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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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민란 없는 일본, 민심의 나라 한국 촛불시위를 전하는 일본 텔레비전들이 요란하다. 가장 놀라는 건 역시 참가자 수. 출연자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거기에 태극기집회까지 더해지니 “에? 더 있었어?” 하는 반응). 카메라가 군중 속으로 들어가면서 입들은 더 벌어진다. 유창한 정치발언이 난무하는 건 그렇다 쳐도, 가장무도회를 방불케 하는 시위의상과 퍼포먼스, 한 패널이 부러워한다. “마치 한바탕 놀이 같네요.” 그러자 나이 든 사람이 피식 내뱉는다. “역시 데모 대국.” 한국의 시위규모에 일본인들이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세기 일본 최대 시위라는 1960년 안보투쟁 때 도쿄에 모인 수는 주최 측 추산으로도 30만명을 웃돌 뿐이다. 그 후 최대 시위였던 2015년 안보법안 반대 시위도 10만명 정도였다. 도쿄 인구는 이 기간에 내내 1000만명 안팎이었다. 또 일본 전체 인구는 한국의 2.5배에 가깝다(남북한 인구의 2배 정도. 사실 이 비율은 조선후기=도쿠가와 시대부터 그러했다). 시위 참가 인원 수라는 게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인구가 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한국에서, 일본의 몇 배 규모의 시위가 번번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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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한국의 개인, 일본의 개인 몇 해 전 안식년으로 교토대학에 체류할 때의 일이다. 대학 구내식당에 가보니 몇몇 식탁의 한가운데에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식탁 양쪽에서 학생들이 칸막이벽을 마주하고 각자 우적우적 밥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면벽참선도 아니고, 면벽식사라! 하도 기이해서 일본인 교수에게 연유를 물어봤다. 대답인즉, 모르는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게 싫어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대학당국이 이런 조치를 내놨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 사회가 우리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라고 말한다. 혼자 밥 먹고 술 마셔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 없고, 기괴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고…. 우리보다 훨씬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그러나 이건 큰 오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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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소용돌이의 한국, 상자 속의 일본 “일본에서 음식 차리는 것을 보면 밥은 두어 홉을 넘지 않고 반찬도 두어 가지에 지나지 않아 몹시 간소하다. 다 먹으면 다시 덜어서 먹기 때문에 남기는 일이 없다. (중략) 여름에 파리와 모기가 매우 드문데, 이는 실내가 정결하고 지저분한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길가에서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질서정연하고 엄숙한 분위기라 떠드는 사람이 없다. 인파가 수천 리 길에 이르렀는데 단 한명도 제멋대로 행동하여 행렬을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20여년 전 일본 유학을 갔을 때 일본의 인상이 딱 이랬다. 일본을 가보신 독자들도 비슷한 인상을 갖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내 얘기가 아니고 1719년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신유한(申維翰)이 한 말(이효원 번역 <해유록(海遊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