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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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거대 정당의 ‘틈새’ 메울 다양한 목소리를 꿈꾼다 호주의 산불이 언제 시작됐는지 기억하시나요? 지난해 9월입니다. 사그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 산불은 시드니 등 대도시가 위치한 호주 동남부를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면적 절반에 달하는 4만9000여㎢가 불탔고 사망자도 24명에 달하죠. 야생 동물의 피해도 막대합니다. 코알라 등 포유류를 비롯해 동물 10억 여마리가 화재로 죽었으리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산불 열기는 너무 맹렬해 자신의 날씨를 만들어내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산불은 점점 더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이죠. 되풀이되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지난해 아마존 산불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대규모 산불은 바로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하면서 산불 위험도 증가합니다. 악순환의 연속이죠. 호주 산불은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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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경제 발전과 냉전 사이, 그 혹독한 대가 벌써 2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있던 저희 가정을 방문했던 장인어른은 한국 차를 보면 그렇게 반가워하셨습니다. “저기 한국 차가 있네. 저기 또 있네”하며 그렇게 좋아하셨죠. 저도 처음에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가난했던 한국을 기억하는 분이 느끼는 감흥과는 같을 수 없었겠죠. 고인이 되신 당신께서 지금 볼 수 있다면 더 놀라실 겁니다. 이제는 한국산 대형차도 쉽게 눈에 띕니다. 한국산 가전제품도 흔하고 대형마트에 사발면도 있으니까요. 그뿐인가요. 제가 일하는 이 시골구석에서도 한류 열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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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균형외교’ 선택 아닌 숙명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삼전도 굴욕을 견디는 인조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치욕은 잠시였고 인조는 평안하게 여생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민중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공포와 고통 속에 죽어갔죠. 집과 가족을 잃었습니다. 중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니 조선 지도자들의 죄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은 명과 청이 교체되던 시기였죠. 중국의 사소한 정치적 변화에도 민감했던 조선에 큰 위기였습니다. 게다가 한족 왕조와 만주족의 대결이니 보통 일이 아니었죠. 싸움을 주시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외교가 절실했습니다. 이기는 쪽에 나라와 백성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처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인조의 조정은 균형외교는커녕, 공공연하게 명나라를 지원하고 나섰죠. 결국 청나라의 침략을 자초했습니다. 정묘호란에 이어 두 번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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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선거법보다 공수처법이 먼저라고요? 문재인 정부, 민주적 진보는 몇 발을 뗐을까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이 코앞이니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민주체제 시작은 왕조와의 싸움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특정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권력을 쥐는 체제에의 저항이었죠.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민주체제는 여러 갈래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분배라는 큰 방향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수가 독점하던 권력을 성격에 따라(입법·사법·행정), 지역에 따라(연방제·지역분권제), 능력에 따라(노조·언론·학생·시위대) 나누면서 그 체제는 발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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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문재인 정부의 정치력 부재 시위는 어떤 조건에서 일어날까요? 불만이 커지면 시위가 일어난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이론은 경제, 사회적 조건을 따져봅니다. 지배계층의 균열, 억압의 강도 등 정치역학적 조건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들이 흔히 간과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시위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첫 번째 이론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세상에 불만 없는 사람 없지만 모든 사람이 늘 시위를 하지는 않죠. 2016~2017년 촛불집회가 절정에 달했을 때 참가자 수가 200만명 정도였습니다. 5000만명을 넘는 인구 10분의 1에도 못 미치지요. 이를 뒤집어 보면 시위는, 특히 촛불집회 같은 대형 시위는 정말 극적인, 과장을 보태면 기적적인 현상입니다. 그 바쁜 사람들이 일상을 포기하고 거리에 나섭니다. 공권력이나 상대방과의 충돌 가능성도 있죠. 게다가 나 하나 안 나가도 시위 크기는 비슷합니다. 시위의 열매 또한 내 참가와는 관계없이 따먹을 수 있죠. 그래서 이를 다 무릅쓰고 일어나는 시위는 그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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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회의원 임기, 2년으로 줄이자 자식을 키우며 세상에 쉬운 일이 없음을 간절히 느낍니다. 김성태 의원도 아버지로서 마음고생이 많지 않았을까요. 딸은 취업은 고사하고 취업 준비도 잘 안된 듯합니다. 서류전형 탈락, 면접 최하위권 등의 성적을 보면 말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의원은 KT에 딸을 채용하도록 청탁했고, 그 결과 정규직 자리를 꿰찼습니다. 하지만 김성태 본인은 이를 검찰의 무리한 기소, 정치보복이라는 주장 등을 하며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최종 법적 판단을 기다려 봐야겠죠. 문제는 김성태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입니다.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의 청렴, 양심, 공익 추구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책임이 단순히 도덕적인 것을 넘어 제도적, 정치적 근간임을 말해주는 것이죠. 공익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이고 사적일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개인이 더 이득을, 다른 누구는 손해를 보기는 합니다. 지역경제를 위해 도로를 건설해도 누구는 집값이 올라 이득을 챙기지만, 다른 누구는 소음과 먼지로 괴롭죠. 어떤 공공정책도 이런 양면성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의가 중요합니다. 전체를 위했다는 대의와 명분이 없으면 어떤 정책도 효과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공익을, 대의를 추구한다는 대중의 신뢰는 민주사회 질서의 근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갖는 ‘정치적’ 책임이 그만큼 엄중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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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참의원 선거가 보여준 세 가지 일본 지난주 어느 더운 오후 아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랑>을 골랐죠. 내친김에 다음날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키라>를 봤습니다. 한국뉴스에 아베 총리가 나와 한·일관계에 대해 설명을 해준 뒤였습니다. 한편으로 일본에 비판적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는 아빠의 모습에 아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식민지 역사 해석을 두고 시작한 갈등은 결국 양국 간 무역분쟁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정부 사이 거친 말이 오가고, 감정도 격해졌습니다. 덕분에 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 한국 사회의 관심이 이례적으로 뜨거웠죠. 실권 있는 중의원 선거도 아니고, 일본 유권자의 참여도 시들했지만 말이죠. 선거 결과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논의가 좀 덜 된 부분 세 가지만 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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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무서운 중2’ 뺨치는 한국당 “밥 안 먹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별별 생떼를 다 듣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이는 떠나고 괴물이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오죠. 이제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억지. 잘못은 전부 남의 탓. 귀찮다, 내버려 두라는 고함. 부모가 아닌 원수를 바라보는 눈빛. 잘못은 아이가 했지만, 그 애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해야 합니다. 밥 안 먹겠다는 말은 실소마저 나오죠. 화나죠. 슬프고 답답합니다. 한심해 실망스럽기도 하죠. 배 속에 다시 넣고 싶기도 하고,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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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당 대표’ 황교안을 위한 기도 한 사람의 내면은 치열한 싸움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 싸움은 어딘가를 엄숙하게 향하기도 하죠.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던 고상돈이나 모두가 꺼리던 소록도를 향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싸움이 그랬습니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반대하기 위한 싸움도 합니다. 하얼빈 역에서 방아쇠를 당기던 안중근의 손길, 1987년 종로 한 골목길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소녀의 눈물, 뻔히 질 것을 알며 부산으로 내려가던 한 정치인의 발길에는 아무 말 없어도 그 사람의 진심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고개를 숙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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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죽은 제갈량 일화가 떠오르는 이유 <삼국지>를 보면 당대 최고의 재상 제갈량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죽은 제갈량이 적이자 최고의 라이벌이던 사마의를 쫓아낸 일화죠. 오랜만에 들른 광화문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 건물에 걸린 독립운동가 초상화가 크기도 했지만 너무 현대적이고 세련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행사가 많았습니다. 100주년이어서 그랬겠지만, 민간 행사뿐 아니라 정부 주도 포럼, 전시회, 기념회 등이 열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녀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황사처럼 전국을 강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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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회에서 뭉개진 ‘합리적 의심’ 청문회장, 의원들 말투는 거칠고 언성은 높습니다. 긴 연설과 장황한 훈계 사이로 질문과 답변은 고춧가루처럼 뿌려질 뿐이죠.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등이 드러나면 눈높이가 맞지 않았다, 잘 몰랐다, 배우자가 했다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공수는 바뀌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욕하고 책임지라는 요구도 전형적입니다. 인재풀이 적다는 비판도 빠지질 않죠. 이렇게 식상한 연속극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청와대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그냥 한국 지도층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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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만 할 수 있는 ‘우리 안의 북한 바꾸기’ 하노이 북·미 회담이 결렬되자 한쪽에선 탄식이, 다른 쪽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정상회담은 보통 형식에 불과할 뿐이어서 충격이 컸죠. 설명과 전망도 다양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에 합의서에 있지도 않던 무리한 요구를 했다.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제제재 완전 해제를 요구했다. 일본 훼방 탓이다.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때문이다. 뮬러 특검 수사 등 미국 정치가 문제였다. 대화 국면은 이어갈 것이다. 회담 재개에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미국의 위상이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이 결렬로 김정은 위원장 건강이 안 좋다는 말까지 나왔죠.