에 판단력이 마비되는 현실이 참담했습니다. 검찰을 바꾸기 위해, 최소한 유의미한 선례라도 만들기 위해 국가배상소송도 제기하고, 내부제보시스템을 통한 감찰 요청, 국민권익위원회 등에의 민원 제기, 형사 고발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요. 적지 않은 분들이 물었습니다. 검사인 네가 직접 수사하면 되잖아?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때 윤석열 팀장이 직무 배제되고, 고(故) 윤길중 과거사 재심사건 때 제 직무가 다른 검사에게 이전된 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데, 모르는 척 시치미 떼며 묻는 동료들이 야속했습니다. 형사 입건에서부터 기소까지 상급자 결재를 단계별로 다 받아야 하는데, 전·현직 검찰 고위직을 향한 수사가 쉬이 허락될 리 있겠습니까.
-
정동칼럼 십원짜리, 천원짜리 사건…누가 구분하나 몇 년 전, “10원짜리 사건에 10원어치의, 1000원짜리 사건에 1000원어치의 공력을 기울이라”고 훈시하던 검사장이 있었습니다. 가격 매기는 기준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회의만 길어질 듯해 말을 삼켰지요. 특수부는 한정수량 명품 생산부서, 형사부는 염가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부서로 비유한 간부도 있었습니다. 한정생산 명품에 불량률은 왜 높은 거냐고, 형사부에 배당된 사건 당사자가 그 말에 수긍하겠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역시 삼켰습니다. 현실 앞에선 덧없는 이상론에 불과하니까요. 의정부지검 근무 시절, 전처에게 집착하는 한 남자의 협박사건을 배당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배당받은 42건 기록 중 비교적 얇아 반갑게 펼쳤는데, 행간에서 느껴지는 증오가 얼마나 깊던지 바닥이 보이지 않더군요. 험악한 말이 행동으로 이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피해자와 피의자에게 다급히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화하던 그때 이미 모두 죽었다는 걸 며칠 뒤 변사기록에서 확인했지요. 피의자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그 사건이 10원짜리일까요.
-
정동칼럼 언론에 묻다Ⅱ- 곡필아세<曲筆阿世> 지난 1월, ‘아이 캔 스피크 Ⅱ’ 원고를 신문사로 보낼 때, 제법 긴장했습니다. 2018년 2월 윤대진 중앙1차장의 인사거래 제안과 2019년 9월 조국 장관 취임 직후 법무부 고위간부의 인사거래 제안 사실을 폭로한 글이니 떨릴 수밖에요. 언론이 윤대진, 김후곤 검사장, 이용구 법무실장 등을 취재하여 검찰인사 난맥상, 검찰개혁이 더딘 원인 등을 조명하고 비판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윤대진의 제안 자리에 동석했던 정모 부장이 “당시 그런 말은 없었던 것 같고, 덕담이나 허풍 섞인 농담을 회유로 잘못 들은 것”이라고 해명한 글과 “언행에 신중하라”는 동료들의 동조 댓글 릴레이 소동을 생중계하는 기사들이었습니다. 언론의 역할을 망각한 듯한 취재방향과 깊이가 안타깝다 못해 고통스러웠습니다.
-
정동칼럼 ‘권고 이행’ 권고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인권존중을 위한 수사제도·관행 개선 위원회, 검찰정책자문위원회, 검찰개혁심의위원회, 검찰미래발전위원회, 검찰개혁위원회, 검찰미래위원회, 검찰인권위원회. 제가 검사로 임관한 2001년 이후 전문가들로부터 검찰개혁 방안 등 각종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대검에서 발족시킨 위원회들입니다. 대검에 제도개선을 업무로 하는 정책기획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미래기획단, 형사정책단을 설치하였고, 그래도 부족하여 ‘개혁’ ‘미래’ ‘인권’을 내세운 위원회들을 부지런히 만들었네요.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
정동칼럼 메멘토모리 - 죽은 검사들의 사회 2016년 5월19일, 황망한 소문이 전국청을 덮쳤습니다. 초임검사가 부장의 폭언·폭행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고. 오전부터 전해지는 흉흉한 말들은 놀라웠고 상가를 다녀온 후배들의 분노는 뜨거웠지요. 가해자가 유족에게 유서를 전달하고 그 곁을 지키는, 지휘책임 있는 검사장이 검사들에게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나누는 상가는 무간지옥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았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떤 조치도 없었습니다. 2015년 4월9일, 그 초임의 첫 회식에서 또 다른 부장이 공연히 저지른 성범죄가 덮였던 것처럼. 검찰에선 그런 범죄들은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하거든요.
-
정동칼럼 생명의 서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생명의 서’). 2013년 2월 상명하복 조직문화를 바꾸려다 좌절하고 정직 4월 강제휴가에 들어갈 때, 읊조렸던 시구절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회성 항명인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강행과는 달리, 징계취소소송은 조직과의 장기전이라 보복이 두려웠지만, 고민 끝에 결행했습니다. 위법한 지시를 한 간부가 아니라, 법대로 한 검사가 징계받는 악선례를 남길 수 없으니까요. 척박한 검찰에 검사로서의 양심을 지켜줄 버팀목 하나 세울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 싶었습니다.
-
정동칼럼 나는 고발한다, 또다시 2001년 2월, 검사로 임관했으니 어느새 20년이 되었습니다. 새내기들이 그렇듯, 저 역시 검찰의 흑역사는 옛날이야기이고, 선배들 말은 모두 금과옥조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지요. 검찰이 비판받을 때면 제가 찔린 듯 고통스럽고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기라성 같은 줄 알았던 선배들 중 범죄자나 반면교사 삼아야 할 사람들도 적지 않고, 그런 이들이 걸러지지 않고 승진하는 인사시스템 결함을 깨닫는 데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않더군요. 검찰의 속병이 깊어가는 걸 내부에서 지켜보는 건 너무도 고통스럽지요. 검찰에 뿌리내린 제 영혼도 같이 말라갑니다.
-
정동칼럼 언론에 묻다 지난 수요일, 조선일보 100년 특집기사로 ‘오보를 정정하고, 사과합니다’가 있었습니다. 이제 ‘나’에게도 사과할까 싶어 기사를 클릭하였다가 허탈하게 창을 닫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지요. 저에게까지 사과할 여력이 없으리라 예상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실망스럽더군요. 법과 원칙에 따라 검사직을 수행했던 저를 얼치기 운동권 검사로 매도했던 2013년 첫 사설과 기사들이 아직 제 심장에 비수처럼 박혀 있으니까요. 저는 역사를 좋아했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슈퍼는 신문도 팔았기에, 초등학생 때부터 신문을 즐겨 읽었습니다. 신문별로 색깔이 다르고, 정치권 풍향에 따라 날씨 바뀌듯 변모하는 논조들이 재미있기까지 하더군요. 지식인들의 곡학아세가 정교하지 못했던지, 부조리가 너무 심하여 다 가릴 수 없을 지경이었던지, 어린 저에게까지 유치함을 더러 들키곤 했지만, 신문을 통해 세상과 현실을 배운 저에게는 교과서이자 오늘의 역사서였습니다.
-
정동칼럼 상한 영혼을 위하여 2011년부터 “총선 출마하려고 저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012년 11월, 검찰 내부망에 한 달 기한으로 만들어진 익명게시판에서 불출마 선언을 요구받기도 했지요. 저에 대한 헛소문이 총선을 변곡점으로 밀물처럼 밀려들다 썰물이 되어 빠져나가는 현상은 지겹도록 반복됐습니다. 부조리를 비판하는 사직글이 총선용 튀는 언행으로 의심받는 일이야 검찰 흑역사에서 전례가 없지 않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요. 그러나 쌓인 세월이 몇 년인데 아직도 동기를 의심하며 못 들은 체하는지, 비판과 건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잘못을 고치는 대신 탄압에 급급하여 자체 개혁 기회를 놓쳐버린 검찰 수뇌부에 대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세월과 함께 쌓여갔습니다.
-
정동칼럼 아이 캔 스피크 Ⅱ 2018년 2월 서울북부지검 근무 시절, 검찰간부의 호출로 인사동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전년도 인사에서 부장 승진에 탈락한 사법연수원 31기 검사들이 2018년 상반기 인사에서 추가 승진했는데, 30기 부부장인 제가 신경 쓰였나 봅니다. 검찰총장 특사를 자처한 그는 서지현 검사의 미투사건 참고인이라 부득이 승진을 못 시켰다고 양해를 구하고, 해외연수를 느닷없이 권했습니다. 검찰개혁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개인의 행복을 찾으라던가. 웃음을 참느라 혼났지요. 서 검사는 인사 발표 후 미투를 한 건데, 준비한 변명이 너무 성의 없었으니까요.
-
정동칼럼 검찰에 대나무숲을 허하라 2012년 11월, 검찰 내부망에 익명게시판(익게)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직전인 10월22일, “수뇌부만 개혁방안을 고심하지 말고 고민을 나누어 달라. 우리의 내일은 함께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 후배들도 주저 말고 생각을 말해 달라. 마음과 뜻을 모아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대검에서 제 건의를 받아들여 한 달 기한으로 익게 개설을 결정했다더군요. 글은커녕 댓글조차 많지 않아 고요한 검찰 내부망에 익게가 열리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신세계가 펼쳐졌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듯 쏟아지는 불만과 분노, 격정적인 비판과 반론은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알지 못했던 내부 부조리와 불신, 갈등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익게 개설을 후회한 대검은 익게 연장을 희망하는 내부 여론에도 불구하고 12월5일 자정을 기해 예정대로 폐쇄하겠다고 공지하더군요.
-
정동칼럼 차기 법무부 장관에게 바란다 2012년 9월,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신 박형규 목사님 과거사 재심사건을 담당하며 검찰청법을 뒤져본 적이 있습니다. 무죄를 무죄라 말하지 못하던 때라, 상부와의 충돌을 예상하고 잠자던 이의제기권을 깨워야겠다 싶었으니까요. 법전을 아무리 뒤져도, 이의제기권 근거조항만 있을 뿐 행사방법과 처리 절차에 대한 조문을 찾지 못해 근거조항만 숙지한 채 상급자들의 사무실을 오갔는데, 그땐 다행히 무죄구형 결재가 났습니다. 2012년 12월, 또 다른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결국 “지시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이의 있습니다. 검찰청법 7조 2항에 따른 이의제기권을 행사합니다”라 외쳐야 했고, 상부는 제 이의를 묵살하고 검사 교체로 대응했지요. 부득이 법정 검사출입문을 걸어 잠가야 했습니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