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묻다Ⅱ- 곡필아세<曲筆阿世>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지난 1월, ‘아이 캔 스피크 Ⅱ’ 원고를 신문사로 보낼 때, 제법 긴장했습니다. 2018년 2월 윤대진 중앙1차장의 인사거래 제안과 2019년 9월 조국 장관 취임 직후 법무부 고위간부의 인사거래 제안 사실을 폭로한 글이니 떨릴 수밖에요. 언론이 윤대진, 김후곤 검사장, 이용구 법무실장 등을 취재하여 검찰인사 난맥상, 검찰개혁이 더딘 원인 등을 조명하고 비판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윤대진의 제안 자리에 동석했던 정모 부장이 “당시 그런 말은 없었던 것 같고, 덕담이나 허풍 섞인 농담을 회유로 잘못 들은 것”이라고 해명한 글과 “언행에 신중하라”는 동료들의 동조 댓글 릴레이 소동을 생중계하는 기사들이었습니다. 언론의 역할을 망각한 듯한 취재방향과 깊이가 안타깝다 못해 고통스러웠습니다.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2016년 1월, 분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검사 부적격자로 몰려 잘릴 뻔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았습니다. 옥죄던 신분 박탈의 공포에서 놓여날 때, 제 말과 글도 한결 자유로워졌지요. 정부나 재벌 등 힘 있는 조직을 비판하는 언론이나 시민단체, 학자들이 정작 소속 단체나 학내 비리를 비판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소속 집단 밖 세상을 향한 고담준론과는 달리, 내부 비판은 인사 불이익, 집단따돌림(왕따) 등 보복을 각오해야 하니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기 마련이지요. 그럼에도, 다음 검사 적격 심사까지 7년간 검찰공화국 성문을 더욱 열어젖히고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에 힘을 보탠 후 여한 없이 잘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잠든 검찰을 깨우는 파수꾼이 되고 싶었는데, 동료들의 발에 차이는 성가신 소리로 몇 년을 지낸 후 제 한계를 통감했습니다. 파수꾼이 못 된다면, 파수꾼이 머물 망루라도 수리해 놓을 각오로 종종대고 있습니다만, 능력이 부족해 그조차 버겁네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흠을 찾고 관심법을 동원해 의도를 추측하는 이들로 인해 자꾸 움츠러들어, 비판 방향과 수위가 위태로울지언정 글감만은 더욱 단단하고 안전한 것으로 고르려다 보니 신경의 날이 서곤 합니다.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겠습니까. 기왕 작심한 일이니 이어달리기 제 구간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가봐야지요.

박원순 시장이 성폭력으로 피소된 직후 자살하자, 느닷없이 마이크 들이대기식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제 경험담임에도 착각 내지 과장으로 폄훼되어 신중을 요구하는 동료들의 항의소동을 보도하던 매체들이 몇 달 뒤 경찰청에서 수사 중인 고소사건에 대한 과감한 입장 표명을 주문하더군요. 의도가 노골적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검사로서 신중하지 못하다는 비난’과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난’. 어떤 말도, 심지어 침묵조차 맞춤형 비난이 준비된 덫입니다. 마이크 들이대기식 보도가 앞으로 더 없을까. 그땐 또 어떻게 공격받을까. 펼쳐질 일들이 그려졌습니다.

관심 분야가 제각각이고, 관심 분야라도 어느 정도 알 때 비로소 말하는가, 즉 말의 발화점은 직업별, 성향별 천차만별이지요. 구체적인 사건에서 검사의 발화점이 기자, 정치인, 시사평론가 등과 전혀 다름을 뻔히 알면서, 저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기사들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언론 프레임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았습니다.

급기야 중앙일보 등 몇몇 매체에서 “야당 문제는 비판하다가 여당 문제엔 침묵한다”며 친정부 정치검사로 매도하는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제가 2012년부터 현재까지 검찰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터. 검찰과 야당을 구별 못하는 걸까요. 설마. 그렇다면, 거짓으로 독자들을 호도하여 검찰개혁을 진영논리로 끌고 가려는 의도입니까. 사실들을 부분부분 잘라 이어붙이고 특정부분을 강조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전달하는 전형적인 곡필(曲筆) 기사들을 보고 있노라니 검찰개혁 못지않게 언론개혁 역시 시급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언론이 정론직필을 내세우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굽은 붓이 된 지 오래지요. 부끄러움을 언제까지 독자의 몫으로 미루시겠습니까.

신문윤리강령을 찾아 읽으며, 검사선서문처럼 전시용인가 싶어 씁쓸하더군요. 언론은 권투경기장 공 소리가 아니라 사회를 일깨우는 죽비 소리여야 합니다. 사실을 취재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언론이 취재와 책임을 소위 ‘인플루언서’들에게 떠넘기는 기사를 남발하고, 더하여 진영논리로 덧칠까지 하여 호도하고 싸움을 부추겨서야 언론이라 불릴 자격이 있겠습니까. 모래로 만든 프레임으로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워 독자들의 눈을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역사까지 속일 수는 없지요.

언론의 사명과 책임의 무게를 언론에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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