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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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국회사무처 어느 공무원의 충정 입시에 내몰린 시절이 있었다. 오갈 데 없어 더러 일요일에도 가던 고등학교. 부산 서면 근처 시외버스정류장을 지나칠 때면 공부고 뭐고 다 접고 구포 넘어 그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발등이 마구 들썩거렸다. 돌아올 차비가 없는 빈 호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나중에 우리나라 모든 읍(邑)에서 하룻밤을 자리라! 퍽 돌발적인 결심을 했더랬다. 어느새 시시한 어른이 되었지만 까맣게 잊었다가 꽃산행을 다니면서 낯선 고장의 이름들이 새삼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흩어진 산을 섭렵할 때 충청의 배꼽 같은 곳을 찾는 날도 있었다.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의 문경(聞慶). 그 근처의 주흘산 부봉(釜峰)을 오를 땐 부산(釜山) 생각을 많이 했다. 과연 부봉도 가마솥을 엎어놓은 형상이었다. 햇빛 좇아 피는 꽃이 산에만 있는 건 아니다. 등포풀은 영등포에서 처음 발견되어 저 이름을 갖게 된 멸종위기종이다. 그 풀을 100년 만에 한강 밤섬에서 찾았다는 뉴스를 들었을 땐 여의도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여의도는 ‘너의 섬’이라는 기발한 해석이 있긴 하지만 여의는 汝矣다. 문자적으로 풀이하면 ‘너다’라는 뜻의 단호한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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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부여 정림사지 솔숲에서 눈을 맞으며 고대로부터 밤나무는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들을 그러모아 이 모양대로 열매를 만든다. 그리고 옛날과 같은 포장, 똑같은 방식대로 가지에서 뿌리 쪽으로 밤을 떨어뜨린다, 툭. 공주 근처 정안알밤휴게소에서 구입한 그 알밤 하나를 깨물고 부여로 들어서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 부여에 눈이 와줄까. 지난여름, 부여에 갔었다. 아, 정림사! 뜻밖의 감정들이 툭툭 튀어나와 물구나무를 섰다. 백제는 百濟이니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대강 눙칠 수 있겠으나 부여는 왜 ‘남을 여(餘)’일까. 무슨 넉넉한 마음이길래 고장의 이름을 이리 삼았을까. 그러다가 박물관에서 왕흥사 사리기의 명문(銘文)을 보았다. 丁酉年二月十五日 百濟王昌 爲亡王子立刹本 舍利二枚葬時 神化爲三(정유년 2월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절을 세우고 사리 2매를 묻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 저 고졸한 글씨가 환장할 만큼 마음을 끌어당겼다. 급기야 백제 공부로 마음이 쏠리면서 정림사지 탑 앞에서 작은 약속을 하나 했다. 올해 이 자리에 나도 탑처럼 다시 서리라. 비나 눈이 오는 건 내 소관이 아니겠지만 반드시 해 질 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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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심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머리맡에 두는 책은 그냥 놓아두기만 하기가 십상이다. 마음은 빤하고 표지만 닳았다. 늘 머리를 들고 다니면서도 그 머리를 잘 쓰지 못하는 건 다음과 비슷한 경우라 하겠다. 절기에 유념해서 몸의 윤곽에 꽉 맞추고자 하였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24절기를 쓰고 외웠다. 망종까지는 그런대로 껴안았는데 그 이후론 제대로 챙긴 적이 없다. 삼계탕을 먹어주어야 한다는 말복(은 24절기에 속하지 않는다) 때 힐끗 보고 또 까맣게 까먹었다. 경자에 이은 신축의 간지를 짚어보다가 겨우 생각이 났다. 저무는 해의 끝자락에서 달력을 바꾸며 확인하니 소한이 지척이다. 나는 날(日)의 생리를 모르고 살았구나. 가까이에 두었지만 이처럼 놓치는 건 머리의 안팎을 구별하지 않는다. 왜 이리 각성은 멀고 망각은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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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내가 기다리는 시집 한 권 어머니 모시고 시골 가는 날. 나의 외가, 그러니깐 어머니는 친정 가는 길이니 며칠 전부터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으신다. 멀리 검단산, 남한산을 거쳐 마침내 병풍처럼 늘어선 덕유산. 내가 저 산에서 산나물도 억수로 뜯었다 아이가, 어머니의 추억도 귀에 담으며 고속도로를 버리고 무주구천동 지나 백두대간의 한 고개에 이르면 드디어 고향에 들어섰다는 안온한 실감에 젖어든다. 이름에서부터 호쾌한 기상이 흠뻑 묻어나는 ‘빼재’에 서면 공기도, 마음의 자세도 퍽 달라진다. 밭에는 사과나무, 길가엔 벚나무가 반짝거리는 시골길을 가다가 바로 이 골짜기와 그 이웃 골짜기가 배출한 두 젊은 시인의 시집을 다시 확인한다. 거창에 가서 거창에 그 젖줄이 닿는 시를 읽는 건 달나라에 가서 이태백의 시를 읊는 것과 같지 않을까. 빼재 아래 구불구불한 길의 끝에 고제면사무소가 있다. 고제는 高梯, 높은 다리라는 뜻이다. 그 옛날 장이 섰을 땐 제법 흥청거리던 곳이었다. 어머니께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 옛 소설을 제공해 주던 이동점방도 있었고 나에겐 왕눈깔사탕도 제법 많이 공급해주었던 오일장. 이제 내 어깨만 한 높이의 ‘높은 다리’는 한쪽에 방치되어 있고 농협 옆에 소식판이 우뚝하다. 한 동네의 물정은 대개 저 게시판에 얼추 드러나는 법이다. 어느 지역에나 흔한 청유형의 한 줄 사이로 사뭇 결이 다른 소식이 있다. ‘용초마을 백OO 둘째자부 조은영 대한문인협회 시인 등단을 축하합니다. 용초마을 청년회.’ 그보다 두 해 전엔 이런 현수막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OO마을 OOO씨 손녀 미스코리아 미 당선.’ 이만하면 이 조그맣고 깊은 골짜기는 진선미가 거의 구현된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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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운석을 들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사는 조슈아 후타가룽(33)의 양철 지붕을 뚫고 운석이 들어와 마당에 박혔다. 관 짜는 일을 하던 조슈아는, 맑은 날이었는데 하늘에서 뭔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며 운석을 파내보니 여전히 따뜻했다고 말했다.(2020·11·20 연합뉴스)” 산에 가지 못하고 주말에도 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최근에 접한 운석에 관한 저런 웅장한 뉴스를 떠올리며, 어릴 적 별똥별의 그 낙하하는 곡선에 소원을 얹어두었던 기억과 함께 안산 자락 아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으로 간다. 눈이 돌아갈 만큼 휘황한 전시품들 사이 한구석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운석 체험, 만져보세요. 철질운석(Iron meteorite)/운석명:Campo del Cielo/산출지:아르헨티나/크기:24×18㎝/무게: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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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가양대교를 건너며 ‘아니 不’에 대해 생각함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궁합을 맞춰 문장 안에 감쪽같이 섞인다. 우리글은 끝까지 다 읽어야 그 방향을 알려준다. 배의 키처럼 서술어가 뒤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한문은 한 글자마다 각자 독립한다. 더듬더듬 뒤늦게 한문을 익히며 드는 생각. 한문에서 부정과 금지를 나타내는 건 非(비), 不(부), 弗(불), 無(무), 未(미), 莫(막), 毋(무), 勿(물) 등이다. 이들은 초성의 음가가 모두 미음이거나 비읍이다. 왜 이들은 ‘몸’이나 ‘밥’처럼 묵직하게 문장의 처음에 도사리고 앉아 있는 것일까. 또한 한문에서는 부정문이 왜 이리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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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배추와 달팽이 배추전을 하겠다며 주방에서 꼼지락꼼지락하던 딸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잎사귀 뒤에서 빵긋 달팽이를 만난 것이다. 곤충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으나 말똥구리, 풍뎅이, 사마귀는 그리 낯설지 않은 내 어릴 적 소꿉친구들. 벌레만 보면 기함을 하는 아이를 타박하는 건 경우가 아니겠다. 자연과 접촉할 기회를 박탈한 채 아파트를 고향으로 만든 제 용렬한 아비를 탓하는 게 옳다. 아이는 달팽이의 성정을 이윽고 파악했는지 금방 친해진 눈치다. 어쩜 똥도 행위예술하듯 일획으로 시원스레 갈기느냐고 시시덕거린다. 가끔 접시 위에 얹어놓고 산책시키는 중이라며 잘 데리고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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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책을 통해 산으로 외출하는 방법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아주 오래전에 들었다. 정말 길이 책 속에 있을까? 책과 함께, 책과 더불어, 책을 통해. 이 어려운 시기를 빠져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이 말속에 다 들어 있다. 해리 포터가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9번과 10번 사이의 벽으로 난 길을 통해 호그와트로 들어가듯! 바깥 외출이 여의치 않아 산에 가지 못하고 옛날에 산에 갔던 기억이나 불러내어 되새김질하는 토요일 오후. 방구석에서 스킨답서스가 책으로 가득한 벽을 넌출넌출 기어오른다. 식물과 책, 책장과 유리창. 그중에서 줄기와 잎사귀를 쪽배처럼 타고 강원도의 산으로 빠져나가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곳은 삼척의 덕항산. 기암절벽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는 중국의 이런저런 산들에 견주어 그 경치와 형세가 하나 꿇리지 않는 산이다. 환선동굴 입구를 지나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치고 올랐다. 험준한 산이 기르는 식생은 다종다양할뿐더러 희귀한 종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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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산에서 만나는 전문가들 머리카락은 고민을 먹으며 자라는가 보다. 없는 살림에 왜 그렇게 빨리 무성해지는가. 어릴 적 동네 이발소는 제법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주인 혼자 하기에는 감당이 안 되어서 이발사, 면도하는 아가씨, 머리 감겨주는 청년이 따로 있었다. 각각 전문가가 담당하는 소규모 분업 체제를 갖춘 셈이었다. 들쭉날쭉하던 내 지식과 교양과는 달리 머리카락만 은밀한 속도로 수북하게 자랐다. 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이발소를 다녀야 했다. 팔도 사투리를 진하게 구사하는 달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어느 연속극. 이발소에서 머리를 전문으로 감겨주는 청년이 맞선을 보고 와서 주인에게 말한다. 이제 결혼할 여자 앞에서 생색이라도 내어야 하지 않겠냐며 승진을 시켜달라고 조른다. 조금은 같잖게 눈을 흘기던 주인이 봉급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냉큼 이렇게 선심을 쓴다. 좋다, 내일부터 세발과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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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경남 의령 빗방울 화석지 옆에서 자굴산, 벼룩콧등, 수도사, 봉황대, 탑바위, 한우산. 관광안내지도에서 처음 보는 저 이름들을 중얼거려본다. 이런 고유명사를 불러주는 게 곧 이 고장을 알아가는 지름길이다. 여기는 의병의 고장인 경남 의령의 충익사 광장이다. 저 낯설고 재미있는 이름 중에서도 ‘함안층 빗방울자국(천연기념물제196호)’이 단연 마음을 끌어당겼다. 세상에, 빗방울 화석이라니! 그 어느 눈 밝은 사람이 공룡의 발자국 옆에서 빗방울을 캐내었단 말인가. 내력은 다음과 같았다. “중생대 백악기의 평원 위에 빗방울이 찍힌 흔적이 굳어진 것으로 (…) 약 1억년 전 건조한 평원 위에 한때 비가 내리면서 진흙 위에 빗방울자국이 찍히고, 그 위에 퇴적물이 덮이면서 굳어져 암석이 된 후에, 위에 덮였던 퇴적암이 오랜 세월의 침식작용에 의해 벗겨지고 원래의 빗방울자국 면이 노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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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치악산에서 끊어졌던 길 하나를 잇다 온몸으로 종을 쳐서 은혜를 갚은 까치의 전설을 접한 이래 치악산은 일찍이 머리에 각인된 산이다. 군대와 친구 등 원주에 관계된 일도 무시로 있어서 자주 기억에 소환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조금 우울한 느낌으로 치악산과 맞닥뜨려야 했다. 사연이 있다. 오래전 회사 야유회를 치악산으로 간 적이 있었다. 산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없었던 터라 어느 중턱에서 그냥 발길을 돌려 닭백숙집으로 직행하고 말았던 것. 까마득히 잊은 줄 알았는데 특히 강원도 쪽으로 산행할 때마다 그 못난 행각이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것이었다. 내 삶이 너덜너덜하다면 바로 이런 사실들이 모여서 그렇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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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기의 꽃산 꽃글 북극곰이 흰고래를 기다릴 때의 고독 드넓은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어떤 비상구를 통해 어디로 달아나는가. 지금 산꼭대기에서 사진 찍는 사람은 무한창공으로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붙드는 중이다. 한 물리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 세상을 때리고 나간 빛은 우주 한구석에 습자지처럼 쌓여 있다고 한다. 그 빛의 끈을 발견하여 가져온다면 지상에서 벌어졌던 일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실현할 수 없는 건 상상하지도 않는다는 말에 기댄다면 이는 전혀 허무맹랑하지도 않을 일! 감쪽같은 시간에 운반되어 가는 세월이 참 빠르다. 같은 시월에 속하건만 올해 추석도 벌써 까마득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그때의 일은 흐지부지 없었던 일이 되고 마는 것. 재난 탈출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 영화 <엑시트>와 다큐 <일곱 개의 대륙, 하나의 지구>의 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